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273화
그러나 깨끗한 것도 과하면 좋지 않는 법이었다.
“마스터??? 이거 계속 놔둬도 괜찮은 거 맞아??”
“음... 몰라?”
“?!”
아니, 자기가 시켜놓고 저런 무책임한 말이라니, 노에라는 황당한 눈으로 반화를 보다가 이내 이해했다. 원래 자신의 마스터는 딱히 뭔가를 계획하고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적대로 처리할 자신이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좀 심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역시나...
쩌저저적!...
“...??? 이, 이거 대륙이 쪼개지는데??”
얼마나 난리를 피우고 있으면 대륙이 쪼개지는 듯 한 착각(?)이 드는 걸까? 노에라가 우려 섞인 눈으로 반화를 쳐다봤지만 반화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잘 한다 내 새끼들. 아주 아작을 내는 구나.”
...
쿵!!!!....
쿵!!
쿠르르르...
“마스터?? 진짜 괜찮아?? 대륙이 쪼개지고 있다고!”
“어, 그러려고 애들 풀어 줬는데. 잘하고 있네 뭐.”
노에라의 다급한 물음에도 태연한 반화의 대답. 정말 대륙을 쪼갤 생각인 모양이었다.
“에이... 아무리 열 받아도 남의 세상을 왜??”
“어차피 망한 세계야. 알게 뭐야.”
쩌저저적!!!
-야아아아압!
쿠르릉!!
삼이의 벼락이 끝내 대륙이 쪼개질 만한 충격을 내리 꽂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대륙이 반으로 쪼개지려 했고 맹이의 검이 덜렁거리는 대륙을 확실하게 쪼개버렸다. 당연히 그 위에 있던 노에라와 반화의 땅도 터져나가면서 한 마디의 별의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압력이 생기며 별의 핵폭발로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빨아 당기며 블랙홀을 만들자 맹이와 삼이가 반화에게 쪼르르 다가와 이래도 되는 건 가 하고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반화가 날뛰라고 했지만 자신들이 생각해도 과했다. 그러나,
-아, 아빠?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응? 읏차! 실컷 뿌셨어?”
-??...응!!
예상외의 반응을 보이는 반화의 모습에 삼이가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밝은 얼굴로 돌아와 반화의 품에 쏙 안겼다.
“내 새끼들, 훌륭하게 컸네.”
-웅?
반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맹이.
“으아아아아!!! 마스터!!! 끄, 끌려간다!!”
반화와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인력으로 끌려가는 몸을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노에라가 참다 참다 반화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평화로운 그들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누군 뭐가 빠져라 버티고 있는데... 저렇게 여유롭게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니.
“뭐하냐?”
“?!...????!”
반화의 한심한 표정에서 뭔가 깨달은 노에라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에 대항해서 잔뜩 끌어올린 힘을 슬쩍 풀었다가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반화를 바라봤다. 진즉에 말이라도 해주지... 이런 줄도 모르고 안간힘을 썼으니.
물론 노에라가 그렇게 힘 쓸 만하기도 했다. 지금 그들은 인력의 중심이 바로 발밑에 있는 위치에 있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그 모습에 반화와 아이들이 아니라면 당연히 노에라 같은 반응이 나올 만했다.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검은 아가리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삼키려고 넘실넘실 거리는 모습에 저렇게 평화로운 게 이상한 거였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
노에라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들어올 구멍을 막는 거지, 뭐.”
“...구멍 하나 막으려고 세계를 없앤다고?”
“말했잖아. 어차피 망한 세계라고.”
세계가 정화할 힘을 잃은 곳이었다. 전에 반화가 봤을 때는 그래도 세계가 정화하려는 힘이 보였지만 지금은 아예 그 힘이 없었다. 한 마디로 이미 세계는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외부에서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그때 삼이 때문에 그냥 돌아 가버려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 같았다.
-히히
“재미있었어?”
-웅!
덕분에 애들은 신났다. 실컷 힘을 발산했으니까.
“그럼 슬슬 가볼까.”
스으으윽...
하나의 별만 없앤다고 구멍을 막는 것은 아니었다. 이 차원 자체를 없애야 구멍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기에 마무리는 반화의 몫이었다.
세계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본 노에라가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입으로 넋을 잃어버렸다.
쏙!
“!?!...우엑!!”
-헤헤헤~
벌어진 입에 쑥 들어온 털 뭉치 솜방이에 헛구역질을 하며 노에라가 솜방망이의 주인을 노려봤다. 당연히 삼이겠거니 했지만 범인은 맹이였다. 순진하게 웃는 얼굴로 이런 짓을 하다니... 역시 반화의 딸이었다.
“뭐 하냐? 멀미해?”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반화가 노에라를 보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에 좀 떠있었다고 멀미를 하다니.
“!”
“가자. 맹이야, 노에라 잡아서 이리와.”
-웅!
덥석!!
반화의 말에 싱글벙글 웃으며 노에라의 꼬리를 잡고 냉큼 반화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맹이.
-우오오오!! 아빠! 찌그러지고 있어!
차원이 일그러지는 모습은 관전하는 입장에서 정말 절경 중 하나였다. 화려한 빛의 축제에 억울한 노에라도 넋을 잃고 쳐다봤다.
“와...”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순식간에 반화를 덮치는 빛들에 절로 두 눈을 감아버린 아이들과 노에라,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빠!! 또, 또!! 보고 싶어!
“안 돼.”
삼이의 반응에 괜히 보여줬나 싶은 반화였으나 이미 보여준 걸 지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삼이와 맹이를 붙잡고 단단히 주의를 했다. 아직 그 정도의 힘도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지 모르니.
“응? 얘는 또 어디 갔어?”
집에는 당연히 매트와 한 몸이 되어 뒹굴 거리고 있어야 할 순이와 미요가 보이지 않았다.
