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229화
여태까지 엉뚱한 놈을 괴롭히고 있었던 그들.
“으음... 괜찮은 건가?”
삼이에게 계속 두들겨 맞아서 좀 상태가 안 좋긴 했지만 일단 목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반화는 녀석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 삼이를 다시 머리 위에 올렸다. 잠시 이 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 반화. 그 사이 자신을 두들기던 힘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뱀 대가리가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가만히 자신을 보는 작은 존재들...
-끼아아...악?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었던 녀석이지만 이내 눈치를 살살 보며 목소리를 줄였다.
“전설 속 요괴를 보다니...오!...”
검귀는 그런 모습에도 녀석을 숭배하듯 탄성을 질렀다.
“전설 속의 요괴냐?”
“예! 그럼요! 사실상 요괴라기보다는 북쪽을 지키는 신령이죠! 신령을 인정하지 않는 황가에서 요괴로 지정했을 뿐입니다.”
“그래?”
검귀가 열변을 토하는 그 신령이 지금 쭈글쭈글 거리고 있었다...
삼이 눈치를 보면서.
불쌍한 녀석, 그러게 왜 갑자기 달려들어서 이 꼴을...라고 생각하는 반화. 그러나 애초에 일단 두들겨 본 것이 더 잘못이지 않겠는가? 어쩌면 말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긴 했다.
“이제 어쩔 거야??”
“응? 뭘?”
“아니, 뭐 계획 있는 거 아냐? 왜 왔어, 여기.”
“...술 덜 깼냐? 순이 찾으러 왔잖아.”
“아...”
반화가 령이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술을 먹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걸 까먹고 있다니...
“해골, 순이 어디 갔다고?”
“...”
이번엔 해골씨가 반화를 어이없게 봤다. 분명 말한 것 같은데...
“뭐, 왜? 팍씨!”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는 해골씨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반화. 잠시 반화의 성격을 잊었던 해골씨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눈에 담긴 감정을 지웠다. 해골에 눈동자가 어디 있다고 이런 것만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북요가 왜 이렇게 날뛴 걸까요??”
“그러게요.”
한쪽에서는 검귀와 미료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북쪽의 고대 요괴, 북요로 불리는 이 거대한 뱀대가리...가 아니라 뱀과 인간의 모습을 섞어 놓은 듯한 녀석은 이 곳에서 영역을 잡고 수 천 년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무휼도사와 초대황제가 요괴를 북쪽으로 몰아넣을 때도 북요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알려 졌었다. 그런데 그런 북요가 갑자기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니...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의 전설이 그럼 거짓이었던 걸까?
“응? 뭐 문제 있어?”
“네?? 아... 그게...”
반화가 쑥덕거리는 둘을 보며 물었다. 말하기 주저하던 녀석들이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들이 아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북요라는 말과 북요의 특성, 그리고 전설까지 오랜 시간 내려왔던 사실들을 모두 말했다. 가만히 그걸 듣고 있던 반화도 그들처럼 의문이 들었다. 말대로 라면 녀석이 날뛴 것이 이유가 있어서 인 것 같은데...
“뭐지?”
“뭐긴 뭡니까? 척보면 모르겠습니까? 그 냥아...가 아니라 순이 녀석 때문이지요.”
순이를 냥아치라고 하려다가 삼이의 눈치를 슬쩍 본 해골씨는 바로 말을 바꿨다. 위험했었다...
“순이??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 뭐했다고?”
“...”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 온 대화 내용.
“소리를 질러서 차원의 균열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아주 맛깔난 포효였지요. 냐흥이었던가?”
“냐...흥...? 냐아아아 가 아니라??”
“냐흥이었습니다. 그것도 고양이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
냐흥이라니... 잠시 순이가 그렇게 외치는 것을 생각하던 반화.
“귀엽잖아...?”
“헐...”
“...”
