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
248화
반화가 그런 섬뜩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모르는 노에라는 그저 제발 빨리 자신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와줬으면 바라고 있었다. 오글리 녀석을 갈구면서...
“그것 밖에 못해?? 쫙쫙! 당기란 말이야!”
“끄으윽... 파, 팔에 힘이 안 들어가요..”
“이런 멍청한 녀석! 그것도 못해!?”
그동안 쌓은 갈굼의 기술을 오글리를 통해 처음 실전으로 응용한 노에라는 머리에 빨간 모자만 씌우면 바로 투입 가능한 악마조교였다. 오글리가 만든 화살은 이미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노에라가 새로 공수해 온 나무로 다시 만들어서 또 쏘고... 그걸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오글리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조,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지금 네 실력에 쉴 시간이 있어??! 움직여!!”
“끄윽!”
.
.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노에라 때문에 골병들기 직전인 오글리, 그러나 적절한 노에라의 조절로 점점 살과 근육이 붙고 건강해지고 있는 오글리였다. 녀석은 쉬는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사실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푹 자고, 잘 먹고, 쉴 시간도 잘 주는 노에라였지만 그 모든 게 현대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명이 다른 오글리에게는 그야말로 혹독한 스케줄이었다. 이 쪽 문명의 경우 일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겨우 낮 시간 뿐이었다. 더구나 어린 녀석이니 더욱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테니 지금의 스케줄이 벅찰 수밖에.
“이 정도는 초등학생도 다하는 스케줄이야, 이 멍청아!”
“초등...학생이 뭔데요?”
“너보다 어린 애들.”
“웃기지 마세요! 어린 애들이 어떻게 이런 훈련을 소화해요??”
“뭐 웃기지마?”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욱해버린 오글리의 항의는 노에라의 서슬 퍼런 호통에 바로 깨갱하며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훈련...
...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젠 화살 만들기의 달인이 되어서 만들고 쏘고 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오글리. 그러는 사이에도 토룡은 계속 이동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가도 사람들이 모인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야, 진짜 이리로 가면 나오는 거 맞아?? 벌써 꽤 이동했는데??”
이 세상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모르기 때문에 노에라도 얼마나 이동했는지 감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지구로 따지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몽골대륙 중앙을 지나고 있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뭔가 발견 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이 대륙은 생각보다 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마을이 나타나는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고 아틀란티스 대륙과 비슷한 크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수준이 이렇게 떨어지는데 아틀란티스랑 같다고??”
그건 한 마디로 말하면 재앙이었다. 마법도 없는 세상, 그렇다면 도시 간 연결을 하는 수단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동이 제한된 곳에서 뭔가를 하려면 하나를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세계 구원이라면 말을 할 것도 없었다. 녀석이 말하는 것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제한적인 목표라 하더라도...
“음... 그 사람들 말로는 몇 년은 가야한다고 한 것 같은데...”
“뭐?! 몇 년?!”
“네, 네!... 확실히 그랬던 것 같아요. 방향을 잘 잡고 중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때... 그 사람들도 한 번 밖에 가보지 않았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미친.”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반화가 오지 않는 이상 이 녀석의 목표는 일단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의 문명이 조금 발전 되어 있다면 인간들을 이용해서 어찌어찌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지금 노에라가 아는 정보로는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야이, 개**야!! 왜 나를 부른 거야!!”
“힉!?!..”
또 다시 폭발한 노에라가 녀석을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근육이 붙었다지만 여전히 노에라의 상대가 안 되는 녀석은 그저 바람 빠진 풍선 마냥 그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는데.
쿵!!!....
“으아아!!...응?? 뭐지?”
굉음과 함께 토룡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춰 버렸다. 설마 인간들이 모인 곳에 도착한 것인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많지 않았다. 그냥 클 뿐이었다.
쿠구궁!!!!
“으헉!!? 무, 무너져요!!”
“호들갑 좀 떨지 마, 신경 사나우니까!”
토룡과 큰 기운덩어리가 부딪치면서 토룡의 내부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흙먼지가 날렸다. 오글리 녀석이 자꾸 소리를 꽥꽥 지르자 안 그래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던 노에라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뭐지?? 이런 놈도 있었어?? 이런 놈이 있으니 인간들이 그 모양인가??”
조금씩 토룡의 힘이 밀리는 걸 느끼며 노에라가 혼자 중얼거렸다. 물론 질 것 같진 않았다. 그냥 힘이 조금 밀렸을 뿐이다. 힘이 밀리면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몸집을 불리면 됐다.
쿠궁!! 쿵!!!
주위에 있던 흙들이 토룡의 주위로 모이며 녀석의 크기를 더욱 불렸다. 이동을 위해서 크기를 줄였을 뿐, 아직도 여유는 넘쳤다.
“어떤 놈인지 한 번 볼까?”
흙을 흡수하면서 생긴 공간으로 노에라가 얼굴을 삐죽 내밀고 어떤 놈이진 확인 했다. 아직 땅 속이라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두웠지만 노에라는 땅의 신수, 충분히 그 어둠 속에서도 놈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야.”
“예, 예!??”
“인간만 풀루에 전염된다고 하지 않았어??”
“어... 그랬던 가요?”
“아오 씨... 미치겠네.”
노에라가 얼굴을 내밀고 본 것은 풀루라는 것에 감염 되었던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도배된 웬 두꺼비 같은 놈이었다. 물론 평범한 두꺼비는 아니었다. 일단 크기부터가 두꺼비라고 말하기에는 좀 많이 미안할 정도로 컸다. 흙을 흡수해서 트럭만 해진 토룡의 머리로도 한입에 꿀꺽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녀석이었다. 그리고 풀루에 감염 되었다는 특징으로 검은 눈에 붉은 핏줄이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두꺼비의 큰 눈이라 더 잘 보였다. 거기에 온 몸에 펼쳐져 있는 검은 핏줄... 사실 가죽이 두꺼워서 핏줄이기 보다는 그냥 무늬처럼 보이긴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생긴 무늬였다.
