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우리 신령님들 #
206화
“허허허... 그게 이 세계의 무기인가?”
검신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지만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다.
“뭐라는 거야?? 방금, 우리 비웃은 건가??”
“무슨 동양 무사처럼 입었는데요?”
“그러게?? 아틀란티스는 서양 쪽 아니었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서양인지, 동양인지? 살아 있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건 그러네.”
판타지 같은 세계라 다들 서양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검신을 보니 아닐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틀란티스는 개발되지 않은 부분이(일반적으로) 더 많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일단 우선적으로 검신이 아틀란티스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어떡하지? 누구 언어 능력자 없어??”
“그런 능력도 있어?”
“별 희한한 능력 다 있는데 있지 않을까?”
“그건 또 그러네.”
안타깝게도 그들의 기대와 달리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검신에게 그런 비슷한 능력이 있었다. 다행히.
‘이 세계의 인간인가?’
“응??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안 들렸는데??”
“이상하다... 웬 할배 목소리가 들렸는데.”
검신의 뇌리에 박히는 목소리를 들은 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옆 사람에게 물었지만 옆 사람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안 들리는 건가? 이상하군,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건가? 전달이 되는 걸 봐선 통하는 것 같은데.’
“헉!! 방금 또 들렸어!”
“뭐라는 거야 자꾸? 근데 저 인간은 한자리에 서서 뭐하는 거지?”
“저 할배 목소리가 들렸다고!”
“응? 아무 말도 안했는데 뭔 소리야?”
“나한테만! 분명 나한테만 말했다고!”
“???”
이렇게 흥분하는 친구가 아닌데 잔뜩 흥분해 있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동료.
“진짜?? 진짜 말을 걸었다고?? 텔레파시라도 쓰는 건가??”
“몰라, 그런 가봐. 근데... 우리말은 어떻게 전하지?”
들을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이러할까? 어쩔 수 없이 말은 몸짓, 발짓으로 해야 했다. 그래도 들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외계인과의 첫 만남에 통역사로 선택된 자는 그래도 바디랭귀지에 재능이 있었던 것인지 평화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
.
.
“대환장 파티구나...”
“그러게 왜 쟤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 귀찮아서 그랬지?”
“끙... 저 정도로 날뛸 줄은 몰랐지.”
별장에서 피해 집으로 돌아 온 반화네 가족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하와 그 친구들은 루네스, 삼이, 맹이들과 정말 미친 듯이 놀고 있었고 조금 연령이 높은 민사장의 친구들은 그런 그녀들을 따라가려다 결국 포기하고 별장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후였다.
반화는 일단 지금은 참았다. 아직 결혼식 파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결정적으로 명하는 임신 중이었다. 조카가 태어나기만 하면 아주 제대로 갈궈 줄 생각이었다. 지금 이 환장의 파티의 몇 배로.
“민사장님쪽 가족 분들이 그래도 재미있게 생각해서 다행이지.”
“일단 넘어가자고. 별장은 신경 쓰지 마, 그냥 당분간. 지칠 때까지 놀게 놔두자고.”
“너나 그렇게 해. 열 받아서 엎어버리지 말고.”
수화는 자신보다 반화의 성질이 언제 폭발할까 조마조마했다. 명하가 적당히 선을 넘지 않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무럭무럭 들었다.
“알았어. 쉬어.”
“응.”
수화가 슬이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반화. 아니, 일찍이 도망친 순이가 반화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명하 저거 어릴 땐 안 그랬는데 그치?”
-냐아~
순이도 15년간 명하를 봐왔기에 알고 있었다. 원래 명하는 저랬다고. 다만 저걸 뿜어낼 출구를 못 찾았을 뿐이라고...
“응?”
멍하니 순이를 끌어안고 TV를 보던 반화가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주인공은 바로 새로운 세계에서 아이들이 데려왔다는 여자였다.
“아아, 깜빡하고 있었네. 밥은 먹었냐?”
“??”
-냐아!
“...장난이었거든?”
