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222화
북쪽을 요괴로부터 지키던 성의 병력들이 성을 버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는 검왕가에서 나온 자들도 있었다.
“왕가에서는 속히 전달을 해주십시오! 일이 급합니다!”
“이미 전령을 보내 뒀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성주님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도 저희의 일입니다.”
“왕가 덕분에 든든합니다.”
...
성 안, 밖에서 사람들이 이동을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성을 지키던 검왕가의 무인들도 떠나며 텅 비어 버린 성안을 요괴들이 차지해 버렸다. 다양한 요괴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요괴들이 섞여져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모두 한 가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두려움.
뭔가에 잔뜩 놀란 놈들의 표정은 공포로 물들어있었다. 도망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이 성도 그들에겐 안심되지 않았다.
-키륵...
-키루루루...
서로 친하지도 않는 것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더니 이내 성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놈들. 역시 성은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그들에게 두려움을 준 존재라면 어딘가에 숨는 것 보다 계속해서 그 존재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숨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
북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모르는 자들은 여유가 있었다. 검귀라는 자는 반화 일행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얻은 후 더욱 여유로워졌다. 언뜻 봐도 심상치 않은 능력을 지닌 자들로 보이는 반화 일행이었기에 한결 여유가 생긴 것인데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적검가에서 움직였다고??”
“예, 그게... 그 사람들의 숙소로 침입한 것 같습니다.”
“그걸 왜 지금?!”
“저희도 방금 안 사실이라...”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한다!”
“예!”
물론 반화일행이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애써 도움을 요청했는데 무적검가의 짓으로 그게 무산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해진 검귀가 밑의 부하를 닦달했다. 금세 모인 검왕가의 사람들이 서둘러 반화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
“무슨 일로??”
“그게 혹시 누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너무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하는 미료의 모습에 오히려 검귀가 당황했다.
“누구...아!...”
검왕가의 사람들이 말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챈 미료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역시... 괜찮으신가요??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철저히 조사해서...”
“아, 괜찮아요. 조사는... 못 하실 거예요.”
“예?”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는 말은 생략한 미료는 아무 문제없다고 검왕가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미료의 말처럼 반화들 중에 그 누구도 그들을 습격(?) 했던 놈들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지금 먹는데 정신 팔려있고, 술에 취해 뻗어 있고, 애초에 관심도 없는 사람만 있는지라 정말 아무 문제없었다. 괜히 들쑤시면 그게 귀찮다고 난리칠 신들이었다.
“돌아가 보셔도 되요. 저희는 괜찮거든요. 지금 식사 중이시라 오히려 방해만 될 거예요. 그쪽으로 좀 민감한 것 같거든요.”
“아...예. 그럼 일단 돌아가서 저희가 철저히 조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뭐, 그러세요.”
“그럼...”
조금 이상했지만 본인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니까 일단 돌아가는 검왕가. 물론 미료의 앞에서야 고개를 숙였지만 돌아서는 순간 굳어진 검귀의 표정.
“이놈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제대로 조사해.”
“예!”
무적검가가 자신들의 요청을 거부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들로서도 부담이 되었을 테니까.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배웠고 또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저들이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배신을 하려 한다면... 우리 왕가가 왜 최고 왕가로 불리는지 알려주지.”
가장 강하지만 가장 덕이 있고 가장 온순하다는 말을 듣는 검왕가였지만 그들을 아는 다른 왕가에서 부르는 칭호는 전혀 그런 것들과는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음속에 치명적인 검을 담고 살아가는 자들. 상대를 향할 때 더욱 치명적인 검이 되는 자들이었다.
검왕가의 아래에서 성장했던 무적검가는 사실 그리 역사가 오래 되지 않는 왕가의 신하였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높고 그 야망도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만약 딴 마음을 먹었다면 그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가해질 것이다. 검왕가는 뒤에서 찌르는 검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온화한 검신마저 과거 그들을 배신했던 가문을 홀로 멸문 시켜버린 적이 있었다.
“북쪽으로 떠나기 전에 확실히 해두고 가야겠어. 너무 북쪽에 신경 쓰다 보니 내부에는 조금 소홀했군.”
...
“으으음... 끄으...”
“쯧쯧쯧.”
숙취에 시달리는 구미호라... 참...
“무, 물!”
“여기 있어요!”
령이의 갈라진 목소리에 서둘러 물을 가져온 미료. 보는 사람 시원해 질 정도로 원샷한 령이가 미료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아직도 나와 있는 꼬리를 다시 집어넣었다.
-힝... 풍성풍성 꼬리가 없어졌어.
령이의 꼬리를 가지고 놀던 삼이가 실망했지만 이내 녀석을 안아서 달래주는 령이.
-술 냄새나.
물론 곧 바로 거부했지만...
“자다가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 꿈같은 소리하네. 몽유병도 있냐?”
“없거든? 진짜 이상한 꿈이었다니까? 갑자기 순이가 막 소리를 지르는 꿈이었어.”
“개꿈이네. 아니다 냥꿈인가? 아주 제대로 잤네.”
“진짠데...”
이것이 구미호의 촉이었다. 술에 취해 자면서도 그걸 느끼다니... 멀쩡히 깨어있으면서도 그냥 넘어간 사람도 있는데. 그러나 삼이마저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눈초리에 령이는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 밤 추태까지 떠올랐으니까...
“근데 이제 뭐해??”
“아, 저희 북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북쪽?? 요괴들이 득실거린다는 거기??”
“네!”
“근데 넌 왜 그렇게 신나 보여? 응?? 쟨 또 뭐야? 저거 까망이 맞지?”
-이모! 이모! 까망이 귀엽지?