“인간만 감염된다고 해도 가능할까 말까인데 이상한 놈들까지 죄다 감염되어 있잖아! 이 망할 자식아!!!”
오글리가 노에라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아마 망할 자식일 정도로 오글리는 노에라에게 망할 자식이었다. 잘 살고 있는 자신을 괴롭혀서 계약하고 소환을 하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해결해 달라니!? 마스터인 반화도 이렇게는 안했다. 적어도 해결은 할 수 있게 해주는 반화가 오히려 그리워지는 노에라... 반화가 시키는 건 힘들어도 끝은 있었는데...
“으아아어아!!! 이 망할 두꺼비 자식!!”
드롱!?
“뒈져라!!!”
토룡의 머리를 박차고 날아가는 노에라. 그러나 녀석이 달고 있는 날개는 이동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떠있는 용도에 가까웠다. 애초에 땅과 바람의 믹스 신수라고는 하지만 땅이 99%이고 1%의 바람이 날개로 발현된 것이다. 기세 좋게 날아가려던 노에라의 의지와는 달리 노에라의 속도는 형편없었고 노에라의 기세에 잠시 쫄았던 풀루 두꺼비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돌아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피슉!!! 첩!!!
“!?!”
벌려진 입에서 튀어나온 혀가 순식간에 노에라를 잡아챘다. 그리고...
쑤우우욱!!!!
그대로 입속으로 혀와 함께 빨려 들어간 노에라.
“노, 노에라씨??”
어쩐지 갑자기 조용해진 느낌에 불길해진 오글리가 노에라를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으헉!!!”
노에라가 빠져나간 토룡의 머리 위 구멍으로 두꺼비의 혀가 들어 와 토룡의 내부를 휘저었다. 오글리가 그 혀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자 녀석을 쫓아서 혀가 스믈스믈 기어 오기 시작했다. 토룡은 노에라의 지시가 없어 그대로 멈춰버린 상황...
“노에라!? 이봐요!!! 뭐, 뭐야!? 설마 ...먹힌 거야?”
대답 없는 노에라, 그가 두꺼비 괴물에게 먹혔다는 최악의 상황이 오글리의 뇌리를 스쳤다. 오글리는 스믈스믈 기어오는 혀에 기겁하며 토룡의 안으로 계속 도망갔지만 저 놈의 혀는 계속 늘어나는 건지 계속 녀석을 쫓아 왔다.
“으아아아!!!! 오지 마!!!”
핑!!!
푹!!!!
꿈틀!
그동안 노에라의 괴롭힘(?)으로 갈고 닦은 활 실력 덕분에 혀에 명중시켰지만 조금 따끔한 듯 꿈틀거리더니 더욱 빠르게 오글리에게 다가가는 혀. 아마, 화살이 박힌 방향을 토대로 오글리를 찾은 모양이었다.
스윽...스윽...
“으으으윽!... 죽어!!”
푹!!
푹!!!
푹푹푹푸푹!!!!
초인적인 힘으로 노에라가 그렇게 연습시켰던 연사까지 성공했지만 놈의 혀가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데 도움 밖에 되지 않는 발악이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 온 혀, 화살까지 박혀있어 그 징그러움은 더욱 심했다.
스....쑥!!!!
“헉!!?”
천천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글리의 다리를 감싸버리고 그대로 끌어당기는 혀. 그 힘에 속수무책으로 오글리가 끌려간다.
“으아아!!! 놔!! 놔!!놔아아아!!!!”
푹!!푹!!!!
콰득!!!
“꺼억!!!..”
화살을 가지고 반항하는 오글리의 다리를 부러뜨린 혀.
그 충격에 오글리는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스그....뚝!....!?!?!?!
휙!!
“으악!!”
...털썩!...
“으아아아아....???”
끌려가던 몸이 갑자기 멈추더니 다리를 감싼 혀가 저절로 풀려 버렸다. 그 덕에 조금 뜬 상태로 끌려가던 놈이 바닥에 떨어지며 부딪쳤지만 지금은 그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 오글리의 관심은 온통 혀가 왜 갑자기 그를 놓아 줬을까 였다.
“어??”
혼자 펄떡거리는 혀를 자세히 보니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할 끝 부분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잘려 있었다. 갑자기 혼자 잘려 나갔을 리는 없을 테고... 누군가 잘랐을 거라는 건데, 여기서 저런 놈의 혀를 잘라 버릴 존재는...
“다, 닫혔다!”
토룡의 머리 뚜껑의 구멍이 닫힌 걸 확인한 오글리가 소리쳤다. 아마 토룡의 구멍이 막히면서 혀가 잘려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노에라 살아 있다는 걸 뜻했다.
“아아...살았다...”
노에라가 살아 있음을 짐작한 오글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이제야 다리가 부러진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었지만 살았다는 사실에 꾹꾹 참는 녀석. 그러고 보면 꽤나 질긴 목숨이 아닐 수 없었다.
“쯧쯧, 겨우 그것가지고 그렇게 빌빌 거려서 영웅 하겠어?”
“으아...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토룡의 내부를 울리는 노에라의 말에 오글리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 노에라도 의도한 상황이 아니라 혹시 죽어 버렸으면 어떡하지 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서둘러 온 것이었다. 갑자기 놈의 입속에 끌려갈 줄이야...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