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스승의 무덤 #
179화
“그럼 화를 사람처럼 내지, 괴물처럼 낼까?”
“전에는 괴물처럼 냈어요.”
“...”
반화가 괜히 한 마디 했지만 에나스의 반박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생각해도 조금 감정적이었으니까. 예전 같았으면 화가 났어도 이런 동요를 보이진 않았을 거다. 그냥 가서 분노를 해결하긴 했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남이 알아채는 일은 없었을 텐데..
“시끄러, 자! 얘들아! 밥 먹자.”
괜히 말을 돌리는 반화.
-꼬기! 꼬기!
“이 육식 냥아, 고기 좀 그만 먹어.
-힝...
온통 풀떼기 밖에 없는 식단에 삼이가 실망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살며시 웃은 반화가 은근슬쩍 수육을 꺼냈다.
“자.”
-!!! 꼬기다!!!
“천천히 먹어. 쌈도 싸서.”
-움움!
....
한바탕 식사가 끝나고 부푼 배를 감싸 쥔 삼이와 맹이.
“엘프가 고기에 쌈장 찍어먹는 모습이라...”
“그거 종 차별인거 알죠?”
“종 차별에는 아직 관련 법 없어.”
“췟...”
동글동글 배에 한가득 집어넣은 아이들을 굴려서 텐트 안에 넣은 반화가 멀뚱 멀뚱 서 있는 에나스를 돌아 봤다.
“뭐해? 안 들어 와?”
“!! 네? 아...네.”
이상한 에나스의 반응에 반화가 인상을 잠시 썼다가 먼저 휙 들어 가버린다. 조심스럽게 뒤 따라 들어간 에나스는 예상외의 풍경에 탄식을 흘렸다.
“아... 넓구나...”
호텔 VIP룸은 뺨칠 정도로 넓은 공간에 방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응큼한 엘프 같으니라고. 니 방은 저 끝 방이야.”
“으, 응큼?”
에나스가 반화의 말에 잠시 반항 하려했지만 반화는 이미 자기 방으로 아이들을 안고 들어 가버렸다.
“...”
뻘쭘하게 남은 에나스
“이럴 거면 왜 텐트에서 자는 거야? 그냥 집에 갔다가 오지.”
하긴 캠핑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시설에서 잘 거면 집에 가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가는 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반화의 행동에 에나스는 실망하며 고개를 젓고 반화가 가리킨 방이 아니라 바로 그의 방 바로 옆에 들어갔다.
.
.
.
어느 한 남자의 폭로 덕분에 뒤에서 나라를 움직이던 일본의 한 가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좋은 쪽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문은 지금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괴물에 의해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카아아!
-카아!!
정찰을 끝내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모두 차원 너머의 주인에게 넘겨준 놈은 이미 소멸했다. 그러나 그 정보를 통해 주인은 결정을 내렸다. 먹기 좋은 세계라고 빠른 판단 후 놈은 자신의 선발대로 자신의 병력을 일부 투입 시켰고 정보를 토대로 인간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아직 전면전은 좋지 않았다. 녀석은 신중하게 조금씩 조금씩 내부를 갉아먹으며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게 준비를 하는 타입이었다. 이미 예전에 한번 잘못 된 곳에 발을 담그다가 제대로 혼난 적이 있었기에 먹이를 고르는 건 신중해야 했다.
콰득!..
“끄러..억...”
우적!!..우적!!
남아 있는 인간들을 모두 집어 삼킨 괴물들이 갑자기 온몸을 꿀렁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꿀렁임을 멈춘 놈들은 원래의 모습에서 자신들이 삼킨 인간들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온통 알몸인 그들은 잠시 아무 작동도 하지 않다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이 세계의 주민으로 흡수되려 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이군.”
“게이트라는 건 뭐지.”
“전쟁,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군.”
“잘 됐군. 이 세계의 힘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딱딱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놈들. 그때 그들이 있는 쪽으로 뭔가 다가오고 있었다.