역시 반화와 순이는 천생연분이었다. 헛소리를 하는 반화를 령이와 해골씨가 상상에 빠진 반화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게 중요하냐, 지금??엉?”
“그럼 뭐가 중요해? 근데 혹시 냐흥을 인간 모습을 했어?”
“그렇습니다만...?”
“으음... 냥이 모습으로 한 번 해달라고 해야지.”
“에휴...”
반화의 어이없는 반응에 해골씨는 말을 잃고 령이는 한숨을 쉬었다. 저러니 애들 버릇이 나빠지는 것이다. 귀엽다고 매번 넘어가고 그러니 애들도 귀욤귀욤 애교만 피우는 요령만 생겼다. 이건 반화만 모르는 것인데 순이, 삼이는 물론 심지어 맹이까지 반화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령이와 해골씨는 그 모습을 전부 다 봤었다. 특히 해골씨는... 많이 당했었다. 양면의 아이들은 반화가 없을 때 해골씨를... 특히 평소 얌전한 맹이는 뼈다귀를 참 좋아했다.
“근데 해골아, 차원의 균열이 생겼다고???”
방금 반화의 말보다 더 심각한 것이 지나갔다는 걸 깨달은 령이.
“그렇다. 균열이 생겼다가 없어졌지.”
“미친... 도대체 고양이한테 뭘 먹이면 그렇게 되는 거야??”
누누이 말하지만 아무 고양이한테 반화가 구한 그걸 먹인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었다. 순이의 재능, 반화의 정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순이의 재능이 적어도 반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재능이 없었다면 순이는 그냥 건강하고 힘 좀 쎈 고양이가 되었을 테니.
“균열?? 포효했는데 균열이 생겼다고??”
반화도 이번엔 조금 놀랐다. 언제 힘이 그렇게 강해진 것일까.
“그렇습니다. 아마 저 녀석이 날뛴 게 그것과 관련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 여기를 지키고 있었다는 수호신 같으니.”
북요라는 녀석을 설명대로 표현하자면 북쪽의 수호신정도였다. 요괴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만드는. 애초에 그래서 북쪽으로 요괴들을 몰아넣은 것이기도 했다. 조금 실패한 방법이지만... 진상은 그냥 돌연변이에 불과한 녀석이었지만 어쨌든 돌연변이가 되면서 요괴의 특성을 버리고 인간에 대해 비교적 온순해졌으며 한 곳에 머무르며 사기를 정화하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으니 아주 좋은 쪽의 돌연변이였다.
“흐음.”
아직도 눈치를 보고 있는 뱀 대가리 녀석을 보며 반화는 급 미안해짐을 느꼈다. 불쌍한 녀석...
“일단, 왜 이렇게 날뛴 건지 알아볼까...”
순이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별 죄 없는 녀석을 두들겨 팼으니 원인에 뭔가 다른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 줄 생각이었다.
스르륵...
-끼아...?!
“혹시 그걸로 때리려는 건 아니지?? 실토하라면서?? 그럼 넌 진짜 악마야.”
“...내가 그 정도로 양아치 같아?”
반화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검은 기운을 보며 령이가 불안한 듯 물었다. 반화가 그 반응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령이만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해골씨는 물론, 검귀, 미료, 맹이, 붉은 원숭이, 까망이... 심지어 삼이조차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불쌍한 녀석을 때릴 거냐는 표정으로.
“야, 삼이 넌 그러면 안 되지, 앙?”
쭈와압! 쭈왑!
-이잉, 놔아아앙...
반화가 황당한 듯 삼이의 토실토실 볼을 잡고 이리저리 늘리며 억울함을 토했다. 반화의 손길에 찹쌀떡처럼 찌그러지고 늘어나는 삼이의 볼... 다들 그 모습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반화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북요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북요도 느끼질 못할 정도의 은밀함과 속도였기에 정말 순식간에 북요는 눈뜨고 기억을 도둑맞았다. 심지어 느끼지도 못한 북요... 나날이 발전하는 반화의 기억 스틸기술이었다.
