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다른 세상에서 온 녀석 #
177화
맹이도 끙하고 힘을 주며 불꽃을 일으키더니 양 솜방망이 각각에서 반화처럼 넘실거리는 기운을 뽑아냈다.
물론 반화가 가진 힘과는 달랐지만 녀석들은 그냥 매번 반화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났다. 녀석들은 하나씩 하나씩 반화에게 전수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도 모르게.
“잘 봐, 이렇게 해봐.”
쑤우우욱!!!
짜악!!!
-컥!!
-응응!!
치지지직!!!
촤롸락!!!!
-!!
....
반화의 검은 기운에 싸다구를 맞은 놈이 정신을 못 차릴 때 삼이의 번개 싸다구가 뒤를 이었고 그다음 맹이의 불꽃 싸다구가 반대편에 날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반화가 검은 기운으로 잘 다진 점토를 전기로 굽고 불로 또 한 번 구운 것과 같았다. 놈은 안 그래도 반들반들했던 압축된 흙으로 만들어진 얼굴이 그들 덕분에 더욱 단단해졌다. 대가리만...
“잘했어.”
-근데, 이렇게 이케, 저케 하는 건 어떻게 해?
“응? 이케, 저케가 뭐야?”
-그러니까 요렇게 해서...
촤르르르....우르릉!!!
쾅!!!
-크윽!!!...
-힝... 이게 아닌데.
아무래도 반화처럼 놈의 몸을 감싸는 걸 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격이 다른 기운이라 반화처럼 하는 건 불가능했다. 괜히 벼락만 맞은 놈... 에나스는 그런 녀석이 불쌍했다. 자신이 살던 세계가 멸망해서 왔다는데...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어 더욱 불쌍했다. 고향을 잃은 것도 서러울 텐데... 실험용 쥐가 되다니... 묘하게 노에라가 생각나는 건 착각일까? 왜 땅과 관련된 이들을 저렇게 괴롭히는 건지...
“아...굳이 땅만 괴롭히는 건 아니구나.”
번개던 불이던 죄다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은 에나스... 심지어 해골도 괴롭힌다. 저 환장의 트리오는.
.
.
.
그렇게 반화와 아이들이 애꿎은 녀석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을 때 어느 깊은 산속.
스아아아....
움찔!
땅속에 파묻힌 새하얀 가루가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풀썩하고 움직였다가 이내 다시 가라앉는다. 분명 땅속이라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땅위를 지나간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루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였지만 마치 그게 착각이라는 듯 잠잠해진다.
.
.
.
반화와 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던 놈이 정신을 차리고 분노에 찬 포효를 질렀다.
-이놈들!!!!
“응. 왜?”
-....
막상 지르긴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저 괴물 같은 놈들을 자신이 상대할 수는 없다고. 저 조그마한 털 뭉치들의 공격은 사실 맞을 만했다. 자신의 외갑이 조금 손상되긴 했지만 이정도야 간지러운 수준, 그러나 저 인간의 검은 기운은 닿기도 전에 오한이 들며 전신을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강하게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뭐, 임마. 말을 해.”
-그...그게...살려 주세요!!
빠른 판단을 내린 녀석이 목숨을 구걸했다. 자신이 어떻게 이 세계로 도망쳤는데... 이렇게 갈 순 없었다.
“누가 죽인대?”
-아, 아니었습니까?
“이 새끼가... 사람을 뭐로 보고.”
-...
뭐로 보긴 깡패로 보지... 에나스가 반화의 말을 알아들었으면 분명 이렇게 얘기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저 리자드 흙맨처럼 생긴 녀석의 언어로 말해서 알아듣진 못했다.
“네 고향을 공격한 놈들은 뭐야? 원래 거기서 살던 놈들은 아닌 것 같던데.”
-어... 그걸 어떻게? 혹시 제 고향에서??
녀석은 진심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언어를 알고 있는 것도 좀 당황스러웠는데 고향을 멸망시킨 놈들도 아는 것 같은 눈치가 아닌가?
“몰라, 첨 듣는 곳이야.”
-그런데 어떻게??
