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247화
오글리의 말에 노에라는 정말 이 녀석을 날려버릴 뻔 했다. 아니, 날릴 수 있었으면 벌써 날렸을 것이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서커스단을 보고 자신이 보여준 능력과 같다니!
“이 자식이, 나랑 장난치는 거냐?!”
“네?? 아닌데요...?”
“에잇! 관둬!!”
상식이 다른 녀석하고 무슨 얘기를 하리... 자기가 뭘 잘못 말한 건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사실 딱히 잘못 말한 것도 없었다. 그냥 듣고 아는 걸 말했을 뿐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억울한 표정의 오글리 녀석.
“... 먹던 거나 마저 먹어.”
“넵.”
우적! 우적!
고놈 참 맛있게도 먹었다. 더 화딱지 나게.
...
결국 오글리의 배만 채우고 아무 소득이 없는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물론 오글리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배를 불릴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제 그 도시로 가는 거면 되는 거냐?”
“일단은 그럴 생각이에요.”
“끄응... 근데 네 생각에는 정말 그 풀루라는 것들을 몽땅 없앨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저도 확신은 없어요... 다만 제 가족들이 그렇게 만든 풀루라는 놈들을 꼭 없애버릴 겁니다.”
노에라의 말에 갑자기 오글리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분위기 잡고 말을 했다. 그만큼 풀루라는 것들에게 가진 증오는 진심이라는 말이었다.
“에휴... 그게 없어지긴 하려나...풀루라...”
“일단 가보자고. 가면 뭐라도 방법이 나오겠지.”
“예, 근데 여기는 어딘가요?”
이제야 자기가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하긴 일어나자마자 노에라가 먹는 것에 군침을 흘리더니 그대로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당연했다.
“지하.”
“지하...요?? 동굴이 아니라?”
“그래, 이 몸이 직접 판! 지하다.”
반화도 인정한 노에라의 땅파기 기술이었다. 별장에서는 밭 가는데 쓰는 능력일 뿐이었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쉘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래봐야 별 쓸모는 없는 것 같았지만.
“와... 이런 곳을 진작 만들 수 있었으면 우리 가족도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갑자기 그런 슬픈 말을.”
출발하기 전부터 기분이 축축 처지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힘내서 출발해도 모자랄 판에.
“괜찮아요!! 이젠.”
“끙... 그래, 뭐... 이제 나간다?”
“네, 근데 풀루는 없겠죠? 소리가 크면 나타날 수도 있는데.”
“걱정마라, 소리는 안 날 테니까. 나도 다시 지하로 숨으면 돼.”
“아~”
얼떨결에 녀석을 안심시켜 준 노에라가 기운을 움직여 천장을 열고 바닥을 올렸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엘리베이터가 올라가 듯 지상으로 돌아 온 둘. 다행히 주변에서 풀루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 쪽인지는 알아?”
“음... 다행히(?) 마침 밤이네요. 서쪽으로 가면 나온다고 했어요.”
오글리 녀석이 자신만만하게 밤하늘을 보며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조금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는 노에라였지만 지금은 이 녀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었다. 풀루를 때려잡더라도 어떤 정보가 있어야 때려잡던 가 할 텐데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냥 풀루라는 녀석의 증상, 그리고 물에 약하다는 사실 밖에 없으니..
“저기에요!”
“근거는 뭔데?”
아무리 봐도 못 미더워 일단 이유를 물어본다.
“저기 붉게 빛나는 별과 푸르게 빛나는 별을 이은 선을 중심으로 왼쪽이 동쪽 오른쪽이 서쪽이에요. 이건 확실히 배웠어요.”
“그 유랑단같은 녀석들한테?”
“네...”
“그럼 됐다. 가자.”
“네? 네!”
유랑단이라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녀석들일 테니 방향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노에라는 그 점을 생각하고 오글리의 생각과는 달리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그대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기로 했다.
“거리는 모르지?”
“네... 그건...”
“일단 있긴 정말 있는 거지? 그 메르스르라는 도시?”
