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스승의 무덤 #
180화
“응? 저건 뭐야.”
반화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아닌 이상한 것이 보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기운은 그놈과 비슷했는데, 역시나 아닌 걸까 하는 순간...
우드드득!
드득! 뿌득!
“...뭐야, 너.”
“리치인가요?? ...어!!?”
그냥 괴상한 덩어리 같았던 놈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모습을 변화시켰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반화가 기억하는 어떤 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에나스도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흐으음... 너 였나?”
“...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죽었으면 조용히 잠이나 자지 왜 깨어났어? 그딴 꼴로.”
“흐하하하하!! 여전하군, 넌. 스승한테 그딴 말버릇이라니. 그 버릇 고쳐주고 떠났어야 했는데.”
“네가? 과연 할 수는 있었을까? 늙어서 힘도 없는 게.”
“큭! 그랬지... 내 평생 그런 놈은 네가 처음이었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 에나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둘 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 같은데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약속을 하고 만난 것 같았다.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언데드가 된 것도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나도 모른다, 이놈아. 나도 얼마 전에 깨어났어.”
“미친... 묘나 구경하려고 왔더니 벌떡 일어나 반겨주네. 아주 반가워 죽겠어.”
거칠게 표현한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더 거칠게 표현하고 싶었다. 스승이라는 놈의 무덤을 찾은 것도 그리움 때문이 아닌데, 저 면상을 보게 되니 더욱 짜증이 났다.
“나도 별로 기분이 좋진 않군. 하필 깨어나자마자 본 게 너라니. 악연은 악연이야. 흐흐흐, 흐음? 그 옆의 녀석은 뭐지? 엘프??”
“오랜만이네요.”
“음? 나를 알아?”
에나스의 말에 반화의 스승이라는 언데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아는 엘프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아아~ 그 엘프? 그 중 하나였나? 엘프는 그때 말고 딱히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워낙 약한 놈들이라서.”
“... 맞아요.”
묘하게 긁는 말에 에나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예전에는 그 분위기 때문에 말도 못 걸어 봤지만 막상 입을 여는 모습을 보니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람을 긁는 재주가 있는 사람...아니 언데드였다.
“쪽팔리게 왜 언데드가 된 거야? 뭐가 억울해서?”
언데드가 되기 위해서는 원념이 강해야 한다. 이 생에 미련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스승이라는 놈이 여기에 미련을 많이 두었다는 얘기. 정작 떠날 때는 쿨하게 떠나 놓고 이제와 언데드가 된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사기가 강한 곳도 아니었는데...
“편안히 잘 잠들었는데 말이지... 나도 모르겠군. 내가 언데드가 될 이유는 없는데 말이지.”
스승도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반화가 자신을 뛰어 넘는 걸 보며 힘에 대한 미련을 버린 후 아주 편안히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까지 해봤다. 그러나 아니었다. 자신은 분명 편안히 잠들었다. 언데드가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화도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스승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익숙해서 언데드가 되며 원래 자신이 가진 기운을 풍긴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느껴 보니 스승의 기운과는 달랐다. 확실히 스승 놈의 기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운이었기에 그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기가 뭉친 기운도 아니니...
“... 분명 익숙한 기운인데 말이지...”
오래되었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스승 놈의 기운은 아닌 게 확실하니 또 다른 기억 속 기운이라는 건데... 언데드로 만들 수 있는 기운...!
“어? 그 새끼??”
“응? 허허, 이런 버릇없는 제자 같으니라고. 새끼??”
“아니, 너 말고. 그 새끼가 가진 기운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거야??”
“뭔 소리냐? 쯧...”
반화의 말에 스승이라는 놈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가 혀를 찼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얼마나 지난 거냐?”
말을 돌렸다.
“한 천년? 신경 쓰지 마. 곧 다시 잠들게 해줄게.”
“??? 허허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에이... 자다가 깨서 기분 나빴을 테니, 내가 깔끔하게 재워 줄게.”
“...”
스승이 조금씩 반화와 거리를 벌렸다. 천년이나 지났으면 괴물 같은 제자 놈이 더 괴물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거기에 인간이 천년이나 살아 놓고 아무 변화도 없는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더 괴물이 되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놈이 손목을 우둑 우둑 풀며 다가오는 모습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깨어났는데 세상 구경은 좀 하고 가야되지 않겠나?”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좋지 않겠어? 비참하게 언데드가 뭐야? 응?”
“허허헛,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헙!”
후우웅!!!“
“에이... 깔끔하게 그냥 한방에 가지.”
“미친 제자 놈이!!!”
“미친 걸로 치면 스승 놈, 너도 만만치 않았지! 깔끔하게 가자고!!”
다짜고짜 지른 반화의 주먹을 기겁하며 피한 스승이 소리를 질렀지만 반화는 아랑곳없이 다시 주먹을 질렀다.
후우우웅!!!
“큭!!”
겨우 겨우 이어진 반화의 주먹을 피한 스승 놈.
“깔끔하게 가자니까?”
“어딜 가! 이 미친놈아! 못 본 사이 더 미쳤구나!”
“시끄러.”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반화에게 스승이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
“?”
“진짜 그러지 말고 구경이나 좀 시켜줘. 이왕 깨어난 김에 그 정도는 되잖아?”
“흐음...”
스승의 간곡한 말에 반화가 잠시 멈추고 고민에 빠졌다. 사실 진짜로 보내려는 속셈은 아니었다. 어떻게 반응하려는 건지 보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반응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했다. 반화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돌아왔다는 거다. 반가운 녀석이...
