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260화
오싹한 삼이의 말에 노에라가 주의를 돌리기 위해 횡설수설 말을 내배기 시작했다. 반화는 잘 지내고 있냐, 해골씨는 등등 다 쓸데없는 질문들이었다. 번뜩이는 삼이의 고양이 눈이 자신을 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고개도 못 돌리고 주절거리는 노에라. 옆에 있는 토끼도 덩달아 덜덜 떨며 잠자코 있었다. 제발 쥐에서 끝나라고...
-후웅, 근데 얼마나 걸려?
다행히 삼이는 쥐고기에는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양이 부족한 것일 수도...
“모르지. 일단 가보는 거야.”
도망치느라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노에라도 몰랐다. 너무 갑자기 크로마족이 덮쳤다. 사실 막상 덮쳐질 때는 별 생각 없었다.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놈의 힘에 깜짝 놀라 그대로 도망쳤었다. 그러니 가는 길이 기억 안 나는 게 당연했다.
-쥐야, 아는 게 뭐야?
“...”
삼이가 오기 전만 해도 노에라가 오글리에게 했던 말을 자신이 듣게 된 노에라는 기분이 참 착잡했다. 그냥 여기서 오글리나 갈구면서 조용히 살 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반화가 오면 더 했으면 더 할 것인데 과연... 지금이라도 무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노에라.
“풉!”
오글리가 구박받는 노에라를 보며 눈치를 보다가 얍삽하게 웃었다. 노에라가 째려보자 입을 가리긴 했지만 눈은 계속 웃고 있는 녀석.
“토끼 고기가 맛있는 건 알지.”
-또끼 고기???
스윽...
“!?!! 하하하... 저는 토끼가 아닌데...”
-흐응... 귀때기...
우드득!!
“하하... 없는데요?”
급기야 삼이의 눈빛에 자기 귀를 떼어버린 오글리.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정말 소름 돋는 공포영화가 아닐 수 없었다. 토끼가 자기 귀를 뜯어버리다니, 인형처럼 뜯어진 오글리의 귀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기도 전에 재생이 시작되어 그 모습은 금세 사라지긴 했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귀를 잡고 있는 손 때문에 더 분위기가 사이코스러웠다.
살기위한 오글리의 노력이었다. 귀 두 개쯤 뜯어지는 아픔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흐응... 먹으면 탈나겠다.
“...네?”
-병 걸린 토끼.
졸지에 병 걸린, 먹으면 안 되는 토끼가 되어버린 오글리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가자!! 꼬기 먹으러!
병든 토끼와 양이 부족한 쥐는 어차피 삼이의 입맛을 당기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반화가 주는 고급스러운 고기만 먹어 온 삼이에게 감히 그런 것을 들이대다니.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고대 괴물들 정도는 되어야 뜯어 먹을 맛이 생기는 삼이, 가끔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좋긴 하지만...
.
.
“음... 여기쯤인 것 같은데.”
“맞아, 여기서 밥 먹고 있다가 갑자기 놈들이 달려들었어.”
노에라와 오글리가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서 멈춰서 여기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멀지도 않았다. 이제 보니 이 근처를 빙빙 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데 우리를 어떻게 찾은 거지?? 신기하네.”
아직도 그건 궁금했다. 일단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아낸 것부터 시작해서 지하로 도망가는데도 찾아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자신들을 쫓아오던 놈이 강하긴 했지만 지하에 있는 노에라를 찾을 정도까진 아니었으니 분명 어떤 방법이 있긴 있다는 얘긴데.
-꼬기는??
“어?? 아니, 이제 찾으러 가야지.”
-웅?? 없어?
“지금은 없어.”
혹시나 삼이가 또 폭발할 까봐 노에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삼이는 폭주할 생각까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놈이 어디서 왔으려나...”
“저기, 저쪽 아닐까?”
“응?왜??”
“우리가 밥 먹고 있을 때 오른쪽에서 덮쳤잖아. 그러니까 저쪽이 아닐까?”
