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12화
아마 누군가 음식을 훔쳐간 모양이었다.
“하하하... 소란이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주인이 직접 다가와 반화일행 등에게 사과를 했다. 큰 손 고객으로 보이는 그들이 혹시나 기분나빠할까 안절부절못한 모습이 어딜 가나 인간은 똑같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반화와 령이가 느낀 감정은 아니었다. 둘이 그런 걸 느끼기엔...
“음식이나 빨리 가져 와요. 애들 침을 흘리는 거 보이죠? 더 기다렸다간 여기 몽땅 뜯어 먹을 겁니다?”
“헉!! 아...알겠습니다!”
언뜻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삼이와 맹이였기에 잔뜩 겁을 먹은 주인이 주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고함을 지르는 게 다 들렸다. 거지 덕분에 오히려 음식이 빨리나오게 되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꼬기~! 꼬기!
킁카...킁...킁!?
-우웅?? 밥?
금세 상을 채운 음식이 풍기는 냄새에 맹이가 코를 씰룩이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입으로 고기를 집어넣는 모습은... 귀엽긴 귀여웠다. 객관적으로.
“그게 들어가 맹이야?”
-웅!
하그하그하그!
옆에서 삼이는 이미 흡입 중이었다.
...
한바탕 식사를 끝낸 아이들과 반화들.
“배불러... 근데 이제 뭐 할 거야??”
다음 일정을 물어보는 령이. 그러나 반화도 딱히 계획은 없었다.
“여기 좀 둘러보자.”
“인간들이 너무 쳐다보지 않겠어?”
“구미호가 모습 감추는 술법 하나 못해??”
“!! 구미호가 무슨 주술사야!?”
또 싸우는 반화와 령이를 보며 미료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신들이 이제 유치해 보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식사를 마치고 근엄하게 벌러덩하고 있는 삼이와 맹이가 신들 같았다. 세상만사 아무 물욕 없는 그런 신.
“저어...계산은?”
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인이 조금은 불안한지 반화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음식은 먹고 튀면 답이 없었기에 가끔 무뢰배 같은 인간들이 이렇게 푸짐하게 시켜먹고 그냥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이들 대부분이 힘을 가진 자들이라 함부로 건들지도 못했다.
“아아, 여기. 네가 알아서 계산해.”
돈 주머니로 보이는 고급스런 가죽 주머니 통째로 미료에게 넘긴 반화. 어차피 그는 이곳 물가도, 화폐도 몰랐으니 미료에게 맡기는 편이 편했다.
미료가 알아서 계산을 하고 잠시 자리에서 쉬던 일행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기.. 이건?”
“아, 그냥 니가 가지고 있어. 불안하면 얘한테 주던가.”
계산을 하고 남은 돈을 반화에게 건네주려는 미료, 그러나 반화는 귀찮다는 손을 휘저었다. 이런 큰돈을 만지는 건 처음이라 미료는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라 바로 령이를 쳐다봤지만..
“그냥 니가 가지고 있어. 인간의 돈을 만지고 싶진 않아.”
령이가 돈이 든 가죽 주머니를 불쾌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까 돈에서 나는 냄새를 맡은 후, 아주 질색을 했었다. 피, 땀, 그리고 각종 더러운 것들이 사람 손을 탔으니 오죽 더러울까? 나름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지구정도의 문명은 아니었다. 지구의 돈도 더럽다고 하는데 세탁 한 번 안하고 교체도 안하는 돈이 얼마나 더러울까? 특히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과 령이는 돈을 마치 똥을 보는 눈으로 봤다.
“...제가, 그럼?”
“응. 그냥 니가 가지고 있어.”
결국 어쩔 수 없이 돈을 품에 넣은 미료. 그 모습을 잠시 인상 쓰며 보던 반화.
“이리 와봐.”
“예?”
갑작스런 반화의 부름에 미료가 당황했다가 곧, 아무 의심 없이 반화에게 다가갔다.
푹!!
“!??!”
