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
236화
한 대 먼저 선빵 맞은 삼이 녀석이 어안이 벙벙하고 있을 때 영악한 아이는 다시 반화의 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이...
“난 간다.”
명하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혼자 쏙 빠져 나갔다. 그런데...
“맹이 너까지...?”
자연스럽게 명하의 손을 잡고 나가는 녀석. 개가 아니라 여우가 다 된 녀석이었다.
그렇게 맹이마저 반화의 곁을 떠나고 그의 곁에는 씩씩거리는 삼이와 모른척하는 아기 하나가 남았다.
“음...일단 뭐라도 좀 먹을까 삼이야?”
-고기!!
“그, 그래. 알았어.”
씩씩거리지만 먹는 걸 포기 하지는 않는 녀석이었다.
...
“얘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아고 예쁘다. 이리 온.”
삼이의 배를 둥글게 만들어준 뒤 본가로 온 반화는 가족들에게 아이를 보여주며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물어 봤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자신이 지었을 텐데 삼이 녀석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본가로 온 것이다. 쪼매난 녀석이 어찌나 앙칼진지... 물론 삼이가 아이의 이름을 예쁘게 지으라고 반대한 건 아니었다. 아빠가 지어주는 이름은 자기면 족하다고 땡깡을 피우는 것에 불과했다.
“코가 분홍색이니까 부농이 어때?”
“...”
-삐아!
반화의 작명 센스는 유전이었다. 일반화의 반화를 이름으로 지은 것부터가 이미 글렀다. 이 집은... 하필 신문 보다 눈에 띈 것이 일반화라서 반화라니...어쩌면 반화보다 심각할지도 몰랐다. 아기가 위기를 감지하고 반화를 쳐다보며 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짓게 할 거냐고 항변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미안하다. 삼이가 하도 떼를 써서...’
이럴 때 순이가 있어서 삼이를 혼내야 했는데. 어딜 갔는지 순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 엄마는. 그게 뭐야. 차라리 까망이 어때? 눈이 까마네.”
“...그거 이미 있어.”
“아, 그래?”
수화의 작명도 그다지... 슬이의 작명은 슬이의 아빠가 지어줬다니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큼큼, 그럼 하양이는... 안되겠지?...큼, 그냥 말해 봤다.”
은근슬쩍 끼어든 반화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눈길에 헛기침을 하며 다시 관심 없는 척을 했다. 오랜만에 등장했는데...
“로라 어때? 로라!”
“넌 안 돼.”
“왜!?”
“아무튼 안 돼.”
명하의 의견은 그냥 아예 차단했다. 순수한 의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혼자 뒤에서 킥킥거릴 이름이리라.
“쳇...”
“절망적이네...”
작명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동안 너무 편하게 막 지어서 미처 몰랐었다.
결국 결론은 일단 미루자 였다. 급하게 없다는 판단에 조금 더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래 고민한다고 반화 가족에게서는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올 것 같진 않았지만.
“근데 얘는 어디서 데려 온 거야??”
“아, 요괴하나 별장에 데려 왔어. 걔 새끼야.”
“개새끼?”
“...개새끼가 아니고 걔의 새끼라고, 임마.”
“오빠가 그렇게 말해 놓고는.”
흔한 남매의 대화였다.
“삼촌! 나두 안아 볼래!”
“슬이가? 으음... 조심해서 안아 봐.”
요물 같은 녀석이라 조금 불안했지만 그가 눈 시퍼렇게 보면 괜찮을 테니 조심스럽게 슬이에게 건네주는 반화.
-삐아?
할짝!
“간지러! 히히, 예쁘다...”
다행히 녀석은 슬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슬이도 녀석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녀석이 혀로 핥는 것을 거부 하진 않았다. 그러나...
“...진짜 요물이네 쯧...”
