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216화
“여기야??...”
뭔가 심기 불편한 듯한 순이의 모습에 해골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가 오자고 해서 왔더니 왜 저런 표정이란 말인가?
“뭐 문제라도?”
“더워.”
“...”
정말 지 멋대로 사는 녀석이었다. 순이는. 어쩌면 반화보다 더 망나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 해골씨... 그래도 반화를 꽤 오랫동안 수행한 전적이 있는지라 이 정도는 아직 참을 만했다.
“여기가 원래 좀 더운 동네라네.”
“그럼 시원하게 해줘.”
“...”
한번 그냥 들이받을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던 해골씨는 지난번 순이가 순식간에 갈비뼈를 뽑았던 것을 기억해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좀 시원하지?”
스스스슷...
빙(氷)계열 마법을 이용해 주변의 온도를 낮추며 순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해골씨. 반화에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해골씨의 천적은 순이가 아닐까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좀 낫네. 게이트는 어디 있어?”
“게이트 정확한 위치 좀 알려 주게나.”
[여기서 남쪽으로 100Km 이동하면 보일 거야.]
“남쪽으로 가라는데?”
“음... 근데 이 인간 너무 비실거리는데 어떻게 안 돼?”
“...”
지가 그렇게 패놓고 질질 끌고 왔으면서... 라고 속으로만 생각한 해골씨가 치료 마법을 이용해 너덜거리는 검신을 치유해 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검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공간을 찢고 이동한 것을 모르니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세련된 건물 안에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황폐한 곳에 왔으니.
“여, 여긴 어디??”
“인간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 있는 곳이다.”
“?? 그때는 분명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설마, 새로운??”
“이제야 눈치가 좀 늘었군. 쯧, 진즉에 그렇게 머리가 돌아갔으면 맞지 않았을 거 아닌가?”
해골씨가 안타깝다는 듯 검신을 쳐다봤다. 역시 인간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건가 싶었다. 그럼 마스터도 좀 누가 때려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인간은 쳐 맞고 다닐 때도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좀 맞는다고 멀쩡해 질 리가 없었다.
“일단 조금 더 가야하니...”
두둥실~
해골의 손짓에 순이, 검신의 몸이 공중에 두둥실 떴다.
“오... 이거 편한데?? 집에서도 이렇게 해줘.”
“...끙..”
괜히 능력을 쓴 건가 조금 후회하는 해골씨. 하지만 이미 사용한 능력, 지금 안 쓴다고 안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무시하고 가기로 한다.
.
.
.
“또??”
“예,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무기 보급을 더 빨리 하랍니다.”
“하!... 우리가 자기들 부하인 줄 아는 거야, 뭐야?”
“이제 더 이상 끌려 다니는 건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넘겨주다보면 이제야 만든 왕국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지... 놈들도 이제 우리를 우습게보지 못하게 해줘야지. 일단 지금부터 보급을 끊는다. 그 후에 협상을 다시 해야겠어.”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녀석들이 준 무공은 어때?? 능력과 동화돼??”
“예! 그것도 능력에 동화가 가능합니다. 지금 선별 인원들 모두 무공을 익혀 능력과 융합하고 있습니다.”
무기를 건네준 대가로 받은 무공을 이곳의 능력과 동화시키는 것에 성공했다는 말에 왕좌에 앉아 있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했는데 정말 될 줄이야. 무공을 마치 능력을 쓰는 것과 같이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무공을 배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완벽하네.”
그야말로 완벽했다. 사우디 왕조를 몰아내고 아마조네스를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지금까지 마치 신이 도운 듯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확고히 할 힘까지 얻다니.
“그놈들과의 관계만 잘 정리하면 되겠어.”
“이제 우리도 그놈들에게 밀리지 않는 능력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우리가 저쪽을 정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좀 생각해 봐야지. 아직은 아니야.”
“아, 예... 제가 성급하게...”
“아냐, 나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으니까.”
쿵!!
“응?? 무슨 소리야?”
“제가 확인을 해...?!”
우득!!!
쿠웅!!
“게이트가 지하에 있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찾지 못했었던 거라고.]
“신경 쓰지 않으면 못 찾을 만 하군.”
왕궁의 지붕을 뚫고 등장한 해골씨와 그 일행들. 깜짝 놀란 아마조네스의 왕이 왕좌에서 일어나 경계를 취하려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건 옆에 서 있던 부하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쾅!!
“괜찮으십니!...?!!”
“헉!!”
“!!!!!!!!”
왕궁에서 일어난 소란에 출동한 근위대도 천장을 부수고 나타난 해골씨 일행을 발견하고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아아아...신이시여!!”
“죽음의 신께서 강림 하셨어!...”
해골씨를 본 자들의 외침이었다. 하필 청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모두 받은 해골씨들은 정말 천상에서 내려 온 듯 현계의 존재가 아닌 듯 했다.
“여신께서도 같이 오셨어!!”
“지혜의 신도 있다!”
...졸지에 순이와 검신마저 신으로 숭배 받을 상황에 빠졌는데 어쩐지 순이는 그런 걸 즐기는 듯 했다.
“흐응~?”
주변을 두러보는 순이.
“오오오...과연...”
“미의 여신이시여! 저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 같은 그 모습에 여왕마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해골씨는 이런 인간들의 반응에 낯설면서도 익숙했기에 태연했다.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많아서 익숙했고 이런 표정으로 숭배 받은 적이 없어서 낯설었다.
그리고 순이는 원래 반화에게 늘 어화둥둥하며 귀한 대접을 해주었기에 인간들의 반응에 큰 감흥이 없었다. 검신도 사실 여기서나 맞고 다니지 저쪽세계에서는 검의 신으로 대우 받는 귀한 몸이었다. 그런 셋이었기에 이런 황당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빛을 받으며 천장에서 내려와 인간들을 하번 슥 둘러보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또 사람들의 눈에는 신들의 여유로 보였다.