“음... 그럴싸한데?”
오글리의 말에 노에라가 동의했다. 아주 1차원적인 녀석들이었다.
-쯧... 일부러 뒤에서 공격했을 수도 있잖아.
“그 정도로 머리 있는 녀석은 아니야.”
“맞아요.”
삼이의 말에 둘이 시간차로 바로 대답했다. 그 크로마족은 절대 그런 머리를 쓸 줄 아는 녀석이 아니었다. 만약 머리를 조금만 쓸 줄 알았다면 노에라가 계속 도망칠 수도 없었으리라. 문어 대가리 자식, 조금만 약했더라면 노에라가 함정을 파서 삼이를 부르기 전에 잡았을 것이다.
-니들도 생각하는데 걔라고 생각 못하겠어?
“!!!”
갑자기 훅 들어오는 삼이의 팩트폭행에 노에라와 오글리의 입이 꽉 닫혔다. 특히 노에라는 삼이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 없는 걸로 따지면 삼이 녀석을 따라갈 녀석도 없을 텐데.
“주변에 놈의 흔적을 찾아보고 없으면 그냥 저리로 가보자.”
삼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했으니 확실하게 하기 위해 주변 탐색에 들어간 노에라와 오글리, 둘이 그렇게 사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삼이는 여유롭게 그루밍을 했다. 그러다가...
-웅??
뭔가를 발견했다. 아니, 뭔가를 느꼈다. 마치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미요의 시선이랄까? 별로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삼이는 그런 기분 나쁜 시선을 참을 녀석이 절대 아니었다.
팡!!
쿠구궁!!!
삼이의 심기 불편한 꼬리 팡팡에 바닥, 지하 깊숙하게 지진이 일어난 듯 진동음을 흘렸다.
“으헉!? 뭐, 뭐야??”
그 소리에 놀란 노에라가 뒤를 바라보니 역시나 삼이가 있었다. 이 냥아치가 또 무슨 짓을 한 걸까. 구박받아도 좋으니 빨리 반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노에라는 지금이 너무 불안했다. 그리고 그런 노에라의 불안감을 실체화 시키는 불길한 동굴소리...
쿠르르르...쿵....
“아...역시... 그냥 여기서 살 걸. 왜 돌아가려고 했을까...”
“...저기... 노에라?? 사방에서 지금 진동이 느껴져.”
콰앙!!!!!
겁에 질려 노에라에게 딱 달라붙은 오글리와 먼 산을 보며 한탄하는 노에라,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삼이의 꼬리 팡팡에 지하 공간이 무너지며 그들이 서있는 공간이 가라앉는 싱크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고양이, 쥐, 토끼들... 표정을 보면 하나는 질려있는 표정, 하나는 모든 걸 포기한 표정, 또 나머지 하나는...
-이야야야~~~씬난다!!
좋아하고 있다. 혼자. 분명 기분 나쁜 시선을 보내는 놈을 잡으려고 한 짓인데 신나하고 있었다. 애꿎은 땅에 구멍을 내면서.
“아아... 망할...”
모든 걸 체념한 표정의 노에라는 그런 삼이를 보며 한숨만 쉬었다. 진즉에 이럴 줄 알았어야 했는데.
“으아아아아!!! 저, 저기! 밑에 봐!!”
그나마 제일 멀쩡한 반응을 보이는 오글리가 바닥을 가리키며 노에라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바닥에 뭐가 있다는 건지
“...?”
꿈틀!
쩌어어억!!!
-우오오오!! 뱀이다!! 뱀고기 마이쪙!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그들을 보며 입을 쩍 벌린 것은 바로 뱀이었다. 정확히는 뱀처럼 생긴 거대한 무엇인가였는데 그 크기가 거의 호수만한, 지상에서 떨어지는 그들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면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놈이었다. 불쾌한 시선의 주인공인 듯 한데 용케 노에라에게 들키지 않고 용암을 헤엄쳐 따라 붙은 모양이다.
