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
266화
“저희는 따로 이렇게 기부하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허어... 그 많은 돈 쌓아 두시기만 하실 겁니까?? 사회에 환원도 하시고 해야 회사 이미지도 좋아 지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이미 충분히 기부는 하고 있습니만? 그리고 저희가 관리하는 돈은 대부분 개인 소유의 돈을 위탁형식으로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유주에게 모든 걸 상의해야 하죠. 저희한테 불쑥 찾아 와서 이러시는 건 곤란합니다. 아마 잘 몰라서 그러신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십시오.”
물론 그 소유주는 당연히 반화였다. 그리고 반화는 자기 돈에 대해서 그리 신경도 안 썼다. 애초에 필요한 것이 애들 먹을 식량 아니면 없었기도 하고 돈을 쓸 줄도 몰랐다. 돈으로 하는 갑질에는 관심도 없었다. 아마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크흠... 뉴월드 이미지 참 좋게 봤는데...”
민사장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협회장이라는 남자.
하여튼 힘만 가지면 변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였다. 그렇게 보면 반화는 정말 특이했다. 힘을 가졌으면서 양아치 짓만 했지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민사장의 착각이었다. 반화가 갑질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몰래 그런 짓을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게 많았다. 미요의 경우가 그렇고 민사장과 명하의 아들이 그랬다. 물론 슬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은 순이와 삼이였다. 본인은 사고를 치지 않지만 본인 대신 사고를 칠 존재를 만들어 내는 반화였다.
...
“뭐, 뭐야?? 엄마!!”
“얘는... 애 귀 다 먹겠다. 조용히 안 해?”
“아니, 그게 우리 솔이 좀 봐봐!”
“왜?? 끙가라도 했어?”
명하의 소란에 그녀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얘는 애를 키워도 좀 유별나게 키우는 것 같았다. 누가 자기 유별나다는 것 모를 까봐 이러는 것인가 가끔 진짜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 방금 우리 솔이가... 일어섰어!”
“??얘는, 아직 백일도 안 된 애가 어떻게 서?”
“아니 진짠데??? 솔아~ 다시 일어나 볼래?”
-??
명하의 말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아기... 그러나 명하의 바람대로 아기는 두발로 서지 않았다.
찰싹!
“엄마한테 거짓말이나 하고. 끙가 냄새가 이렇게 나는 구만!”
거짓말쟁이에 끙가 치우기 싫어서 엄마를 부른 철없는 애기 엄마가 된 명하는 억울했다. 진짜 일어섰었는데... 설마 끙가 하려고 일어난 것일까?
“너, 솔이... 진짜 그러는 거 아...아악! 그만 좀 때려!”
“시끄러! 가서 기저귀나 가져와!”
모녀는 평화로웠다...음...
.
.
.
오랜만에 미료와 한잔하며 한껏 취한 령이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기 때문에 반화도 그런 령이를 보며 아무 말도 못해 브레이크 없는 음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료는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예정보다 너무 오래 머물러 버렸다.
“령이님,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응?? 왜에에에~ 가디마아”
“다들 기다리고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힝... 그럼 나도 갈래!”
“네...?”
이 여신이 술을 먹더니 주정을 아주 제대로 부렸다. 물론 그 모습마저 미료의 눈에는 예뻤다. 그렇다고 이 주정뱅이 여신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는 건 조금 곤란했다.
“저, 어떡하죠?”
미료가 반화를 보며 이 주정뱅이를 떼어달라고 부탁하는 눈을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반화는 말리지 않았다. 하나라도 없는 편이 속 편했다. 집에 있어봐야 내기 때문에 자신만 괴로웠으니까.
“데려가.”
“예?”
“데려가라고.”
“...진짜요?”
“어.”
“쟈아~~! 가쟈!! 미료 세계 술 먹으러 가쟈!”
미료는 울상을 지었다. 령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술 취한 령이는...이 주정뱅이를 어떻게 다루라고 자신과 같이 가라는 건지. 그러나 반화의 표정은 단호했다. 얘 좀 데려가라는 무언의 압박에 결국 미료는 술 취한 주정뱅이를 하나 엎고 친절하게 자신의 세계로 게이트를 열어주는 반화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야 했다. 홍아와 동이는 바로 같이 돌아가고 까망이는 일단 여기서 조금 더 있다가 보내 주기로 했다. 삼이가 오랜만에 본 까만 덩어리 둘과 노는 것에 심취해 있었으니까 내기의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최대한 다른 곳으로 신경을 분산 시켜야 했다.
“후우... 하나 덜었네.”
미료와 령이를 보내고 반화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도중에 그의 귀에 들어오는 목소리.
“배고파!”
“저 뚠냥이가...”
“뭐?? 뚠냥이라고!?”
“아니, 아니야. 뭐 먹을래?”
반화의 중얼거림을 들은 순이가 고양이 눈을 만들어 째려보자 반화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여튼 성질머리는...
“난 살찐 게 아니고 털 찐거라고.”
“녜녜~ 그러세요.”
반화의 전혀 수긍하지 않는 태도에 순이의 눈이 불타올랐다.
“이익!!”
“어? 폭력은 내기에 안 걸었다?? 그 손 내려라? 아니면 전쟁이야.”
“쳇!”
