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218화
“예? 아...”
“여긴 뭐 신령이 만능이야? 뻑하면 신령이라고 하네.”
령이가 그 소리를 듣고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쯧.”
반화도 그 얘기는 동의했다. 여긴 뭐만 하면 신, 신령이라고 취급하니... 아직 지구에서 순이가 여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반화는 이곳 사람들이 한심하기만 했다. 신이 어디 있다고 자꾸 신을 찾는 건지..
“신령이 아니고 신이십니다.”
“신...!?”
한술 더 뜨는 미료.
“그렇군요.”
미료와 반화들을 번갈아 보는 남자. 지금 자신의 앞의 미료에게서는 평범한 인간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테이블 의자에 기대어 앉아 각각 맹이와 삼이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쓰다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화와 령이에게서는 정말 다른 세상의 존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와주십시오!”
쿵!
그 모습을 보던 남자가 다짜고짜 무릎을 꿇으며 미료와 반화들을 보며 소리쳤다.
-우움...
그 소란에 맹이가 꿈틀거렸다.
“미친놈 아냐??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반화가 인상을 쓰며 남자를 노려봤다. 겨우 애들 재워 놨는데 깨우려고 하다니.
“쟤 좀 치워.”
“네??”
“치우라고 쟤. 시끄러우니까.”
“어...어떻게...?”
왕가의 사람이다. 아직도 미료는 자신이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그녀는 왕가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데 이걸 치우라고 하는 반화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떻게 치우긴, 밖에 던져 그냥.”
“예?!”
“!!도, 도와주십쇼!”
-우으응!...
“빨리 안 치워!?”
맹이가 한차례 더 뒤척이자 반화가 신경질을 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미료가 자기도 모르게 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의 옷깃을 잡아채 말 그대로 괴력으로 던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자신도 얼떨떨한 표정의 미료.
밖으로 던져진 남자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겨우 일반 여자에게 던져지다니... 있을 수 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비록 부탁을 하기 위해 왔지만 이런 꼴을 당할 줄이야. 치욕스런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들은 내용이 있는데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이 오히려 더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었다.
“크흠... 아니다. 지금은 바쁘신 모양이다. 내일 다시 오지.”
“...예...”
검왕가의 체면에 말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른하늘에 벼락을 내리는 자들이었다. 거기에 사람들의 기억까지 지우고 흔적도 없이 몇 십의 사람들을 절명시키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걸 알기에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오게.”
“아이는 또 왜...?”
“유일하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이야. 거기에 아무 해도 입히지 않는 걸로 봐선 그 아이에게 조금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네. 진즉에 생각했었어야 했는데 너무 급했어.”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데려!...”
“아니, 내일 아침에 정중히 데려 와.”
“...예.”
중년 남자의 말에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가려했던 부하가 멋쩍은 듯 걸음을 멈췄다.
“일단 나가지.”
더 소란스럽게 해서 불쾌하게 만들기 전에 나가려는 남자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조금만 더 떠들었다면 반화의 검은 기운이 그들을 날려버리고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다시 평화를 찾은 숙소 내부.
“제가 어떻게 이런 힘을...?”
“그거? 반화가 너한테 힘을 좀 줬어.”
“아!”
령이의 말대로 반화가 일부러 미료에게 힘을 준 것이다. 그건 지구라는 세계가 능력자들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생명체 내부에 잠재된 힘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었는데 세계가 하는 일을 반화 개인이 한 것이다. 물론 세계처럼 다수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령이는 경악스러웠다. 원래 좀 미친... 아니 정상이 아닌 건 알았지만 저런 짓도 할 수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진짜 신이랑 다를 게 뭔가?
“역시!”
령이의 예상대로 미료는 더욱더 오해를 하는 게 당연했다. 신도에게 힘을 내려주는 존재가 신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데 너... 얻은 능력이 괴력이야..?”
“네???”
“아니, 잘 느껴 봐. 네가 얻은 힘이 뭔지.”
아무래도 강화쪽 계열인 듯했다. 반화도 잠재력을 끌어 주기만 했지 정작 무슨 능력인지는 몰랐기에 궁금한 듯 미료를 바라봤다.
“으음...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힘이라는 걸 처음 써보는 미료는 아직 그 감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옆에서 령이가 나름 훈수를 둔다고 계속 얘기를 했지만 애초에 태생이 구미호였던 령이었다.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화가 알려 줄 리 없으니 결국 혼자서 해내야만 했다.
-우웅...? 뭐해?
“응? 삼이 일어났어?”
실컷 잔건지 삼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일어나자 보이는 미료의 이상한 모습에 삼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화를 쳐다봤다.
-똥은 밖에서 싸야지!
“풉!”
“...또..똥 안 싸는데요...”
힘을 어떡해서든 느껴보려는 미료의 모습이 삼이에게는 꼭 *싸는 모습과 같아 보인 모양이다. 그 말에 빵 터진 령이가 깔깔깔 웃었지만 삼이는 진지했다.
-냄새나!
“아닌데...똥도 안 싸고 냄새도 안 나는데... 씻었는데...”
미료가 작게 부정했지만 삼이가 꼬리를 팡팡 치며 불쾌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삼이야, 아니야. 그런 거...큭...”
반화도 웃긴지 말하다가 큭큭 거렸다.
-웅? 아니야??
“응, 아니야.”
다행이도 반화의 설명으로 오해를 벗은 미료는 삼이의 의심스런 눈길을 받으며 다시 능력을 느껴보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와, 도망 겁나 잘 가네?”