“네 기억 좀 공유(?) 했지.”
요즘 공유는 강탈과 같은 말로 쓰이나 보다.
“묻는 거나 말해 자식아.”
퍽!!
-컥!...
괜히 질문 하다가 한 대 맞은 녀석. 그 덕분에 고개가 돌아가며 전기 구이가 되어있는 부엉이를 발견했다.
-코...코린?!
“응? 저건 또 언제 저렇게 만들었어? 삼이 너지?”
-헤...헷...
“뭐가 ‘헤헷.’ 이야 임마.”
꽁!!
-힝...
사고 쳐놓고 애교를 피우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놔준 반화가 서럽게 전기 구이가 된 부엉이를 끌어안고 우는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비켜봐.”
-???
주르르륵...
황금빛 액체를 전기구이 부엉이에게 부은 반화. 그러자 놀랍게도 새 피부가 돋으며 동시에 새 깃털이 뽀송뽀송하게 났다. 안타까운 건 그 이상 자라기 않았다는 사소한 것 하나?
...마치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부엉이 새끼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정신을 차린 부엉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으아아아!!! 내 소중한 깃털이!!!
“안타깝지만 그게 한계라서.”
크로롱액으로는... 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저 모습이 이전 모습보다 반화의 마음에 들었으니까.
뽀송뽀송한 것이 아기 새의 귀여움이 참 잘 나타나 있는 부엉이. 입만 닫으면 좀 괜찮을 것 같았는데.
-살았구나!!
-마스터!!
죽은 줄 알았던 부엉이가 살아나자 감격에 겨워 녀석을 끌어안은 흙맨. 그리고 흙맨의 볼썽사나운 몰골에 깜짝 놀란 녀석.
-크흑!! 왜 이런 거야??
-...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니들 고향 부순 놈이 누구냐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어? 어떻게 우리말을?!
흙맨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고 부엉이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쳐들어 온 놈들이다. 아니 놈이라고 해야 되나? 놈들인가...?
-놈입니다 마스터. 놈에게서 떨어져 분열한 것들이 우릴 공격한 것이죠!
“그래? 한 놈이 세계 하나를 말아 먹었다고?”
꽤 흥미로운 말에 반화가 미소를 지었다.
.
.
.
한번 생긴 상처는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제대로 아물지 않으면 이차 감염으로 병에 걸릴 수 있고 그게 아니라도 아물지 않은 곳을 긁어 그 상처를 더 크게 만들 수 도 있다. 그러나 건드리지 않으면 상관없을 수 있다. 건드리지 않으면...
후두두두두
쾅!!!
쾅!!!!
쾅!!!!
콰!!!!!!!아앙!!!!!!
쩌저적...
엄청난 숫자의 것들이 허공에 몸을 폭사했다. 폭사에도 질서가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몸이 터지는 것임에도 그 어떤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허공을 향해 몸을 폭사 시킬 뿐.
쾅!!!!!
쩌저적!
그 덕분 일까 허공에 작은 실금이 그어졌다. 그 뒤로도 이어진 폭사!
쩌적...쩌어어억!!!!
-카아아아!!!!
-카아!!!
실금은 계속해서 확장해가더니 어느새 작은 틈을 내어주었다. 폭사하는 것을 멈추고 그 작은 틈을 보며 소리치는 놈들.
쿵!!!...
쿵!!!!
-카아아!!!!
-크르르...
엄청난 수의 놈들을 검은 그림자로 뒤덮은 거대한 놈. 그런 놈을 향해 그림자속 놈들이 경배하듯 고개를 숙였다.
스윽...
눈이라고 짐작되는 붉은 형광이 허공에 갈라진 틈을 살펴봤다. 조금 작지만 자신의 분신 하나쯤은 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크르르...
-카아!!
콰득!!!...쑤우욱!!
모든 침략은 정찰... 삼키는 건 그 후에 하는 것이다. 가끔 작은 세계에서도 자신보다 강한 괴물들이 있으니까...
.
.
.
-그, 그렇다. 갑자기 쳐들어 온 놈들 때문에 우린 우리의 땅을 빼앗겼지.