“게이트는 어디 있나? 인간.”
“예?? 아! 게이트는 지하 던전에 있습니다!”
그냥 물어봤는데 알아서 안내까지 해주려는 인간들.
“내가 안내하겠다! 다들 뒤로 물러나!”
여왕이 직접 달려 와 안내인을 자청했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오직 순이만 들어왔다. 그녀가 그리던 여신이 눈앞 현실에 지금 현신한 상황에서 그녀에겐 주위의 어떤 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래? 가자.”
그에 반해 순이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인간들에게 이런 취급은 많이 받아 봤다. 고양이었을 때.
그들을 안내하는 여왕이 지하로 내려 갈 때마다 주위로 물러서 무릎을 꿇는 사람들. 여왕은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그러나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길 바랐으나 야속하게도 곧 게이트가 있는 던전에 도착을 해버렸다.
그들이 아틀란티스의 던전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그런 곳을 흉내 내어 이곳의 기술로 만든 일종의 벙커였다.
“여기입니다.”
“응? 근데 왜 피비린내가 나지?? 해골아, 내 코가 이상한 거야?”
문 앞에서 코를 킁카킁카 하던 순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 뒤로!!”
쇄아아아!!! 카가가가가!!!!!
“??”
급하게 순이 일행의 앞에 선 여왕이 순이들에게 외치며 검을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문을 찢으며 쏟아지는 강기들에 일행들 모두가 휩쓸리는 듯 했다.
“도왕가!!?”
강기다발에 섞인 도강에서 익숙한 것을 발견한 검신이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검을 뽑았다.
서걱!!!!
“!?”
앞에서 강기를 막아서려던 여왕이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강기 다발이 반으로 갈라져 자신의 양 옆으로 지나가 벽을 터트렸다.
“검신!! 네놈이 여길 어떻게!?”
“도왕! 역시 네놈이군!”
“크하하하하!!! 이것들이 갑자기 말을 안 듣는다기에 혼을 좀 내주려고 왔는데 대어가 걸렸군!”
“이 자식들이!!”
여왕이 도왕이라 불리는 자의 뒤를 확인하고 이를 갈았다.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모조리 토막이 난 상태로 흩뿌려져 있었다. 최근 무기 공급을 줄였다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호오? 네 년도 같이 있었구나! 정말 잘 되었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게 말을 잘 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닌가? 감히 우리말을 듣지 않고 무기 공급을 줄여??”
“!! 이곳에서 무기를 공급 받은 것이냐!?”
“아아, 노인네도 있었네, 참. 뭐... 이제 상관없나?”
무기를 어디서 가져 온 것인지 들켰지만 이제는 상관없다는 듯 검신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도왕의 근처로 보이는 수많은 도객들.
“버릇없는 개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지. 뭐해?”
“예!”
도왕의 고개 짓에 도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음... 그래도 마스터는 게이트는 통과하고 일이 생겼는데...”
순이는 역시 남달랐다. 게이트도 통과하지 않고 일을 만들어 내다니. 이게 바로 순이 효과라는 걸까? 반화가 툭하면 놀리는 순이 효과는 대단히 탁월했다. 여러모로...
“뭐?”
“아니다. 큼...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대화를 나눠야겠는데, 어쩔까?”
“어쩌긴, 정리해.... 큼...”
“...그래.”
고양이때의 습관이랄까? 뜬금없이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며 그루밍하려던 순이가 흠칫하곤 헛기침을 했다. 그래 놓고 괜히 해골씨를 노려보는 그녀.
“노인네는 내가 상대해주마!”
“이놈!!”
순이가 짜증내는 순간에도 심각한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인 두 사람.
.
.
.
“음...”
“왜 그래??”
“느낌이 싸해서.”
반화가 갑자기 인상을 쓰자 령이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로 계속 누워 있어 놓고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방 따뜻한데??”
“그런 느낌이 아니야. 이건 분명히 순이가 사고 칠 때 느껴지는 기운인데...”
“걔 지금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텐데 사고는 무슨 사고?? 귀찮다고 따라 오지도 않았는데.”
“흐음...”
령이의 말에도 신경이 쓰이던 반화. 이내 다른 쪽으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쟤 좀 어떻게 해봐.”
“...놔 둬. 실연당한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구경이나 하게.”
“그걸 왜 내방에서 하냐고.”
“여기가 제일 넓어.”
숙소로 돌아와 술을 정말 입에다가 퍼부은 미료가 반화의 방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맨 정신에 그걸 보자니 이것만큼 흥미로운 게 없었다.
“으허어헝허어... 나쁜 놈!”
찰싹!
“차가운 사람...”
벽에 보이는 그림자를 매만지던 미료가 차갑다며 또 한바탕 울기 시작했다.
“...”
-씨끄러!! 뚝!
“흡!...눼에에....”
삼이의 외침에 흠칫한 미료가 그걸 또 대답했다.
...
그 시각 미료가 그렇게 욕하는 상대인 소가주는...
“그 년 놈들은 어디 있느냐!?”
“나, 나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분명 네놈이 관계있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런데 계속 발뺌을 해?? 무적검가가 우스워 보이나?”
“아닙니다! 정말 모릅니다!”
“안되겠군. 잡아라.”
“예!”
“!!?사, 살려 주십쇼! 아!! 얼굴! 얼굴을 압니다!! 제가 손재주가 있어 똑같이 그릴 수 있습니다. 분명 아직 도시 안에 있을 겁니다.”
“얼굴을 안다고?? 사람들 모두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네놈만 그걸 알고 있다고??”
소가주의 말에 더 의심이 된 중년의 남자가 뒤로 고개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