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211화
‘검왕가는 어디 있는 곳인가요? 여기 지도에..’
재빨리 탭을 꺼내 검신에게 보여주며 말을 건 남자.
‘오호...정말 신기한 물건이군. 이런 것이 어떻게..’
남자가 톡톡 누르니 생긴 지도에 검신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 곳의 모든 것이 그에게 별 세계의 모습이었다. 검고 쓴 물은 제국 남쪽에서 가끔 진상되는 차와 맛이 비슷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자신의 고향과는 너무 달랐다.
‘저기..’
‘아, 잠시 실례했군. 검왕가는 이곳에 없다네.’
‘예??’
‘지금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는가?’
‘아, 지금 우리는 여기, 한국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여긴 서울이죠.’
‘내가 남동쪽으로 내왔으니... 거리 비율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한참을 검신과 대화를 나누던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팀장을 바라봤다.
“팀장님. 이 분 어디서 데려왔다고요?”
“그냥 길에 멍하니 있길래 데려왔는데, 왜?”
“최근 중국으로 출장 가신 적 없죠?... 이 사람,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데요?”
“뭐???”
“그게... 이 사람이 왔다는 곳이 여기, 중국에 새로 생겼다는 게이트 근처입니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진짜?? 구라 아니지?”
“진짜입니다!”
“...이거 좀 문제가 커지겠는데?”
그냥 불쌍한 노인 한명 도와주려고 했는데 어쩐지 외계인을 만나버렸다.
“끙...잠깐만.”
급히 폰을 든 여자는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네, 신소이씨? 무슨 일이십니까? 휴가 중이시라고 알고 있는데요?
<>...예?
<>하아... 알겠습니다. 일단 데려와 봐요. 괜히 정부에 넘겼다가 문제 생기게 하지 마시고요.
세상 다 산 듯한 한숨을 내쉰 민사장, 그러나 반화 때문에 이 정도로는 민사장을 놀라게 할 순 없었다. 외계인쯤이야..
뚝!
“뭐지..? 해탈하셨나?”
“사장님이 뭐랍니까??”
“일단 데려오라는데?”
...
대화가 통하니 별 다른 문제없이 회사 건물로 이동한 이 이상한 일행.
“사장님 보러 왔는데요? 위로 연락 좀 주세요. 신소이 팀장 외 2명이라고.”
“예, 잠시 만요... 올라오시랍니다.”
“가요.”
바로 사장실로 올라간 세 사람은 한 숨을 쉬며 민사장이 반겨주었다.
“이젠 신소이씨도 이상한...큼... 암튼 일단 뭘 주우면 저한테 전화를 하시네요.”
“사장님이 제일 잘 처리하시잖아요. 경험도 많고(?).”
잘 처리하는 건 모르겠지만 경험이 많은 건 맞았다. 반화 덕분에.
“새로운 게이트를 통해 나온 사람이라고요? 흠... 아틀란티스에는 인간이 없다고 했으니까 진짜 다른 세계로 열린 게이트 인가보네요.”
“어? 아틀란티스에 진짜 사람은 없어요? 반화가 그랬어요?”
“예, 없답니다. 새로운 세계라... 말은 어떻게? 아, 텔레파시로 대화하고 있나요?”
신소이 옆에 앉아 있는 능력자의 프로필을 기억해낸 민사장이 곧바로 이해했다.
“네, 이 외계인 할아버지도 텔레파시 비슷한 능력을 쓰더라고요.”
민사장은 가만히 신소이와 노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신소이도 참 겁이 없긴 없었다. 능력을 쓰는 외계인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걸 보면. 그리고 저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세상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따라 온 걸 보면... 물론 둘 다 서로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겠지만... 과연 그 실력이 반화 일행 같은 예외에도 통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든 민사장. 자신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근데 왜 데려 왔어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왜 데려 온 걸까?
“그냥 불쌍해 보여서요.”
“...그게 다예요?”
“노인 혼자 길 한 복판에서 멍하니 있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연히는 아니겠지만 도의적으로 그러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평범하게 길 잃은 노인이었다면 아주 칭찬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 온 목적은 뭐래요?”
