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245화
계속해서 달려드는 풀루들을 날려버리며 결국 강을 건넌 노에라와 오글리.
“더럽게 끈질기네. 후우...”
“일단 저들의 청각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계속 도망가야 돼요. 물론 이렇게 강을 건너면 못 쫓아오지만.”
“왜 강은 못 넘지? 보니까 딱히 못 건널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노에라의 말대로 풀루라는 놈들이 강을 못 넘을 이유는 없어보였다. 육체적으로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사지 멀쩡하고 간혹 몇 미터를 뛰어 오를 정도로 뛰어난 놈들도 있었다. 지능은 좀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따라오지 못할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풀루들이 물에 닿으면 육체가 녹아버린대요.”
“응?? 그럼 물 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왜 못 막아?”
“그냥 칙칙 뿌린다고 녹는 게 아니야...요. 아주 깨끗한 물로 담가야 녹아요. 사실 그것 때문에 물을 사용하는 존재를 소환하려고 빌었는데...”
“뭐, 임마? 그럼 물 쓰는 놈을 불렀어야지! 왜 나를 불러??!엉?! 우리 집에 물고기도 있는데! 왜??!”
그거야 루네스의 정신세계는 이 녀석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그런 정신세계와 상성이 맞는 존재를 찾기는 많이 힘들 것이다. 요즘은 순이랑 잘 노는 것 같았지만.
“그게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노에라의 윽박에 소심해진 녀석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도 이렇게 성질 더러운 쥐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생긴 건 정말 귀엽게 생겼는데 무슨 성깔이 저렇게 더러운 건지...
“후우... 일단 진정 좀 하고... 뭐 먹을 거 있어?”
“없는데...요?”
“그럼 여태 뭐 먹고 살았어?”
“그냥 나무에 난 버섯이나... 풀을 주로.”
“헐...”
그야 말로 헐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상태가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하긴 홀로 산을 헤매면서 노에라까지 소환하려고 했으니 먹을 걸 제대로 먹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녀석 어떤 의미로는 지독한 놈이었다. 모든 게 부실하고 두려웠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에라를 불러 댔으니까... 그것도 불확실한 사실을 가지고서 그럴 수 있었다는 건 이 놈은 역시 정상인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점은 먹을 걸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지만.
“끄응... 근데 뭐 먹을 수 있는 걸 구분 하고 먹었어?”
“?? 그냥 먹었는데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오, 오스 가문에서 수재 소리 들었던 접니다!”
“그런 놈이 소설 같은 책에서 소환할 수 있다는 걸 보고 나를 소환해?”
“그, 그건...”
조금 상황이 진정이 되자마자 다시 녀석을 구박하기 시작한 노에라, 그런데 오글리 녀석의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걸 봐선 아무래도 그 동안 참아왔던 것이 노에라와 강을 건너 안전한 곳으로 오자마자 터진 것 같았다.
“으음...자, 잠시...만...”
“어? 야, 야?!”
털썩!...
“...뭐야, 이게. 내가 네 보모냐??”
힘없이 쓰러져버린 녀석, 그래도 일단 소환자가 죽으면 안 되니까 노에라가 빠르게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고 그냥 그동안 긴장했던 것들이 풀리며 피로가 밀려 온 것뿐이었다. 가지가지 하는 놈이었다.
“에휴... 일단 어디 가서 쉬어야겠네.”
아직 제대로 된 계획도 없고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노에라는 쉴 수 있을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풀루라는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숨죽여서 이동해야 했기에 두 배는 더 신경을 써서 움직이는 노에라, 당장 풀루라는 놈들이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쉬려면 아무래도 그런 놈들이라도 계속 달라붙으면 제대로 쉴 수 없을 테니까.
스으윽...스윽...
사실 땅의 신수인지라 크게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바로 밑, 지하에 땅을 파고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뭐 먹을 게 있나...?”
일단 안전한 곳을 확보해두고 먹을 걸 찾아보려는 노에라. 물론 멀리 갈 생각은 없었다. 손을 뻗어 바로 뱃속을 뒤지면 이렇게...
쑤욱!
“응? 이건 왜 넣어 뒀지?... 일단 꺼내두고...먹을 거..먹을 거..”
담요, 청소기, 베개, 이불... 갖가지 생활용품들이 노에라의 뱃속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반화가 아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딸려 들어 온 것들에 삼이 녀석이 장난삼아 이것저것 집어넣었던 것들이었다. 이런 아공간을 노에라가 가지게 된 경로도 참 웃겼다.
TV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던 반화와 삼이들, 그러다가 그곳에서 주머니 쥐가 나온 것이다. 시작은 삼이였다. 다짜고짜 노에라를 붙잡더니 주머니를 만들겠다고 주물럭거리더니 주름만 잡히고 만들어지지 않자 힘을 써서 아예 배에 구멍을 뚫어 버리려 했었다. 노에라가 죽는다고 반화에게 달라붙어 배에 구멍이 나는 건 다행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반화도 주머니 쥐가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가지고 있는 아공간을 슬쩍 떼어서 노에라에게 넘겼는데 그때 딸려간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삼이 덕분에 아공간을 가져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단 이불 같은 것들은 오글리 녀석에게 던져두고 먹을 것을 찾아보는 노에라, 분명 자신이 집어넣은 것들도 있고 반화의 아공간에서 딸려 온 것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넣은 것들 보다는 반화가 필요 없어서 넣어둔 식량을 주로 찾아보던 노에라...
“엇! 이게 있었다니!”
쑤오옥!
하필 아공간을 만든 곳이 배라서 좀 기괴한 모습이었다. 배에서 정형이 끝난 고기가 나오는 모습이라니, 아마 오글리가 봤으면 다시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크으... 마스터...”
