# 외전-추석2 #
외전
추석2
반화를 마주보며 웃는 여자는 아까부터 물 없이 송편 반죽을 빚으려는 그 여자였다. 찹쌀가루 속에서 뒹굴었는지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변해 있었다.
“뭐하고 있었...는지는 안 봐도 알겠네. 그거 물 좀 넣으라니까?”
“물에 닿는 거 싫다고. 흥!”“... 그럼 그냥 하지를 마.”“싫어! 엄마한테 꼭 잘 빚는다고 인정받을 거야!”“그럼 물을 쓰라니까?”
“흥!” 똥고집을 부리는 순이를 보며 반화가 한숨을 쉬었다. 딸이나 엄마나... 똑같았다. 삼이는 해골씨가 잘 만든 세계를 갑자기 때려 부수질 않나, 순이는 몇 년째 추석만 되면 송편을 만들겠다고 저러질 않나...
골 때리는 모녀였다.
“애는 또 그렇게 만들었어?”
“사고 쳤으니까 그렇지.”
“내가 삼이 자꾸 혼내지 말라고!...음... 이건 귀여우니까 넘어가겠지만 다음부턴 말하고 혼내라고.”
“엄마도 미워!!” 순이의 반응에 삼이는 혹시나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순이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어 오히려 역효과를 보이고 말았다.
“저러고 보면 진짜 순이, 아니 숙모랑 삼촌은 똑같다니까? 괜히 찰떡궁합이 아니야. 그리고 골 때리는 부부이기도 하고.”
“히히, 그렇지?”
조용히 귓속말하는 슬이의 말에 맹이도 동의한다는 듯 웃었다.
저 둘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아내로 받아들이는 걸 반화의 부모님이 그냥 그래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웃긴 일이었다. 그 고양이가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반화네 부모님은 그 힘든 결정을 생각보다 빠르게 내렸다.
사람으로 변한 순이가 지나치게 예뻤으니까.
인간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예뻤다.
그렇게 반화와 결혼하게 된 순이는 귀찮다는 이유로 결혼식은 건너뛰었다. 간단하게 그냥 가족끼리 파티를 연 것이 다였다.
그리고 순이처럼 반화를 노렸던 령이와 에나스, 그리고 루네스는 안타깝지만 순이의 주먹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령이는 칸 대륙으로 넘어가 주정뱅이가 되었다가 순이가 집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끌고 오는 굴욕을 당했고 에나스는 실연(?)의 아픔을 나무가 되어 극복하겠다고 난리치다가 순이에게 나무 방망이로 쳐 맞았다.
그리고 루네스는 쿨하게 포기하고 순이가 소개 시켜준 아마조네스로 가서 잘 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이모들이 난리였어.”
“킥, 아빠가 저래 봐도 인기 많다고.”
“음... 확실히 잘생기긴 했는데. 아무리 잘생겨도 성격 개떡...”
꽝!!
“삼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개떡??”
“헤헤...아니, 그게 아니고.”
“개떡 같은 성격 한 번 보여줘?”
“에이~ 왜 그래...요.”
귓속말 하다 걸린 슬이가 반화에게 꿀밤을 맞는 걸 보며 맹이는 모른 척했다. 확실히 슬이는 명하를 닮은 것 같았다.
매를 버는 걸 보면.
푸확!
“에이씨... 그거 물 부으라니까!!”
“싫어! 물 싫다고!”
그새 또 반죽 만들겠다고 가루를 팡팡 내려치는 순이 때문에 온 집안이 하얀 가루에 뒤덮였다. 멀리서 보면 화재 때문에 연기가 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뿌옇게 변했지만 주변에 있던 녀석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집에 저 정도는 일상이었다.
“우리는 롭스 있는 데로 가자.” 둘이 꽁냥꽁냥(?) 거리는 것을 보느니 다른 곳에 가는 편이 속 시원했기에 슬이는 맹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히잉... 이번엔 또 며칠이나 이 꼴로 있어야 되지?”
“그러게 왜 거기 가서 난장을 피웠어?”
“해골씨가 만드는 건 흥미롭잖아.”
“흥미로운데 왜 부셔?”
“부시면 또 새로운 흥미로운 걸 만드니까?”
“...에휴...” 맹이의 품에 안겨서 나온 새끼 냥냥이 삼이의 말에 슬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안의 최고 사고뭉치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나 보다. 벌써 20년째 몇 개의 세계를 말아 먹은 건지...
“넌 어디 갔다 왔어? 뭐 색다른 게 있었어? 좀 오래 있다 왔네.”
“아! 이번에 갔다 온 세계 있잖아? 삼촌이랑 닮은 녀석을 봤다? 그리고 거기에 흰토끼 녀석이 있었는데 딱 삼이랑 성격이 똑같았어.”
