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243화
두 귀를 막아도 게임을 해도 머릿속을 울리는 오글쟁이의 소리는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애써 신경을 끄고 있어도 들리는 그 목소리에 노에라는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놈이 바로 앞에 있었으면 반화라도 못 참고 면상을 날렸을 것이다. 물론 반화가 그걸 맞아 주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다.
“으아아아!!!! 이 망할 자식!!!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거야!!?엉!?!! 나와!! 이 자식아!! 나오라고!!!”
하던 게임에서 결국 져버린 노에라는 그 스트레스를 정체 모를 오글쟁이에게 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반화나 순이 등등이 집에 있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필 지금 다들 없었다. 반화라도 있었으면 잔소리와 사랑의 맴매를 듣고 맞았을지라도 이 망할 놈을 때려잡아 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도와줘! 제발!!
“으으...이 자식... 어디 한 번 면상이나 보자! 어디냐!!”
-어?! 설마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드디어 노에라의 목소리가 놈에게도 들린 모양이다. 의지에는 의지로, 노에라의 불타는 분노의지를 들은 놈이 여태와 다르게 말을 걸어 왔다.
-나 오글리의 의지에 응답하는 자여!
“으아아아!!! 그딴 오글거리는 주문 따위 집어치우고 어서 나타나라고!!”
정말 치가 떨리는 말투에 노에라가 다시 분노를 담아 놈에게 외쳤다.
-...?어... 부름에 응답한 자여??... 나와 계약을...
“계약서 들고 와 이 자식아!! 들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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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조그만 한 게 어찌나 목청이 좋은 지, 본가에 있던 명하가 노에라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하고 찾아왔다.
“음?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어쩐지 고요한 집안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명하, 분명 오빠인 반화가 와서 애들이 떠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적막만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음?? 여기 왜 땅콩 통이 있지?? 웬일이래,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때도 있고.”
항상 물건에 흐트러짐이 없던 반화의 집에서 바닥을 구르는 땅콩 통이 나오다니 별일이었다. 명하는 이왕 주운 거 잘 됐다며 반쯤 남은 땅콩을 집어 먹으며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 그 땅콩 통이 노에라의 먹이통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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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미에 자리 잡은 귀왕가.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네. 진짜 목소리가 들리는 거 맞아요?”
“어허, 의심하지 말거라. 우리 집안은 예부터 신과 소통이 가능했었다.”
“할아버지는 못했다면서요. 아버지랑. 그럼 이제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좀 더 신의 부름을 잘 받기 위해 조용한 장소로 이동까지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지루해진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칭얼거렸지만 엄한 목소리로 계속 하기를 종용하는 할아버지. 그러나 손녀의 반격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그도 같은 핏줄이면서 신의 부름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것도 딱 자신의 대와 그 밑의 아들이...
“원래 신의 부름은 모든 이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위에서도 받은 사람보다 못 받은 사람들이 더 많지. 그리고 받았다고 해서 꼭 가문이 번성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해요?? 그냥 있다가 부르면 대답하면 되지.”
“...시끄럽다! 그냥 해!”
“쳇...”
논리에서 밀린 웃어른이 할 수 있는 건 땡깡에 가까운 우기기 밖에 없었다. 옛날에 자신도 해왔었던 일이다. 물론 신의 부름은커녕 뭔가를 느낀 적도 없었지만 그저 어른이 시키는 대로 어렸을 적 산속에서 홀로 1년이나 지낸 적이 있었던 그는 그가 받았던 것을 그대로 해주는 것뿐이었다. 예전부터 해왔으니까... 왜 했는지는 그냥 들었던 것을 그대로 말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따로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어렸을 적에는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으아아~~~ 쇼핑하고 싶어~!”
“인터넷은 쓸 수 있게 해주잖아! 그것만 해도 얼마나 특혜인줄 모르는 것이냐? 나 때만 해도 밥만 가져나 주고 산속 동굴에 가둬졌었어! 1년이나!”
“에이, 그걸 왜 하고 있었어요? 1년이나?”
“!!... 아무튼 더 정갈한 몸가짐으로...”
“신이 우리 몸가짐에 관심은 있어요? 아니, 사람이 개미를 보는 거랑 뭐가 다를까요?? 개미가 뭘 입던 말던, 누워있는지 일어서 있는지 별 관심도 없을 것 같은데.”
“쓰읍!”
“...칫...”
결국 노인네의 강짜에 두 손 든 손녀는 조부의 말대로 일단 자리에 정좌하고 앉아 멍 때리기를 시전했다.
“아이고 두(頭)야...”
그 모습에 머리를 부여잡은 조부였지만... 잠시 후 ...
쿵!쿵!쿵!
“음??”
“택배입니다!!! 계십니까?!!”
“!!!”
요즘 택배는 이런 조용한 곳까지 아주 친절하게 배달이 되었다.
“앗싸!!! 나가요!!!”
“에휴...쯧...”
조부의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택배의 소리에 금세 묻혔다. 나중에 또 달래드리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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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귀왕가, 독왕가만 남았네.”
광신도들을 설득하는 건 참 쉬웠다. 그냥 북쪽으로 가라하니 간다고 했으니까. 그곳에 부른 마왕성이 있을 것이라나?? 그것도 북쪽이라니까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미친놈들...
[음... 네가 말한 왕가 중 하나는 지구에 있을 것이다.]
“네?? 지구요?? 괴물이 사는 세계...가 아니라 신들께서 사는 곳이요?”
