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결혼식 #
203화
“그 검은...?”
“왜 아는 거야?”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초대 가주님의 진검...”
투박한 검이지만 검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 그림으로만 알고 있는 초대 가주의 검과 동일했다. 물론 가짜도 뛰어난 장인에게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졌지만 진짜의 느낌은 가짜와 너무 달랐다. 섬뜩하면서 진득한... 그리고 눈에 박힐 듯 한 선명한 아수라 형상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한 문양이었다.
“잘 알아보네.”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겁니까?”
“이거?? 뭐랄까...친구? 동료? 아니다. 그냥 좀 불쌍한 놈이 남긴 거야.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
반화의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소가주.
“간단하게 말해서 주웠다고.”
“아...”
주웠다는 말은 결국 초대가주는 검을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기록상에, 그러니까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던 초대가주 실종사건. 그 결말을 반화에게서 들은 소가주는 착잡했다.
“그녀석이 사라진지 얼마나 지났어?”
“500년이 흘렀습니다..”
“생각보단 많이 안 흘렀네. 쯧...”
생각 할수록 안타까운 녀석이었다.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했는데 결국 검만 이렇게 돌아와 버렸으니.. 거기에 후손이라는 놈들은 영...형편없었다.
“가짜 검이나 만들고 말이야. 쯧... 그딴 거 만들어서 뭐했지?”
“죄송합니다..”
소가주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세가에는 초대 가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자도 드물었다. 분명 기록은 모두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초대 가주의 일대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문을 부흥시킬 전설을 가진, 그리고 쓸 만한 무공을 나눠 준 존재로만 기억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자신의 아버지인 현 가주도 마찬가지였다.
소가주 그 자신이 초대 가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때 무공이나 더 연마하라며 채찍질 했던 가주였다. 오로지 가문의 명예, 자기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하기에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던 분이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초대 가주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초대가주님과 인연이 있는 용신이 찾아오다니... 벌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녀석에 대한 기록 있어?”
“예,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양이라고? 그녀석이 남겨 준건 겉만 핥았나 보네. 기록물이나 가져 와.”
“예!”
과연 녀석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 되어 있을지 궁금해진 반화는 일단 잠시 이 곳에 대한 처분을 미루기로 했다. 그래도 그 괴물 같은 세계에서 꽤 친하게 지냈던 녀석의 후손인데 그냥 처리해버리긴 좀 찜찜했다. 과연 녀석을 어떻게 기억하고 모셔왔는지 확인은 하고 처리할 생각이다.
...
“이게 다야?”
“...예..”
기록물은 생각보다 없었다. 거기에 기록물 보관 상태도 참...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새로 정리 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양이 별로 없었다. 그건 소가주가 이제야 새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용을 잡아 떨어트렸다는 내용을 보니 용이 아니라 그냥 차원의 균열을 사람들이 용으로 착각 한 모양이었다. 용과 함께 사라졌다고 마무리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놈은 뭘 그리워한 거야 도대체?”
뭔가를 그리워한다는 감정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반화도 이런 후손들을 보기 위해서 녀석이 돌아오기 싶어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후손이었으면 몽땅 때려 부수었을 것이다. 자신으로 얻은 모든 걸 회수하기 위해서.
아직도 눈치만 살피고 있는 가주와 세가의 모든 구성원들.
-크르르...
“시끄러 임마.”
-꾸릉...
사람들을 노려보며 낮은 울음을 터트리는 용을 타박한 반화는 세가를 한번 둘러 봤다. 진이 펼쳐져 있긴 하지만 그 수준은 형편없었고 그냥 겉멋만 든 그런 진이었다. 그녀석이 알고 잇는 진과는 완전 다른 것이었다. 그 녀석은 매우 실용적이면서 효율적이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신기한 진을 사용했었는데... 이건 뭐..
“폐가에 친 거미줄 같네. 쯧.”
휙!! 휙!!!
손 몇 번 휘저음으로 거슬리는 진을 부숴버린 반화.
“가주가 네 놈이라고?”
“그...그렇습니다만...”
가주라는 중년의 남자를 본 반화가 한 숨을 쉬었다. 이정도로 형편없으면 처리하는 것도 힘이 빠졌다.
스윽...
“부숴.”
-꾸릉??
-냐아아~
화르르르....콰아아아앙!!!!!
반화의 말에 무슨 뜻인지 몰랐던 용이 고개를 갸웃 하자 대신 순이가 반화의 말대로 처리해 주었다. 아주 깔끔하게 흔적도 없이.
“!!!! 세...세가가?!”
아주 재도 남기지 않고 타올라 사라진 세가의 본체를 본 가주는 얼굴에 있는 벌어 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벌리며 경악했다. 500년을 지켜온 세가가 말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도시의 사람들은 난리를 떨며 세가에서 멀어지려 했다. 물론 이미 용 때문에 거리를 벌린 상태긴 했지만.
푹!!!
“가자.”
-꾸릉!
다시 용의 머리 위에 올라간 반화.
“아! 맞다. 애들 어디 있어?”
“예..?”
다짜고짜 애들을 찾는 반화.
“뭐야, 몰라? 니들이 신령이라고 말하는 애들 말이야. 어디 갔냐고.”
“신령이라면... 아버지!! 설마!?”
“...”
콩가루 집안 꼴을 구경하는 취미 따위 키우지 않는 반화는 부자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용에게 게이트로 가자고 말했다. 곧 명하의 상견례 시간이었다. 늦었다간 녀석의 잔소리는 물론 이고 평생 안 볼 거라고 날뛸 걸 생각하면 서둘러야 했다.
