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210화
“일단 가보자고.”
무슨 사고를 쳤는지는 일단 확인해야 했으니 차를 빠르게 앞으로 전진시켰다.
“응?”
-아빠아아아~
“쟤 지금 빈손이지?”
어쩐 일인지 빈손으로 차를 향해 뽈뽈뽈 오는 녀석들. 이럴 땐 항상 뭔가 손에 쥐고 와야 했는데...
“뭐지?...”
빈손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신종사고로 생각되는 사고를 친 아이들을 일단 혼내야 하는 걸까?
“삼이, 맹이. 뭐 하고 왔어? 이 연기는 뭐야?”
-힝 그게... 놓쳤어!...
“...뭘?”
-으음... 뭐였지? 원숭이??
-응! 붉은 원숭이였어!
“바다에 왜 붉은 원숭이가 있어??... 그것도 왜 하필 또 그걸 니들이 발견했어?..”
-그냥 크~~은~~ 바위가 있어서 얍!! 했더니 쫙! 쪼개지는 거야. 그리고나서는 갑자기 붉은 원숭이 한 마리가 뿅! 하고 나타나서 두리번거리더니 삼이랑 맹이이모랑 한번 보고 도망가 버렸어! 나빠!
“...”
삼이의 설명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큰 바위 하나를 쪼개니 그 사이로 원숭이 하나가 올라왔다는 건데... 그럼 이 연기는 그 바위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다.
“끙... 일단 그 바위 있는 곳으로 가보자.”
애들을 보자마자 도망간 것으로 봐선 꽤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일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자기 분수를 아주 잘 아는 놈이었을 텐데 그 바위에 갇혔던 건지 아님 그 바위가 집이었는지는 가보면 알 터이다.
...
“흐음... 여기서 살았을 것 같진 않고...”
“그러게? 봉인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지?”
“어, 누가 가둬놨었네. 우리 삼이가 아주 한방에 깔끔하게 쪼개면서 풀려났고.”
“...어!?...그러고 보니 이 길에 있는 호수면...”
령이와 반화가 쪼개진 바위가 있는 곳을 보며 말하고 있을 때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미료가 소리쳤다. 삼이와 맹이는 희망찬 눈으로 그런 미료를 쳐다보고 반화와 령이는 궁금함에 그녀를 쳐다보자 순식간에 네 쌍의 눈에 집중된 그녀가 조금 움츠려 들었다.
“아는 거라도 있어?”
“그게, 음... 정확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게 하나 있어요. 저도 상행하면서 들은 내용인데 상인들끼리도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라서..”
“상관없어. 뭔데?”
전설이 부풀려 졌을지는 모르지만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 않았을 경우도 많았다. 반화의 옆에 있는 령이도 전설속의 구미호가 아닌가? 물론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긴 했지만 과거에 령이의 조상 중 하나가 우연히 지구에 넘어 왔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 구미호를 보고 전설이 만들어 졌을 것이고.
“이 일대에 아주 말썽쟁이 원숭이 하나가 살았었데요. 워낙 힘이 세고 똑똑해 이 곳에 사는 신령, 인간, 동물, 심지어 요괴들까지 그 원숭이를 두려워했다고 해요. 그러다 결국 지나가던 한 도사님과 원숭이가 마주쳤대요.”
“원숭이? 그럼 삼이가 말하는 그 붉은 원숭이가 맞는 것 같은데?”
우연치고는 너무 딱 들어맞았다. 삼이와 맹이가 잘못 봤진 않았을 테고 미료도 애들이 원숭이를 보기 전에 들은 얘기를 말하는 것이니... 물론 미료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갑자기 그럴 일은 없으니, 원숭이가 확실히 여기에 살긴 했던 모양이었다. 조금 특이한 원숭이가..
“그래서?”
“도사와 마주친 원숭이는 당연히 그 도사를 괴롭히려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 도사는 사실 요괴왕을 잡은 무휼 도사였던 거죠. 지금 저희가 가는 마을이 그렇게 큰 도시가 된 이유도 무휼 도사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무휼도사는 또 뭐야?”