“용 찾으러 왔다는데요?”
검신은 모든 걸 말하지는 않았다. 용을 찾으러 온 것은 맞지만 다른 왕가에서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은 감춘 것이다. 아무리 친절해 보이는 신소이라도 그런 것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용이요? 용이면...”
슬쩍 한쪽에서 일하고 있는 랑이를 쳐다 본 민사장. 결혼식에서 분명 랑이가 용으로 변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술에 취해서... 지금은 임신으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명하 대신에 비서직을 하고 있는 랑이.
“왜요??”
“그건 안 물어 봤어요.”
“물어보세요.”
제일 중요한 걸 안 물어보면 어쩌자는 건가... 민사장은 회사에 왜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건지 한숨만 나왔다...
.
.
.
“끄으윽... 머리야..”
“쯧쯧, 이제 일어났냐?”
머리를 부여잡고 산발이 된 머리로 밖으로 나온 령이를 보며 반화가 혀를 찼다. 무슨 구미호가 숙취로 끙끙거리는 건지... 미료는 아직도 대자로 뻗어 있는 걸 보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는 건지... 초록병의 위력이 참 대단하긴 대단했다.
“마실 거 없어?”
“가지가지 해라...”
령이의 모습에서 명하를 발견한 반화가 한숨을 쉬며 맑고 뜨끈한 민물가재탕을 건넸다.
“크아아!! 조오타!”
“...”
좋텐다... 얼마나 좋은지 꼬리가 아홉 개 다 튀어 나와 실룩실룩이고 있었다.
“그거 마시고 쟤 좀 깨워.”
“응? 아...”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령이가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널브러진 미료의 모습의 아마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끄아아아아!!!!”
“...아직도 술이 덜 깼네.”
새삼 초록병의 힘을 깨달은 반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절대 아이들은 저 초록병에 맛들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다짐한다고 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잠시 후 미료까지 일어나 잠시 현자타임을 가지고 난 뒤 일행은 다시 출발을 준비했다. 원숭이는 이미 그들의 생각에 지워진지 오래였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내려야겠네.”
괜히 주목 받긴 싫었으니 이쯤에서 차에서 내린 일행들은 천천히 도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이들 때문에, 그리고 복장 때문에 주목 받긴 하겠지만 차를 끌고 가는 것 보단 덜 주목 받긴 할 것이었다.
“사람이 꽤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야. 길이 생각 보다 잘 되어 있네.”
“네! 여기는 왕가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통하기 때문에 검왕가로 가는 사람들이면 꼭 들리는 곳이에요.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많아요. 그만큼 시설도 잘 되어있어요.”
“근데 반화. 여긴 왜 가는 거야??”
“그걸 이제 묻는 거냐?... 그냥 애들이랑 구경이나 하려고. 새로운 세상도 구경할 겸해서 가는 거다. 마침 지구랑 연결되기도 했고.”
“아아~ 근데 애들은 다 자는데?”
“... 배고프면 깨겠지.”
-쿠우우울~...
전혀 깰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배고프면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하나, 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반화 일행.
“아무리 봐도 무협 영화에서 보던 모습이랑 같단 말이지?”
“응? 그게 뭔데?”
“있어. 그런 게. 지구에 가서 보여줄게.”
서로 다른 세계에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에 문화와 복장도 비슷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일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반화는 이게 우연이 아니라 어떤 연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우연이 아니라고?..”
“응? 뭐라고 했어?”
반화의 혼잣말에 령이가 궁금해 했지만 가르쳐주지 않는 반화.
“쳇... 치사해.”
“시끄러, 안 그래도 너 때문에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조용히 가자?”
“웃기시네? 네 머리 위에 그 털덩어리들이 더 눈에 띄거든?”
미료가 볼 때 둘 다 도찐개찐이었다. 머리 위에 삼이를 얹고 품에는 맹이를 안은 반화나 화려한 외모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령이나... 물론 모여드는 시선은 확연히 구분되긴 했다. 남자는 령이, 여자는 반화 쪽으로.