반화는 바빴다. 혀가 닿을 때마다 굳는 슬이의 피부를 막아 주느라, 그 덕에 슬이는 더 간지러워 했다. 다행히 아기도 딱히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아기라 제 힘을 잘 조절 못할 뿐. 그래도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무턱대고 녀석을 안았다면 그대로 돌이 되었을지 몰랐다. 녀석은 순수한 의도였을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다. 요물이 괜히 요물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인해 주변에서 오해를 하고 그게 쌓여서 그렇게 요물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반화가 있어서 다행이지 슬이의 마나로도 막지 못했으니... 역시 그게 과했던 모양이다.
“자자, 그만해.”
“왜에??”
슬이에게서 다시 아기를 데려온 반화, 슬이는 조금 아쉬운 듯 했지만 아직은 아기가 너무 어려서 힘 조절을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다시 안게 해주겠다고 슬이를 설득하며 아무 소득 없이 반화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응??... 너 그러고도 순이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하하하!... 몰라.”
자기도 이제야 깨달은 듯 루네스가 순이와 슬쩍 멀어졌다. 그러나 단순왕 루네스는 이내 반화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발견해 버렸다.
“뭐야!? 그거!?졸귀!!”
“어어?? 야 그러면...”
쩌저적!...
“...돌 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아기를 만졌다간 아주 돌이 되는 거예요. 돌이...
반화는 차라리 조용해져서 좋다고 생각하고 당분간 녀석을 저대로 두기로 했다. 불편하지 않게 옆으로 잘 치워 놨다. 살아 있으니 뭐... 나중에 돌려놓으면 되니까. 이 녀석은 한번쯤 가만히 있어도 봐야 했다. 하도 돌아다니니.
“그나저나, 순아?”
-...
“음... 어울리긴 잘 어울리는데.”
세상 체념한 표정의 순이를 보며 반화는 피식 웃었다. 어디서 구해 온 건지 토끼귀 달린 모자를 쓰고 있고 몸에는 레이스 달린 공주님 옷이 입혀져 있었다. 그것도 핑크핑크한 것으로. 아마 루네스가 순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사서 입힌 것 같았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순이에게 저런 짓을 하다니 대단한 녀석이었다.
-냥!!
“음, 그래도 100일은 채워야지. 일주일만 더 그러고 있어.”
-냐아아...
이쯤하면 순이의 힘을 돌려 줘도 될 것 같긴 했지만 마침 곧 100일이니까 그때 돌려주기로 했다. 원래 면허도 100일 정지 있고 그러니까. 루네스와 삼이 덕분에 순이는 그래도 벌 같은 벌을 당했으니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아기도 이렇게 예쁘게 나왔으니.
퍽!
-뺘아아앙!
-흥!
“...끄응...”
반화가 딴 생각에 빠진 사이를 노려 아까 한 대 맞은 것에 복수한 삼이 녀석. 아기가 아프다고 삐약삐약 거려도 신경도 쓰지 않고 총총총 별장으로 넘어가 버렸다. 삐약거리는 이 녀석이 조금 더 크면 정말 난리 날 것 같았다.
“뚝!”
-꾹!
그래도 일단 말은 잘 들으니 다행이긴 했다.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반화 앞에서는 잘 들을 것이다. 천하의 순이도 반화 앞에서는 망나니 짓을 하지 않는데 요물인 이 녀석이 대놓고 까불 리가 없었다. 다만 반화가 안 볼 때 저지를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게 더 안 좋은 건가?? 음...”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상관없을 것 같기도 했다.
.
.
.
남미의 게이트를 통해 이동한 귀왕가는 미리 심어둔 자들을 이용해서 빠르게 이 곳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의 전쟁 패배로 남미의 치안은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오히려 그들이 적응하기엔 편했다. 다들 서로 일단 경계하고 보니까 밖에 나오는 걸 두려워했으니.
“이 곳 문명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정확히는 쇼핑이 좋다고 해야겠지?”
“아이 참,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아신다니까?”
“그래도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우린 아직 도망자일 뿐이다.”
“에이, 왜 그러실까. 또! 알아요.”