“특수국이다!!! 국가 내란죄로 카츠나로 일가의 모든 것들은 현 시간 부로 제한된다! 얌전히!...!?”
일본 능력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국, 그들이 카츠나로 가문의 만행이 폭로되고 나서 결국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 그들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출동했다. 그러나 그들과 마주친 자들은 카츠나로 일가가 아니었다. 아니 겉모습은 카츠나로 일가가 맞지만 내용이 전혀 달랐다.
“먹이가 더 생겼군.”
“뭐??”
예상하지 못한 말에 특수국 요원들이 잠시 당황했지만 메뉴얼대로 카츠나로 일가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점점 포위망을 좁혔다.
“반항할 생각이라면...!?”
“컥!!”
가만히 있던 카츠나로 일가들이 특수국 요원이 말하는 것을 끊어버리며 순식간에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요원들이 제대로 된 반응도 하지 못할 만큼 빨라 반항은커녕 비명도 비르지 못하고 그들에게 ‘먹혀’ 버렸다.
“꺼어억...”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사람 머리통만큼 벌어졌던 입을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놈들.
“이쪽이 더 좋겠군.”
“잠식 루트를 수정한다.”
....
.
.
.
늘어지게 자고나서 일어난 반화 일행은 다시 차에 타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파스, 이쪽으로 가면 되는 거 맞아?”
[예, 맞습니다. 쭉 진진하세요.]
파스 내비게이션을 따라 이동하며 반화가 계속해서 물었다.
“왜 자꾸 묻는 거예요?”
옆에 있던 에나스가 그런 반화가 이상한 듯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그냥 가면 된다고 하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그래.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처음 같은 느낌이 이 방향에 있거든.”
“그게 뭔데요?”
“몰라, 기억이 안나.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파스가 말한 방향에서 풍겨오는 기운 때문에 반화는 연신 인상을 쓰며 운전했다. 그 덕에 차가 지나가는 곳은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근데 인간들의 차는 이렇게 못 달리지 않아요? 내구성이야 그렇다 쳐도...”
하긴 거의 전투기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으니 에나스가 궁금해 할만도 했다. 하늘에 있으면 그나마 속도감이 덜 하겠지만 땅에 있으니 그 속도감이 어마어마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승차감이 나쁘지 않다는 것?
“마법하고 이것, 저것 섞었어.”
“그게 되요?”
“개조했거든, 그 놈 뼈로.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티지.”
여행을 떠나가 전에 크로제의 뼈를 이용해 그가 새롭게 개조한 후라 이정도 성능이었다. 그전의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튼튼하기만 할 뿐 이었는데 지난번 해골씨가 개조한 방법을 이용해 새로운 재료로 새롭게 개조해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굳이 차로 만든 건 반화만 할 수 있는 사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 넓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차로 빠르게 이동하는 게 가능했으니 그 기능은 나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반화님이 느꼈다는 그 기운은 뭘까요? 예전 일 뭐 생각나는 것 없어요?”
계속해서 말을 거는 그녀, 지루한 차 여행이 될 수도 있었지만 에나스 덕분에 그래도 나름 심심하진 않게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음부터 차로 여행하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또 자고 있었으니까.
“딱히 기억엔 없는데 말이지... 비슷한 느낌을 예전에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선 말고.”
“여기 말고요? 그럼 지구요?”
“아니, 거기도 말고.”
“...?? 그럼....!!!”
“괴물들이 있던 곳에서 꽤 고생하며 잡은 녀석의 기운인데...? 여기 있었네.”
점점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운에 반화는 확신했다. 이건 그 놈의 기운이라고.
“설마 괴물이 여기에...?”
“아냐, 그놈은 죽였거든.”
“??”
그럼 그가 느낀 기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에나스는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반화 같은 괴물들이 살던 곳에 있었던 놈이라니...
