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스톨로지 #
163화
“아, 귀찮은데...”
“아니 이 오빠가 진짜!!! 사람이 죽어 간다는데!”
“원래 사람은 죽어.”
반화의 말에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 명하.
“와 진짜... 쓰레기네.”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뭐? 쓰레기? 지금 나 보고 그랬냐?”
“어? 아니 저기 쓰레기가 있기에 그랬지? 왜? 뭐 찔리는 거 있어?”
한쪽 구석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가리키며 명하가 태연스럽게 말을 돌리며 반화를 비꼬았다. 그런 남매의 모습을 보며 민사장은 한숨만 내쉬었다.
“...일단 저는 우리 회사 팀들 동원해서...”
“다 죽어 그러면.”
“예...?”
반화의 냉정한 말에 민사장이 반문했다.
“쯧... 진짜 귀찮은데...파스!”
[예.]
“해골이랑 모기, 그리고 도마뱀들 좀 불러. 집에서 놀면 뭐해? 일이나 하라 그래야지.”
“...지는 맨 날 놀면서... 그리고 불러서 부려먹을 거면서...”
명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반화는 그냥 무시했다. 저 녀석과 계속 대화를 나누면 동생이고 뭐고 한 대 후려칠 것 같았다.
“그거 내가 가서 봐도 돼?”
“응? 니가? 왜?”
갑자기 령이가 반화에게 자신이 가고 싶다고 어필했다. 거기에 순이도 같은 생각인지 냐냐 거리며 반화에게 말했다.
“...? 진짜? 순이 너도?”
“응, 재밌을 것 같아.”
“뭐, 맘대로 해. 근데 지금 사방에 흩어져서 좀 힘들 걸? 그 놈들 쥐도 새도 모르게 숨거든.”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겠네.”
-냐아~
“순이 너 사고 치지 마?”
-냥!!
조금 못 미덥긴 했지만 옆에 령이와 그리고 해골 등등이 붙을 테니 걱정을 덜고 녀석을 보내주기로 한다. 같이 가기엔 귀찮았으니까...
스윽...
“왔어?”
“으어!! 깜짝이야!!”
쿠당탕!!
갑자기 나타난 해골씨와 나머지들 때문에 명하가 기절할 듯 놀라며 자빠졌다. 그런 명하는 신경 쓰지 않고 녀석들은 반화를 쳐다봤다. 귀찮게 왜 오라고 했냐는 듯... 아무래도 반화에게 모두 오염 된 것 같았다.
“표정들이 좀 띠껍다?”
“허허허허허, 그럴 리가요.”
반화가 더 삐딱해지기 전에 해골씨가 웃으며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어디에나 눈치 없는 녀석이 있기 마련.
“왜 오라고 한 거야? 귀찮구만.”
“흐음... 귀찮아?”
“..어...? 아, 아니!”
드래곤이라 주위에 눈치 보지 않고 살아온 습관이 아직도 남은 것일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린 드래곤 하나, 퓰이 반화에게 솔직하게 표현했다가 고개가 점점 가로로 누워지는 반화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행히 이런 모질이를 셀라가 챙기며 삐딱한 반화의 시선을 가려주는 셀라.
“무슨 일이야? 뭐 할 거 있어?”
“드래곤 해부나 해볼까 해서.”
“!!!”
아무래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삐딱 선을 타버린 것 같았다.
“아 오빠!! 문은 장식이야? 좀 문 좀 열고 들어오라고 하라고!!!”
다행히도 명하가 반화에 대한 어그로를 몽땅 가져가버렸다. 훌륭한 탱커가 아닐 수 없었다. 동생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달이 나도 사달이 났겠지만...
“장식 아냐? 저거 뭐 하러 굳이 열고 들어와?”
“...에휴...”
한숨 쉬는 명하를 무시하고 반화가 해골씨를 불렀다.
“해골, 망혼이라고 알아?”
“?? 망혼이요?”
