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치우다 #
188화
-응? 머디?
움직이기는 싫고 궁금하긴 한 삼이가 부푼 배를 부여잡고 또르륵 굴러 반화에게 다가왔다.
“??”
또롱또롱한 눈으로 반화를 본 녀석은 많은 의미가 함축된 눈빛을 쏘고 있었다.
“에휴...귀여워서 봐 준다.”
-헤헷.
통통해진 삼이를 안아서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이려던 반화.
“...알았어. 이것들이 아빠를 뭐로 아는 거야?”
자신을 보는 눈빛공격에 결국 털덩어리들을 공중으로 둥실둥실 띄워 걸음을 옮기는 반화.
...
“알아서 굴러들어 왔네.”
-뿌엉이다!!
소음이 일어나는 곳으로 다가가니 보이는 거대한 덩치의 흙덩어리. 그리고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부엉이 한 마리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를 피해 도망가다 이곳으로 온 모양인데... 하필이면 이곳으로 온 녀석이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마침 녀석을 찾으려던 반화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쯧... 애써 가꾼 도시를 다 부숴놓으려고 하네.”
쿵!!! 쿵!!!
자신의 영역으로 삼으려고 작정한 듯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영역표시를 하는 녀석을 엘프들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조금 후면 이 땅의 진짜 주인이 올 테니까 굳이 자신들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물론 세계수와 롱이가 펼쳐 놓은 방어막도 뚫지 못하고 있긴 했지만.
“주인!! 뭐해! 빨리 여기 차지하라고!”
“크아아아!!! 그게 쉽지가 않다!”
쿵!!!!
콰아아앙!!!
열심히 롱이와 세계수의 방어막을 내려치고 있지만 도무지 뚫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쯧... 쇼를 해라, 쇼를.”
그 모습을 보며 반화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면 얼른 포기하고 도망이나 갈 것이지. 미련하게 저게 뭐하는 짓인지...
“어이.”
쾅!!!!
콰아아앙!!!!
“...지금 나 씹힌 거??”
반화가 어이없다는 듯 놈을 쳐다봤지만 여전히 놈은 방어막을 두들기기 바빴다. 그러나 반화의 모습을 발견한 녀석도 있었다.
“!!!! 주인!!!!!”
파닥! 파닥!!!
아직 솜털이 가득한 날개를 열심히 파닥거리며 흙덩어리에게 날아가는 녀석. 부엉이였다.
“헉...헉... 뭐가 이렇게 단단한 가!!!”
“주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 도망을...!!”
“어딜 가려고?”
“!!!!!너, 넌!!?”
이제야 반화를 발견한 놈이 기겁하며 놀라는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반화.
“좀 맞고 시작하자.”
“??!?”
쇄애애액!!!! 퍽!!!!
“크억!! 자, 잠깐만!!!”
“왜?”
“아니! 왜 때리는 거야!!”
“넌 왜 때리고 있었어??”
“!!설마 여기가 네 영역??”
하필 찾아도 이런 괴물의 영역을 찾은 자신이 불쌍했다. 차라리 그냥 있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인 흙덩어리. 그러나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반화의 눈에 들어 온 순간부터.
“뭐, 그런 셈이지?”
“그, 그래?? 그럼 내가 그냥 물러나면...안 될까?”
“어, 안 돼.”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왜!! 왜 안 돼?? 그냥 간다니까?”
“어쭈? 사람 쳐 놓고 그냥 가면 되냐?”
“사람 쳐 본적이 없어 모른다!”
몰라서 당당한 녀석.. 그러나 녀석은 당당하면 안 되었다. 또 이런 건 기꺼이 친절하게 가르쳐줄 선생인 반화가 있었으니까.
“모르면 내가 알려 줄게. 어? 삼이야. 저기 부엉이 도망간다. 잡아 와.”
자신의 주인을 버리고 파닥파닥 날아가는 부엉이를 발견한 반화가 삼이에게 말하자 언제 배가 부풀어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소화시킨 삼이가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부엉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파닥!
파다닥!