안타깝게 왜 하필 그리로 갔단 말인가?
[...너도 조금 광신도 같은 느낌이 나려고 하니까 그 신이라는 말은 하지 말지? 그냥 마스터라고 불러라. 대부분 그렇게 부르니까.]
“마스터가 무슨 뜻...이죠?”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주인님이라고 부르라는...?”
[..마스터라고.]
정색하는 파스에 미료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라니 해야 됐다. 힘이 없으니까. 아직!...
“이제 어디가야 되나요??”
[음... 이제 남아 있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야.. 잠시만, 네가 말한 왕가정도의 인간들이 분명 있어야 하는데...설마 또 진이라는 것이 막고 있는 건가.]
파스가 계속해서 대륙을 스캔하고 있었지만 독왕가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 놓쳤던 귀왕가라는 인간들의 무리처럼 아마 자신들을 감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넣은 대륙을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진이 설치되어 있으면 아무리 파스라도 확인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음... 그럼 일단 요괴들이 많은 곳부터 갈까요?”
[그러는 게 나을 것 같다. 일단 요괴들이나 정리하고 있어.]
“넵! 그럼... 동이야!”
-삐이~??
“나 좀 태워줘!!”
-삐이...
동이는 미료의 말에 조금 껄끄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반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인간이 말 잘 들으라고 한 인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자유를 위해 여기에 왔지만 결국 반화의 손아귀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동이의 머리에 올라탄 미료는 일단 하늘에서 지상을 살펴보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홍아와 까망이는 몸집을 줄여 미료의 품에 안겨서 이동하기로 했다. 반화덕분에 몸집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 다행히 도움이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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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에라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명하가 반화의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는 증거가 땅콩 통으로 남아있었다.
...
명하가 들어오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뭐야? 왜 안 나타나??”
-계약, 계약을! 나와 계약을 해줘!
부르르르..
“으으으, 이 미친놈...”
느끼한 목소리로 노에라의 머릿속을 울리는 괴상한 내용에 녀석이 몸의 털을 바짝 세우며 부들부들 떨었다.
“오냐, 계약 하자! 계약해! 너 이놈의 새끼! 걸리면 죽었어!”
노에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앞으로 나타난 작은 포탈이 녀석을 그대로 삼켜버리고 땅콩 통만 남겨졌다... 하필 반만 남은 땅콩 통이라 어쩐지 더욱 씁쓸한 모습이었다... 이왕이면 다 먹고 가지. 거기 가면 먹지도 못할 텐데.
노에라가 무심코 뱉은, 계약하자는 말 한마디에 이루어진 계약은 노에라를 녀석을 이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 뒤 바로 명하가 찾아 온 것이었다.
....
“끄으응...뭐지 여긴.”
“으음?? 뭐야, 이 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노에라가 멍한 정신을 차리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흔드는 사이 노에라를 소환한 자로 보이는 녀석은 인상을 썼다. 분명 엄청 어마어마한 존재와 계약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몇 날 며칠을 부르고 불러서 겨우 계약했는데 겨우 쥐(?)가 나타나다니.
“이 목소리는!!! 이놈 시키!!! 너구나!!”
덥썩!!!
“어, 어!? 이, 이거 놔!”
드디어 지긋지긋한 목소리의 주인을 만난 노에라가 놈의 멱살로 보이는 곳을 잡으며 앞뒤로 흔들었지만 어쩐지 노에라의 힘이 영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노에라가 생각했던 힘이 나오질 않았다. 아예 영혼까지 탈곡 시키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놈이 강한 건 또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기운을 가진 녀석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왜, 힘이...?”
스윽... 쿵!!!
“으헉!!”
가볍게 바닥의 땅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자신의 힘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노에라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놈을 흔들어 봤지만 여전히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뭐야!?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너한테만 힘이 안 들어가는 거냐!?”
“으윽! 일단 이것 좀 놓고!”
노에라가 강한 힘을 쓰지는 않고 있지만 녀석은 그것마저도 괴로운 듯 했다. 노에라가 놓아주자 그제야 한숨 돌린 녀석.
“크윽... 무슨 쥐가...”
목을 쓰다듬으며 노에라가 한 짓을 본 녀석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계약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 자신은 저 구덩이 중간에 있었으리라...
“어서 말해! 여긴 어디야?? 왜 너한테 힘이 안 들어가는 거냐?”
“큼큼! 제대로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오스 가문의 오글리라고 한다. 간단하게 오글리라고 부르면...”
“네 이름 따위 별로 알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본론이나 얘기하라고.”
“헉!”
물리적인 힘이 직접적으로 작요하지 않는다면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놈의 머리 위를 맴돌기 시작하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놈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여긴 케라틴 대륙이다! 지금 네가 나에게 힘을 쓸 수 없었던 건 계약상 소환수는 소환자에게 물리적인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것 좀 치워 주세요!!”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건 생각하지 못한 듯 놈이 재빨리 노에라에게 빌었다. 이미 각종 협박을 받으며 살아 온 노에라를 뭘로 보고...
“케라틴 대륙은 또 뭐야?? 왜 날 여기로 부른 거야, 망할 놈아! 왜 계속 불러!! 불러서 안 오면 어!? 그만, 어?! 해야지!!”
쿵!! 쿵!!
“으헉!”
노에라가 분노를 토할 때마다 놈의 바로 옆을 스치며 떨어지는 바위... 효과는 탁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