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치우다 #
187화
파스가 일본을 수색하고 세계는 방어 마법진의 보급으로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상했지만 한국의 일 때문에 묻혔던 것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국가적 생산이 멈춰있다는 사실은 가장 먼저 파스가 알아차렸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싹 다 멈췄습니다.]
“... 그 정도 시간은 없었을 텐데?”
배신자 그 놈에 틈을 준 건 정말 찰나였다. 그 찰나에 일본을 그런 식으로 지배하는 사치를 놈이 부렸을 일은 없었다.
“뭐 때문인데?”
[원인을 지금 파악 중인데...얼마 전 갑자기 대규모로 사람들이 실종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루트를 찾아봤는데 정말 그냥 사라져 버려있었습니다. 마치 공간을 이동한 것처럼.]
“공간 이동? 뭘 하는 거지?? 힘없는 인간 영혼 좀 먹는다고 달라질 건 없을 텐데.”
반화가 생각하기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그런데 언데드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데드랑 달라?”
[네, 언데드 보단 몬스터에 가깝습니다.]
“몬스터? 인간들이?...?”
반화가 파스의 말에 이상한 듯 말했다. 인간들과 몬스터는 확실히 구조가 달라 파스가 착각 할 리가 없었는데.. 거기에 언데드와도 한참이나 차이 났으니.
[몇 놈 잡아서 분석해 봤는데 몬스터의 구조와 유사했습니다.]
“그럼 뭐가 하나 또 넘어왔었다는 얘긴가? 쯧... 근데 그놈은 왜 거기로 갔을까.”
일본을 콕 집어 이동한 걸 보니 뭔가 알고 갔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들 가져 와봐.”
[네.]
스륵..
파스가 불러 온 사람의 모양을 한 몬스터.
“음? 이건 또 뭐야... 아틀란티스 놈이 아니네.”
[그렇습니까?]
반화의 말에 파스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아틀란티스에 사는 놈이 이렇게 잡다한 마나를 가지고 있을 리 없지. 주로 여기저기 떠도는 괴물새끼들 중에서도 하급들이 이런 기운을 가지고 다녀.”
[아... 그러고 보니 분석이 어려웠던 이유가 그거였군요. 마나의 난잡.]
“아마도 이놈은 또 다른 놈인가 보네.”
배신자 놈과는 다른 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에서 같이 발견 된 걸 보니 둘이 뭔가 연관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반화.
“일본 전체가 이놈들로 가득 찼다고?”
[예, 살아 있는 인간이 없습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라하나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것도 선진국이. 비록 능력자들이 나타나고부터 침체되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는 선진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나라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것이다.
“어지간히 겁쟁인가 본데?”
일반적인 괴물과는 좀 다른 스타일이었다. 일단 괴물들은 쳐들어와서 한번 헤집고 나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 놈은 철저하게 아무도 모르게 야금야금 집어먹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귀찮은 놈이네. 둘 다.”
하나는 미친놈, 다른 하나는 겁쟁이... 극과 극인데 둘이 만나면 꽤 성가실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일본을 정리 해야겠는데...”
지금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면 또 세계가 불안해 할 수 있으니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물론 반화가 거기에 신경 쓸 인간은 아니지만. 괜히 오해 받는 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음... 이 녀석들은 안 되겠고..”
반화가 호수 주변에서 난장을 피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본 하나쯤 날리는데 저 중에 하나만 풀어도 충분하겠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는 녀석들이 많으니 부적합했다. 이번에는 얼굴을 보여 줘야 자신이 오해를 받지 않으니 아예 새로운, 반화와 관계없는 녀석이 필요했다.
-응? 뭐가 안 돼요??
“어디 하나 박살 낼 곳이 있어서.”
-어디! 어디!?! 아빠아아아!
맹이가 궁금해 하기에 슬쩍 알려 준다는 것이 삼이의 귀에까지 들어 간 모양이다. 득달같이 달려 온 삼이가 부비적거리며 반화를 보챈다.
“넌 안 돼.”
