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228화
해골씨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일단 반화의 등장에 맘을 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저 괴물이라도 반화를 어쩔 순 없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크륵...?
물론 원숭이는 갑자기 나타난 반화 일행에 당황한 듯 했다. 정확히는 아무 기척도 없이 나타난 반화들 중 삼이와 맹이를 보고 당황한 것이었다. 저 괴물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근데 원숭이라고 하지 않았어??”
반화가 눈이 동그래진 원숭이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 삼이이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원숭이는 아니었다. 영장류의 모습이긴 했지만 원숭이 보다는 고슴도치가 두발로 선 것에 오히려 비슷했다.
-우움? 맞는데, 숭이숭이?
“그래??”
삼이가 맞다는 듯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아무래도 삼이의 미적 감각을 의심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맹이도 삼이의 말에 동의하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애들 미적 감각이 좀... 그러네.”
-아냐!! 분명히 원숭이였어!!
이제 반화의 비꼼도 알아듣는 삼이였다. 반화가 장난치는 사이 또 한 사람과 한 생물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다. 분명 갑자기 주변에서 달려들던 요괴들이 돌덩어리가 되더니 이제는 자신들은 처음 보는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신님???”
-꾸어어!!! 한참 찾았다!!
미료와 까망이가 격하게 반화 일행을 보고 달려왔다. 갑자기 요괴들이 돌로 되고 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차갑게 식은 돌로 변한 요괴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 장면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의 섬뜩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짓을 했을 요괴가 주변에 있을 거란 생각에 까망이조차 덜덜덜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을 깜빡 했을 뿐인데 주변이 변했으니 또 얼마나 무서웠는지...
반화들을 보고 단숨에 달려오는 녀석들의 얼굴에는 그 짧은 시간동안의 서글픔이 몽땅 담겨져 있었다.
“오구오구, 괜찮아.”
령이가 달려오는 미료를 안아 주며 달래주었다. 그리고 까망이는...
-까망이 뚝!
-꾸엉...
혼나고 있었다. 삼이에게... 여자가 함부로 울고 다니는 거 아니라면서. 물론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도 안가는 놈을 데리고 그냥 지가 알아서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새끼 곰 같은 녀석의 성별을 구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죄다 까만 녀석인데. 그래도 삼이를 만났다는 것에 까망이는 안심했다.
“저기... 마스터?”
“왜, 무능한 해골아.”
“끙...”
반화의 말에 할 말이 없는 해골씨.
“근데 너 왜 여기 있냐??”
“그게 사연이 좀 깁니다만...”
“순이는 어디 있어? 이 자식 뭐하고 있는 거야?”
다 안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순이를 찾는 반화. 바로 눈 앞에 거대한 동체를 가진 괴물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괴물에 신경 쓰고 있는 건 원숭이 요괴 하나 뿐이었다. 해골씨도 반화가 온 뒤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괴물 같은 존재가 셋이나 있는데 걱정할 게 뭐란 말인가. 오히려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다가오고 있는 저 괴물이 불쌍했다.
“그 냥아치는...”
퍽!!!
-엄마보고 그렇게 말하지 마!!
“...끄응...”
주섬주섬...
잠시 냥냥펀치에 날아간 해골 대가리를 집어 들며 해골씨는 삼이 몰래 궁시렁 거렸다. 원래 해골씨와 삼이의 힘은 그리 차이 나지 않았었다. 삼이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오히려 삼이보다 해골씨가 조금 더 강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나 딸이나... 성질머리하고는...’
힘은 둘째 치고 성격은 확실히 삼이가 더 더러웠...아니, 더 독특했다.
-끼아아아!!!!!!!
-크륵!?!
마침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괴물에 원숭이 녀석이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도 한 번 상대해 보겠다고 변신까지 했는데 막상 코앞까지 오니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슬쩍 반화들을 봤는데...
“와... 저건 또 뭐지? 엄청 큰 뱀이네? 아닌가? 사람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뱀머리다! 오오오...
삼이의 말대로 뱀의 머리를 가지긴 했다. 그런데 령이의 말처럼 묘하게 사람 같기도 한 이상한 녀석이었다.
-끼아아!!!....아?
어쩐지 자신이 생각한 반응이 아니라 조금 당황한 듯한 녀석. 분명 자신의 기운을 느꼈을 텐데 멀쩡한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이내 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반화들을 깔아뭉개고 자신을 분노하게 한 것에 복수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그그그그...
기다란 몸통과 꼬리가 바닥을 쓸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진 맹이와 삼이. 남들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두 녀석이었기에 더욱 화가 난 둘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순식간에 놈을 향해 휘두르고 쏘았다.
“삼이, 너 아빠가 준 건 왜 안 써?”
이상한데서 섭섭해진 반화가 삼이를 보며 투덜거렸다. 자기가 언제부터 총을 썼다고... 착한 맹이는 여전히 자신이 준 검을 쓰고 있는데, 하여튼 냥이들이 문제였다.
-아빠가 준 거 구려!
“뭐?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흔한 아빠와 딸의 대화였다. 그러나 흔하지 못한 배경화면...
-끼악!!?!
삼이의 총에 눈탱이를 맞고 맹이의 검에 머리(?)가 그슬린 녀석이 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냥 잠깐 그슬리는 게 아니라 아예 녹여버릴 정도로 계속 타오르는 피부에 끔찍한 작열통을 받은 녀석이 몸부림을 치자 땅이 제멋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쿠구구구구....쿠와아앙!!!!!!!
-끼아아악!!!!
“거, 시끄럽게.”
-!?
쑤욱!!
퍼어어억!!!!!!
