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256화
“혹시 주변에서 좀 물러나 달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아니면 빈 공터 같은 곳이 있으면 좀 안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노에라가 처음 소환 되었을 때 어땠는지 떠올린 오글리는 혹시나 크로마족에 피해를 끼칠까싶어서 나름 머리를 좀 굴렸다. 그런 오글리의 말에 크로마족은 잠시 왜 그런지 생각하려다가 일단 기다려 보라고 한 뒤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 위에 보고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빨리 안 하고 뭐해?”
“악마 때문에 괜히 멀쩡한 생명을 해칠 순 없잖아요.”
“얼씨구, 아주 성인이시네. 네 걱정이나 하지?”
삼이가 어떤 녀석인 줄도 모르고 저런 태평한 생각이라니. 아마 녀석은 삼이가 소환되면 엄청난 후회를 할 것이다. 진짜 해맑은 악마가 뭔지 볼 수 있을 테니. 물론 지금 녀석에게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혹시나 딴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으니까. 삼이의 형태를 만들어 보인 것도 녀석을 안심시키려는 일종의 훼이크였다. 누가 봐도 귀엽고 작은 모습이니 악마라고 아무리 말해도 실감이 안 날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자기 생각은 못하고 남을 생각하는 여유를 부리는 거겠지만.
잠시 후
급하게 어딜 갔다가 온 쥐 얼굴의 크로마족이 오글리에 뭐라고 얘기를 했다. 아마 장소를 안내해주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녀석을 따라서 일단 자리를 옮기는 노에라와 오글리, 물론 황금을 미리 챙겨두는 건 잊지 않았다.
.
.
.
한참을 더 고기라고 외치는 삼이 녀석을 겨우겨우 재운 반화, 아직 하나의 산이 더 남아있었다.
-뺘아..
“그러게 왜 미련하게 얘랑 같은 짓을 했어.”
부푼 배를 끌어안고 괴로워하고 있는 미요를 보며 혀를 찼다. 미련하게 승부욕이 타올라 삼이를 따라하다가 소화도 못 시키고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생긴 건 분명 요물인데 어째 삼이하고만 놀면 이 모양이었다. 삼이의 멍충미 바이러스가 진짜 있는 것일까.
“이 배 어떡할 거야? 응?”
-뺘아아...
“에휴... 가자. 소화는 시키고 자야지.”
다시 미요를 안아 들고 방을 나서는 반화. 방 안에는 거하게 먹고 소화시키며 자고 있는 삼이의 고롱고롱하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
미요의 부푼 배를 기운을 이용해 소화시켜준 반화는 한숨을 쉬며 미요에게 다시는 삼이 따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필 라이벌이 되어도 그런 애(?)랑 라이벌을 하다니... 차라리 맹이 녀석이면 모를까. 미요가 삼이를 따라가다간 큰 코 다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싹을 잘라야 했다.
-뺘...
“알았지?”
반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요. 하도 부풀어서 핑크빛을 냈던 미요의 배를 다시 어루만져 준 반화는 소화시키느라 잠은 다 깬 미요를 데리고 조카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음 편히 쉬고 있는 명하도 볼겸.
...
“여~ 우리 카드 루팡씨 잘 쉬고 있었나?”
“응?? 오빠? 그건 또 뭔 소리야? 카드 루팡?”
“모른 척 하기는. 그건 나중에 따지고 우리 조카 좀 볼까?”
반화는 모른 척 하는 명하를 뒤로 하고 먼저 꼬물꼬물 거리고 있는 조카를 살펴봤다. 아무래도 민사장의 피를 많이 물려받은 듯 순진하게도 생겼다.
“예쁘지? 귀엽지? 막 뭐 사주고 싶지 않아?”
“얘 많이 시달리겠다.”
“응??”
자신이 생각했던 답변과는 너무 다른 반화의 말에 반문하는 명하.
“근데 몸은 괜찮지?”
“아! 맞다. 그거 뭐야?? 미역국 같았는데 먹으니까 아주 힘이 펄펄나던데.”
“그래야지. 그러라고 내가 애써 힘써서 만들어 준 건데.”
“오~웬일로?? 오빠가 그런 생각까지 해주고?”
“우리 카드 루팡이 열심히 일해서 빚 갚으려면 그렇게 해야지.”
