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완) #
284화
령이가 순이에게 벌을 받던 말든 반화는 상관하지 않았다. 저러면서 자동으로 힘을 조절하는 것이다. 분조조절장애를 고치는 방법 중 하나와 비슷했다.
자신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 옆에 있으면 자동으로 치료가 되는 기적의 장애.
령이도 순이가 저렇게 계속 구박하다 보면 저절로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될 거다.
오랜만에 소화를 위한 잠을 자다 일어난 반화는 상쾌해진 기분으로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의지라는 것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허차원으로도 의지는 막을 수 없었다는 걸 순이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반화의 주력인 검은 바다는 허차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의지에는 통하지 않는 다는 말이니까.
확실히 차원에는 신기한 힘들이 많았다. 아마 반화가 이렇게 강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을 가능성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그 존재는 의지를 마음대로 다룰 줄 아는 자일 가능성이 높을 테고.
새로운 힘에 대해 알았으니 반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순이 녀석이 나도 불렀다고 했는데... 전에 노에라 녀석도 불렀다고 했고.”
정확히는 노에라는 반화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의지를 보낼 수 없었던 것이지만 그건 아마도 녀석이 자신을 의지로 불렀다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 떠올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환이 되어서 해코지 하는 게 무섭다는 게 아니라 반화라는 존재를 의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위험했다는 말이었다.
순이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부르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역시 의지를 보내는 건 실패했다. 반화는 아예 듣지 못했으니까.
전에 셀라 녀석이 소환에 대해 상성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반화의 힘이 의지에 어느 정도 저항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상성도 있겠지만 그건 비슷비슷한 수준들끼리의 얘기일 것이다.
“일단, 그럼 그 녀석을 상대로 실험을 해봐야겠네.”
자신이 허차원을 흡수하는 동안 몰래 촉수에 자신의 씨앗을 담아 차원 너머로 보낸, 그 애벌레 녀석이 바로 실험 대상이었다. 녀석은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그 공간은 반화의 공간이었기에 녀석이 하는 짓을 다 알고 있었다. 막지 않은 건 다 쓸모가 있어서 일뿐이었다.
이렇게 실험체로도 사용하고 또 놈을 키워 허차원을 찾게 만들 생각이었다. 놈이 허차원을 찾으면 그때 반화 본인이 가서 먹고 또 녀석을 차원으로 던져버리는... 한마디로 사냥개로 이용하기 위해 그냥 놔뒀다.
놈은 전혀 모르겠지만.
거기에 놈을 상대로 의지를 실험할 예정이었으니...어떻게 보면 반화는 역시 괴물이었다.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려?”
순이가 혼잣말하는 반화를 보며 한 소리했다. 안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혼잣말을 하고 있으니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의지라는 거 좀 실험하고 있었어.”
“그게 실험이 필요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냐?”
“...”
그러고 보니 순이는 이미 의지라는 걸 써 본적이 있었다. 차원을 넘어서.
자기가 원하는 상대에게 의지를 보내 계약하게 하고 소환하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의지 쪽은 순이가 앞설 수도 있었다. 그게 바로 힘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반화는 순이에게 몇 가지를 물어 봤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냥 묻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는 것도 아니고 순이의 설명은 너무 주관적이고 불친절했다. 순전히 자기 자랑인 것 같기도 하고.
......
반화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정부는 거센 시위로 그로기상태에 도달했고 결국 각종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국민들의 철퇴를 맞아야 했다. 아마 뉴월드라는, 명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 시위는 무력으로 제압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으니 힘을 가진 자들이 제멋대로 굴어도 틈이 많을 시기였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뉴월드, 즉 파스의 의해 죄다 저지되었다. 오히려 함부로 힘을 쓰는 순간 그 사실이 공개되고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게 반복되자 힘을 가진 자들도 깨달았다. 뉴월드의 거대한 힘을... 그리고 그 힘은 국민의 편에 있다는 것을.
언젠가 거대한 힘도 순수를 잃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국민의 편이었다. 비리로 얼룩진 권력자들은 그 거대한 힘을 이겨낼 수 없었고 결국 몰락했다.
황실이 결국 인정되고 초대 황제로 명하가 올랐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뽑고 그 사람들은 황실에 감찰을 받았다. 물론 그 감찰은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청원에 의한 것이었다. 황실은 오직 국민들의 청원을 받아 정부를 감찰하기 위해 움직이는 기관인 것이다.
그 새로운 체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아직 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은 빠르게 안정이 되길 원했고 그 여파로 자리 잡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
“이제 바쁜 건 끝났죠?”
“그렇죠. 새 정부도 들어섰고, 생산 활동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할 건 별로 없죠.”
민사장의 말에 명하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시위부터 시작해서 감찰 등등 꽤나 강행군이었다. 간간히 크로롱액을 먹어서 그나마 버텼지 그러지 않았으면 벌써 링겔 꼽고 병실에 누워 있었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파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끔찍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이미지 하나는 제대로 챙기긴 했지만.
“우리 솔이 백일 언제였죠...?”“아마도... 이번 주 주말인 것 같은데요?”
너무 바빠 백일잔치 준비도 못했다. 물론 민사장네 가족들과 명하네 가족들이 알아서 하고 있긴 했지만 부모로서 조금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또 결혼식처럼 그렇게 하면 안돼요.”
“쳇... 그거 재미있었는데.”