아무리 반화지만 외계인에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재주는 없었다. 반화가 무의식적으로 한국말로 묻는 걸 들은 순이가 혀를 차며 한심한 듯 쳐다보자 그제야 그걸 깨달은 반화가 멋쩍은 듯 긁적였다. 명하 때문에 아무래도 정신이 나갔었던 모양이다.
“밥 먹었냐고.”
“아!...네, 먹었습니다! 신님.”
이번엔 여자의 언어를 훔쳐 다른 세계의 언어로 제대로 물어 본 반화. 유창한 말에 여자가 잠시 놀랐다가 이내 빠르게 대답했다.
“응?? 신??”
“예.”
“나?”
“예.”
“...내가 왜 신이야?”
“여신과 함께 계셨으니까요.”
“여신?? 우리 집에 여신이 어디 있어??”
반화가 부정하자 이상하게 순이가 노려보는 느낌은 착각일까? 꼬리가 탱탱 거리는 걸 보면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고양이의 꼬리와 강아지의 꼬리는 감정을 숨길 줄 모른다. 자기들은 숨긴다고 머리만 감추지만 꼬리는 항상 진실을 말하고 있기에.
“순이야, 아파..”
-냥!
진짜 아팠다. 하필 위치가 거기라서...
“저분... 그리고 날개가 달린 천사도 ...”
“??령이?”
언제 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반화의 뒤에 온 령이와 아마도 루네스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응?? 나 왜??”
“너보고 여신이래.”
“그래??”
반화의 말을 들은 령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반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거 완전 여우네, 여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무표정이었는데 여신 소리 듣자마자 싹 바뀌는 표정을 보니 여우가 따로 없었다. 하긴 여우 중 여우인 구미호니까..
“난 또 반화한테 꼬리치는 줄 알았잖아.”
“꼬리는 니가 치고 있네. 그거 좀 집어넣지??”
기쁜 마음에 튀어 나온 꼬리도 느끼지 못한 건지 여자의 몸을 꾸물꾸물 거리며 올라타고 있는 아홉 개의 여우 꼬리..
“흐음... 일단 얘기 좀 해보자고. 애들한테 얘기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네!!”
여자가 반화의 말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자신의 얘기를 들어 줄 사람.. 아니, 신이 생겼으니 당연히 기뻤다.
먼저 여자는 드디어 처음으로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제 이름은 미료입니다.”
“미료?? 성이 ‘미’야?”
“성은 없습니다.. 그냥 다들 미료라고 불러서 미료가 되었어요.”
“그래? 계속 해봐.”
...
그 시간 별장 상황은...
“뿌링뿌링 검 발사!!!”
“얍!!”
챠챠챠챠챠챱!!
이게 뭐하는 짓인가 보니 명하가 루네스에게 빛의 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가 마침 재미있는 생각이 나, 실천으로 옮긴 소리였다. 치킨 먹을 때 뿌려 먹는 다는 그 뿌링뿌링을 빛의 검 위로 올려 사방에 날리는 건데... 별장이 난장판이 된 것이, 아마도 이런 짓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닌 듯 했다. 그 때마다 명하의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으니 루네스는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마치 소울 메이트를 만난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삼이, 맹이는 뭐 말 할 것도 없이 소스를 머리에 맞으면서도 히히 거리며 좋아 했다.
“... 빨리 연구나 하러 가야겠군.”
더 이상 여기 놀다간 반화에게 죽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해골씨가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어!? 해골!!! 어디가!!! 놀자!!”
“끙... 비켜라 인간!”
취한 자는 용감 무식하다고 명하의 친구가 해골씨의 앞을 막아섰다. 좋게 넘어가려는 해골씨였지만 눈에 뵈는 게 없는 명하의 친구.
“어디가아~ 놀자아!”
텁!...뿌득!!
“...어??...갈비뼈다? 이게 왜...”
해골씨를 막던 명하의 친구의 손에 들려진 갈비뼈. 크기는 컸지만 분명 사람의 갈비뼈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술이 깬 그녀는 천천히 그녀를 내려다보는 해골씨를 쳐다봤다.
