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254화
“저 혹시 그...풀루라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풀루? 풀루. 모른다.”
“으음...”
풀루라는 단어는 오글리 종족들이 만든 것이라 다른 설명이 필요했다.
“으음...그러니까 아까 검은 눈! 검은 핏줄!”
“검은 눈?...검은 핏줄! 아! 중독자. 안다. 미치광이들.”
“네?? 미치광이들이요??”
다행히 검은 핏줄에서 바로 알아들은 통역사 때문에 일단 저들도 풀루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확인한 오글리.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야하는데 저 자와는 아무래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좀 힘들어 보였으니까.
“으음... 자세한 설명. 못함. 기달.”
“아, 네!”
다행히 통역사도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지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노에라가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테니 기다리면 뭐라도 나오긴 나올 것 같았다.
“크로마족도 풀루에 대해 아는 건가 봐요. 미치광이? 중독자? 저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아요.”
“그래? 미치광이...중독자?? 뭔가 촉이 좀 오는 것 같은데?”
“네? 뭔가요??”
“일단 저 놈들 말부터 들어 보자고.”
“...쳇.”
뭔가 있어 보이는 노에라의 말에 오글리가 치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만 알고 알려주지 않다니, 나름 그래도 계약자인데... 물론 오글리가 자신이 계약자라며 치사하다고 말하는 순간 녀석은 이 자리에서 훈련소로 다시 입소하게 될 것이었다. 노에라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모두 누구 탓인데 그런 말을...
“뭐? 할 말 있어?”
“아니요.”
다행히 오글리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생존에 관한 눈치는 누구보다 빠른 녀석이었으니까. 둘이 이러고 있는 사이 통역사는 다시 리더에게 다가가 뭔가 말하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걸로 봐선 저들도 난감한 상황인 듯 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레비트족과 대화가 되는 자를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풀루라는 걸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떠듬떠듬 거리는 말로는 제대로 설명도 못할뿐더러 단어도 어려워 지금의 통역사 수준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저 무시무시한 티끌(?)이 너무 무서웠다. 단숨에 일족 수백이 사라지는 걸 봤는데 아무리 간 큰 크로마족이라도 두려웠다.
“일단 안으로 데려가서 쉬게 하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으음... 저런 존재를. 꾸룩. 안으로 들이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꾸룩.”
“그대로 그냥 방치하면 저 성질 더러워 보이는 것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후우..꾸룩... 어쩔 수 없나...꾸룩.”
“제 직원에게 큰 도시에 있는 레비트족 통역사를 데려오라 하겠습니다.”
“오! 그렇게 할 수 있나? 꾸륵?”
“예. 저희 주 거래 대상이 레비트족이었죠. 당연히 가능합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다행히 긍정적으로 회의를 마치고 다시 오글리에게 다가가는 통역사.
“따라와. 기달. 쉼.”
“네??따라오라고요??”
손짓발짓으로 겨우겨우 따라오라는 신호를 주고받은 둘.
“따라와서 쉬라는데요?”
“뭐?? 쉬라고?”
“네!”
“어째 기뻐 보인다??”
“네!...아니, 그게...”
어쩐지 오글리와 자신의 모습에서 반화와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는 착각이 잠시 든 노에라였다. 자신도 반화의 앞에, 혹은 순이 앞에만 가면 저렇게 굴기도 했었다. 어리바리하게... 동병상련의 감정일까? 갑자기 녀석이 안쓰러워진 노에라.
“그래, 일단 가서 쉬자. 어차피 정보도 얻어야 되니까.”
“예!!!”
좋아하는 오글리를 보며 노에라는 짠하면서도 기특했다. 쉬는 게 저렇게 좋을까... 그럼 앞으로 쉬는 시간이 아주 행복해지게 더욱 굴려야겠다고 노에라는 속으로 다짐했다. 녀석이 기뻐하는 것이 꼴보기 싫었으니까.