-왜애애~
“니 얼굴 다 알려지려고? 안 돼.”
-힝...
반화의 말에 실망한 삼이가 풀죽은 모습을 보였다가 반화가 신경 쓰지 않자 금세 포기하고 다시 호수로 날아 가버렸다.
“점점 영악해지고 있어... 우리 맹이는 그러면 안 돼? 아빠한테 막 연기 하고.”
-응!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화의 품에 안긴 맹이를 쓰다듬어 주며 반화는 어디서 일본을 쓸어버릴 놈을 구해야 될지 고민했다.
.
.
.
“어쩔 셈이지??”
“일단 네 그 잡다한 찌끄레기들부터 정리해. 조금이라도 놈이 우리 흔적을 늦게 찾을 수 있게.”
“뭐?? 찌끄레기??”
“그래, 그것들부터 치워 봐.”
“...알았다. 그 다음은?”
언데드의 말에 조금 열 받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수긍한 놈이 순순히 말했다.
“생각해 봐야지. 놈을 어떻게 흔들 건지. 정면으로는 절대 안 되는 거 알지?? 나도 회복 좀 해야 되고.”
“그 놈 옆에 있는 것들부터 없애자며?”
“그것들조차 회복되지 않는 상태로는 안 되니까 하는 말이잖아. 네 그 찌끄레기들을 쓰려고 했다면 정말 멍청하다고 얘기해 주고 싶군. 그딴 건 놈 근처에도 가기 전에 끝날 거야.”
“...”
계속해서 신경을 거슬리는 말투에 괴물 녀석도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네 놈도 뭐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더럽게 잘난 척 하는 군.”
“너보단 잘났으니까.”
“한번 해보자는 거냐.”
의기투합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으르렁 거리는 둘. 그러나 그것도 잠시 쓸모없는 힘 빼기라는 걸 깨닫고 다시 성질을 죽이고 회의를 했다.
“게이트를 이용해야겠어. 지구는 너무 좁아. 다른 세계를 이용해야지... 다행히 그 쪽에 대한 지식은 있어서 편하겠군.”
“네 놈도 그쪽 출신인가??”
“아아, 그건 아니고. 우연히 내 힘이 뿌려진 곳이 거기였지. 거기에 있던 강한 영혼이 마침 남아 있어서 오염시킨 후 이렇게 부활 할 수 도 있었고 말이야. 재료가 좋았지. 그래도 다시 살아나는데 꽤 걸렸지만.”
“네놈은 몇 번째로 죽은 거지, 그놈한테?”
“글쎄? 뭐... 그놈이 검은 바다를 먹은 줄 모르고 덤볐다가 된통 당했다가 한참 뒤에 죽었으니 꽤 오랫동안 살아있긴 했지.”
언데드의 말에 괴물은 이 녀석도 괴물임을 깨달았다. 그 동안 했던 행동이 허세가 아니었음을. 자신은 검은 바다를 먹었다는 그 놈을 만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호랑이 앞의 쥐처럼 그저 두려움에 휩싸여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 놈은 그걸 이겨내고 달려들었다는 얘기니까. 그렇다곤 해도 지금와선 자신도 그렇게 나약하게 있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
.
.
-아빠 뭐해??
“쓸모 있는 놈이 없을 까 생각 중이야, 왜 더 안 놀아? 간식 줘?
-아냐! 간식이 아니야!
“그럼 밥 줘? 고기?”
-응!!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모양이다. 결국 쓸모 있는 놈을 떠올리지 못한 채 식사를 준비하는 반화.
치이이익!
“먹어도 먹어도 안 줄어드네, 이건.”
크로제 고기를 구우면서 재고를 확인한 반화가 질린다는 듯 말했다. 크라센 고기도 사실 아직 좀 남아있어 색다른 고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너무 물리니까.
“흐음... 어디 또 나갈...아!”
-웅!? 삼이 많이 안 먹었어!
“...아니야, 그냥 많이 먹어.”
-진짜??
