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239화
다른 녀석의 힘은 솔직히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령이의 목표는 반화의 힘이었다. 그동안 힘없어서 얼마나 서러웠는가. 냥아치에 치이고 아이들에 치이던 나날... 물론 이거 좀 얻는다고 당장 냥아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계는 깰 수 있었다. 지배자 급을 넘어선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거 쥐꼬리만큼 가져가서 뭐하게??”
물론 그런 령이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반화였다.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 게 다 보이는데 실룩이는 입가를 감추려는 모습이라니.
“넌 몰라, 내 서러움을.”
“뭘, 서러움까지... 좀 비리비리하다고 아무도 뭐라 안했잖아.”
“...비리비리까진 아니잖아.”
어딜 가서 령이가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인가. 반화의 집이 아니면 령이도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반화의 집이 이상한 거였다.
-령이는 많이 좀 먹어!
“...그래, 고맙다.”
삼이가 비리비리한(?) 령이를 위해 마정석을 하나 더 건넸다.
-삐아!
“응?? 설마 이거?”
그때 령이의 손에 든 마정석을 보며 지저귀는 미요.
“안 돼! 이건 내꺼야!”
“줘라 줘, 애도 아니고.”
“!!!”
이것은 바로 명절날 조카에게 삥뜯기는(?)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령이가 황당하다는 듯 반화를 쳐다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반화.
‘더 좋은 거 줄 테니까 그냥 줘. 그거 먹어서 얼마 안 돼.’
‘...진짜지?’
이것도 왠지 부모님의 흔한 거짓말 같지만 확실한 건 반화가 장난은 쳐도 거짓말은 안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속여먹긴 해도 말을 이상하게 해서 속였지, 거짓말은 안했다. 준다면 분명히 줄 것이다. 거기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끄응... 자 아, 해봐.”
-뺘!
쏘옥!
까득! 까득!!
령이가 주는 마정석을 맛있게 씹어 먹는 미요. 어쩐지 북요도 입맛을 다시는 것 같지만 자식 걸 뺏어 먹을 정도로...
“...너도 줘??”
-끼이...
“자자, 둘이 잘 나눠 먹어라. 쳇...”
아까운 눈으로 북요와 미요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마정석을 보는 령이, 그래도 고생했을 녀석을 위해 눈 꼭 감고 외면했다.
“미요?”
-삐아?
“오, 바로 자기 이름인 건 아네?”
“...”
어쩐지 반화의 말에 눈치를 보는 령이. 분명 뭔가 수작을 부렸던 것 같았다. 가령 미리 먼저 자기가 이름을 세뇌 시켜놓고 선택하게 만들었다거나...그러고 보니 글도 모를 녀석인데 령이가 적은 쪽지를 골랐다는 건 좀 이상했다.
“흐음...”
의심이 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냥 령이를 한번 슥 보고 모른 척 해줬다. 그만큼 힘을 원하는 것 같으니 나중에 제대로 힘을 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게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넌 여기서 살 거야?”
-끼이??
“아니, 원래 살던 곳에 돌아가고 싶으면 돌려보내 줄게.”
절레절레...
이미 안락한 반화의 별장에 맛들인 북요는 돌아가는 걸 거부했다. 하긴 그 척박한 곳에 굳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애도 있는데 거기 가서 무슨 고생을 할 줄 알고 간단 말인가. 거기에 괴물의 보호아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남을 이유가 되었다. 좀 성격이 안 좋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식구는 잘 챙기고 특히 자신의 자식을 꽤 아끼는 모양새니...
“안 가?? 진짜 가도 되는데?”
-끼이...
“뭐... 니 맘대로 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끄덕끄덕.
.
.
.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미료가 선두에서 뒤로 소리쳤다. 파스가 말하길 정말 이제 코앞이라고 했다.
“와아아!!!! 다 왔대!!”
처음 북쪽으로 향한다고 할 때는 다들 두려웠었다. 안 그래도 요괴들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데 아예 요괴들의 온상지인 북쪽으로 간다니... 솔직히 말하면 살기위해 그냥 따른 것이었다. 미료가 보여주는 무위가 너무 살벌해 거부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북쪽으로 갈수록 몸으로 체감되는 요괴들의 습격 감소에 점점 희망이 차올랐다.
거기에 검왕가를 흡수하고 나서부터는 믿기 시작했다. 검왕가라고 하면 이미 신뢰가 대단한 왕가였다. 북쪽의 요괴를 막아주는 방벽이라 불리는 왕가이며 대륙의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을 베풂을 보이는 왕가에서 아무런 반발 없이 흡수되었는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에 검신까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군... 그동안 너무 풀어졌어.”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현장에 있는 저희도 어떤 징조를 최근에야 느끼기 시작했었습니다.”
“쯧... 이렇게 진이 망가져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냐?”
“아~ 그거는...”
검신의 착각에 검귀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려 주었다.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반화들과 이동하며 겪었던 그야말로 인외의 영역에 대해서 검귀는 일체의 가감 없이 검신에게 팩트만 제공해 주었다. 물론 듣는 검신이 믿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순이라는 천외를 봤기에 그도 믿었다. 다만 그들의 우상인 무휼대사의 진이 그토록 어이없이 망가졌다는 말에는 허무함을 느꼈다.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준 진이 소리 좀 질렀다고 망가지다니...
“그나저나 북쪽의 요괴들이 정말 다 떠난 모양이네.”
[정확히는 다 쫓아 내 버린 거지. 여기는 가두는 곳보다 지키는 게 오히려 좋은 지형이야.]
무휼대사와 초대 황제가 요괴들을 가두는 곳으로 사용했다면 미료는 지키는 곳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요괴들의 생성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원래 이 땅은 요괴들을 정화할 능력이 충분한 곳이었다. 인간들이 늘어나고 대륙을 인간이 차지하면서 사기가 짙어져 요괴들의 수가 더욱 늘어난 것이다.