설마 이럴 줄 알고 반화가 넣어 둔 건 아니고 넘쳐나는 식재료들에 딸려 간 것뿐이지만 그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기에 일단 식량은 걱정 없었다. 물론 노에라같은 경우에는 이곳에도 있는 마나로 충분히 생존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먹을 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기분이 다르기에...
“이게 뭐였더라? 북쪽 괴물이었던가?”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반화의 아공간에 담겨져 있었다면 어중간한 놈들은 아닐 것이다. 일단 맛으로는 당연히 최고이고 또 가끔 잡는 괴물들의 고기도 있어 효능도 좋았다. 괴물들의 고기에는 마나에 도움 되는 성분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덕분에 노에라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어마어마하게 성장하는 녀석들 때문에 티도 안 났지만.
“걔들이 괴물인거지...난 정상이야.”
특히 맹이는 노에라가 생각해도 괴물 같은 성장이었다. 사실 삼이 녀석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힘이 강해지고 있는 반면 맹이는 그런 힘의 성장에 더불어 노력까지 해서 힘의 컨트롤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반화가 보기엔 아직도 어린 애들처럼 보이지만 노에라가 봤을 땐 두 마리의 괴수들에 불과했을 정도로 그들은 성장했다.
“으음...구이를 해볼까? 풀루라는 놈들이 냄새도 맡으려나?”
아직 놈들이 어떤 식으로 그들을 감지하는지 정확하게 몰라 고민하는 노에라, 결국 고기는 다시 넣어두고 간단한 즉석 식품들과 불을 쓰지 않아도 되는 간식들만 꺼냈다. 강제로 수술 당한 아공간이 이렇게 쓰이다니... 물론 이전에 노에라가 아공간을 달라고 떼를 쓴 적도 있었지만 그땐 구박만 받다가 티비 보고 장난삼아 받은 거라 그리 고맙지도 않았었는데...
“으음...”
노에라가 던져둔 이불을 더듬더듬거리며 주워들더니 아주 편안하게 덮는 오글리 녀석.
“내가 아니고 삼이 녀석이 왔으면 저놈은 벌써 죽었을 거야. 쯧쯧...”
처음엔 호기심으로 좋아 했을 것이다. 그러다 금방 실증내고 이곳에 마구 난동을 부렸을 테지. 막는 반화도 없을 테니 아마 여긴 초토화...
아그작, 아그작...
“음... 견과류가 없네.”
노에라의 아공간에는 주로 삼이가 집어넣은 것이 많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없었다. 이불, 베개 등등이 들어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그냥 자는 사이 몰래몰래 노에라가 넣은 것들은 빼고 자기 것을 넣은 것 같았다.
“아공간 잠금 푸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반화가 걸어 놓은 잠금을 밀어서 해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제한 건지...
아작!
“으음?...”
...노에라가 과자 씹는 소리가 오글리 녀석의 잠을 잠시 깨웠지만 피곤한 모양인지 그냥 다시 자버렸다.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말이지. 분명 오는 길이 있으면 가는 길도 있을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마스터만 부를 수 있으면 일사천리인데.”
지금쯤 과연 반화는 자신이 없어졌다는 걸 깨닫고 혹시나 자신을 찾고 있지 않을까 잠시 희망을 가졌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직시했다. 반화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아마 아직 사라졌는지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차원을 넘었으니 시간의 흐름도 다를 수 있었다.
“에휴... 그 냥아치들이 보고 싶어지다니...”
.
.
.
“음...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하나 빈단 말이지.”
“아까부터 뭐가 자꾸 빈다는 거야? 까망이랑 동이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아아, 걔들도 있었지. 파스.”
[넵.]
“어떻게 되고 있어?”
[일단 이제 인간들을 모으는 건 거의 끝났고 요괴들을 정리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안정화는 어때?”
[생각보다 인간들의 동요는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이미 무력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당장 반발하는 세력도 없습니다. 후에 물론 딴 마음을 먹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 지금은 큰 문제없습니다. 아무래도 요괴들에 한동안 시달린 후에 인간들을 구조했기에 시기상 딱 좋은 타이밍이었던 듯 싶습니다. 더 이르거나 늦었으면 인간들이 다른 생각을 했었겠지만.]
“그래?? 뭐, 잘 됐네.”
얻어걸린 경우라 반화도 얼떨떨했다. 하필 그때 미요가 차원 사이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냥 미료에게 맡겨버리고 신경을 껐는데 타이밍이 그렇게 맞았다니.
[아, 한 가지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
“?”
뭔가 주저하듯 파스가 뜸을 들였다.
“뭔데?”
[그... 노에라 있지 않습니까?]
“노에라? 노에라가 왜? 또 사고 쳤어?? 밖에 나가서 또 땅콩 훔쳤어?”
반화가 가진 노에라의 이미지는 쓰레..기까진 아니었지만 일단 사고뭉치였다. 파스의 말에 당연히 사고 쳤을 것이라고 떠올린 반화.
[아뇨, 그게 아니라...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그건 또 무슨... 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안 보이네. 지금 게임할 시간인데. 삼이야, 노에라 못 봤어?”
-웅?? 쥐?? 그러고 보니... 쥐가 없어!?
삼이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딜 간 거야?”
[사실, 저도 정확히 관찰한 것이 아니라서 확신은 할 수 없는데... 아마 차원을 이동한 것 같습니다.]
“차원 이동?? 그 녀석은 그런 거 못하는데?”
노에라가 지배자급에는 다다랐지만 차원을 지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반화가 가지는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파스 덕분에 노에라의 부재 사실은 깨달은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