“헐... 삼이랑?”
맹이가 슬이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개떡같은 성격의... 아니 냥떡같은 성격의 녀석이 또 있다니. 자신이 만약에 삼이보다 늦게 반화를 만났으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생각도 하기 싫은 녀석이랑 똑같으면...
“그렇다니까? 아닌가? 식탐은 맹이 너 닮았나? 너랑 삼이랑 딱 반반 섞으면 되겠네.”
“뭐야 그게, 쳇...그 인간은 뭐야? 아빠랑 닮았어?”
“기질이 닮았어. 양아치인데 귀찮아 해. 생긴 건 완전 달라. 삼촌은 잘생겼잖아. 그 인간은 뭐랄까... 우락부락 남자답게 생겼달까? 오크의 잘생긴 인간화? 정도 되겠네.”
“그래? 근데 멀쩡히 돌아왔네?”
“삼촌 같은 녀석이라 강하긴 한데 아직 삼촌 같은 힘은 없었어.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어디야? 거기? 어떻게 갔어?”
삼이가 진심 궁금해서 물었다. 왜 자신은 그런 인간을 만나지 못하는 걸까? 참 아쉬웠다.
“거기? 저번에 그 쥐새끼들 있잖아, 지구에 와서 분탕질 치려던 놈들. 그 놈들 흔적을 파스가 발견했다길래 바로 갔지. 근데 그놈들을 두들겨 패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쥐새끼들?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파스! 나뿐짜식! 사람(?) 차별하냐!” 삼이가 맹이의 품에서 바둥바둥 거리며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파스의 대답은 없었다. 괜히 말하면 피곤했다. 파스도...
“너 그때 해골씨가 만든 세계 들어가겠다고 숨어 있었잖아.”
다행히 맹이가 파스를 대신해서 흥분한 삼이를 진정시켜주었다.
“쳇...암튼 그래서?”
“그놈들, 생각보다 조직적이더라고? 오합지졸들이긴 한데 나름 차원을 돌아다니면서 지들만의 영역이 있나봐. 연락망도 있고. 근데 지들 연락망에 꽤 먹음직한 녀석이 있다고 자기들이 알려주겠다는 거야.”“으으으...”
삼이는 슬이를 부러워 죽겠다는 듯 쳐다봤다. 그런 재미있는 일이라니!
“그래서 그놈들한테 정보를 얻어서 한번 가봤지.”
“잠깐! 그럼 그 쥐새끼들은? 걔들 조직적이라며? 그냥 보내 줬어?”
“그럴 리가? 이거 삼촌한테도 얘기 안했어. 아니다, 아예 안 물었네. 쳇...아무튼 조카한테 관심이 없어.”
말하다가 섭섭해진 슬이가 투덜투덜했지만 맹이와 삼이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럼...지금?”
“고러치! 추석 전에 후딱 해치우고 오자고. 오랜만에. 근데 삼이 넌 괜찮아?”“에헤이~ 아빠는 나한테 약한 거 알면서. 흐흐흐. 모습만 이렇게 해두고 힘은 안 뺏었어.”
삼이의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불쑥 튀어나온 검은 기운이 삼이와 같은 표정의 둘까지 감싸버린다.
“추석 전에 사고치지마라?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서 재롱이나 피워 녀석들아!”
“...쳇...”
셋의 음모(?)는 간단하게 반화에게 제압되었다. 바보같이 반화 코앞에서 그런 얘기를 떠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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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반화네 추석날.
반화네 집에서는 전을 부치거나 향을 피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평소와 비슷했지만 반화가 데리고 있는 식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한 번에 모여서 파티를 벌이는 것이 다였다.
부모님들은 산만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 북적북적거리는 게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순아... 그냥 송편을 사라니까?”
“엄마! 내가 다음엔 꼭 만들 거야! 기대하라고!”
“...에휴...” 반화의 어머니가 순이의 작품을 보며 한숨과 함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기들을 재미있게 해주려는 순이의 노력이 귀여웠던 탓이다.
‘음... 조금 오해하는 것 같지만 그냥 둬야겠다.’
어머니의 그 생각을 짐작한 반화는 그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고 진짜 진심으로 그런 거라고 고쳐주고 싶었으나 그냥 두기로 했다.
순이의 작품을 보면 절대 일부러 저러지 않으면 저럴 수 없긴 했다.
그 힘든 걸 해내는 게 순이지만.
처참한 몰골의 송편, 아니.. 저게 과연 송편일까? 그냥 가루를 힘으로 꾹꾹 모양으로 만든, 툭하면 가루가 되어 풀풀 날리는 것이?
후우욱~...
파스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