괜히 찔린 삼이의 빵빵한 볼을 쓰다듬어 준 반화는 방금 떠올린 녀석이 적합할지 생각해 봤다. 어느 정도 지능도 있으면서 알려질 일이 없고, 일본을 날려버릴 정도의 무력을 가진 놈.
“그놈, 다른 세계에서 도망쳐 온 그 놈을 이용해야겠어.”
스승 놈 무덤을 보러 갈 때 만났던 그 녀석이면 딱 적당할 것 같았다. 이 곳 지배자들의 단점은 너무 멍청하다는 거였는데 그 녀석은 옆에 그 부엉이 같은 놈도 있고 그놈도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 딱 이었다. 말도 통하니...
“응? 그러고 보니... 그놈 어디서 도망쳐 왔다고 한 거지?”
그때 분명 괴물에게 침략당해 쫓겨난 것이라고 얘기 한 건 기억이 났다. 근데 분명 제대로 차원을 봉합하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설마 그 놈의 세계를 침략한 놈이 일본에도 마수를 뿌린 걸까?
“그럴 듯한데? 어차피 세계하나 먹고 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마침 차원에 상처 난 부위도 발견했으면 애써 다른 곳 찾는 것 보다 구멍이 이미 난 곳을 확인하는 게 편할 테니.”
한 번 확인도 해볼 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반화.
“...근데 어디 있더라?”
제대로 길을 보고 다닌 게 아니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삼이야, 혹시 그 부엉이 기억해?”
-뿌엉이?
“어, 니가 바짝 구웠던 녀석.”
-으음... 아!!! 기억났어!!
“어디 있는지 알아?”
-알아! 삼이는 알고 있지!
“진짜?? 어떻게?”
이 산만한 아이가 자신도 기억 못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반화. 재차 물어 봤지만 삼이는 확신했다.
-당연히 알지! 거기는 재미있었으니까! 붕붕 떠다니고~
“아아... 그래?”
그 붕붕 뜨는 것 때문에 기억을 했구나...
“그럼 아빠랑 잠깐 거기에 갈까?”
-진짜!? 갈래!
반화는 모르고 있었다. 그 놈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는 사실을.
“일단 밥부터 든든하게 먹고 가자. 금방 갔다 올 거니까 뭐...”
천천히 여행하는 것처럼 갈 생각이 아니라 여유로운 반화는 굽던 고기를 마저 구웠다. 아직 배가 덜 차 보이는 아이들이 그를 초롱초롱 보고 있었으니까.
“넌 좀 식탐이 늘었다??”
-꾸옹?
크기를 줄이고 나서 오히려 식탐이 늘어난 것 같은 롭스가 복병 중 하나였다. 굽는 족족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고기 덕분에 몇 시간이나 굽고 나서야 끝난 식사.
-끄엉...
“...에휴..”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드러누운 삼이를 보며 한 숨을 쉰 반화. 아무래도 출발하는 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쿠웅!!!!
“응?”
갑작스럽게 들린 굉음에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반화. 엘프들이 있는 곳에서 난 소음이었는데 늘 조용조용하는 녀석들이 낼 굉음은 아니었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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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를 통해 놈을 흔들자고?”
“보니까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졌어. 지구라는 곳에 애착이 생긴 것 같더라고.”
“하!... 그놈이?”
“그렇다. 일단 네놈이 가진 그 분신체로 그 곳의 몬스터를 감염시켜 게이트로 집어넣는 거다. 나는 그녀석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놈 주변에 있는 놈들을 사냥하지.”
“차라리 반대로 하는 게 어때?”
괴물이 조금 불안한지 배신자를 향해 말했다. 아무리 분신체라고 해도 그 놈이면 자신을 찾아 올 것 같았다. 게이트를 통한다고 해도.
“뭐야 쫄았어? 이 제안은 네가 먼저 하자고 했잖아?”
“내가 쫄았다고?? 흥! 웃기는 군. 네 말대로 하지.”
“그러던지.”
무덤덤하게 말하는 배신자의 입가에 미소가 잠시 걸렸다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