“네!”
몇 번을 물어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노에라는 다시 토룡을 만들었다. 그리곤,
“뭐해? 빨리 들어 와.”
“??거, 거기로요? 으헉!”
오글리 녀석이 답답하게 굴자 그냥 강제로 흙손을 만들어 그대로 집어 든 후 토룡을 입 속에 집어 넣어버린 노에라, 자신도 토룡의 입속에 들어간 후 그대로 입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토룡은 그대로 땅을 뚫어버리며 지하 굴을 만들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
“어...어!?”
“정신 좀 단단히 붙잡고 있어. 그래가지고 복수 할 수 있겠어? 일단 가다가 기척이 많이 느껴지는 곳이 있으면 설 거야. 거기가 메르스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면 다른 잡다한 놈들하고 안 부딪힐 거니까 속도는 빠를 거다.”
“...”
노에라의 능력에 할 말을 잃은 녀석은 노에라가 애써 하고 있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토룡의 입천장만 바라봤다. 그리고 입속을 봤는데...
“쉬고 있어. 뭐라도 할 거 있어?”
“아, 아뇨...”
노에라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비록 흙으로 만들어 졌지만 넓은 침대가 있는 방이 있었다. 이 안을 지금 비유하자면 일종의 테마 열차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노에라가 생각한 것도 그것이었다. 땅 속을 기어가는 토룡열차.
“그 허리춤에 있는 건 활이야?”
“네.”
“흐음... 활은 만들 줄 알아?”
“네, 재료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어쩐지 더 깍듯해진 녀석의 모습...
“잘 쏴??”
“활은 자신 있습니다!”
“그래?? 흐음... 그럼 이걸로 한번 활 만들어 봐. 어차피 할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음?? 이게 뭐, 뭐죠?”
이것으로 말하자면 남쪽 괴수, 레이브의 등껍질 일부와 서쪽 괴수 크라센의 힘줄이었다. 레이브의 등껍질 같은 경우는 삼이와 놀다가(?) 부서진 것으로 삼이가 반화한테 들키기 전에 노에라의 뱃속에 숨겨 놓은 것이었고 크라센의 힘줄은 반화의 아공간에서 딸려 온 것이었다. 그냥 아공간을 떼면서 잡다한 것들은 다 집어넣은 것 같았다. 그게 지금은 참 도움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 했다. 반화는 아무생각 없이 집어넣었을 텐데.
“재료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만들어 봐.”
“어, 그런데... 이걸 제가 가공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도 없고 도구도 없는데요?”
“거참, 손 많이 가는 녀석이네.”
반화와 살다보니 이런 사소한 것들을 잊고 있었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필요한 것들이 참 많이 존재한다는 걸. 반화 같은 경우는 스스로도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보통 파스나 해골씨를 통해서 다 해결하는 편이었기에 노에라도 그 모습만 보고 뭘 할 때는 그냥 말만 하면 되는 줄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이런 평범한 인간이 이런 재료를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끄응... 이걸 어떻게 가공하지?”
애초에 가공한다고 해도 저 녀석이 다룰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노에라는 잠시 지상으로 올라가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가져 왔다.
“이건 다룰 수 있지? 도구는 여기 있어.”
“아!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아요! 오오... 이런 도구들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거죠?”
“마트가면 팔아.”
“네??”
“있어 그런 게. 빨리 만들기나 해. 너도 밥값은 해야지.”
“네!”
거의 악덕작업반장 같은 모습의 노에라였지만 의외로 순진한 오글리 녀석은 신경 쓰지 않고 활과 화살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촉은 어쩔 수 없이 나무를 깍은 화살촉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손재주는 있는 모양인지 그럴싸 해보였다.
.
.
.
별 다른 일 없이 이동하는 노에라들에 비해 반화 쪽은 시끌벅적했다.
-불덩이~
-!?
“사, 삼이야? 애가 겁먹잖니?”
-웅? 왜?