“응? ...?!...”
버둥거리는 삼이를 놓아주고 훔친 기억을 돌려 본 반화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은 조금 오해를 해버렸다.
“와, 진짜 때리려고 했었나봐.”
“마스터는 원래 그랬어. 때린 놈 더 때린다고...컥!...”
“시끄러워 자식아. 왜 순이를 데려와서.”
깐족이다가 한 대 맞은 해골씨가 억울하다는 듯 반화를 쳐다봤다. 분명 비슷한 말을 령이도 했는데! 그리고 정확히는 순이를 해골씨가 데려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순이에게 끌려 온 것이었다.
“뭐? 불만이야?”
“이건 명백한 외모차별입니다!”
“그럼 니가 해골하지 말든지.”
“!!”
반화의 말에 충격 받은 해골씨.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아!...음!?...헉! 큰일 날 뻔 했군!”
잠시 진지하게 정말 외형을 바꿀까 생각한 해골씨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노에라도 생각해보면 굉장히 귀여운 외모라는 사실을...이건 그냥 반화의 음모에 불과했다.
“왜 저래?”
“너랑 그렇게 오래 붙어 다녔는데 멀쩡한 게 이상한 거야.”
“...”
령이의 팩트가 묵직하게 반화에게 꽂혔다.
“큼...일단...저기... 북요라고 했나?”
반화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반화가 눈치만 보고 있는 북요에게 말했다. 순간 반화의 말에 움찔했던 녀석.
-끼아아...?
“미안하게 됐다. 그러니까 그... 네 새끼...”
-...끼아아아아아아앙!!!
잠시 너무 황당한 일을 겪어 잊었던 것이 떠오른 녀석이 절규하기 시작한다. 그 처절하고 슬픈 비명에 반화를 뺀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슬퍼졌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저래???”
령이가 슬픔에서 깨어나 반화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무래도 반화는 뭔가 아는 눈치라는 걸 방금 대화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좀 문제가 있네?”
삼이를 데려 왔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는 정말 버려져 있는 걸 순이가 집어 먹고 온 것에 불과했다면 이번엔 정말 멀쩡한 자식을 버려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명백하게 순이의 잘못인 것이다. 그렇기에 반화도 할 말이 없었다. 설마 이런 사고를 칠 줄이야. 그래놓고 혼자 쏙 도망가다니...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 갈 수 없음을 느낀 반화. 그런 반화의 심정을 느낀 것인지 짐작한 것인지 삼이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일단... 애부터 찾아 봐야겠네.”
슬프게 우는 녀석을 뒤로하고 일단 균열의 흔적부터 찾아보는 반화...
“뭐야? 왜 저래??”
령이는 오늘 따라 왜 저래라는 말을 많이 하며 황당한 표정으로 반화를 쳐다봤다. 애를 찾는 다니? 무슨 애를 찾는 다는 말인가. 삼이랑 맹이는 여기 있는데... 순이를 애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어떤 애를 찾는다는 말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균열의 흔적을 찾기 시작하는 반화. 아직 균열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잘하면 균열을 벌려 알을 구할 수도 있었다. 시간만 늦지 않았다면... 아마도...
“여긴가?”
스윽...스윽...
순이가 찢은 균열이 거의 다 아물고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을 발견한 반화가 재빨리 잡고 뜯었다. 균열 안에 아직 알이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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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게 무슨!?”
한편 북쪽의 난리에 도망간 요괴들은 인간들의 도시와 마을 가릴 것 없이 지나치며 초토화를 시키기 시작했다. 각 왕가에서는 일단 그런 요괴들을 처치하며 인간의 영역을 지키고는 있었는데 요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인가...”
요괴들과의 전쟁은 언젠가 다시 터질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게 하필 지금이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어쩌면 다행일 지도 몰랐다. 왕가들을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 이런 일이 터져 그래도 그냥 당하진 않을 테니까. 물론 외곽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