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281화
해골씨의 손에 있는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것에 잠시 눈길을 줬다가 다시 해골씨를 보는 반화.
땀을 삐질 흘릴 정도로 긴장한 해골씨는 이내 거두어지는 반화의 눈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딱히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반화의 눈이 살벌했던 탓이다.
“가자, 순이 넌 애들이랑 있어.”
-냐?
스르륵!!“나도 갈래!! 그 자식 면상 한 대 후려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음... 뭐, 그래. 가자.”
-사, 삼이도!!
“삼이 넌 고기 먹고 있어. 맹이한테 구워달라고 해.”
-응!! 고기 먹으라는 말에 바로 자리에 다시 앉아 고기를 바라보는 삼이...단순해서 좋은 건지. 아니면...음...
꾸물...꾸물...
반화의 손바닥위에 올려 진 촉수 조각이 벗어나려는 듯 꿈틀거렸다. 아마 불길한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반화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정말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움직였다만 안타깝게도 그 몸부림은 너무 쉽게 반화의 눈에 보였다.
“요것 봐라?”
잘 보니 꿈틀거리며 도망가는 척하면서 제 살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일부러 에너지를 소모해서 스스로 소멸되려는 것이다. 모르고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으면 버둥거리면서 더 큰 에너지를 소모해 없어지려는 거다. 반화에게 들킨 이상 불가능해졌지만.
꽈아아악!!!
?!
뿌직!!
혼자 소멸되기 전에 먼저 반화가 힘을 써서 촉수덩어리를 터트려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든 힘을 추출해 혼자서는 아무 짓도 할 수 없게 만든 후 순이와 해골씨를 향해 돌아섰다.
“가자.”
“예!”
“응!”
해골씨는 실험체를, 순이는 죽빵을 위해서 반화에게 달라붙었다.
드디어 놈의 힘을 추적해 놈이 숨어 있는 곳으로 차원을 찢어 녀석들을 데리고 그 속으로 사라진 반화.
-맹이!
꽁!
-이모라고 하랬지?
-힝... 이모 빨리 꼬기!
맹이한테 까불다가 꿀밤 한 대 맞은 삼이가 이마를 문지르며 고기를 외쳤다. 꿀밤의 아픔보다 고기가 우선이었다. 반화와 순이, 해골씨가 사라지는 것도 관심 없었다.
오로지 고기!-꼬기! 꼬기!
-기다려, 금방 구워줄게.
화르르르!!!
맹이의 백염이 반화가 두고 간 생고기의 겉면을 익히며 육즙을 가두고 은근한 열을 가해 속까지 천천히 익혔다.
고기가 익는 냄새에 침이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르고 삼이는 멍하니 고기만을 쳐다봤다. 이미 한번 달려들었다가 아직 안 익었다고 꿀밤을 날린 맹이 때문에 손을 대진 않았지만 눈빛으로 익혀버릴 생각인지 아주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츄릅!...히히...
-...
맹이도 고기를 좋아하지만 삼이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았다. 맹이가 보기에도..
.
.
.
꿀렁~
“여긴가?”
“맞아, 여기야. 으으, 기분 나빠.”
순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쓰레기통에 다시 들어오다니... 옆에 반화가 없었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지도 몰랐다.
“마, 마스터... 힘이..”
“응? 아아, 미안.”
반화나 순이는 이 공간에 그냥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해골씨는 꽤나 곤란했다.
다행히 반화가 바로 손을 써줘서 더 이상 힘을 뺏기지 않았지만 그 잠깐사이 정말 순식간에 기가 쪽 빨린 해골씨는 피골이 상접...아니, 골이 쪼글라 들 정도였다.
“여기가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여기? 음... 차원에 구멍을 뚫어서 만든 감옥?”
“예??”
반화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해골씨가 되물었지만 반화도 딱히 잘 설명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일단 단절된 곳이라는 건 알겠지만 정확히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랐으니까.
다만 왜 순이가 힘을 써도 통하지 않은지는 알 수 있었다.
“구멍이네, 막힌 게 아니고.”