“빨리 가요...”
부끄러움은 미료의 몫이었다...
성문은 간단하게 통과했다. 령이를 수행하는 주술사와 하녀로.. 물론 반화는 자신이 주술사라는 말에 인상을 썼지만 그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인상만 썼다.
“뭐해? 빨리 숙소 안 잡고?”
령이가 이렇게 날뛰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혼나고 싶지?”
“... 저기 숙소가 좋겠네~? 얼른 가자! 근데 돈은? 인간들은 돈이 필요하잖아?”
“자. 가서 방 잡아.”
순식간에 뒤바뀐 신분...
“쳇...”
투덜거리는 령이가 혼자 숙소를 잡으러 가려하자 화들짝 놀란 미료가 령이를 말리며 자신이 가겠다고 한다. 령이가 가면 무조건 일이 생길게 뻔하기도 했고 감히 여신이 숙소를 잡게 만들 순 없었다.
“흐음... 그러지 말고 일단 옷부터 사 입자.”
“옷??”
“어. 눈에 튀잖아.”
미료가 보기엔 딱히 복장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름 타당한 말이긴 했기에 동의했다. 물론 령이도 좋아 했다. 반화가 직접 뭔가를 사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없었다.
결국 근처 옷 가게로 들어간 일행. 미료는 생전 처음 와 보는 고급 옷집의 모습에 잔뜩 긴장했다가 령이와 반화의 태연한 모습에 조금 긴장을 풀고 옷 집 주인과 협상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 덕에 적당한 가격에 옷을 구입한 일행.
“이것도 나름 좋은데? 입기도 생각 보다 편하고.”
생긴 건 옛날식이긴 한데 입는 방식은 지구의 현대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아 령이도 반화도 만족했다. 특히 령이는 마치 이곳 사람인 듯 잘 어울렸다. 신비한 동양 미인이라고 할까? 덕분에 그들을 향한 관심이 더 커져버렸지만...
“역효과 같죠...?”
“쯧.. 빨리 들어가자.”
더 돌아다니다간 온동네 다 소문 날 기세였다. 아틀란티스에선 전혀 문제없었는데 역시 사람들 속에 들어가니 문제가 생겨버렸다.
“다 너 때문이야.”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 털덩어리들 좀 어떻게 해보시지?”
-우웅... 아빠아... 배고파..
소란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고 배고파서 일어낫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며 눈을 뜬 삼이가 입맛을 다셨다. 덕분에 령이와 반화의 언쟁은 일단 멈췄다.
“...가자.”
칭얼거리기 전에 삼이 배부터 채워 줘야 할 것 같았다. 아까 봐 뒀던 숙소에 식당도 1층에 있었던 것 같으니 서둘러 걸어가는 반화들. 그런 일행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들... 그 복잡한 감정이 깃든 시선에 삼이가 기분 나쁜 듯 인상을 썼지만 반화의 재빠른 저지로 사고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공복인 삼이가 사고치기 전에 후다닥 숙소를 잡은 그들은 1층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일단 고기가 들어간 음식부터 간단한 면 요리 등등 주문 받던 직원이 놀랄 정도로 시킨 반화.
“괜찮아, 맹이도 일어날 거니까.”
삼이가 빠르게 많이 먹는 스타일이라면 맹이는 요즘 꾸준히 많이 먹는 스타일로 바뀌었으니 어쨌든 둘 다 많이 먹는다는 말이다. 한 상 가득 시켜줘야 녀석들 배를 채울 수 있으리라.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얘들은 걱정하지 마. 고기 들어갔으면 다 잘 먹을 테니.”
“아, 네...”
그때, 식당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저저... 거지새끼가 또!!”
“뭐야!? 또 음식 훔쳐서 달아났어??”
“예...”
“에라이! 안 막고 뭐했어!?”
“그게... 워낙 날쌘 놈이라..”
“다리 하나 병신인 놈이 뭐가 날쌔긴 날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