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일상 #
191화
“너덜너덜 하네.”
반화가 언데드 녀석을 보며 혀를 찼다. 얼마다 잘 다졌는지 참...
“쿨럭... 무슨 짓을 한 거냐...?”
반화에게 잡힌 이후로 전혀 힘을 쓰지 못한 놈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분명 딱히 뭔가 자신의 힘을 억제하는 건 못 느꼈는데..
“알아서 뭐할 거야? 이제 없어 질 건데.”
반화는 녀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두 번이나 그의 등 뒤에 칼을 꽂으려 했던 놈이다. 사실 이것도 참 많이 봐준 것이기도 했다.
“크흐흐흐... 뭐 상관없나..”
놈도 딱히 대답을 듣기 위해서 물어 본 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 궁금했을 뿐.
“이제 어쩔까나..”
이번엔 정말 다시 살아날 기미를 아예 말살 시켜야 했다. 또 이런 귀찮은 일을 하긴 싫었으니까.
“좀 찝찝하지만 뭐, 어쩔 수 없네.”
스르륵...
“그게 진짜 검은 바다였군...”
반화의 발밑에 울렁거리는 검은 기운을 보며 놈이 말했다. 완성된 검은 바다의 모습은 정말 바라만 봐도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아찔함을 주는 기운이었다. 저걸 얻기 위해 괴물들이 그 곳에 모였으나 결국 그걸 차지 한 건 반화였다. 그 누구도 검은 바다를 길들이지 못했으나 반화는 그걸 해냈다. 지금 와서 보니 아예 검은 바다를 종처럼 다루고 있었다.
“...”
콰직!...우득!!!
야금야금 놈을 먹어치우는 검은 바다... 고통도 삼키는 듯 일그러진 표정 사이로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비명도 들을 수 가 없었다. 그렇게 놈이 검은 바다에 삼켜지고 나서야 다시 기운을 흡수한 반화는 찝찝한 듯 입맛을 다셨으나 이제 진짜 놈은 끝이었다. 부활할 수 있었던 아주 희미한 근원까지 모두 삼켜버렸으니까.
“흐음... 여긴 멀쩡하네?”
“허허허, 이리브리움 이게 생각보다 아주 대단합니다. 아예 공간을 비틀어 버려 하나의 공간을 창조하기까지 합니다.”
반화가 온 걸 알아차린 해골씨가 웃으며 방어마법진을 거두고 나타났다. 반화의 별장과 그 주위의 영역은 아주 멀쩡했다. 다만, 거북이 놈이 난장을 피워서 이 부분을 제외하면 용암이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용암지대가 되어버렸지만.
“그러고 보니 죄다 지지고 부수는 녀석들 밖에 없네.”
반화가 데리고 있는 녀석들은 죄다 공격에 최적화 된 녀석들이었다. 조금 빙(氷) 계열 속성을 가진 녀석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요즘 령이도 얼음이 아니라 차가운 불을 쓰고 있어 다분히 공격적인 속성이 되어버렸다.
이 용암지대를 식힐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모르겠다, 일단 뭐... 주변에만 식혀두면 되겠지.”
치이이이익...
주변에 부글부글 끓는 용암의 화기를 몽땅 압축한 반화가 삼이와 맹이에게 나눠 주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들어간 해골씨가 현재 상황에 대해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놈이 하려고 했던 건 예전 아틀란티스를 덮쳤던 악의 전염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만 다행히 이번에 파스와 만든 방어마법진으로 완벽하게 방어해 냈습니다. 악의에 의한 피해는 0%입니다.”
“그래??”
“예, 그리고 이리브리움 말인데...공간을 비틀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응?? 세계? 그거 만들어서 뭐하게? 어차피 해골 너도 아공간쯤은 만들 수 있잖아?”
“그런 정지된 세계가 아닙니다. 진짜 창조!, 그걸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걸 귀찮게 왜 해??”