다가온 미료의 손을 잡더니 다짜고짜 손가락으로 미료의 손바닥을 뚫어 버린 반화. 그 모습에 미료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다가 이내 피도 안 나고, 아무런 고통도 없다는 사실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가 반화의 손가락이 빠진 손바닥에 검은 소용돌이가 생긴 것에 다시 경악했다.
“이...이게???”
“아공간이야. 거기다가 물건 집어넣어. 더럽게 들고 다니지 말고. 흠... 이 건물 정도 부피니까 그렇게 많이 들어가진 않아.”
“!!!”
“오오! 아공간을 준 거야?? 나는? 나도!!”
“시끄러, 니가 아공간에 집어넣을 게 뭐있어?”
반화의 말에 뭔지 알아차린 령이가 자신도 달라며 때를 썼지만 귀찮은 듯 령이를 떼어 놓고 먼저 걸어가 버리는 반화.
“췟...”
“이게 뭔가요..? 여신님?”
“그거?? 그냥 개인용 창고라고 생각하면 돼. 저 녀석이 그래도 신경 좀 써줬네. 몸에 직접 아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
개인용 창고라는 말에 손바닥의 검은 소용돌이를 한번 쓸어 본 미료. 그러자 감쪽같이 검은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멀쩡한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반화의 배려인지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아공간을 만들며 직접 사용법을 머릿속으로 넣어 준 모양이었다. 남의 기억을 훔치기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할 줄 알다니... 령이는 미료가 신기해하며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하고 가자. 그 돈은 집어넣고 얼른.”
“네!”
가죽에 얼마의 돈은 두고 나머지는 아공간 안에 직접 집어넣어 버린 미료, 그리곤 가죽 주머니마저 집어넣고 령이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공간을 이렇게 대놓고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식당을 나서면서 반화가 자신들 주위로 왜곡을 걸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지도 못하고 알아서 피해가는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했기에 이런 신기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안내 해드릴게요!”
이상한 곳으로 가는 반화를 서둘러 붙잡은 미료가 제대로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때,
“이 망할 거지놈!! 드디어 잡았다!”
“나, 나는 거지가 아니다!”
“그래, 거지 도둑놈이겠지! 음식도 훔치고, 옷도 훔치고 응? 안 그래?”
“...”
한 쪽 골목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에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꾸만 눈길이 가는 미료.
“왜? 거기 뭐 있어?”
“아, 아니에요.”
“아까 그 거지라는 인간인가?”
미료가 재빨리 가리려 했지만 그런다고 령이가 못 볼 리가 없었다. 덩달아 반화도 시선을 돌려 미료가 신경을 뺏긴 곳을 바라봤다.
“응? 어라?”
-우움? 아빠 왜에~?
“어디서 본 것 같아서.”
-흐으응?
반화의 반응에 삼이가 궁금한 듯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한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나 삼이의 기억에는 없는 인간이었다. 곧 바로 흥미를 잃은 삼이.
-아빠!! 저기 저거!! 저거 사줭!
“방금 밥 먹었잖아... 이 돼냥아.”
-힝... 삼이 돼지 아냐! 그리고 디저트 배는 따로 있는 거랬어!
“누가...그런 말을 했어?”
-명하 이모가!
반화의 말에 당당하게 뽈록한 배를 내밀며 양손을 허리...아니 통통배 옆에 척! 올리며 말하는 삼이. 물론 그걸 반화 머리 위에서 했기에 반화는 볼 수 없었지만 령이와 미료의 눈에는 아주 잘 보였다.
“풋!...큼..큼...”
자기도 모르게 너무 귀여워 웃음을 터트린 미료가 이내 정색하며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삼이의 모습에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명하... 이자식, 빨리 내 보내던가 해야지.”
아이들에게 악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명하라는 오물을 어서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반화. 어차피 결혼도 했겠다, 뉴월드 시티도 완공 되었으니 이제 내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그 자신이 가장 큰 오물임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퍽!!
“네 놈이 무공 쓰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컥...”