“응? 무슨 소리야?”
“허(虛) 차원으로 사방으로 구멍을 뚫어 놨어. 그거 감추려고 이런 쓰레기 같은 냄새를 풍기는 거고. 네 힘을 흡수한 게 아니고 그냥 구멍 뚫린 곳으로 흘려보낸 것뿐이야.”
“그게 가능해?? 그 정도로 능력 있는 놈이면 진즉에 왜 나를 그냥 내버려 둔거야?”
“자기 힘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게 자기 힘이면 벌써 날뛰고도 남았겠지만.” 허차원을 이용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었다. 본인이 그 허차원에 빨려 들어가 그대로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걸 이렇게 본인의 힘으로 만들어 내서 이런 함정을 팠다면 굳이 찔끔찔끔 간보는 일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자기 힘이 아니라는 거였다.
“저기, 마스터?”
“왜?”
“그 허차원이라는 게 뭡니까? 저만 모르는 것 같은데...” 순이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해골씨는 굴욕적이었지만 궁금한 건 해결해야했다.
“얘도 몰라.”
“응, 나도 몰라.”
“...?”
“그냥 아는 척하는 거지 뭐. 허차원이라는 말 자체를 내가 만든 건데.”
“아...”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빡 속아(?) 넘어 갈 뻔 했다. 물론 순이는 굳이 궁금하지 않아서 넘어간 것일 뿐이었다. 반화 말을 들어보니 보통 기술이 아닌 듯 했으니까. 애초에 자신은 눈치 채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말 그대로 비어있는 차원이야. 무(無)차원이라고도 할 수 있고. 비어 있는 것처럼 모든 걸 흡수하는데 존재 하지 않는 것처럼 찾을 수 없거든.”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아공간의 상위개념이라고 보면 돼.”
“끄응....”
그냥 상위개념은 아닌 것 같은데 더 물어 봐도 모를 소리만 할 것 같아 해골씨는 더 묻지 않았다. 사실 반화의 인상이 점점 구겨지는 걸 보고 입을 다문 것이지만... 슬며시 주먹을 쥐었던 손을 푸는 걸 보니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여기에 자리 잡고 꿀 빨고 있었네.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힘은 허차원으로 돌리고 흡수 할 수 있는 건 지가 먹고. 어차피 계속 여기에서 죽치다보면 빠져나갈 수 없다면 힘이 빠져서 결국 코어만 남길 테고...”
이런 곳이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을 텐데 용케 찾은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자신에게 걸려버렸지만.
“근데 반화, 너는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어?”
“허차원?”
스으으윽....
“이게 뭔 것 같아?”
순이의 물음에 반화가 자신의 검은 기운을 등 뒤로 드러내며 역으로 물었다.
“???? 설마 그게??”
“내가 힘을 얻은 곳에 왜 그렇게 괴물들이 몰려 있었을까?”
“...”
“이거야. 네게 준 힘도 강한 거긴 하지만 그 정도로 괴물들이 혹하진 않거든. 자신들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정도 힘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간혹 검은 바다를 노리고 오는 햇병아리 같은 놈들을 잡아먹으려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 놈들은 다 잔챙이지. 진짜들은 이 힘 하나만 보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힘을 합치기도 했어.”
처음이었다. 반화가 자신이 겪었던 것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해주는 것은. 그래서 순이도 딴죽을 걸지 않고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네가 얻은 게 그 힘이야?”
“어.”“그 검은 바다라는 게 허차원이고?”
“정확히는 허차원을 만들어 내는 코어지.”
“그럼 여기 있는 건? 이것도 코어가 있는 거야? 그럼 괴물들이 몰려들어야 되는 거 아냐?”
“여긴 그냥 허차원이 열린 곳일 뿐이야. 코어는 없어.”“??”
“코어가 있는 곳에 이런 쓰레기 같은 곳이 만들어 질 것 같아? 진즉에 빨려 들어가서 없어졌을 거다.”
“아, 그래??”