셀라가 불러낸 하급 불의 정령을 껴안은 삼이, 그러나 하급 불의 정령은 그런 삼이의 행동에 굉장히 불안함을 느꼈다. 일단 가진 기운부터가 심상치 않은 삼이가 껴안는 바람에 자신의 기운이 삼이에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고 또 껴안는 삼이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불이 꺼질 뻔했다.
“삼이가 그렇게 꽉 껴안으면 얘가 꺼져버려요.”
-으웅... 그래?
삼이가 아쉽다는 듯 불덩어리를 한 번 더 꽉 안더니 놓아주려고 했다. 그런데...문득 이상한 기분이 든 삼이는 풀려던 팔의 힘을 풀지 않고 다시 꽉 껴안았다. 그 힘에 불덩이가 요동을 치며 기겁을 했지만 삼이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사, 삼이야! 그러면...응???‘
셀라는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 같은 하급 정령의 기운에 화들짝 놀라 삼이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이상한 느낌에 뻗던 손을 멈춰버렸다.
“어...?”
-히히히, 이제 됐지?
-...!?!!
화르르륵!!! 치지직!!!
“응? 삼이 또 뭐했어??”
잠깐 파스랑 얘기 나눈다고 한 눈 팔았던 반화는 삼이 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지자 바로 삼이에게 물었다. 다른 쪽은 쳐다보지 않는 반화였다. 어차피 사고는 삼이랄까?
-웅? 그냥 너무 약해서 내가 힘을 좀 줬어!
“어?? 힘을 줬다고? 얼마나??”
-쪼금!
“그래? 그럼 뭐 문제없네.”
“뭐가 문제가 없어!!! 지금 불의 정령을 이상한 정령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반화와 삼이의 대화에 셀라가 황당한 듯 끼어들었다. 지금 섭리를 벗어나는 짓을 저질러 놓고 너무 태연한 모습에 황당한 셀라는 말이 제대로 안 나올 지경이었는데...
-냐아!
“헙!...끙..."
삼이에게 소리를 지르자마자 순이가 째려보며 셀라에게 경고했다. 분명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저 자식도둑냥이가 엄마 행세를...
“뭐 문제 있어?”
“아니, 그게...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이제 태어난 지 겨우 일 년 된 녀석이 정령 근원을 바꿔버리는 일을 저질렀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안 될 건 뭐야.”
“...”
반화의 말이 맞았다. 안 될 건 없었다. 그냥 좀 많이... 아니, 정말 많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지만 또 안 될 건 없었다. 자신도 물의 하급 정령을 불의 하급 정령으로 만들 수는 있으니까. 그걸 아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 같은 삼이가 했다는 것이 좀 문제긴 했지만.
-!?~오옹?~옹?~
거기에 단순히 근원만 바꾼 게 아니라 급도 높여 버린 것 같았다. 하급 정령 같은 경우에는 의지로 의사표현을 할 순 있지만 저렇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형상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데 지금 삼이가 만들어 낸 저 혼종은 삼이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하고 입으로 보이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를 뱉고 있었다. 뜻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삼이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자신을 새롭게, 그리고 강하게 만들어 준 존재가 삼이니까 고맙다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았다.
-웅?? 좋다구? 나도 좋아~히히, 넌 이제 뿌리야!“
“음?? 뿌리는 또 뭐야 삼이야?”
-얘 이름! 뿌리.
“큼... 뿌리...?”
-응!
무슨 기준으로 작명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저 뿌리라는 정령은 삼이가 지어 준 이름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하얀 불과 노란 전류를 방출 시키며 자신의 기분을 나타냈다.
“설마, 삼이 축소판은 아니겠지...?”
-냐아...?
반화의 말에 순이도 그런 좀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삼이 하나로도 충분한데...
-삐아!
“응? 미요 왔어?”
앞으로 사고뭉치가 될 녀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 또 깜빡했던 노에라만 있으면 완벽한 조합일 것이다.
“노에라 이 녀석...그냥 찾지 말까.”
어쩌면 그러는 편이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든 반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