“다 쫓아냈다고요?”
[일부러 다 쫓아냈어. 여기 계속 두면 변이가 더 심해질 테니까 풀어 놓는 편이 좋아. 물론 인간들에겐 안 됐지만.]
파스의 판단이 아니었다. 이건 반화가 파스에게 지시한 일이었는데 인위적으로 모든 요괴들을 정화시킬 수 없다면 이 땅이 알아서 정화할 수 있게 계속해서 자정 능력을 유지 할 수 있게 해줘야 했다. 넓은 대륙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다만 대륙에 살고 있던 인간들에게는 조금 가혹할 수도 있었다. 북쪽 대륙이 그 인간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으니까.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떡하죠?”
[글쎄...?알아서 살아 남아야겠지?]
“...그건...”
[아니면 니가 구해주면 되잖아? 어차피 아직 북쪽 대륙엔 자리가 아직 많이 남았어. 그리고 북 대륙 주변에도 충분히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고.]
파스가 말하는 건 하나였다. 인간을 살리고 싶으면 또 나가서 인간들을 모아야 한다. 물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북으로 몰려 들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황가는 무너졌고 남은 왕가들은 단단히 문을 잠그고 방어에 나섰다. 더 이상 대륙에 퍼진 일반 백성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
일단 그 걱정은 미루고 미료는 지금 자신에게 딸린 사람들부터 챙기기로 했다. 파스가 말한 정확한 장소로 다시 이동하는 미료의 무리...
.
.
잠시 후...
“어??...!!!”
그냥 넓은 평지가 있을 줄 알았던 장소에는 철저하게 파스가 계획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성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바로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두었다. 그 성이 이제 황성이 될 것이다. 새로운 황제는 미료.
“언제 이런...걸?”
[마스터가 미안하다고 지시해 뒀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복잡한 시설이 들어간 것은 아니고 그냥 하수처리 시설과 수도 시설만 심어 두었다. 이곳 문명보다는 앞서겠지만 지구에 비하면 형편없지.]
“이정도만 해도 지친 사람들에겐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 눈두덩이는 잊어 준다고 전해 주세...응??”
“여~ 왔어?”
쿵!!!
“요, 요괴!?...아니 신수다!!!”
“설마 수호신!?”
아니다.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는 한때 아틀란티스 남대륙의 고대 괴수 레이브였다. 그래도 이 녀석이 생긴 것도 크고 신수처럼 착하게 생겨서 데려 온 것이었다. 빈둥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왜...?”
“요괴 못 넘어 오게 지켜야지. 원래 북요를 데려다 놓으려고 했는데 육아 중이라...”
애만 아니었으면 그냥 끌고 왔을 터였지만 안타깝게도 미요 때문에 강제로 데려다 놓진 않았다. 그래서 마침 크로롱 호수에서 신선놀음 하고 있던 녀석을 데려 온 것이다. 수문장으로 나름 든든한 외형이 눈에 쏙 들어 왔기에 큰 고민은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누가 봐도 험악한 놈들이 대부분인지라.
“이 녀석 하나 있으면 이 쪽으로는 얼씬도 안 할 거야.”
-구오오오!!!
“그건 그렇겠네요.”
한 가지 더 장점이 있다면 미료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이 대륙에 요괴가 올 일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고대 괴수 레이브도 항상 이 곳에 있는 건 아니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해도 상관없었다. 이곳에 머물던 흔적만 남아 있으면 레이브의 존재감을 느낀 요괴들이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간다. 심심하면 놀러 와.”
레이브를 던져두고 한마디 말과 함께 반화가 돌아가고 뻘쭘하게 둘만 남았다.
“...일단... 어디에 사실 건지 위치부터...”
-삐~~!!!
그때 동이가 레이브를 보고 아는 척을 해왔다.
-구오!!
-삐이~!
그 모습을 사람들이 모두가 지켜봤다. 반화를 보기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둘의 모습은 멀리서도 그들이 볼 수 있었다. 미료가 데리고 다니는 신수(?)와 북 대륙에 나타난 신수가 교감(?)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모두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선전 효과가 대단하네요.”
“그러게... 다 노린 건가?”
“글쎄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료를 지배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하긴 원래 이곳 사람들이 신수, 신령 등을 숭배하는 일이 많기도 했고 그만큼 신수들을 신성시했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나올 수 없을 만큼 미료는 안정적으로 지배자가 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전에...
“대륙에 흩어진 사람들을 데려 와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좀 무리 아니겠습니까?? 너무 많은 무리가 섞이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겁니다.”
“무리해서 다 데려 올 건 아니에요. 다만 요괴들로부터 안전한 이곳 주변에 자리 잡게 해주려는 거예요. 그리고 이번처럼 제가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어요. 스스로 오게 만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곳에서 기다리며 제국 건설을 준비하겠습니다.”
“네. 그래 주세요. 검신님도 부탁드릴게요.”
“걱정 마시게.”
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행정적인 요소에 미료가 할 만 한 건 어차피 없었다. 전반적인 것들은 모두 검왕가에 맡긴 미료는 까망이, 홍아, 그리고 동이와 함께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다행히 걸어 다닐 걱정은 없었다. 이미 파스가 대륙의 지형을 모두 위성으로 탐색을 끝냈다. 파스가 열어 주는 이동 포탈을 이용해서 움직이면 되고 반화가 언제든지 별장으로 와서 쉬라고 했으니 돌아다니다가 잘 때는 또 그리로 넘어가면 되었다.
“자, 가자!!”
-크륵!!
.
.
.
-힝... 또 들렸는데.
“?? 진짜 뭐가 들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