파다다다닥!!
... 좀 귀여운 추격전이긴 했지만. 자기들은 굉장히 진지했으니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한다.
“자... 그럼.”
“시키는 대로 하겠다!! 때리지만 마라!!”
“응?? 에이... 그래도 좀 맞고 시작하자고.”
-아빠 또 때려요? 맹이도!
얘는 또 왜 이럴까... 반화는 아무래도 아이들 보는 앞에서 폭력은 조금 자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만...
“아냐, 안 때려.”
-왜요?
“... 안 때려도 말 듣는 다잖아.”
-그럼 말 안 들으면 때려도 돼요?
“...”
여기에 훌륭한 부모님은 어떻게 말할까? 때리지 말고 설득하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말이 안 통하는 자들이 요즘엔 넘쳐난다는데..
“안 되려나...?”
-??
“아 몰라. 그냥 맞을 것 같으면 때려 알았지?”
-응! 근데 아빠는 맞을 일도 없는데 때리잖아.
“...딸래미.. 이상한데서 예리하네.”
맹이의 허를 찌르는 공격에 반화는 잠시 말을 잃었다.
무슨 대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확 온 흙덩어리. 눈치만 살살 보다가 도망갈 타이밍을 잡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파닥거리며 날아오는 게 보였다.
-아뿌아아!!
“응? 잡았어?”
-웅!
퉷!!
어쩐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착각일까? 라는 생각이 든 흙덩어리는 이 다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음... 아마 먼지 나게 쳐 맞...!!!
“때리지 마라!!”
“...안 때려, 자식아.”
...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흙덩어리가 진정을 했고 부엉이는...
“쿨쩍...또 내 깃털이..”
조금 자랐던 깃털이 또 죄다 타버려 크로롱액으로 치료는 했지만 다시 솜털로 돌아가 있었다. 보송보송한 게 귀엽긴 했다.
“흙덩이, 나랑 일 하나만 같이 하자.”
“??”
반화의 말에 어리둥절한 흙덩이. 이내 반화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거래에 응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없었으니까.
.
.
.
크르르르...
“어...? 저게 원래 저랬던가??”
크아아왕!!!!
“어어어??! 피해!!!”
온순하기 유명하던 몬스터가 갑자기 달려들자 당황한 사람들이 황급히 놈을 피해 흩어졌다. 그러나 주변에 이미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몬스터들.
크르르...
“말도 안 돼...피그메르가 무리를 지어??”
순하기로 유명하고 혼자 다니기로도 유명한 피그메르..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 있는 피그메르는 그 사실과 매우 달라 보였다. 뒷걸음질 치며 그들을 둘러싼 몬스터들에게 벗어나려 했지만...
“!!”
크왕!!!!
...
특정게이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지구로 통하는 모든 게이트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며 점점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세계를 경악 시킨 소식이 터졌다.
“일본이... 침몰했다고??”
“예! 지금 위성으로 일본이 아예 지워졌다고 합니다. 항공으로 확인 결과도 같습니다.”
“미친!!”
하루아침에 일본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침몰해 버렸다. 흔적도 없이. 그곳에 가족이 있었던 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오열을 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을 수 있지?? 쓰나미라도 일어나던가, 지진이라도 있었어야 하는 거 아냐!?”
물론 이 일의 배후에는 반화가 있었다. 흙덩어리에게 영역을 주는 대신 일본 열도를 없애 달라고 한 것. 그전에 열도 안에 있던 괴물의 분신체는 먼저 제거해버렸다.
깔끔하게 정리한 열도를 확인하고 돌아 온 반화는 흙덩이 녀석에게 엘프의 도시 옆에 자리를 주었다.
“흠...일본은 정리가 되었는데, 이건 또 뭔 일이야.”
아무래도 그 놈들이 뭔가 하는 모양이었다. 이걸 그냥 놔뒀다간 지구가 난장판이 될 판이었다.
“흔적만 찾으면 되는데 말이지...이렇게 넓게 지랄을 하면 나보고 찾아오라는 거겠지, 당연히? 흙덩이 자식 도움이 될 때가 있네. 자! 어디 이제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고.”