흔한 손녀와 할아버지의 대화였다. 물론 주변 상황은 흔하지 않았다. 백화점 내부의 사람들이 모두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서있는 가운데 그 둘만 유유히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손녀는 신 난 듯 이리저리 구경하며 원하는 건 바로바로 집어 들었다. 그러면 그 둘을 조용히 수행하는 자가 와서 알아서 물건을 들고 사라졌다. 아마 손녀의 방으로 바로 배달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쇼핑하던 둘이 사라지고 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온 사람들.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고 평상시처럼 행동한다. 백화점은 또 난리가 났다. 멀쩡한 물건들이 또 사라졌기에.
...
“근데 할아버지.”
“응?”
“요즘 좀 이상한 느낌이 자꾸 들어요. 누가 보는 것 같은...”
“호오... 설마?”
“뭐 아시는 거라도 있어요??”
“우리 가문엔 말이지. 가끔 진짜 신을 모시는 존재가 나오기도 했다. 네 아비와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신을 모시는 자가 나올 땐 가문은 전성기를 맞았지. 그들이 말하기를 항상 누군가 지켜보는 마음이 들어 한번 불어 보았다고 했다.”
“그럼 제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구나.”
“어, 어떻게 부르는 건데요??”
“으음... 그건 조금 더 찾아 봐야겠구나. 설마 이계에서 와서 신을 모시게 될 줄이야.”
조손이 흥분한 기색으로 가문이 자리 잡은 곳을 향해 서둘러 이동했다. 어쩌면 이계에서 가문을 다시 부흥 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서...
물론 파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지, 쟤들? 나노 머신을 느꼈어? 희한한 녀석들이네. 음... 해골씨한테 이것도 말해 줘야 겠어.]
다양한 표본자료를 원하는 해골씨가 아주 좋아할 만한 시료였다. 요즘 안 그래도 삼이, 맹이에게 밀린 뒤로 부쩍 연구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는데 그 때문에 파스도 조금 귀찮았었다. 이걸로 당분간은 조용히 지지 않을 까 생각하며 파스는 신나서 이동하는 녀석들을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
.
.
“산적들입니다.”
“처리해, 인간을 등쳐먹고 사는 놈들 따위 필요 없다.”
“예!”
이제는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저 정도 자잘한 일은 밑에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잡혀 있는 미료의 세력.
“사, 살려 주세요! 몰라 뵈었습니다!!!”
서걱!!
이 척박한 상황에서 인간들을 등쳐먹는 놈들을 받아 주었다간 나중에 골치 아팠다. 미료에게 만약 세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면 저런 것들도 받아 들여야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요괴들을 제거하면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벌써 두 개의 왕가 세력을 흡수해버렸다.
첫 번째는 도왕가, 두 번째는 바로...
“검신님 덕분에 세력이 더 체계적이 되었어요. 감사드려요.”
“허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도 검귀 녀석이 없었다면 맞섰을 테니까요.”
바로 검왕가였다.
도왕가를 흡수하고 만난 검왕가는 미료의 세력을 보고 전쟁을 준비했었다. 다행인 것은 검신이 최전방으로 나서서 검귀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 전투를 시작했다면 결국 검왕가도 도왕가 꼴이 났을 것이다. 검신이 용도 잡을 정도로 강한 것은 맞지만 미료가 데리고 있는 녀석들 모두 그런 용과 비슷했다. 심지어 용만 먹으러 다니는 동이도 있었다. 홍아도 용쯤은 문제가 없었고 미료는 최근 급격한 성장을 하며 그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최소 홍아 이상은 되었으니... 그냥 돌진하는 전차를 맨몸으로 막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도왕가는 맨몸으로 부딪쳤다가 그 꼴이 났지만 다행히 검귀와 검신의 극적인 만남으로 검신은 자연스럽게 흡수를 원했다. 들어보니 자신이 봤던 그 이상한 조합의 괴물들과 일행이거나 관련이 있어 보였다. 검신의 그런 판단 덕분에 세력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졌고 진짜 이제는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한 이틀 정도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