반화가 흥분한 해골씨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별장 하나 관리하는 것도 귀찮은데 굳이 세계하나를 만들어 관리해야 할까 싶었다.
“마스터께서 그 힘을 얻었던 것처럼 창조한 곳을 이용해 괴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해골씨가 흥미 없어 하는 반화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건 해골씨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연구자일 뿐 정작 할 수 있는 존재는 반화 밖에 없었다.
“쯧... 그게 될 것 같아? 그런 괴물을 겨우 이런 세상으로?”
“그건 모르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농장에 가서 푸롱 열매나 따와.”
결국 쫓겨 난 해골씨는 비록 이번엔 실패했지만 좀 더 연구해서 꼭 반화를 설득 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쓸데없이...
“얘들아~ 밥 먹자!”
-바아압!!
실컷 움직였더니 배가 고팠던 건지 반화의 말에 아이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일단 해골씨가 들고 온 푸롱열매로 간단히 입맛을 돋우고, 사실 돋울 필요 없이 항상 입맛은 돋아진 상태지만... 고기를 구워주는 반화. 검은 바다가 언데드를 삼켰다가 뱉어 낸 잔해를 잠시 떠올렸다. 진짜 뼈만 남은 스승의 잔해... 크게 마음이 쓰인 건 아니지만 그냥 버리기엔 조금 그랬다.
“멍청한 스승 놈 같으니라고... 뭐가 그리 미련이 남아서.”
그 미련 때문에 언데드 놈에게 시체가 이용당하기나 하고... 한심했다.
-웅??
볼 빵빵하게 고기를 입에 넣은 삼이가 반화의 중얼거림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아니야, 먹어. 먹어.”
-웅!
다시 고기에 집중하는 녀석.
...
.
.
잠깐의 헤프닝으로 끝난 언데드의 악의 전염은 이상하게 반화가 미리 준비한 방어마법진으로 초점이 옮겨졌다. 분명 폴리 크랙과 뉴월드에 미래를 엿보는 능력자가 있을 거라는 소문과 함께.
“반화야!”
“응? 누나가 웬일로 여기에 있어?”
한동안 웹툰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어 반화 집에 잘 찾아오기 못했던 수화가 슬이를 꼭 안고 그의 집에 있었다. 아니 누나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있었다.
“거기, 당신은 왜 가족처럼 있어요?”
“하하하... 사실..”
“오빠나 임신했어.”
“?!?!?!!!”
명하의 폭탄 발언에 놀란 사람은 반화 혼자였다. 안타깝게도 다른 이들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외로운 사람...
휙! 휙!
명하와 민사장을 번갈아 쳐다본 반화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저거 누가 데려가나 싶었는데.”
툭툭..
“잘 결정했어. 지구를 위해서 그게 나쁜 일은 아닐...”
“오빠!!!”
반화의 말에 빼액! 소리를 지른 명하가 엄마의 눈총에 다시 들끓는 기운은 가라앉혔다. 뱃속의 아이에게 좋은 것만 듣게 해야 하는데 저 인간만 보면 화가 나니...
“쯧... 그럼 일은 좀 쉬어.”
“응?? 진짜?? 그래도 돼?!”
“니 월급 내가 주잖아. 민폐 끼쳐도 봐달라고. 그러니까 상관없어. 쉬어.”
“저기... 그래도 사장은 저인데...”
스윽.
민사장이 괜히 끼어들었다가 명하와 반화의 째림에 다시 말을 주워 담았다. 양아치 남매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거 뭐였어?? 너는 알고 그런 거야?”
“뭐가?”
수화의 말에 반화의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도무지 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거, 이상한 검은 그림자 같은거.”
“아아, 그거? 뭐... 어느 정도?”
“진짜??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어?”
“그건 왜?”
“나 소재로 좀 쓰게.”
소재를 갈구하는 누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가족들 앞에서 풀어 놓은 반화, 덕분에 민사장도 사연을 알 수 있었다. 전부 얘기한 건 아니고 그냥 다른 세계의 괴물이 침략 했었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여태 그냥 사고를 치고 뒷정리만 하던 민사장은 처음으로 반화가 왜 움직였는지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와... 진짜 다른 세계에서 침략을 했다고?”