민사장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명하가 그 잔치를 주체 했다면...정말 대환장파티였을 것이다. 그것도 이번엔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대환장 파티를 열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가족들에게 맡겼다고 해서 그게 정상적인 백일잔치가 될 거라는 건 민사장의 착각이었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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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백일잔치를 이렇게 해? 요즘은 원래 이렇게 해??” 반화가 이상한 듯 수화에게 물었다. 자신이 아는 백일잔치는 그냥 떡 좀 돌리는 그런 거였는데... 이건 스케일이 명하의 결혼식을 훌쩍 뛰어 넘었다.
“아무래도 이제 명하가 황제, 으으으... 아직도 입에 안 붙네. 아무튼 황실이라는 기관이 이제 처음으로 들어서는 거잖아. 그래서 그것까지 겸해서 하다보니까 좀 커졌어. 솔이도 백일은 평생 한번 있을 일이니까 딱 좋아. 이 날을 명절로 만들 생각이거든.”
“명절?”
그냥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축제를 벌이는 건 줄 알았는데 수화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아예 매년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로 만들 생각으로 계획을 짰으니... 이것도 괜찮았다.
이 곳에 와서 적응도 하고 사람들끼리의 끈끈한 유대감을 만드는데 꽤 도움이 될 것이다.
반화가 문득 물끄러미 수화를 바라봤다.
“왜?”
“그냥 차라리 누나를 황제로...”
쫘악!!
“소름끼치는 소리 하지 마. 이것도 명하 고게 시간 없다고 해서 해주는 거니까.” 수화는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하긴 수화의 성향은 명하보다는 반화쪽에 가까웠다. 수화가 들으면 죽이려 들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무튼 이렇게 할 거니까 니 애들한테 단단히 일러 둬. 사고 치면 안 된다?”
“우리 애들이 언제 사고를 쳤다고.”
“늘?”
“...”
수화의 말에 반화는 강하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또 맹이 녀석이 멍이를 타고 뛰어 다니다가 애꿎은 건물 하나 박살 낸 적이 있었다. 물론 신도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지원을 나갔다가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아, 그리고 우리 국호는 대한(大韓)이야, 공식적인 정부 명칭은 대한민국 그대로 쓰는데 황실은 대한으로 부르기로 했어.”
“마음대로.” 쿠당탕!!
벌컥!
“반화!! 야!!”
“왜 호들갑이야 또.”
수화와 반화가 헐레벌떡 뛰어 온 순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느긋한 녀석이었는데...
“그게, 이상한 게 막 들어왔어!”
“뭔 소리야 얘는 또.”
수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역시 고양이라 그런 듯, 사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음... 뭐랄까 신앙심? 충성심? 암튼 막 이런 게 들어왔어.”“??...니가 무슨 신이냐?”
“어? 나 신 맞는데.”
“응?”
수화는 그냥 한 말에 진지하게 답하는 순이를 보고 어이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지가 신이라니...
“쟤 너무 오냐오냐 한 거 아냐? 순이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아이씨...진짠데...”
수화의 엄한 말에 순이가 기죽은 듯 말했다. 하긴 순이는 어릴 때부터 수화를 좀 무서워하긴 했다. 그렇다고 싫어하면서 무서워한 건 아니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아이 같달까?
“쟤 진짜 신 맞아. 사이비.”
“뭐??...”
그때, 반화가 순이의 편을 들어 주었다. 정확히는 편을 들어준 건지 놀리는 건지는 애매모호했지만.
“어디더라? 아마조네스? 거기서 쟤가 신이래. 여신.”
“...말세네.”
“뭐! 왜!?”
반화와 수화의 표정에 순이가 발끈했다.
“신앙심의 힘이 들어 왔다라... 그것도 재미있네. 원리가 뭐지.” 수화가 발끈하거나 말거나 반화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에 눈을 반짝거렸다. 소설 속 이야기에서 신들이 힘을 얻는 방식이 진짜 가능하다니. 의지의 힘과는 다르지만 이쪽도 흥미로웠다. 물론 반화 타입은 아니었다.
“니들 이상한 짓 좀 적당히 해. 쯧...”
수화가 순이와 반화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사고뭉치는 이 둘이었다. 이미 지구를 말아 먹은 전적도 있으니... 이 세계는 제발 아무 일 없었으면 했다.
그리고,
“요즘 슬이가 삼이, 맹이랑 어울리던데 이상한 물들이면 죽는다?”
“애들끼리는 노는 걸 왜 나한테...”
쫘악!
수화의 등짝스매싱은 왜 아직도 아픈 걸까... 반화는 알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롱이랑 수는 또 어디 있어? 엄마가 데려오래.”“일 끝나면 바로 오라고 하지 뭐. 걔들도 일은 해야지.”
“너나 일해. 니가 제일 할 일 없어 보여 임마.”“...” 반화는 아마도 절대 수화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수화를 존경의 눈빛을 담아 바라보는 순이...
.
.
.
“오늘은 새 정부가 출범되기에 앞서 대한 황실의 이명하 초대 황제가 즉위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이명하 황제의 자녀인 이 솔군의 백일 기념일이기도 한데요, 황실 측에서 이 날을 국경일로 지정해 국가적인 행사를......”
뉴스에서 화면을 전환시키며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롭스의 점화식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롭스의 손에 피어오는 검붉은 화염이 부글부글 타오르며 외성의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의 불을 붙이며 행사는 시작되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명하가 한복을 개량한 옷을 입고, 용의 머리 위에 올라서 아직 갓 난 아기인 솔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치 사자왕의 심바처럼...
왠지 배경음으로 나주평야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