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치우다 #
190화
검은 그림자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능력자들도 예외는 없었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한순간 그림자에 덮쳐진 사람들.
“어...?”
빠직...지지...퍽!!!!
“응???”
“방어 마법진??”
방어 마법진이 새겨진 도시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볼 수 있었다. 그들 머리 위에 빛나는 마법진을.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쓴다고 시위하던 자들은 그제야 방어마법진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덮쳤던 그림자는 빛나는 마법진에 의해 모두 부서져 버렸고 사람들은 다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설마 이런 걸 예견하고?”
“응? 또?”
이번엔 개인 방어 마법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구매했던 방어마법진에서는 아예 정신을 완전히 회복시켜주는 힘까지 깃들어 있었다. 덕분에 멍했던 정신이 금세 돌아 온 사람들은 돈을 투자한 보람을 느끼며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곧 바로 회복되지는 못하고 당분간은 후유증에 시달릴 것 이다.
사실 마법진을 구매한 나라와 도시는 아직까지 한정적이어서 모든 곳을 방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언데드 녀석도 시간이 많이 없었던 터라 ‘악의’로 전부 뒤덮지 못했다.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악의를 숨겨 놨던 터라 안타깝게도 놈의 마지막 발악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
.
.
“프흐흐흐...”
“뭐야, 이젠 미쳤나? 아닌가? 원래 미쳐 있었던가?”
공격하려다 말고 갑자기 웃는 놈을 보며 순이가 인상을 썼다. 냄새도 구린 놈이 웃으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원래 성격 같았으면 벌써 저 머리통을 날려버렸을 텐데...
“꼼꼼히도 준비 해놨었군... 변하긴 변했어? 이런 짓도 해놓고.”
그가 아는 반화는 이런 꼼수 따윈 쓰지 않았다. 그냥 정면으로 다 받아버려도 상관없을 때였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지킬 것이 생겨 반화의 대응이 변했다. 일부러 자신이 자리를 비워 알아서 찾아오게끔 만든 것이다. 미리 모든 대비를 해두고서...
“혼잣말은 죽어서 해!!”
쇄애애액!!!!
“너라도 잡아 주마!!”
쿠르르르...
다시 부딪히기 시작한 순이와 언데드.
쿵!!!!
그때, 아까부터 울렸던 진동이 점점 더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순이와 언데드의 싸움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놈이 직접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움? 우아아아... 크다...
삼이가 멀리서 보이는 실루엣에 입을 떡 벌리며 맹이를 쿡쿡 찔렀다. 여태 본 것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는 녀석이 이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는데...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여서 그 크기가 짐작도 되지 않는 놈, 그리고 높이는 또 어찌나 높은지 해를 가려 순식간에 밤으로 이 일대를 만들어 버린 놈이 순이와 언데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 커서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꼬북이?
-거북이네?
일단 등껍질로 보이는 뭔가가 등에 붙어 있는 모습이 거북이를 닮긴 했다. 정확히는 신화에 나오는 현무와 비교하면 될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거북이일 뿐.
쿵!!!
“에이씨... 저건 또 뭐야.”
싸우는데 자꾸 방해 되는 진동을 울리는 바람이 짜증난 순이가 놈을 노려봤다. 그 틈을 타 공격하는 언데드.
서걱!!!
“윽!... 이 새끼가..”
기습적인 공격에 어깨에 상처를 입은 순이가 놈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크흐흐... 광기의 벼락의 약점이 뭔지 아나?”
“?”
공격 한번 성공시켜 놓고 낄낄 거리는 놈의 모습에 인상을 쓴 순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자기가 알아서 말해주는 놈.
“독이야, 독. 큭... 물론 벼락에 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독이어야겠지만. 그리고 지금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유도 바로 독 때문이지.”
안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겨우 살짝 베인 상처인데 아직도 피가 철철 나고 있었으니까. 그게 독 때문이라니...
순이의 자존심에 한줄기 선을 그은 놈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낄낄 거렸다.
“그 독은 그냥 독이 아니거든. 내가 광기의 벼락을 가진 놈을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그런 독이란 말이지? 아직 제대로 벼락을 다루지 못하는 너 정도는 한줌의 핏덩이...!”
콰르릉!!!!
“컥...!”
나불거리다가 결국 순이에게 제대로 면상을 맞은 놈. 크게 이상은 없었지만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가 되어 바닥을 구르는 경험을 하게 된 녀석.
“대가리가 단단하긴 단단하네.”
확실히 머리보다 목이 찢어진 걸 보면 단단하기 단단했다. 순이는 계속해서 파고드는 독을 막으며 놈을 노려봤다.
“처음 겪어보는 건가? 큭, 하긴 그런 힘을 고통 받으면서 얻었다면 이러지도 않았을 테지만. 놈이 아주 편하게 전달해 줬겠지? 그러니 아직도 나를 못 죽이고 있는 거겠지만.”
놈은 시종일관 순이를 도발했다. 그가 주입한 독은 몸의 전류를 타고 전염되는 독. 화를 내면 낼수록 퍼지는 속도는 빨라졌다.
파지지..직!
“이딴 독이나 쓰니까 여태 그 모양이겠지!”
파아앗!!!
자꾸 성가시게 만드는 독을 지워버리기 위해 진력으로 뽑아낸 벼락이 순이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 힘은 마치...
-피까쮸다!!
생긴 걸로 따지면 자신이 더 그 노란 쥐 캐릭터를 닮았겠지만 온 몸이 푸른 전류로 쌓인 순이의 모습은 삼이의 말대로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데드는 또 다른 이유로 충격을 받았다.
“독을 이겨냈어...?”
치직...
“이까짓 독 쯤...!”
쿠우우웅!!!!