[거의 다 와갑니다. 저 앞부터 이리브리움으로 뒤덮인 곳을 지나게 될 겁니다.]
“이리브리움이 뭐야?”
[사물을 반사하는 물질 중 하나입니다. 특이하게 생물체에 흡수가 되면 생체 내의 구성물질을 보두 이리브리움으로 바꿔버리기도 하죠. 그래서 이리브리움이 있는 곳의 생물체들은 살기 힘듭니다.]
“아아, 해골이 말한 게 그건가 보네.”
거울 숲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 파스가 말하는 이리브리움으로 만들어진 숲일 것이다.
“근데 애초에 그게 있었으면 생물이 없었어야 하는 거 아냐?”
[이리브리움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물질이 아닙니다. 저에게 연구 기록이 조금 있는데 그것에 따르면 차원 균열이 닫히면서 생기는 에너지가 이리브리움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차원 균열...? 그럼 거기에서 차원 균열이 생겼다는 거네.”
[그렇게 되지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반감기에 따라 자연적으로 분해됩니다. 꽤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주변에 이리브리움을 옮길 생명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고립되며 사라지죠.]
파스의 다음 설명은 굳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중요한 건 차원 균열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다.
“그 녀석 같은 놈이 넘어 온 건가..?”
하필 이리브리움이 있는 곳에 그놈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놈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의심이었다.
“분명 내가 삼켰는데 말이지... 똑같은 놈이 있을 수 있나?”
세상이 넓으니 불가능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확률 상 불가능하긴 했으니 더욱 궁금해지는 반화.
어느새 정면에는 빛을 반사시켜 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숲이 보였다.
“와.... 예쁘네요...”
“차에서 안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중독되면 엘프 동상 하나 만들어 질 테니까.”
“핫!...”
반화의 나직한 말에 재빨리 창문에서 고개를 멀리 두는 에나스.
“쫄기는...”
코앞까지 다가온 이리브리움의 숲은 겉으로 보기엔 참 아름다웠다. 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이 났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 느낌은 사라지고 섬뜩함이 느껴졌다. 무생물에게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들이 어느 순간 아무 말 없이 주는 공포를..
이리브리움으로 만들어진 숲은 가까이 갈수록 더욱 그랬다. 에나스는 차 안에서 숲을 봤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점점 몸은 차문과 거리를 두었다.
-우움...
그 움직임에 깨어난 삼이.
-여기 어디야?? 으움...응???
눈을 비비며 일어난 삼이가 창을 보더니 눈이 갑자기 왕방울만 해졌다.
-우아아아!!! 이모, 이모! 일어나 봐! 빤딱빤딱 거려!
무생물에게서 받는 두려움은 생각이 깊을수록 공포로 다가 온다. 그러므로 삼이와 맹이에게는 소용없었다. 단숨에 튀어나가려는 두 아이를 겨우겨우 말리는 에나스.
-히잉... 나가고 찌뿐대..
“반화님..”
아이들은 나가려고 칭얼거리고 에나스는 나가지 않으려고 칭얼거렸다.
“끄응... 사고 치지 말고, 무슨 일 생기면 아빠 불러 알았지? 파스를 부르던지.”
-응!응!
결국 반화는 녀석들을 숲에 던져두고 일단 스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에나스와 둘이 가기로 했다. 이리브리움이 무서운 물질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삼이와 맹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잘만 놀겠지. 숨바꼭질하기에 딱 좋은 곳이네.”
에나스의 걱정에 반화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녀석들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흐음... 다른 아이들도 불러줘야겠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반화는 공간을 찢어 별장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삐익?
“저기 가서 애들이랑 놀아.”
제일 먼저 다가온 동이가 고개만 내밀고 주변을 살펴보더니 푸드덕 거리며 삼이와 맹이에게 날아갔다.
“응?”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반화가 스승의 묘 쪽에서 느꼈던 묘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