“음... 그러니까 현재 한 제국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도사님이세요. 초대 황제님과 함께 한 대륙을 정복하신 분이시죠.”
흔하디흔한 개국신화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금세 관심이 줄어든 반화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와 저 바위에서 왜 원숭이가 튀어나왔는지 간단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도사가 원숭이를 잡은 게 아니고 저 바위에 봉인해 뒀었네.”
“왜 안 죽였지??”
반화와 령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였다. 자신에게 달려든 놈을, 그것도 분명히 악의를 가지고 달려든 놈을 죽이지 않고 그냥 봉인만 해두다니.
“무휼도사께서는 요괴라도 살생은 자제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대륙에서 요괴들을 내쫓긴 했지만 죽이진 않았다고... 초대 황제는 그야말로 야차 같은 인간이었지만 그나마 무휼도사가 옆에 있어 한 대륙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고 해요. 요괴들은 땅을 뺏기긴 했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정말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않았죠. 그래서 무사히 대륙을 인간들이 차지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지가지 하는 양반이었나 보다. 굳이 죽이지 않아서 이렇게 나중에 일이 생기게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제라는 인간처럼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일단...가자. 더 구경 할래?”
원숭이라는 놈은 벌써 도망가 버렸으니 굳이 찾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들이 무슨 요괴들을 처리하고 다니는 삼장법사와 아이들도 아니고 그냥 관광하러 와서 번거롭게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더 있어도 되나요?”
“그러던지. 이 녀석들! 이제 안으로 들어 와.”
-힝...
호수 속을 조금 더 돌아다니기로 했지만 아이들은 이제 더 사고 안치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미료는 붉은 원숭이는 잊고 다시 호수 속 풍경에 눈을 뺏겼다.
...
-함냐함냐..합..
“맛있어?”
-웅!
호수에 사는 민물 가재 같은 녀석들을 튀기고 매운탕을 끓여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중인 일행.
“캬아!! 한 잔 더!”
“... 그만 먹지?”
아이들은 튀김이 좋은지 얼굴을 파묻고 먹는 중이고 령이는 매운탕이 좋은지(?) 국물 한 숟갈에 소주 한잔을 마시는 중이었다.
“싫어! 더 먹을 거야! 너도 마실래?”
“네? 아뇨.. 전...”
“마셔봐, 좋아!”
“아...네...”
령이의 강요에 의해 결국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미료. 그러나 그녀도 막상 먹어보니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크으...”
“... 난장판이구만.”
그 모습에 혀를 차면서도 물고기와 민물 가재를 더 꺼내 매운탕을 재탕 해주는 반화.
...
“그러니까!! 그 놈이 너를 버렸다고!?”
“아니야! 버린 게 아니야!...”
“그게 버린 거지 뭐야!! 나뿐 놈!! 내가 혼내 줄게! 가자!!”
이 소리는 주정뱅이 둘이 과거의 일로 분개하는 소리였다. 한잔, 두잔 들어가니 절로 과거 얘기가 나왔는데 령이야 딱히 과거에 특별한 일이 있진 않았으니 주로 다이내믹한 삶을 산 미료의 이야기가 안주가 되었는데 들을수록 열불이 터지는 과거에 령이가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씩씩거릴 정도였다. 의자매까지 맺은 두 녀석들을 반화가 혀를 차며 구경했다. 배를 한껏 채운 아이들도 주정부리는 령이와 미료가 재미있는지 반화의 품안에서 같이 듣고 있었다.
“나쁜 놈 아니야... 그래도 나 지켜주려고...”
“바보야!! 그게 뭐가 지켜주는 거야! 진짜 지켜주려면 끝까지 책임 졌어야지! 가문을 버리고 떠나든! 가문에 맞서든! 그 놈은 그냥 쓰레기야!! 너 가지고 논 거라고!”
“...”