“어, 일본 없어졌지? 그게 그놈 때문이야.”
거짓말이었다. 일본이 사라진 건 전부 반화의 계략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어차피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아, 일본이 그래서... 그럼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그쪽 주식은 미리 팔아 버리게..”
“쯧, 사람이 죽었는데 주식이 지금 입에 나옵니까?”
오히려 민사장을 꾸중한 반화.
“식은 언제 올릴 거야?”
“배가 부르기 전에 올리게. 날도 조금 풀리면. 바로 할 거야.”
“그러냐?”
“오빠 나 결혼 선물은??”
명하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반화를 쳐다봤다. 물론 민사장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반화를 뜯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뜯어 먹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요번에 방어마법진 추가 주문이 밀물 쏟듯 와서 그냥 말로 돈을 긁어 모아간 오빠였다. 물론 자신은 얼마인지도 모르겠지만.
“뉴월드 신도시 만든다며?”
“응? 아니 말 돌리지 말...”
“그거 만들어 줄게. 제대로.”
“!!!!??”
결혼 선물 스케일 치고는 너무 큰 것 아닙니까? 그정도 까지 바라지 않았는데... 그냥 당신 창고에 있는 슈퍼카 좀 얻으려고 했는데.. 도시를 만들어 준다니... 지금 완공 하려면 아직 몇 년은 남았는데??
“그거 금방 만들어. 그거면 되지?? 민사장님?”
“...결혼 선물이 도시네요?”
“이 녀석은 차 몇 개 사주면 나중에 꼭 뭐라 할 거니까 그냥 이걸로 줄게요.”
통 큰 척(?)을 하며 생색내는 반화를 가족들 모두 미친놈 보듯 했지만 반화는 그냥 무시했다. 아니 신경을 안 썼다.
...
-냐아아아~~
부빗, 부빗...
“순이야. 너 또 사람처럼 돌아가면 안 된다?”
-냥!?
“이 털뚠이가 갑자기 맨들맨들한 사람이 되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응?”
순이가 황당하다는 듯 반화를 쳐다봤다. 보통(?) 인간들은 고양이가 아름다운 여자로 변하면 다들 좋아하는데 이 인간은 반대였다.
-냐아아아!!
이 털 성애자 같으니라고!!
절레절레..
령이는 반화가 순이의 배에 얼굴을 부비는 걸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 인간에게 이성이 되려면 뭔가 다른 게 필요할 것 같았다.
척!
“응? 넌 왜 또 여우로 돌아갔어? 사람이 편하다며?”
-카오옹!
당분간은 이 모습을 해야겠지만...
불안해했던 가족들이 반화의 설명을 듣고 안심하며 돌아가고 소파에 드러누운 반화의 배 위로 두 마리 털덩어리들이 자리를 잡고 뒹굴고 있었다.
“왜 내 위에서 그러냐...”
퍽!!
가만히 누워 있다가 순이의 솜방망이에 맞은 반화가 울컥하며 일어나려다가 녀석들의 발바닥 젤리의 감촉 때문에 한번 참았다. 쓸데없이 폭신폭신해서 기분이 좋은 젤리..
“마스터! 진짜 안 만들 겁니까?? 창조인데? 세상을?”
“아, 거참... 귀찮다니까.”
“끄으으응...”
해골씨의 끊임없는 설득은 반화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결국 지하에 해골씨를 감금해 버린 그.
“반성할 때까지 나오지 마.”
그토록 바라던 이리브리움으로 만든 세상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린 반화를 해골씨가 망연히 쳐다봤다.
‘귀찮다며??? 엄청 쉽게 만들면서!!!’
쇠창살 사이로 해골씨가 소리 없이 절규하는 것이 보였으나 반화는 그냥 무시했다. 어차피 해골이라 절규하는 게 어색하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