자꾸 시끄럽게 구는 뱀 대가리 녀석이 성가신 듯 반화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은 바다의 기운이 주먹을 만들어 놈의 주둥이를 쳐버렸다. 그 황당한 모습에 원숭이 녀석이 입을 떡 벌렸다. 삼이와 맹이만 괴물인 줄 알았는데 더한 괴물이 있었다니...
다른 이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고, 당연한 것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순이는 어디 있다고? 왜 너 혼자 여기 있어? 아니, 여기 왜 왔어?”
뱀 대가리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놈이 강하다고 해봐야 요괴들 중 돌연변이로 좀 강해진 놈일 뿐이었다. 물론 이 세계에서는 그 놈이 최고일 지도 모르지만.
“냥아...아니, 그 고양이는 집에 갔습니다.”
“집에 갔습니다라... 그럼 여기 오긴 왔었다는 거네?”
“!”
유도 질문에 넘어간 해골씨. 아니, 넘어간 척하는 해골씨. 어차피 둘 다 알고 있는 걸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끼에에엑!!!
쩌저저적!!!!!
“맹이야, 가서 쟤 좀 조용히...”
팡! 팡!
-삼이가 할 거야!!
“...그래, 니가 해라 해. 이 냥아치야.”
꼬리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삼이를 보며 반화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반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닥파닥 날아가는 녀석.
“어이, 원숭이. 일단 넌 거기 기다리고 있어라? 도망가다 잡히면 골 빨아 먹는다?”
-!!!
은근슬쩍 도망가려던 원숭이가 반화의 말에 흠칫하며 떼었던 발을 다시 땅에 붙였다. 이런 괴물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으며 왜 하필 자신의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치지지직!!!
콰르릉!!!
-끼아아!!!
후우우웅!!!
콰아아아아!!!!!!!!!
지지고 볶고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는 삼이와 뱀 대가리. 멀리서 보면 덩치 차이 때문에 뱀 대가리가 혼자 삽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나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삼이와 놈. 의외로 꽤나 강한 놈이었다. 삼이 녀석과 비등하게 싸우다니.
-이이익!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 열 받은 삼이. 이건 일종의 상생의 문제였다. 삼이가 벼락을 날리면 놈이 돌이 되어 막아버리니 자꾸 공격이 막히는 것이다. 힘의 차이가 월등했으면 그것도 무시하고 그냥 아예 녹여버렸겠지만 그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번번이 삼이의 공격이 막혀 버렸다.
“다 때려 부숴라 다 부숴.”
덕분에 무휼 대사라는 인간이 펼쳐놓은 진은 죄다 박살났고 살아남은 요괴들이 괴물들의 싸움을 피해 남쪽으로 마구 도망가기 시작했다.
-끼아악!!!!!
뱀 대가리로서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그저 이제 막 낳은 자신의 자식이 어떤 이상한 놈(?) 때문에 차원의 균열에 떨어트려 거기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 자신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
상황은 이랬다.
놈이 계속 비명을 지른 이유가 바로 출산의 고통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순이가 시끄럽다면서 포효를 했고 그 덕에 깜짝 놀라 아이가 나오긴 했었다. 그런데 과한 순이의 힘 때문에 차원의 균열이 생겼고 이제 막 나온 녀석의 아이가 그대로 균열에 빨려 들어 간 것이다. 출산 후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놈은 그걸 모르고 있다가 조금 정신을 차린 후, 그걸 알아차리고 요괴들을 남쪽으로 몰려들게 만든 분노의 비명을 계속해서 지른 것이었다.
정신없던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던 놈은 북쪽 성 쪽에서 차원의 균열이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남쪽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동안 그쪽에 인간들이 만든 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걸 부술 힘이 있었음에도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어 가만히 있었지만 자식을 잃었는데도 가만히 있을 순 없던 놈.
참,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순이에 의해 자식을 잃고, 삼이에게는 두들겨 맞고 있으니... 아주 모녀에게 쌍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아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지만...
-끼아아악!!!!!!
쓸데없이 튼튼해서 계속해서 삼이의 냥냥 펀치에 두들겨 맞고 있는 녀석...
“!!! 설마!!”
“응?? 넌 또 왜??”
갑자기 뱀 대가리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검귀를 보며 반화가 이상한 표정으로 봤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저런단 말인가?
“저, 저 요괴! 북쪽의 고대 요괴입니다! 무휼 대사님과 초대 황제께서도 손대지 못했다는!...”
“저도 들어 봤어요!!”
검귀의 말에 미료도 들어 본 적이 있다는 듯 동의했다. 고대로부터 북쪽을 지키고 있다는 요괴,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한다는 고대의 요괴에 대한 묘사와 일치했다. 거대하고 길쭉한 용과 비슷한 몸체, 상체는 인간의 여자 모습과 흡사하다는 그 묘사와 정확히 일치했으며 머리의 거대한 두 뿔까지 완벽했다. 물론 지금은 삼이와 싸우느라(?) 여기저기 멍들어 그 고대의 신비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고대의 요괴는 또 뭐야.”
“죽이면 안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성한 요괴입니다!”
“신성한 요괴가 어디 있어?? 요괴가 요괴...?응?”
그러고 보니 일반 요괴와는 조금 다르긴 했다. 그냥 돌연변이인 줄 알았는데...
“흐음... 잠깐만. 삼이야!”
-씩...씩.......웅??
씩씩 거리고 있던 삼이가 반화의 말에 순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봤다.
“잠깐만 나와 봐.”
이제야 자세히 살펴보는 고대의 요괴라는 녀석.
“사기가 아니네.”
요괴라 함은 사기로 만들어진 세상의 쓰레기 같은 존재여야 했는데... 이 녀석은 사기가 전혀 없었다. 한 마디로 아무 잘못 없는 놈을 패고 있었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