반화가 떠난 세가에는 몽땅 타버린 세가의 터와 그 위에 꽂힌 검 한 자루만이 남았다.
.
.
.
“마스터! 완성했습니다!”
“응? 그래?? 어디...끙... 벌써 놀고 있네.”
해골씨가 완성했다는 건 이리브리움으로 만든 놀이터였다. 벌써 애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우오오오오!!!!
쇄애애애액!!!!
...
“저건 뭐냐?”
“음... 충격을 흡수해서 되돌리는 성질을 이용해서 만든 공간인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계치 이상의 충격은 반사하지 않고 흡수만 합니다.”
“...”
거대한 원형 돔 안에서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있는 털 덩어리를 보니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하며 넘어간 반화.
-우오오오오!!!!
쾅!!!!!!
...
“걱정 안 해도 된다며.”
“...한계치를 다시 설정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은 해골씨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겨우 만든 기구를 겨우 두 번 쓰고 망가트리다니...정말 웬만한 충격에는 멀쩡해야 하는데 벽에 구멍을 내며 날아간 삼이.
-아빠아아아앙~~!!
“에휴...”
스륵..
텁!!
-히히히!!
별이 되어 날아가 버리려는 삼이를 붙잡은 반화가 한숨을 쉬며 녀석을 배 위에 올려 바라봤다. 그저 싱글벙글인 녀석의 모습에 결국 피식 웃은 반화가 녀석의 놓아 주었다.
“해골, 더 튼튼하게 만들어 봐. 아! 그리고 오는 봄에 명하 결혼식이야. 준비 좀 해줘.”
“결혼식?? 그건 뭡니까?”
“그것도 모르냐?”
“그러는 마스터도 해 본적 없는 거 아닙니까?”
“...”
전에도 느꼈지만 해골씨는 참 반화에게 잘, 그리고 영리하게 팩폭을 날렸다. 이게 기분이 나쁜데 너무 명확한 진실이라 여기서 따지고 들면 좀생이가 되어버리는... 물론 반화가 그런 걸 신경 쓸 리 없지만.
퍽!!!
텅...데구르르..
“가서 일해.”
“...예.”
굴러 떨어진 해골 머리를 주우며 고장 난 기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 그런데 마스터?”
“왜??”
“그 게이트는 뭡니까??”
중국으로 가져온 게이트 소식을 들은 해골씨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 게이트에서 반화가 나온 건 알지만.
“그거? 다른 세계로 연결된 거야.”
“예?”
“내가 말 안했나? 애들 찾으러 다른 세계 갔었다고. 그런데 가보니까 내가 아는 놈 고향이더라고. 물건이나 돌려주고 왔지.”
“그런데 왜 게이트는? 그리고 그 용은 또 왜 데려왔습니까?”
“거기가 좀 무협에 나올 것 같은 세계거든?? 중국하고 잘 어울리지 않아?”
“...잘 어울리긴 하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게이트 들고 오다니..
“그리고... 저 거북이는 또 뭡니까?”
“저거?? 명하 결혼식 하는데 뒤에 배경으로 두려고. 거북이가 장수의 상징이라지? 같이 사진 한방 찍어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왜? 별로 야?”
“이 집에 굳이 거북이가 필요할 까요? 용도 있고, 드래곤도 있고, 구미호에 요정, 엘프까지 있는데...”
“아! 넌 좀 안 될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 사진에 해골은 좀 그렇잖아?”
“!!! 왜!! 왜요?! 그거 편견입니다?! 해골은 불사의 상징 아닙니까? 그럼 좋은 거죠!”
“불사는 저주야, 임마.”
“...”
반화의 말에 해골씨는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떴다. 반화와 대화하다 보면 점점 유치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일을 하고 말지.
.
.
“이게 뭐죠...?”
“분명 용이 향한 곳이 여기였습니다. 아마 용이 남긴 것 아니겠습니까?”
“용이 남겼다라...”
“검신님께서 용에 흥미를 가지고 계신지는 몰랐습니다. 이미 잡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용이 아니라 이무기였지. 진짜 용은 나도 본 적이 없다네.”
“이무기가 용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왜?”
“그 검... 용신이라는 자가 꽂아 두고 갔다지?”
“예, 하하하 용신이라니. 그런 존재가 있을 리 만무 하지요. 아마 사람들이 헛소리 하는 걸 겁니다.”
검신이라는 자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중년 남자. 그러나 심각한 얼굴의 검신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검을 만져 보았나?”
“아, 만져보진 않았지만...”
“나도 만져보지 못했다네.”
“???”
검신이 만지지 못할 검이라니. 이걸 농담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걸까?
“검이 가진 염이 나를 거부하더군. 겨우 검의 염 따위가 내 손을 거부했고 손을 튕겨냈어.”
검신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도 그 검의 염이 자신에게 준 느낌을 잊지 못했다. 그저 지나가다 도착한 도시에서 호기심으로 찾아 갔을 뿐인데 이런 느낌을 자신에게 주다니...근 몇 십년간 아무런 자극이 되어 주지 못한 이 세계에서 말이다.
“그런 검을 꽂아 둘 수 있는 자가 이 곳에서 사라졌다니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어떻게 하시려고...?거...검신님?”
“흐음.. 묘하구만... 마치 뭔가의 통로 같은....응?”
스윽...
손을 가져다 대려고만 했는데 그대로 통과되어 버린 자신의 손에 놀란 검신.
“허허허... 재미있군. 이런 걸 이제야 발견하다니... 참 다행이군.”
“소...손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검신의 왼 손이 팔뚝까지 사라져 있었으니 놀랄 만했다.
“아아아, 겁먹지들 말게. 내 손은 멀쩡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