쑤욱!!
찌지지직...쫘아아악!!!!
흙덩이가 남긴 차원의 상처를 다시 찾은 후 찢은 반화가 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응? 없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반화는 황당했다. 함정이라도 파고 기다릴 줄 알았는데 보이는 건 텅텅 빈 세계뿐이었다.
꾸물...꾸물...
“??”
푹!!!!
푹!!!
“얼씨구?”
함정을 파긴 판 것 같은데... 반화가 땅에서 솟아난 촉수에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럽게 기분 나쁜 함정이면서 허접한 함정에 짜증이 다 날 지경이었는데..
“크크크크... 오랜만이군.”
“응? 날 알아? 아아, 근데 일단 그 면상은 좀 치워 주지?”
“변했다고 하더니 전혀 변하지 않았군. 그 건방진 모습은!”
쿠웅!!!
촉수에 단단히 반화가 묶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애벌레. 놈은 반화의 그런 모습에도 실실 웃으며 발을 굴렀다.
“흐음... 뭐야 이것들은. 이게 다야? 그놈은 어디 갔어?”
“글쎄....? 어디 갔을 까?”
“뭐 보나마나 애들 건드리려고 갔겠지?”
“!!?”
알면서도 여기로 오다니... 뭔가 이상함을 느낀 애벌레.
“순이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 괜찮을라나? 음..”
“흥!! 그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네놈만 처리하면!!”
“이정도로 멍청하니 내가 그냥 놔준 것 같은데.... 인(?)생이 불쌍해서 살려줬더니 아직도 분수를 상황을 모르네.”
콱!!
“보나마나 그 놈한테 속아서 여기 남아서 녀석을 기다리겠다고 했겠지. 안 그래? 그럼 그 놈이 내 약점을 잡고 돌아온다고.”
“!!!”
“근데 그것도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어야 되는 거지... 이래서야 되겠어?”
화르르륵!!!
“끄아아악!!!!”
반화의 몸에서 생겨난 검게 타오르는 불꽃이 몸의 촉수를 따라 놈을 뒤덮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에 놈이 발악했지만 검은 바다를 먹고 얻은 이 불은 녀석 정도로는 절대 끌 수 없었다.
“나를 아는 놈이라면 분명 무식하게 들이대지 않았을 텐데... 그걸 그 녀석도 모르지 않았을 테고...”
아마 놈은 애초에 자신이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 반화에게 어떡해서든 고통을 주기 위해 이 놈을 속여 여기에 뒀을 테지. 돌아 왔을 때 반화를 비웃기 위해서.
“아무튼 머리하난 짜증나게 굴리는 녀석이란 말이야.”
화르르르... 타닥...
애벌레 놈을 태우고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분신체에 숨어 도망치려던 놈은 순식간에 따라온 불꽃을 보며 자신이 꿈꿨던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너무 늦어 버렸다. 이미 자신의 모든 분신체가 다 타버렸으니까.
“...놈은 알고 있었군...”
“와...그걸 이제야 알았어? 쯧.”
놈의 말에 반화는 혀를 찼다. 정말 뇌가 애벌레 수준인 놈이었다. 이러니 이용을 당했겠지만.
화르르르...
마지막 한 놈까지 몽땅 태워버린 후에 또 남은 것이 없는지 확인까지 꼼꼼히 한 반화.
“여기까지야 뭐, 짐작한 일이고... 그놈은 어떻게 되었을라나?”
머리를 굴리는 놈이니 승산 없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과연 그 승산에 순이와 아이들의 힘을 제대로 계산했을지는 글쎄...?
삼이가 요즘 참 많이 컸는데...
.
.
.
“다시 보는군. 그땐 내가 좀 신세가 많았어?”
-냐아?
스르륵..
귀여운 고양이 순이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순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겁도 없네?”
“겁은 그쪽이 먹어야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스윽...
-엄마? 쟤 뭐야?
“우리 삼이 장난감?”
-우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