“그러게?? 벌써 한참이나 달아난 것 같군.”
“...”
게이트를 넘어 도왕를 쫓던 순이 일행은 흔적만 남긴 채 도주한 놈의 빠름에 놀랐다. 그런 부상을 입고 이렇게 빠르게 도망가다니, 팔이 잘려서 중심도 잡기 힘들 텐데 정말 필사적으로도 도망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검신은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섣부르게 뒤쫓는 건 포기했다. 어차피 도왕은 이제 무사로서 당장은 효용가치를 잃어버린 자였다. 후에 노력으로 외팔이 도객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와아아악!!!!
콰앙!!!!
“인간들이군.”
꽤나 먼 거리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게이트 주변부터해서 이 일대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해골씨가 빠르게 완성한 실드에 막히긴 했지만 만약 검신 혼자였다면 꽤나 손해를 입었을 지도 모를 타격이었다.
“이런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다니...”
검신은 쏟아지는 폭격을 보며 한탄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괴감이었다. 귀왕가에 말 없는 마차가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헛소문이거나 귀왕가에서 또 괴이한 짓을 했나보다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말 없는 마차는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핵만 달지 않았을 뿐이지 저들은 이미 현대 무기를 손에 쥐었고 그 사용도 숙달한 상황이었다. 대륙탄도미사일과 같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며 다루기 힘든 것들은 아니지만 이정도 정확도를 보이는 것을 봐선...
“아아, 혁명전쟁에서 저놈들이 활약했던 모양이군.”
해골씨의 말이 정답이었다. 이곳에서 미사일을 쏘며 훈련했다간 들키기 십상이었으니 훈련도 할 겸 아마조네스의 호의도 얻을 겸해서 일명 혁명전쟁이라는 것에 참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배신했지만 이미 무기들은 꽤 많이 옮겨 둔 모양이다. 직접 만들 수는 없을 테니.
콰아아아!!!
쾅!!!
그들이 있는 곳만 빼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곳으로 아직도 미사일 폭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지간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
한바탕 더 쏟아 부은 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마 이곳 상황을 잠시 확인하려는 것일 테다. 자체 생산이 불가능한 만큼 지금 이만큼의 폭격을 가한 것도 어쩌면 저들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검신을 제거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 것이겠지만.
“바로 갈 건가??”
“뭐해? 얼른 안 가고?”
“...그래...”
이젠 아예 종 부려먹듯 부려먹는 순이의 태도에 잠시 할 말을 잃은 해골씨는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공간을 찢었다. 성질급한 순이가 먼저 들어가고 뒤를 따라 해골씨와 검신이 들어갔다.
“!!헉!? 저게 무슨?!”
“허공에서 나타났어! 이계의 인간들의 능력이야!”
확실히 지구의 능력자들에 대해 아는 놈들인 걸 보아 전쟁에 참여 했던 자들이 맞는 것 같았다. 공간을 찢고 나타난 순이일행에게 검이 아닌 총을 겨눈 놈들이 소란스럽게 자기들끼리 떠들썩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검신이라며?!”
“도왕이 분명 그렇게 말했어! 팔이 검신에게 잘린 상태로 왔었다고!”
“그럼 검신도 저쪽 세계의 인간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
“제길... 역시 검왕가에서도??”
“조용!!”
“...”
소란 속에서 누군가의 고함으로 일순간 잠잠해진 자들.
“화신...”
“검신 자네가 맞군. 도왕의 말이 맞았어.”
“자네도 설마... 도왕가와 함께하는 건가??”
“황제는 썩어서 나라가 피폐해지고 있어. 거기에 게이트라는 곳의 너머에는 강한 무기를 가진 인간들이 있었지. 바꿔야 했다네... 이 세계를.”
“황제를 그렇게 만든 건 7왕가의 욕심 때문이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중요한 건 황제는 무능하며 나라는 쇠약해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최근 들어 요괴들에게 공격받는 일이 잦다는 건 알고 있겠지? 요괴들이 자신들의 땅을 찾기 위해서 점점 우리의 목을 죄고 있어. 우리 살기 위해선 이 썩은 나라를 바꿔야 했지. 아아, 물론 검왕가에 대해선 조금 미안하네. 항상 요괴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는데 말이야... 그런데 너무 자네들만 그렇게 성장하면 곤란하지.”
붉은 빛깔의 머리를 가진 노인이 검신과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했다. 그러나 언어가 다른 상황이라 순이와 해골씨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자네도 저쪽의 인간들과 협력한 모양이군...??응?? 저건 요괴인가??? 설마... 요괴와도??”
“지금 너보고 손가락질 하는데?”
“...좋은 말은 아닌 것 같군.”
순이가 해골씨를 가리키며 말하는 화신이라는 자를 보며 소곤거렸다.
“설마 요괴와 한패가 된 것인가!? 허어... 검왕가도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군.”
“그럴 리가! 이분들은 그런 요망한 것들과는 다르시다.”
“이제와 발뺌 해봤자...?!”
촤르르르...서걱!!
서걱!!!
해골씨가 두 번의 손가락질을 참지 못하고 사방으로 손을 휘저었다. 해골씨의 손의 궤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가며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 되어버리자 기겁한 화신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이익!! 이놈!!!”
사람이고 무기고 구분할 것 없이 썰려나가는 모습에 분노한 화신이 정신을 차리고 온몸으로 열기를 뿜었다. 몸 주위를 왜곡시킬 정도의 엄청난 열기였다.
“제가 상대하겠!..?!”
퍼어어억!!!!
...
사방이 정적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