“하하...자, 여기요!”
아무렇지 않은 척 갈비뼈를 붙여준 그녀가 뒤돌아 가려했다.
“어이, 인간..”
“아하하하...왜, 왜요?”
“이 갈비뼈에 전해져 오는 슬픈 전설...컥!”
퍽! 하고 해골씨의 머리가 뭔가 맞는 둔탁한 소리가 나며 해골씨의 헛소리가 멈췄다.
“뭐하냐? 난리네 난리. 삼이, 맹이 어디 있어?”
“왜... 왜 때립니까!?”
“너 점점 노에라 닮아 간다?? 둘이 그만 붙어 다녀.”
“...”
반화가 해골씨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듯 말했다. 어째 애가 점점 눈치가 없어지고 어려지는 것 같았다. 처음 해골씨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 자다 일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반화가 진심으로 걱정했다. 노에라가 해골씨를 따라 다녀서 그런 것 같기도 했고.
“마스터가 이렇게 때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내가 언제 때렸다고.”
“!!!”
저렇게 뻔뻔하다니... 명하의 친구도 반화의 뻔뻔한 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두개골이 깨질 정도로 때려 놓고 어떻게 저렇게 모른 척 할 수 가 있는 건지..
“삼! 맹!!”
-웅??
-아빠다!!
“이리 와.”
-시러, 놀 거야!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던가? 요즘 삼이, 맹이가 그런 듯 했다. 특히 삼이가.
“신기한 세계 안 갈 거야?? 아빠 지금 갈 건데.”
-어?? 진짜?? 놀러 가는 거야??
“응, 놀러 가는 거야.”
-갈래 그럼!!
“응? 삼이 이 배신자!! 이모 두고 갈 거야!?”
-응!!
명하가 급히 삼이를 막아섰지만 액체가 지나가듯 명하를 흘려 지나가 버리는 삼이.
“이명하. 적당히 놀다 치워라?”
“...응.”
자신이 생각해도 좀 심한 것 같아 명하는 반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반화가 다시 가면 원래대로 돌아 올 테지만.
...
미료라는 여자가 해주는 말을 들어 보니 저쪽세계에는 지금 7대 왕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왕가들을 지배하는 것이 황제 ‘뮤’ 라고 하는데 7대 왕가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주색잡기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거의 7대 왕가가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 그중 멸룡 이가가 자리 잡은 곳은 7 왕가 중 검왕가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검신이라는 자가 있는데 몇 백 년을 살아 온 괴물이 살고 있단다.
7대 왕가들은 각각의 지역에서 세상을 요괴들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고 하는데 처음에 삼이 맹이를 요괴로 오해했던 것부터 신령으로 오해한 것까지 몽땅 들은 반화는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었다. 애들보고 신령이라니...
-근데 어디로 가??
“일단 아빠 친구 고향에 갔다가 돌아다녀 보자. 좋지? 여행가니까?
-응!응!!
신나서 방방 뛰는 삼이와 맹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온 반화는 미료라는 여자에게 애들을 일단 맡겼다.
“너도 간다고??”
“응.”
“왜?? 그냥 집에 있지??”
“싫어! 이번엔 나랑 가야 돼.”
“???”
령이가 순이를 노려보며 말하는 걸 보니 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던지. 순이는 안갈 거지?”
-냐아~
“그럼... 가볼까?”
굳이 게이트를 찾아 갈 필요는 없었다. 이미 한번 갔던 차원이기에. 중국에 게이트를 가져다 놓은 건 진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이 문득 생각나서 한 것뿐이었다.
쩌저저적!!!
“헉!”
눈앞에 갈라진 차원의 균열이 생기자 미료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해? 안 들어가고?”
“예??”
“들어가, 얼른.”
상대에 대한 배려는 정말 1도 없는 반화였다. 그리고....
-꾸릉...?
별장에 남아 있던 용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잊힌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