정확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반화가 가진 힘이 어마무시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순이와 해골씨는 앞으로 반화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언제는 반화가 약해서 말을 안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고오오....
반화가 퍼트린 검은 바다의 힘이 주변에 있는 허차원을 감지하고 먹잇감을 보고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날름거렸다. 그냥 열 받게 만드는 놈 좀 혼내 주려고 왔는데 의외의 수확이었다. 빈껍데기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먹을 만한 거였다.
“그럼 일단 손질부터 좀 할까, 뒤로 딱 붙어.”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냄새나는 것부터 처리해야했다.
반화의 등 뒤에서 넘실거리던 검은 바다의 기운이 점점 확장되어 그들이 있는 공간을 모조리 삼켜버리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공간의 주인이 반항하려 했지만 부질없었다. 전혀 반화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쓸려가는 모든 것들...
순식간에 공간자체가 삼켜져 버린 듯 어두워지고 순이와 해골씨는 아무 것도 볼 수는 상태에 빠졌다. 자신의 몸조차 보이지 않아 흡사 눈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고 해골씨같은 경우는 순식간에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에 빠졌으나 다행히 그 어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스르륵...
“헉!...”
검은 바다의 기운이 거둬지고 보인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해골씨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냥 본 것뿐인데 이정도로 공포감을 주다니... 마스터, 반화가 괴물이라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그러나 해골씨와는 다르게 순이는 흥분한 기색이었다.
“야!!”
“응? 왜?”“나도 이거 줘!”
“...혼난다?”
“힝...”
떼쓰려는 기색이 보이자마자 반화가 엄한 목소리도 순이를 나무랐다. 이 녀석은 역시 철들려면 멀었다. 이게 준다고 받을 수 있는 힘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고양이처럼 앙탈을 부리다니...
‘아, 고양이라서 그런가?’
“후웁...후우...훕!...후우우우... 어?? 여긴...?”
“원래 허차원이 있던 세계야.”
“그냥 평범한데?”
“그럼 뭐 다를 줄 알았어? 허차원은 없는 세계라고.”
“있다가 없다가 뭐 이래?”
반화의 말에 순이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힘을 주지 않는다고 삐진 것 같았다.
“저놈이 여기 그렇게 만든 놈입니까?”
그냥 평범한 숲속에 꿈틀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애벌레는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공간이 부서지면서 타격을 입은 듯했다. 그래서 더 비주얼이...
“그렇겠지.”
“으웩... 못 생겼어.”
꿈틀!!
순이의 말에 놈이 발끈한 듯 움찔했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그 누구도 이 공간의 비밀을 알아차린 적 없고 설사 알아차려도 빠져 나오지 못했던 공간을 박살내면서 나타난 놈들이다.
한 녀석은 자신이 먹이로 삼았었던 녀석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먹잇감을 놓친 경우인데다가 바로 얼마 전이었으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츠르르르
벌떡!!
“어? 인간이네?”
애벌레의 비주얼이 너무 충격적이라 몰랐는데 놈의 앞에는 인간들이 누워있었다. 지금은 몸을 일으켜 반화들을 향해 서있지만.
-츠르르!!
화르륵!!!!
쿠르르릉!!!
[email protected]? 끼에에에엑!!!!
인간들을 조종해 반화들을 공격하려 했던 애벌레는 순식간에 푸른 불꽃과 뇌력에 휩싸여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놈이 일으킨 인간들은 이미 머리통이 날아가 버린 후였다. 간혹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죄다 뇌력이 스쳐지나가며 머리통을 다 날려버렸다.
“이 새키, 나를 가지고 놀았겠다?”
-끼에에엑!!!!!
한 번에 죽지 못한 놈이 고통스런 비명이 계속 질러댔지만 순이는 놈을 바로 죽일 생각이 없었다. 머리통이 어딘지 몰라 죽빵은 못 날리겠지만 포동포동한 살들이 많으니 치는 맛은 있을 것 같았다.
“적당히 해, 죽이지 말고.”
반화가 혹시나 해서 말했다. 아직 그도 분풀이 할 게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