“...에이... 왜 그러실까? 그거 뭐 티도 안 나던데.”
명하가 반화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 슬슬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카드를 슬쩍한 걸 들킨 모양이었다.
“동생아, 티가 나던 안 나던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되겠니? 응? 우리 미요도 그건 알겠다.”
-뺘!
“그, 그래도 나 우리 애기 꺼만 샀어! 그냥 선물 했다 치고...”
“아~ 그래? 우리 조카 껄 샀다고? 슈퍼카를?”
“어????슈퍼카?? ...아닌데? 그건 나 아냐.”
“응?? 너 아니라고?”
“어, 진짜 아냐! 슈퍼카를 왜 사. 내가... 오빠 창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꺼내 타면 되는데.”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왜 명하라고 생각했을까. 이 녀석은 그냥 지 마음대로 창고에서 차 꺼내가다 타던 녀석인데.
“와... 나를 뭐로 보고.”
“끄응... 진짜 너 아니지? ... 그럼 누가...야, 나와 봐.”
-...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부, 불렀나?
“엄마야! 이게 뭐야?! 얘가 왜 여기서 나와??”
반화의 부름에 명하 그림자에서 불쑥 솟아난 림자. 명하가 아니면 이 녀석밖에 없었다.
“내 놔.”
-하하하...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림자가 멋쩍은 표정으로(사실 그림자라 표시도 안 나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반화의 카드를 건넸다. 범인은 이 녀석이었다. 스피드 중독자 자식.
“오빠!! 얘 뭐야!!”
“어?...”
갑자기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 나온 림자 녀석에 놀란 명하가 반화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여태 자신의 그림자에 이런 게 붙어 있었다니, 누구나 소름끼쳐 할 상황이 아닌가? 이제는 전세가 역전 되어 반화가 명하에게 쪼이게 생겼다.
“하하하... 그러게? 저게 왜 거기 있었을까? 아이고~ 우리 조카님 웃었어?”
“말 돌리지 마! 저거 뭐야? 림자 녀석 내 그림자에서 없앴다며!”
“그랬는데... 야, 왜 거기서 나와? 아~ 카드 때문에? 야! 니가 네 카드 들고 가서 그렇다 잖아.”
“...”
돌고 돌아 결국 명하의 카드 루팡으로 돌아온 결론.
“윽!...아까비...”
조금만 덜 강하게 나갈 껄 후회하는 명하.
“퉁치자.”
“오케이.”
남매는 평화로웠다.
“꺄아~”
-뺘~
애기들도...
-나, 나는...?!
꾸우우욱!!
한 명...아니, 한 그림자 녀석 빼고 모두 평화로웠다. 반화의 발에 눌려 형체를 잃은 림자는 아마도 돌아가면 반화에게 한동안 시달릴 운명이었다.
“근데 진짜 오빠 재산이 얼만지는 알아??”
“몰라.”
“그것도 모르면서 타박하냐? 쳇... 이래서 부자들이란.”
민사장을 통해 반화의 재산이 적어도 1000조 이상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명하로서는 그 숫자도 처음부터 그냥 세기만 해도 숨 찬다는 사실에 경악했었다. 보통 중동의 석유 부자 가문이 그런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소린 들어 봤지만 자신의 오빠가 그럴 줄이야. 하긴, 세계의 모든 무기에 지금 반화가 가진 기술이 들어가고 있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도 뉴월드에서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니 돈을 긁어모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국 하나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무기를 만들고 있고 최근엔 유럽, 중동, 아시아 할 것 없이 죄다 폴리 크랙의 무기를 수입하니...
“근데 그 마정석 광산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야? 지금 벌써 10개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명하가 말한 광산으로 앞으로 더 많은 돈을 계속 벌게 될 터였다.
“그거 기가 막히게 잘 찾는 쥐 한 마리 데리고 있거든. 황금쥐라고.”
“응?? 노에라? 노에라가 그런 재주가 있었어??”
“걔 말고.”
“???”
반화의 집에 쥐가 또 있었나 잠시 생각해보던 명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쥐 하면 노에라 밖에 생각이 안 났다.
“모르겠는데? 암튼, 진짜 우리 애기 꺼만 샀으니까 그냥 선물로 칠게? 오빤 센스가 없어서 선물도 잘 못하잖아.”