“그렇단 말이지...”
반화는 녀석의 말과 훔친 기억을 대비해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침략자, 괴물들 중에도 이런 놈들이 꽤 있긴 했었다. 자기보다 약한 세계의 힘을 빼앗아 자신의 힘을 키우는 놈들. 그런 놈들 대부분이 괴물들의 세계에 뭣도 모르고 들어 왔다가 괴물들의 밥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녀석들도 나름 강한 놈들이었다. 하나의 세계를 침략하기 위해서 필요한 힘은 결코 적지 않았으니까.
이 흙맨 녀석만 봐도 약한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아틀란티스가 아니라 지구정도의 크기 행성에 있었다면 그 행성을 지배할 정도는 되는 녀석이었다. 안타깝게도 세계를 침략하는 놈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반화님... 저 녀석? 놈? 분? 아무튼 저 흙 덩어리님도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건가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뺏긴 거야.”
“아...불쌍해라..”
“불쌍할 게 뭐 있어 거기에서나 여기에서나 원래 혼자 사는 놈인데 어차피.”
“그래도... 고향이 없어진 거잖아요.”
반화의 말에 에나스가 반박했지만 전혀 공감이 되는 않아 그의 표정은 시큰둥하기 만했다.
-우릴 어쩔 셈이냐...
“니들? 뭐 딱히 생각은 없는데?”
-...?죽이지 않을 거냐?
부엉이가 의심된다는 눈으로 반화와 아이들을 노려봤다. 특히 자신의 아름다운 깃털을 지져버린 삼이를...
-콱!!
화들짝!!!
그런 녀석에게 삼이가 겁을 주자 깜짝 놀라 흙맨 뒤로 숨는 녀석.
“...삼이야?”
-응?
“... 가만히 있어.”
-네에~
어째 점점 냥아치화 되는 삼이를 보며 반화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맹이는 얌전해서 다행이랄까? 누굴 닮았는지 참 걱정되었다.
“야, 가만히 있던 걸 건드린 건 니들이야, 멍청이들아. 그래놓고 뭘 ‘어쩔 셈이냐!’ 라는 거야?”
-...?어....?
그러고 보면 먼저 건드린 건 이 녀석들이었다. 삼이가 부엉이를 발견하고 뭔가 하려던 차에 반화가 막았으니까. 그 뒤에 부엉이 놈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렇게 된 것 뿐이었다.
-그, 그렇네...?
에나스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있던 동정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동정도 받아 줘야하지... 멍청해서 받지도 못할 녀석들이라니.
“우리 갈 길 갈 거니까 괜히 따라 오지나 마.”
-당연하지!! 우리가 너희를 왜 따라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라는 듯 외치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반화 일행이 이 특이한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영역을 거의 다 벗어나가던 중 갑자기 반화가 차를 세우고 고개를 내밀었다.
“맞다, 야!! 차원 봉합은 제대로 했지??”
-...? 봉합? 그게 뭔가?
....
.
.
.
-카악!
스륵...스륵... 낯선 환경에 떨어진 놈이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단 마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흐름은 굉장히 활발했다. 자신의 주인이 딱 좋아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는 절대적으로 강한 놈들이 없었다. 전체적인 수준은 높지만. 이런 세계가 바로 주인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겉만 봐선 모르는 일.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인내를 가지고 정찰해야 한다.
마침 저기에 이 행성의 주민으로 보이는 놈들이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감히 도망을 가? 그것도 얌전하게 도망간 게 아니고 사방팔방 우리 계획을 떠벌리면서!!!?”
“...한국 쪽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삼엄합니다. 그 덕에 시민들은 물론 능력자들까지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제길... 어떡하지...”
아무리 일본을 어둠 속에서 주무르는 가문이라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이 터지면 감당하는데 부담이 되었다. 거기에 이번 일은 국내의 일이 아니라 해외와 관계된 사건이라 안 밖으로 압박이 들어오게 생겼다.
-카아아...
약하다! 그러나 이용할 수는 있는 놈들이다. 그렇게 판단한 이계의 존재는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저들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