...
“얘들은 다 크네, 다 커.”
덩치가 거의 3~4미터는 되는 놈들이라 건물도 방도 다 컸다. 나름 침대도 있었는데 그냥 원룸 보다 크다고 보면 되었다.
“그러게요... 여길 어떻게 올라가는 거죠?...”
당연히 높이도 높았으니 작은 노에라와 오글리는 매우 불편했다. 아니, 노에라는 날개라도 있으니...
“음?...잘만 올라가네.”
“헤헤, 레비트족은 점프를 잘하거든요.”
“그래, 그래서 그렇게 잘 도망가는 구나? 앞으로 훈련을 그쪽으로 해야겠다.”
“!...아니, 꼭 그럴 필요는...”
또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녀석이었다.
“쟤들이 중독자라고 불렀지? 흐음... 중독이라... 뭔가에 중독되면 그런 증상이 표출되는 건가?? 근데 네 종족은 감염이라며? 확실해?”
“그런 확실해요! 중독은 아니에요... 부모님들도... 형제들도 다 뭔가에 중독될 정도로 먹은 것이 없어요.”
“그, 그래...”
갑자기 가족얘기를 꺼낼 줄이야...이럴 땐 또 영악했다. 침대에 누우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걸 보면.
“그래도 다행이네요. 노에라라도 이렇게 옆에 있어서.”
“그러냐...그럼 난?...나는!!! 이 자식아!!”
“헙!”
역시... 오글리는 노에라와 같은 과였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을 것을 괜히 한마디 더해서 화를 자초했다.
“후우...후...야, 근데 어떻게 소환했다고?”
“네??”
“나를 소환한 방식이 뭐냐고.”
“어...그러니까 그냥 마음속으로 불렀는데요?”
“마음속으로?? 그게 다야?? 다른 건?? 혹시 다른 존재는 대답 없었어??”
“네, 소환계약은 자신과 파장이 맞는 존재랑 계약이 된다고 했어요. 그 책에서...”
과연 그 책을 쓴 놈은 과연 누구 일까. 여기서 더 슬픈 건 자신과 오글리가 정말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거부하고 싶지만 녀석의 모습에서 자꾸 자신의 모습이 겹쳤으니까... 아니라고 해봐야 자신의 속만 쓰렸다.
“그럼 다른 파장의 존재는 절대 못 소환하는 거냐?”
“네?? 아니, 그런 말은 없었는데요. 음... 생각해보니 꼭 파장이 맞지 않아도 가끔 소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게... 문제가 좀 있는데...”
“왜!? 뭐??? 재물이라도 필요해?? 말만 해! 얼마든지 구해 줄게! 지금 구해줄까??”
“...끙...진짜 재물이 필요하긴 한데.”
“얼마나??”
오글리의 말에 노에라가 정말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된다면 무조건 마스터를 소환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자신이 사라졌다는 건 알아 차렸을 테니 자신의 목소리만 어떻게 전달하면 마스터가 알아서 데리러 올 수도 있었다. 마스터, 반화는 괴물이니까.
“혹시 밖에 있는 크로마족을 재물로 쓰시려는 생각이시라면 고이 접어 두세요. 안됩니다.”
“안되는 게 어디 있어! 빨리 말하기나 해!”
“아니, 그들을 재물로 쓰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재물로 쓰는 건 따로 있어요. 그리고 이런 소환은... 주로 악마를 불러들이는 소환의식으로 금기시 되는 건데...”
“잘 됐네! 그 인간도 악마니까!! 괜찮아! 악마소환, 딱 이야!”
지금 눈앞에 없다고 막 얘기하는 노에라...
“아! 그게 필요해요. 동상.”
“동상?? 무슨 동상??”
“소환할 존재와 똑같은 동상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의지가 닿을 수 있거든요. 없으면 결국 그냥 무작위 소환과 똑같아져요.”