순이 떄문에 다들 정신이 팔린 사이 다가온 거북이가 거대한 발 하나로 이 일대를 아예 짓밟아 버렸다. 순이, 언데드는 물론 이리브리움으로 만들어진 방어마법진이 지키고 있는 반화의 별장까지 몽땅 밟아 버린 놈. 순이 때문에 밝아 졌던 장소가 다시 어둠으로 가득해졌다.
-...??...!!!!! 크아아악!!!
우득!!!
콰르르릉!!!
거슬리는 것을 짓밟았던 발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에 놈이 기겁하며 발을 들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고대 괴물 중 마지막 남은 한 녀석, 남쪽 대륙에 잠들었던 놈의 거대한 발 하나가 그대로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디서 더러운 발을 들이대?”
치지직...
-크르르....
잃어버린 발에 대한 고통에 낮은 울음소리만 내뱉는 녀석.
퍽!! 퍽!!! 퍽!!!
“컥!...”
이 소리는 어느새 다가온 삼이와 맹이가 언데드 녀석을 후드려 찹찹 패고 있는 소리였다. 조그마한 녀석들이라고 방심했다가 녀석들에게 순식간에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맞고 있는 놈. 그 동안 순이가 매일 집에서 뒹굴었다면 이 녀석들은 반화와 다니며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다닌 장본인들이었다. 절대적인 파워에서는 순이에게 밀릴지라도 오히려 이런 싸움에는 능숙하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붙이다가 때를 맞춰 순이 뒤로 쏙 도망가는 녀석들.
어차피 이기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순이를 괴롭히기에 혼내 줬을 뿐. 아주 얍삽하게...
“크윽... 이 쥐방울만한 것들이...”
순이에게 맞을 때와는 달리 놈도 평정이 깨진 모습으로 둘을 노려봤지만 떡하니 버티고 있는 순이 때문에 섣부르게 달려들지도 못했다. 이미 독이 통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이대로 반화가 와서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이 죄여오는 그때 녀석은 놈을 발견했다. 자신의 발이 사라진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놈을..
스윽...
“?”
-?..!!! 크아아아악!!!!
쿵!!!
쿵!!!
언데드와 눈을 마주친 남쪽 괴물 레이브가 갑자기 발광을 하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반화의 영역은 완전히 방어가 되어 문제없었지만 덩치가 워낙 큰 놈이라 남쪽 대륙 전체가 들썩거리며 사방으로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쩌어억!!
“미친, 왜 저래??”
순이가 심각성을 깨닫고 언데드 놈을 노려보다가 결국 발광하는 놈을 진정 시키기 위해 발을 떼려는 순간, 언데드 놈이 도망가려고 차원을 찢었다.
쩌저저거!!!
“까꿍?”
“!!!!!!”
텁!!
야심차게 공간을 찢은 건 좋았는데 그 안에 하필이면 반화가 있었다는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어떻게...??”
“아아, 돌아오는 중에 차원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혹시나 해서 갔지.”
“제길... 아무 것도 못했는데....”
지구에 뿌린 악의는 실패로 끝났고 반화의 아이들을 제거하는 것도 망해버렸다. 너무 허무하게 잡혀버린 놈은 이를 갈며 반화를 노려봤지만 현재 놈은 반화가 손에 잡힌 자신의 목에 뭔 짓을 했는지 어떤 힘도 쓸 수가 없는 무력한 상태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겁하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괴물이군...”
“야!! 그놈 나줘!!”
“응? 또 왜 그 모습으로 있어?”
반화가 순이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썼다. 귀여운 털뚠이가 좋은데...
“내 맘이다! 흥!!”
“근데 저건 또 뭐야?”
발광하다가 멈춘 괴물 레이브를 고개로 가리키며 묻는 반화.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놈이나 줘.”
“여태 뭐했으면 이 놈이 아직도 멀쩡한 거야?? 응?”
“...쳇...”
신경질 부리던 순이가 반화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휙!
다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순이가 삐졌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며 꼬리를 팡팡 쳤다.
-엄마 삐졌또.
-순이 삐졌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는데 마치 반화를 약 올리듯 말하는 아이들. 녀석들은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었다.
“끄응...알았어. 자!”
휙!!
마치 물건 던지듯 손에 잡힌 언데드 녀석들 던져버린 반화.
-냐아아!!
팡!!!!!
“켁!?”
어째 사람 모습일 때보다 더 강한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반화를 등에 업고 언데드를 마구 밟아버리는 순이, 그리고 어느새 같이 참여하는 삼이와 맹이... 녀석들을 놔두고 반화는 눈치를 살살 보고 있는 레이브를 향해 다가갔다.
“니가 이랬어?”
-크워...어?
반화가 갈라지고 시뻘겋게 물든 대륙을 보며 녀석에 물었다. 지반은 뒤틀려 난장판이었고 거기에 용암까지 분출되어... 흡사 예전에 서 대륙에서 크라센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놈은 반화의 말에 눈치를 살살 보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 덩치로는 어디 도망가기도 쉽지 않았다.
“음... 이놈을 어쩔까...”
고기는 너무 많아서 탈이니 과연 쓸데가 있을까 싶은 녀석.
“기분이다. 야, 가 봐.”
-크워..?
“가라고 집에. 좋은 말 할 때.”
-!!!
쿵!!! 쿵!!!!
반화의 말에 미친 듯이 절뚝이며 달아나는 놈. 녀석과 반화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잘게 잘게 다져진 언데드 녀석.
“실컷 팼어?”
-냐아아아아앙~!
속이 시원하다는 듯 순이가 힘차게 포효했다. 옆에서 삼이와 맹이도 따라서 포효하긴 했다.
-냐아아앙~~
-아우우웅~!
평범하게 알려진 육식 동물의 포효는 아니었지만 녀석들은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