치지직!
“그래, 니가 가만히 있을...응???”
삼이의 전깃불인 줄 알고 쳐다봤는데 삼이는 그냥 빵실빵실 웃고만 있을 뿐 전기를 뿜고 있지 않았다. 그럼 누가...???
-푸롱!
스윽!
“여긴가?? 아! 저기 있군.”
-뿌리야!!
-푸로롱~
스르륵...
“어!? 바, 방금 림자가!”
뿌리의 그림자에서 잠시 보였던 것은 분명 림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치 헛것을 본 듯 사라져 버린 림자의 모습에 노에라가 두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을 해봤다.
“뭐야?”
없었다.
“쳇... 설마 했...”
딱콩!!!!
“쥐새끼, 여기 있었네.”
“!!!! 마스터!!!!!”
덥석!!!
왔다.
‘이 인간이!! 이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괴물이 드디어 왔다!!!’
차마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외쳤지만 이렇게 반화가 반가운 적이 있었을까? 노에라는 뒤통수에 혹이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반화가 머리통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일단 노에라 넌 나중에 보고... 삼이 이 녀석!”
-아뿌아앙~
“어디서 애교야.”
착!!
-?!
팡!!! 팡!!!
.......
-히잉....아빠 미워...
“그러게 누가 아무 때나 막 가랬어?”
반화에게 한참을 궁디팡팡 당한 삼이가 찡얼거렸지만 반화는 달래 주지 않았다. 말로만... 손은 이미 삼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에라는 섭섭했지만 일단 반화를 다시 봤다는 것에 그런 사소한 것은 무시했다.
그런데 노에라들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밑에는 거대한 뱀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것일까?
“마스터, 저 놈은 어쩔 거야?”
“일단, 여긴 또 어디야?”
반화는 자신이 밟고 있는 뱀대가리는 신경도 안 쓰고 주변만 살펴봤다. 일단 마나의 흐름부터...
“칙칙하네.”
마나가 참 칙칙했다. 아틀란티스, 칸, 지구와 비교했을 때 가장 탁한 마나였다. 거기에 군데군데 뭉쳐져 있어 자신이 밟고 있는 이 기괴한 녀석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뱀 꼬기...
찡찡거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고기에 대한 열망 하나는 정말 알아줘야 했다. 삼이 녀석... 어쨌든 확실히 반화가 오니 뭐가 달라도 달랐다. 밑에 깔려 있는 녀석 정도는 손도 안 쓰고 정리해버렸다.
입을 쩍 벌리고 노에라들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놈은 아무리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 먹잇감에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는데 마침 삼이를 혼내느라 그리 기분이 좋지 못한 반화와 딱! 마주친 것이다. 당연히 자신을 꼬라보는(?) 뱀 대가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간단하게 발밑으로 검은 바다의 기운을 쏘아 황급히 입을 닫는 놈의 입속에 집어넣은 반화는 놈의 뇌를 밀가루 반죽처럼 이리저리 주물럭 거렸고 놈은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크로마족은 또 뭐야? 지 멋대로 생긴 놈들이네.”
뱀대가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크로마족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반화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 마스터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뭐? 크로마족?”
끄덕!
툭! 툭!
간단하게 행동으로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주는 반화. 노에라는 단숨에 이해했다. 또 양아치짓을 했다는 걸... 이쯤 되면 양아치짓이 아니라 그냥 반화치짓이었다.
“얜 또 뭐고?”
“예?! 저, 저는 ...”
고개를 돌려 오글리를 본 반화. 노에라는 이때 다 싶었다.
“쟤가 나를 여기로 끌고 왔어!! 삼이도!”
“응?”
“어...?! 아, 아니! 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노에라가 저리 말하니 불길한 예감이 든 오글리가 자신도 모르게 변명을 하려고 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존재에다가 노에라의 태도로 보아 마스터라는 존재가 무서운 존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노에라의 얌체 짓으로 일단 반화의 시선이 오글리에게 향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