“설마 정말 멸룡이가의 소가주였을 줄이야. 크크크! 가문이 망하고 어디로 흘렀는지 했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냐?”
“..날 어떻게 알지?”
“기억나느냐? 네 놈들을 위해 20년간 일했던 상단주 유세명! 그 분이 나의 아버지셨다!”
“유세명...?”
“설마 기억도 못한다는 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거지..아니, 멸룡 이가의 소가주였던 자.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
“이제야 기억나는 모양이군!”
“유세명! 아아... 기억나는 군. 아주 더러운 자였지.”
“이 자식이!! 감히 아버지를!”
“크하하하!!! 내가 거지가 되고 먹다 남은 음식을 훔쳤지만 그런 더러운 자보단 나을 것이다! 그런 자의 자식이라니, 안 봐도 알 것 같군.”
“뭐해!! 밟아!”
소가주였던 자의 말에 분개한 남자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에게 명령했다. 원래의 소가주였던 자가 가진 무위라면 이런 이류 무사들로는 어림없겠지만 이미 폐인이 다 되어버린 소가주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런 거지꼴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지금 자신을 둘러싸는 이류들 조차 버거울 터였다.
..
“소가주님...?”
“응? 소가주? 아는 놈이야? 거지쪽? 아니면 저 양아치 쪽?”
“...거지 쪽이요.”
“흐음~ 소가주...아!! 그 놈!!”
간밤의 주정의 안주거리였던 소가주 놈이 이제야 떠오른 령이가 손을 짝 소리 나게 마주쳤다.
“흐음... 근데 왜 그놈이 저 꼴로 있는 거야?”
“모르겠어요... ”
반화가 난장을 피워 놓은 걸 모르는 미료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움찔!...
반화도 이제 떠오른 모양인지 잠시 움찔했다. 박살내면서 은근 슬쩍 재화도 가져온 터라... 사실 그들이 쓰고 있는 돈의 출처가 바로 그 돈이었다.
“그냥 무시해. 어차피 너 버린 놈이잖아.”
“그...그래도...”
“아직도 미련 못 버린 거야??”
“...”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소가주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미료. 그 모습에 령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어젯밤 씹어놓고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었다.
“에휴, 가서 도와줄까?”
“...”
“그건 또 싫어? 아니면 그것마저 저 인간 생각해주는 거야?”
지금 미료와 령이 소가주를 구해준다면 분명 소가주는 멀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모습을 미료 자신에게 보여주며 구함을 받은 소가주가 기뻐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미료. 령이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저딴 인간이 뭐가...응???
“잠깐만...? 방금 뭐가 휙 하고 지나갔는데..?”
옆에서 모른 척 휘파람을 불고 있는 반화를 본 령이. 이 인간이 왜 이러는 걸까 잠시 의문에 빠졌다. 이유 없이 사람을 도와줄 녀석은 분명 아닌데... 미료와 자신이 고민하는 사이 순식간에 소가주 주위의 놈들을 날려버린 반화.
“뭐야?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뭐가? 빨리 가자. 삼이 저거 먹고 싶대.”
령이의 말에 모른 척 하는 반화. 차마 양심의 가책이 찔끔 생겨서 그랬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하기도 그랬으니까. 미료와 하필 그런 관계가 있었다니, 지난밤 흘려듣는 것이 아니었는데...
“뭐야?? 뭔데? 왜!?”
궁금해 죽으려고 하는 령이를 애써 무시한 반화는 주저하는 미료를 재촉했다. 어차피 달려가서 아는 척 해봐야 좋을 건 없었다. 분명 자신의 얼굴을 기억 할 테니... 하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미료를 배려하는 모습으로 보인 령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반화를 노려봤다.
“넌 또 왜 그래?”
“나한테는 이런 적 없잖아!!”
“...”
반화는 모르는 여자의 마음... 미료의 감정도, 령이의 감정도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배고파아아~
그래도 삼이의 마음 하나는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꼬르르륵~
“...너도 배고파?”
-네..히히..
맹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