“으음... 동상... 마스터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이상했다. 분명 제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할 마스터인데 어째서인지 얼굴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젠장!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그, 그럼 그 고냥이 악마라도...응??”
순이 역시 어째서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겨우 방법을 하나 찾았는데 이대로 포기해야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동상은 없나요?”
노에라의 반응에 오글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자신이 악마를 소환했지만 악마가 또 악마를 소환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그래도 이 작은 악마는 자신이 어떻게든 설득하면 될 것 같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더 이상 설득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잠깐만!...해골씨...는 좀 약한데. 으음... 해골씨라도 불러야...! 아! 작은 악마!”
다행히 삼이의 얼굴은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화와 순이는 기억나지 않았고 삼이는 기억이 났다.
일단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강한 존재를 동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마치 3d 프린팅처럼 흙과 모래로 노에라 자신의 머리에 있는 기억을 그래도 표현해낼 수 있으니 동상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꾸물...꾸물...
“어!?”
노에라의 손짓에 나무 바닥을 뚫고 나타난 흙과 모래가 하나의 형상을 나타내는 모습에 오글 리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작은 악마라고 말한 것 같은데 만들어지는 모습이 절대 악마는 아니었다. 본디 악마라 하면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머리의 양쪽으로 길게 솟은 뿔을 자랑하는 존재들이었는데... 뿔이 있긴 했지만 지나치게 작고 귀여웠다.
“으으... 내가 이 악마를 이렇게 기억할 날이 있을 줄이야.”
“으음...혹시 노에라씨가 사는 세상에서는 귀여울수록 강한 악마인가요...?”
이상한 오해를 한 오글리의 질문에 노에라는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삼이가 객관적으로 귀엽긴 하니까.
“자, 이제 그럼 재물이 뭔데?”
“재물은...”
똑똑똑!
“에이씨... 바쁜데.”
타이밍 좋게 문을 두들기는 크로마족. 일단 만들어 둔 삼이의 동상은 다시 없앤 노에라가 오글리에게 고갯짓을 했다. 일단 재물을 저렇게 뜸 들이는 걸로 봐선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 분명했으니 조금은 여유 있게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었다.
“네, 무슨 일이죠??”
“밥.”
“아!! 감사합니다! 노에라! 밥이에요!”
“밥?? 별로 안 땡기는데.”
“고기에요!”
“어디!?”
간단하게 고기에 넘어간 노에라가 크로마족이 들고 온 음식에 부리나케 달려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지 삼이를 소환하든 반화를 다시 떠올리던 하지 않을까라는 자기위안을 하면서...
“음... 괜찮은데? 무슨 고기지?”
“크로마족이 주로 먹는 도누리네요. 우리 종족과 주로 거래하는 품목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몇 번 먹어 봤구요. 이렇게 많은 양은 처음보네요...”
아무래도 양이 자신들 기준으로 2인분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노에라와 오글리의 덩치를 생각하면 나올 수 없는 양이었다.
덥석!
우물..우물...
“우아!!! 진짜 맛있어요!!”
“...”
이미 노에라는 고기 맛에 취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화가 늘 말하는 고기에 영혼을 파는 놈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모습이었다.
.
.
.
반화네 집에서는 한바탕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가 이제는 정리 중이었다.
“그만 먹어, 삼이야. 배 좀 봐봐..이게 뭐야... 핑크핑크 배가 다 됐네.”
하도 많이 먹어 배가 제 몸만 해진 삼이... 피부가 늘어나면서 털사이의 핑크색 속살이 뽀얗게 드러난 것을 본 반화가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들은 분명 누가 고기를 준다고 하면 쫄레쫄레 따라 갈 것이다.
“노에라 이 자식도 고기에 넘어가서 계약한 거 아냐?”
“...설마.”
반화의 말에 령이가 그건 아니지 않겠냐고 말하긴 했지만 어쩐지 노에라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았다.
“아니겠지. 바보도 아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