후벼 파는 령이의 말에 미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게 자기 위안이라는 걸... 그는 정말 자신을 사랑했지만 책임까지 질 정도로 사랑하진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상단에 두면 어떻게 될지 그도 알고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애써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나도... 나도 알아요... 근데! 그래도! 그 사람이 좋은데!!!”
“이 머저리야!! 내가 그놈 보면 꼭 혼내 줄 거야!!!”
“힝...”
언제까지 이 주정을 들어야 하나 싶을 때 미료가 먼저 기절하듯 잠에 빠지고 이어서 령이는..
“너 임마!!! 너! 이!...”
“자라, 그냥..”
풀썩!...
자신에게 주정을 부리려는 령이를 간단히 제압한 반화가 품에 안긴 녀석을 고이 눕혀두고 미료도 그 옆에 눕혀주었다.
-명하 이모 같다! 히히히 재미있어!
“그런 거 재미있어 하면 안 돼.”
-재미있는데...
혹시나 따라 할까봐 반화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저러지 말라고.
.
.
.
“... 이런 세계라니..”
자신을 추적하는 놈들을 피해 도망쳤던 검신은 그의 앞에 펼쳐진 별세계에 입을 떡 벌렸다. 말 없는 마차는 이미 봤지만 하늘에 닿을 듯 솟은 우뚝 선 건물들에 그 사이로 느껴지는 수많은 사람들. 제국의 수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진 않았다. 인파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허어...”
“응? 할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 혹시 길 잃으셨어요?”
“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검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표정을 지은 여자.
‘뭐야? 사극이라도 찍어? 검 보니까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무술인 인가?’
“할아버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어쩔 수 없나?”
“??뭐..뭐야? 중국인인가?”
복장도 그렇고 하는 말도 그렇고 무협 영화에 나오는 노인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여자. 비록 지금은 없어진 나라지만 시골에서 살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고 여기로 흘러들어 왔다고 생각하니 점점 딱해졌다. 지금 검신은 도망쳐 오느라 상태가 말이 아니기도 해서 더욱 동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불쌍한 노인을 대사관으로 데려가려는 차에 머릿속을 울리는 노인의 목소리.
‘내 목소리가 들리는 가?’
흠칫!
“뭐야...? 할아버지 능력자였어요?”
‘음... 내가 말은 전할 수 있는데 듣지는 못한다네.’
치명적인 일방적 언어소통이었다. 그러나 여자도 보통은 아니었다.
“음... 잠시 만요. 우리 팀에 텔레파시 능력자가 하나 있거든요.”
여자도 일반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곧 바로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부른 여자. 잠시 후 ...
“일방적으로 그렇게 끊으면 어떡합니까!!!”
“늦었잖아 멍청아, 빨리 통역이나 해.”
한적한 카페에 자리 잡고 있는 여자와 검신에게 달려 온 남자가 따지려고 했지만 여자의 기세에 깨갱하고 얌전히 착석했다. 속으로 카페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분은 누구신데요?”
“몰라.”
“예..?”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통역을... 그것도 텔레파시 능력을 쓰는 자신을 왜 불렀단 말인가? 이건 권력 남용이었다.
“뭐해? 빨리 대화 나눠봐. 어디서 오셨는지부터. 가족은 있는지.”
“...예.”
힘없는 남자는 따지지도 못하고 검신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음?? 호오?? 이것 참 신기한 기술이구만.’
흠칫!
“티...팀장님? 이분도 능력자였어요?”
“몰라.”
죄다 모른다고만 하는 팀장을 한심한 눈으로 보려다가 재빨리 검신에게 고개를 돌린 남자.
‘어... 어디서 오셨어요?’
‘검왕가에서 왔다네. 여긴 도대체 어딘가? 혜광심어를 사용할 정도로 깊은 내공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기술을 쓰는 거지?’
“...? 팀장님. 혹시 검왕가라거나 혜광심어라거나... 이런 거 모르시죠?”
“응.”
“...”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팀장이라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