“귀엽긴 한데... 저거 네 작품이야?”
“엉.”
분명 별장에서 뒹굴 거리고 있어야 할 놈이 여기 와서 자기 몸의 반의반도 안 되는 몸으로 변해 있으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뻔했다. 맹이가 위로한답시고 까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그런다고 위로가 될...
-더 쓰다듬어 줘라...
-아구, 우리 까망이 착하네.
위로가 아주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식, 맹이 예쁜 건 알아가지고...
“저거 좀 기분 나쁜데?”
이런 촉은 또 좋은 반화가 의심의 눈길로 까망이를 쳐다보긴 했지만...
“신경 꺼. 애들인데 뭐.”
“으으음...”
“근데 북쪽으로 간다고?? 왜??”
“그냥 신기한 놈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구경 시켜주려고.”
“거기가 무슨 동물원이니?”
황당한 이유였다. 기껏 움직이는 이유가 구경시켜주기 위해서라니.
“아, 그리고 그쪽에서 좀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왔어. 넌 술에 취해 뻗어서 모르겠지만.”
“...내가 넌 줄 알아? 그 먼 곳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느끼게? 술 취해서가 아니라고.”
-엄마 목소리도 들렸어!
“응?? 순이 목소리?”
-응!!
“삼이, 넌 먹느라 정신없었잖아.”
-아냐! 엄마 목소리 진짜 들었어!!!
“...”
령이는 순이 꿈을 꿨다 말하고, 삼이는 순이 목소리를 들었다니 슬슬 의심이 되기 시작한 반화. 타이밍도 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가 강한 기운을 느낀 것도 그쯤이었으니까... 이 녀석 설마...
“여긴 또 언제 넘어와서 사고를 치고 있는 거야?”
“그 녀석이 넘어 왔다고??? 그럼 나 꿈 꾼 게 아니야???”
“순이 목소리를 듣고 꿈속에서 나온 모양이지 뭐.”
“!!!”
령이는 소름이 끼쳤다. 하다하다 이젠 꿈속에까지 찾아오다니...무서운 녀석...
“그럼 빨리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더 사고 치기 전에?”
“이미 사고는 치고 도망갔을 걸?”
순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반화의 생각이 정답이었다. 이미 해골씨에게 다 떠넘기고 도망쳤다.
“그럼 어쩌게??”
“일단... 놔둬. 집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게.”
“와... 완전 사악해! 난 찬성!!”
-우움? 나도 찬성!
아무 것도 모르면서 찬성하는 삼이가 귀여워 반화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롱고롱 거리는 소리가 마치 순이를 혼낼 시동을 켜는 것 같았다.
...
“그들이 맞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우리가 여기에 있는데도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명백히 배반행위입니다. 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귀검대 준비시켜.”
“예!”
조사 결과 무적검가에서 다른 왕가와 최근 잦은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검귀, 반화일행에게 해코지를 하려했던 정황을 알아냈다. 모든 걸 알아낸 이상 대화는 필요 없었다. 바로 행동에 들어간 검귀와 귀검대.
...
“음?? 저게 뭐지?? 오늘 어디서 오기로 한데 있어?”
“오늘은 없는데?”
“그럼 저 사람들은 뭐야?? 이쪽으로 오는데?”
“어?? 뭐, 뭐야?? 빨리 안에 연락해!”
“에이... 설마 여길 쳐들어 왔겠어? 여기 무적검가야.”
“그, 그런가??”
정문에서 경계를 선지 얼마 되지 않은 하급무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리를 지어 다가오는 자들을 그냥 두고 보고 있었다. 분명 지시에는 수상한 자들이 몰려오면 바로 안으로 연락하라 했지만 안일함에 그냥 넘긴 것이다.
“응?? 어!?”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검왕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본 하급무사는 점점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대놓고 무기를 꺼내 들고 오다니! 그렇다는 말은...
“튀, 튀어!!”
“어..?! 자, 잠깐만!! 같이 가!!!”
이것이 명문과 명문이 아닌 가문의 차이였다. 제대로 된 가문으로 성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 무적검가에는 그들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아직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 뽑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가문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한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자들 덕분에 무혈입성한 귀검대.
“쯧쯧... 이런 곳이었다니.”
정말 까면 깔수록 실망스러운 가문이었다.
“바로 가주에게 간다. 막는 자들은 모조리 베어라.”
“예!!!”
서늘한 검을 앞으로 향하며 당당하게 정문을 지나 무적검가의 가주가 있는 곳을 향해 가는 그들... 그들을 막는 자는 중심으로 들어갈 동안에도 없었다.
“뭐야! 누구...음??? 검귀님??”
“다시 보는 군.”
“아니, 이게 무슨??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는 걸로 보이나? 우리가.”
“...진심이십니까? 아무리 귀검대와 검귀님이라고 할지라도 여기 우리 앞마당입니다.”
“하하하!! 그 앞마당까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왔네만?”
“...”
가주전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을 가로 막는 자들이 있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로, 무적검가의 상급무사들로 이루어진 무적대였다. 일천에 가까운 상급 무사들로 이루어진 그들이 드디어 검왕가의 앞을 막아 선 것이다. 그러나 귀검대 100명 중 한명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실전 전투에 살기로 넘치는 전장을 누비던 자들이었다. 이 정도의 기세로는 그들을 주눅 들게 할 수 없었다.
챙!!
“최대한 피를 적게 보고 싶긴 하지만 이미 꺼낸 검, 안 볼 수는 없지.”
더 이상 말도 없는 무적대가 검을 빼어 들자 검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끼이익...
“...? 검귀님께서 무슨 일인시지요?”
무적검가의 가주가 밖의 소란에 결국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