아쉽게도 순이는 반화의 말에 손을 내렸다. 저 얄미운 뒤통수를 시원하게 한 대 후리면 좋을 것 같은데...
[마스터, 근데 그 놈들은 안 찾습니까?]
“어? 아아... 찾아야지.”
낚시 내기로 잠시 잊고 있었던 양아치들. 생각해보니 그놈들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긴 것이었다. 모든 책임을 전가할 놈들이 떠오른 반화, 그러나 지금 당장은 순이가 먹을 밥을 해야 했다. 맹이, 삼이와는 다르게 많이 먹지도 않는 녀석이 까다롭긴 더럽게 까다로워서...
“다 들리거든?”
“어? 쏘리. 속으로 한다는 게.”
“...”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정말 무의식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
순이와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나서야 겨우 시간이 생긴 반화는 다시 그 양아치들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했다.
“끙... 낚시는 안 되겠지?”
[이미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잘 아실 텐데요.]
아주 잘 알았다. 너무 잘 알아서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낚시는 일단 접어 두고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녀석들을 찾아야 했다.
“아직까지 뭐 다른 일은 없어? 남미 쪽도?”
[예, 아직 별 다른 증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정말 샅샅이,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또 놓치면 반화가 위성이란 위성을 다 뽀개버린다고 협박했기에 정말 필사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파스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스는 위성을 돌리며 지구, 아틀란티스, 칸 대륙 이 세 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음....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삼이 가출 때도 그랬지만 기다리는 건 참 반화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마도 데려간 인간들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올 것 같은데 함정이라도 파 놓고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함정이라...”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귀찮았다. 이 넓은 곳에 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건.
반화의 그 말에 파스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이 넓은 곳을 감시하는 자신은? 아주 눈에 불을 켜고(실제로 눈은 없지만) 감시하고 있는 자신은 뭐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노‘예’라 보다 자신이 더 노예 같았다. 물론 이런 불평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괜히 불똥만 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
.
.
“이 버러지들이!!!”
“키키키킥!!”
“스왈로네크 지원은?!”
“지금!!”
쩌저저저저저적!!!!!
쿠우웅!!!!!!
...우적! 우적!!
“키키키킥!! 죽여!!!”
푹!! 푹!!!
-크아아아악!!!!
스왈로네크가 땅을 가르며 나타나 마이구로에 중독된 것으로 보이는 종족연합을 집어삼켰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놈들이 겁도 없이 스왈로네크에게 달라붙어 놈을 공격했다. 괴로워하는 스왈로네크의 몸부림으로 놈들이 짓이겨지면서도 두렵지 않은지 끈질길 정도로 달라붙는 놈들.
“뭐해!!! 저것들 다 떼 놔!!”
스왈로네크와 교감하는 크로마족이 주변에 있는 선임전사들에게 소리쳤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지만 정말 미친 듯 달라붙는 종족연합놈들 때문에 접근하는 것이 꺼려졌지만 스왈로네크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자신들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선임전사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갔다.
서걱!!
푹!!!
“키킥!...컥!...”
“이런 미친놈들, 별것도 아닌...윽!”
콰득!!!
“흐압!!!”
퍼석!!
겁도 없이 기어와 자신의 발을 깨문 놈의 머리를 다리로 박살낸 크로마족, 놈에게 잠시 발목 잡힌 사이 어느새 종족연합놈들에게 둘러싸여버렸다.
“키키키키”
“이 잡놈들이...”
평소라면 인상 쓰는 것만으로도 겁먹었을 놈들이었다. 그러나 래비트족은 물론 다른 약한 종족들마저 검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크로마족을 향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키킥!”
...
“끄르륵...”
콱!!
“!”
우적...우적!!
마지막 남은 크로마족까지 씹어 삼키는 놈들. 전투가 끝난 전쟁에는 적아 할 것 없이 시체들로 산을 이루고 피가 웅덩이를 만들었다.
전투의 승자는 종족연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히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그저 괴상한 웃음소리만 내며 키킥 거리며 남은 먹잇감은 없는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만 있었다. 자신들이 이겼다는 생각자체가 없어보였다.
그때,
저벅...저벅...
“쓸 만한 것이 하나 있군.”
검은색 복장을 입은 인간으로 보이는 자가 죽은 스왈로네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점은 종족연합의 일원들이 이 인간을 두려워하는 듯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이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놈들의 모습이라 더욱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인간은 익숙한 듯 그런 녀석들을 뒤로하고 스뢀로네크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검은빛으로 물든 손이 놈에게 닿자마자 스왈로네크의 전신으로 퍼지는 검은 줄기, 꿈틀꿈틀 거리는 것이 마치 검은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듯 일반인이 봤다면 불쾌할 광경을 연출했다.
전신으로 퍼진 검은 줄기가 마치 심장 박동을 하듯 펄덕펄덕거리더니 죽은 스왈로네크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어나.”
스르륵...
“흐음... 그럭저럭 쓸 만하겠어.”
몸을 일으킨 스왈로네크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인간이 놈을 향해 간결하게 손을 휘적거렸다. 그러자 마치 다시 살아난 듯 사체가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가 버렸다.
뻘쭘하게 남은 인간이 주변을 슥 보더니 그를 경계하는 눈치인 종족연합놈들을 향해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놈들이 갑자기 산만한 움직임을 멈추더니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뒤를 따라 천천히, 그리고 질서 있게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