“...”
림자만 아니었어도 버릇 한번 고치는 건데...
“간다. 몸조리나 해.”
“엉~”
.... 탁!
“휴우... 우리 소중한 애기 큰일 날 뻔 했네.”
눈치 없는 반화가 미처 보지 못한 명하의 새 백. 버젓이 병실에, 그것도 이제 막 뜯은 흔적이 보이는데도 그냥 넘어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명하는 정말 조마조마했었다.
“...”
어쩐지 그런 엄마를 보는 아기의 표정이 한심하다는 것 같았지만 착각이리라.
.
.
“얘는 또 왜이래??”
“삼이가 없어졌어.”
“응?? 삼이가 왜?”
이게 무슨 소리일까. 간단한 면담 후에 미요를 재우려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온 반화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에게 달려드는 순이의 솜방망이를 막으며 령이게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냥 가볍게 놀러 나갔다면 이런 반응이 아닐 테니 아무래도...
“설마 소환된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분명히 자고 있는 걸 보고 있었는데 없어졌으니까.”
“끄응... 이 녀석... 함부로 어디 가지 말라니까.”
반화는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기분이었다. 분명 목소리가 들려오면 꼭 다시 말하라고 했는데 역시나 말을 듣지 않은 녀석이었다. 고새를 못 참고 소환 당해 버리다니.
-냐아아!
“넌 뭐했어! 엄마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냐..냐?...
반화에게 솜방망이를 날리던 순이가 반화의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설마 화를 낼 줄이야...
“그렇게 맨날 잠만 자니까 애가 사라지는 것도 모르잖아. 이 자식아!”
-냐아!
“어쭈? 해보자는 거냐?”
점점 유치해지는 둘의 싸움에 령이가 한숨을 쉬었다. 이 철없는 부모들 같으니라고...
“애나 찾지?”
“...이따 보자.”
-냐항!
“파스.”
[예...]
“뭐했어?”
[어... 그게... 지금 칸 대륙 일에 집중하느라 미처 확인 못했습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맹이는? 맹이는 또 어디 갔어?”
“삼이 찾는다고 별장에 갔어. 혹시나 해서 가본다고 하더라.”
“그래? 맹이도 저렇게 발로 뛰고 있는데 엄마란 녀석은 내내 자고 있었단 말이지?”
-...
“끄응...”
골치 아픈 일이 생겨 버렸다...
.
.
.
“이제 해 봐. 어떻게 하는 건데??”
“잠시 만요. 조용히 좀 해줘요. 집중을 해야 한다고요.”
“으음...알았어.”
재촉하다가 한 소리 들은 노에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노에라의 모습을 확인한 뒤 제대로 자리를 잡고 노에라가 만든 삼이 동상을 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으음...”
-악마님! 악마님!
......
“뭐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어야 돼?”
“좀 기다려 봐요. 이게 한 번에 되는 줄 아세요? 그쪽 소환하는 것도 꽤 걸렸다고요.”
“그거랑 다른 거라며. 제물까지 바쳤는데 왜 안 돼??”
“일단 그 악마란 존재랑 연결이 되어야 되는데 확인이 불가능해서 되고 있는지 모르니 어쩔 수 없어요.”
“벌써 해가 지고 있다고.”
“오늘은 이만하죠. 그럼. 이건 단번에 되는 게 아니라서 좀 여유를 가지고 해야 돼요.”
“...”
바로 소환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노에라는 오글리의 말에 많이 실망했다. 드디어 이 곳에서 벗어나 치맥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럴 수 없다니. 기대했기에 더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실망스러움은 모두 오글리에게 풀기로 했다.
“이 자식! 그럼 왜 바로 될 것처럼 얘기 했어! 이 놈의 시키! 토끼 시키!”
“악! 악!! 왜...왜 때려요!?”
“그냥! 맞아라 요놈의 시키! 도망가는 실력만 늘어난 토끼 시키!”
퍽! 퍽!
물론 노에라의 물리적인 힘은 직접적으로 행했을 때 오글리에게 큰 타격을 주긴 못했지만 왠지 손맛이 있어서 스트레스 풀기엔 딱 좋았다. 맞는 오글리는 스트레스가 쌓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