-아빠아아아~~
“응?”
그때 마침 실컷 놀다가 날아오는 삼이와 맹이.
“잘 놀았어?”
-응! 응! 여기 짱 재밌어!
파닥파닥 거리며 좋아하는 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반화의 모습을 본 스승 놈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제자 놈에게 저런 면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그 곳에서도 저런 털 달린 것들을 좀 좋아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돌아야겠네.”
“나도 같이 가도 되나?”
“흐음... 그 몰골 좀 바꾸고 말하지?”
스승의 지금 몰골은 뭐랄까... 조금 오묘했다. 여기저기 다른 피부들로 기워 짜깁기한 것 같은 괴상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언데드로 부활하기 위해서 흡수한 몬스터들이 다양해서 그런 것 같은데 반화 일행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 것이지 반화의 가족들이 보면 기겁하며 기절할 지도 모를 모습이었다. 그나마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진 얼굴이 아니었으면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거? 흐음...그냥은 안 되는데. 재료가 좀 필요하다. 기다려.”
“그러던지.”
스승 놈이 제대로 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잠시 사라지고.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아빠! 저 걸레 뭐야?
“...걸레?”
-응! 움직이는 걸레! 청소하려고 구한 거야?
삼이의 눈에는 스승 놈의 몰골이 걸레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냥 세계 구경 좀 시켜 주려는 거니까 삼이랑 맹이는 괜히 건드리지 마?”
-우움...응!
“그래그래, 착하네.”
-그럼... 저거! 별장에 가져다 줘! 착한 짓 했으니까!
“...”
이제 협상도 할 줄 아는 삼이...
“그, 그래.”
반화는 삼이가 가리키는 이리브리움을 조금 떼어내 들고 가기로 했다. 그냥 풀어버리면 호수가 망가질 테니 적절한 조치는 해야겠지만 조금 생각하면 괜찮은 게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생각은 해골에게 미룰 거지만.
잠시 후 그래도 어느 정도 멀쩡한 몸이 되어 나타난 스승 놈.
“...반화님. 괜찮을까요?”
“지 취향인데 놔 둬. 집에 해골도 있는데 뭐.”
하긴 비주얼로 따지면 해골씨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해골씨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반화 가족도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가자.”
“오..? 지금 뭔 짓을?”
공간을 찢어버린 반화를 보며 스승 놈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면서 공간을 왜 찢은 건지... 그것도 차원의 공간을...
“집이 다른 세계에 있어.”
“...?!”
깜짝 놀란 스승 놈.
“설마 고향을 찾았어?? 어떻게?”
“잘.”
“!!”
자세한 설명 따위 반화가 해줄 리가 없었다.
아이들과 에나스를 먼저 들여보낸 반화는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그도 찢은 공간틈새로 들어 가버렸다.
“... 더 괴물이 되었군...”
작게 중얼거린 스승 놈이 그런 반화를 따라 천천히 사라지고 찢어진 공간도 언제 찢어졌냐는 듯 사라졌다.
.
.
.
“쉽군, 쉬워.”
“기술은 고도로 발전 되었지만 개인은 약해.”
“그래도 모른다. 정보에 따르면 강한 놈은 강하니 조심해서 접근한다.”
“한국이라는 곳은 어쩌지? 전쟁을 일으킬 것인가?”
“아니, 그 곳은 일단 피한다.”
“왜?”
“우리 역할은 잠식이다. 한국은 잠식하기 좋지 않아. 들킬 가능성이 높다.”
“알았다.”
딱딱한 기계 같은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일본인들. 그들은 일본 정부 각각의 위치에서 정점에 다다른 자들이었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알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일단 이곳을 완전히 잠식한다. 그 다음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그때까진 조용히 있도록.”
“알았다.”
.
.
.
“응? 니들 눈은 왜 그래?”
“쿨쩍... 저 냥아...흡!...아냐.”
“??”
반화는 집에 돌아 와보니 눈이 밤탱이가 된 루네스와 령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치고 받고 싸웠어? 애들도 아니고, 쯧.”
“...”
할 말은 많았으나 옆에서 노려보고 있는 순이 때문에 차마 말을 하지 못한 둘은 억울해 죽을 거 같았다.
-냐아??
툭!
“어어..? 이.... 이건?”
순이가 이상한 놈(?)이 하나 딸려 왔기에 한번 툭 건드려 보았다. 그리고 그 이상한 놈(?)은 그런 순이를 보며 경악했다.
“왜?”
“뭐 이런 게 있을..?”
-냐아...?
‘이런 게’까지 말을 할 때 순이를 손가락질 한 스승 놈.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닐 텐데...
퍼어억!!!
“컥!!”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가리키는 손가락에 솜방망이를 날려버린 순이.
‘으으...저 깡패!’
그 모습에 반화가 없을 때 일어났던 일이 떠오른 루네스와 령이가 흠칫했다.
“크억....”
이상한 각도로 휘어진 손가락을 부여잡고 스승 놈이 괴로워했다.
“...쯧... 언데드가 되더니 더 멍청해졌네. 언데드가 뭔 고통을 느껴?”
“응...? 그러네?”
뚜둑!
휘어진 손가락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스승 놈이 멀쩡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오셨습니...까? 음??”
해골씨가 반화의 인기척에 올라왔다가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그저 묘나 한번 구경하고 올 줄 알았더니 죽은 놈을 살려 데려오다니... 자신의 마스터는 정말...이상했다. 그리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으면서.
“오?? 이 녀석도 데리고 있는 거냐??”
스승 놈도 해골씨를 보고 반가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