-웅? 엄마 어디 갔지?? 놀러 갔나?
삼이도 이상한 듯 잠시 갸웃했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부엌으로 뽈뽈뽈 뛰어 갔다. 실컷 움직였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다.
“파스.”
[어? 돌아오셨습니까?]
“순이랑 미요 어디 갔어?”
[지금 호주에 있습니...?!어?!]
“뭐야... 왜? 또 뭐야.”
그냥 순이가 어디 있는지 물어 봤을 뿐인데 파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호주에는 왜 있으며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있는 걸까.
[사라졌습니다!]
“뭐? 어디서?? 어디야. 호주?”
[예!]
파스의 말에 급하게 호주로 이동한 반화. 그러나 이미 순이의 흔적이 사라진 뒤였다.
“이 자식... 어딜 간 거야? 애 데리고.”
순이는 별 걱정이 안 되지만 순이가 데리고 있을 미요가 걱정된 그가 폐허로 변한 호주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어떻게 된 건지 흔적이 하나도 안 보였다.
마치 소환된 것처럼...
[마스터!]
“또 왜 임마.”
호들갑을 떠는 파스에게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한 반화, 그 때문에 살짝 쫀 파스가 빠르게 대답을 했다.
[남미 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어!? 그, 그놈입니다!]
“뭐?”
파스의 다급한 음성에 재빨리 남미로 이동한 반화.
으아아악!!!
콱!!!
우드득!!
“꺼억!! 사, 살려!!!....”
우적!! 우적!!
“이런 씨발...”
남미의 처참한 모습에 인상을 쓴 반화가 낮에 욕을 뱉었다.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이런 짓을 해놓다니.
“뭐야, 언제부터 이런 거야?”
[방금입니다! 확산되는 속도가 엄청나서 그렇지 방금 일어났습니다.]
-크어어어!!!
퍼석!!!
겁도 없이 반화에게 달려든 좀비 같은 놈이 한 발짝 더 떼기도 전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는 모습에서 반화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있었다.
“어디까지 퍼졌어?”
[지금 브라질 절반, 그리고 페루까지 확산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게이트로 많이 빠져나간 상태라는 겁니다. 게이트를 폐쇄 할까요?]
“확산된 곳에 있는 게이트는 다 닫아.”
[예!]
파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확산의 원점을 파악하던 반화의 기감에 특이한 하나가 잡혔다. 이 놈이 바로 원점이었다.
바로 놈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반화는 안타깝게도 몸통이 아닌 또 잘려져 나간 꼬리만 볼 수 있었다.
“르하나알하하나다라나마타마!”
“뭐라는 거야 미친년이.”
눈에 흰자는 찾아 볼 수 없는 젊은 여자가 뭐라고 혼자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바로 녀석의 머릿속을 훔치려던 반화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되받아치는 힘을 느꼈다. 물론 정말 잠깐의 반항일 뿐이었다. 힘을 누르며 그대로 여자의 머릿속을 훔친 반화.
“...나가리네. 파스, 놈들 정리해.”
[애들 부를까요?]
“아니, 지금 애들 자고 있을 거야. 힘 많이 썼어. 니가 처리...아니다.”
파스에게 뒷정리를 맡기려던 반화가 생각이 바뀐 듯 자신이 직접 힘을 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남아메리카 대륙을 집어삼킨 반화의 힘이 그 대륙에 퍼지고 있는 모든 감염체를 분해시켜버리고 불태워버리며 소멸시켜버렸다.
조금 열이 받은 상황이라 그런 듯해 파스가 반화의 눈치를 살폈다.
[저, 정리 끝났는데요?]
“게이트로 넘어 간 놈들은 없어?”
[예, 감염체 발생 후에 바로 게이트부터 처리했습니다.]
“잘했어.”
.
.
.
호주에 이어서 남미까지 당하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너도나도 게이트로 짐 싸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선전들이 드디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느낌에 급해진 것이다. 그리고 여태 계속 아니라고 부정했던 권력자들에게 그 모든 비난이 쏟아졌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그런 권력자들이 게이트 너머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사람도 생겼다.
어쨌든 남미의 사건 덕분에(?) 게이트로의 이주 속도는 몇 배나 빨라졌다.
...
“우리도 슬슬 가야겠지?”
“반화가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하긴 했는데 이제 회사들도 다 그쪽으로 옮겨갔고 사람들도 다 넘어가서 우리도 이제 가면 될 것 같아요.”
반화네 가족들도 슬슬 이주를 준비했다. 사실 별 준비는 필요 없었다. 그냥 옮기겠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미 게이트 너머 신도시에 가족들이 살 곳이 지어져 있고 명하와 민사장은 얼마 전부터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올게.”
이주하겠다고 말하기 위해 반화의 집으로 간 수화는 어쩐 일인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반화를 볼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은 나른한 포즈였지만 인상을 쓴 것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왜 그래?”
“응? 뭐가?”
갑자기 들어온 수화의 말에 반화가 아무렇지 않은 듯 반문했지만 이미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니 표정, 완전 썩었는데?”
돌려 말할 줄 모르는 건 이 집안의 특징이었다.
“아아, 뭐 별 거 아냐. 왜?”
“그래? 아! 우리 이주하려고.”
반화의 말에 별 문제 아닌 듯해서 그냥 넘어가는 수화. 어차피 알아서 잘하는 녀석이니 굳이 들쑤실 생각은 없었다.
“음... 해골!”
후다다다가!!!
“옙!?”
“뭐야? 왜 그렇게 놀래서 달려 와?”
“허허허, 그냥 갑자기 부르길래...”
해골씨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또 이상한 실험을 했겠거니 한 반화는 해골씨에게 가족들 이주하는데 도와주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