“어 망혼. 이렇게 말하면 모르려나? 죽은 세계에 돌아다니는 놈들인데... 원래는 밤에만 돌아다니는 것 같던데. 여기는 좀 다르네.”
“흐음... 죽은 세계라...”
해골씨가 반화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알고 있는 건 없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탐욕이 생긴 해골씨가 의욕적으로 반화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죽은 세계라는 게 뭐입니까?”
“죽은 세계가 죽은 세계지 뭐야?”
“...”
명하에게 한 설명과 똑같은 말에 해골씨의 얼굴 골격이 잠시 찡그러진 것 같았지만...
“그래서 알아보라고. 밖에 나가면 바보 같은 인간 하나 있을 거야. 걔 따라가. 아! 모기 넌 괜찮아?”
모기를 향해 괜찮아? 라고 했지만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다.
“예, 원래부터 저는 인간의 피에 그렇게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 알았어. 가봐.”
“마스터? 그런데...이 녀석들도 같이..?”
해골씨가 불안한 안광으로 순이와 령이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순이를 쳐다봤다.
“심심하대. 데려가.”
해골씨와 다른 일행들이 순이를 불안하게 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을 빤히 보는 순이의 눈빛에는 흥미로 가득 차있었다.
“...가죠.”
불안 불안한 폭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해골씨의 뼈가 조금은 축 쳐진 느낌이 들었지만 착각이라 여기며 반화는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 오빤 여기서 뭐해?”
“잘 거야.”
“왜?”
“내 맘이다.”
“왜에에에에!!! 왜 여기서 자!! 여기 일하는 곳이라고!! 왜 여기까지 와서 자는데? 나는 일하는데!”
소리를 지르는 명하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은 반화는 미동도 없었다. 다만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다.
“네 월급 내가 준다.”
.
.
.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스톨로지 입구로 몰려 든 군대와 경찰, 감찰사, 그리고 정부에서 요청한 각종 대형 길드들이 뭔가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곧 이어 민사장이 이끄는 해골씨들도 그 속으로 합류했다.
“어...? 민사장님? 뒤에... 몬스터??”
“아아, 그 사람이 데리고 있는 몬스터입니다. 사실 몬스터라고 부르긴 좀 그렇지만...”
해골씨를 발견한 사람들이 죄다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게임 속 언데드처럼 생긴 얼굴에 특이한 로브 차림.. 민사장과 옆에 아름다운 사람이 없었다면 바로 공격 했을 것이다.
“흐음... 저 곳이 죽은 세계라는 거지?”
“!!!!해, 해골이 말을?!”
해골씨가 스톨로지의 입구를 보며 말하자 경악하는 사람들.
“몬스터가 말을 한다고...?”
“몬스터라니 기분이 좋진 않군. 탐욕의 정령님이라고 부르도록.”
“??? 정령?”
해골씨가 몬스터라는 말을 정정해 주자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해골씨의 관심은 다시 스톨로지로 향해있었다.
“인간, 저기 가면 되는 건가?”
일단 마스터가 민사장이라는 인간의 말을 들으라고 했으니 물어 봤지만 이미 몸은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골에게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람들은 뭔가를 보고 입을 헤 벌리며 넋을 잃었다.
순이를 안고 있는 령이가 그 시선들을 받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령이에게 모든 시선이 향하고 있었다. 구미호의 위엄은 이 곳에서도 통하고 있었다.
-냐아!
뭔가 기분 나쁘다는 듯 순이가 울자 령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꿀리면 너도 모습 바꾸라고.”
그 모습이 또 그림 같아서 사람들은 입에 침을 흘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넋은 잃은 것을 본 민사장이 어쩔 수 없이 박수를 크게 치며 사람들의 정신을 깨웠다.
“큼..큼.. 저 분은 누구??”
박수소리에 정신을 차린 사람이 령이에 대해 묻자 민사장이 고민했다. 진실을 말해줘야 할까...?
“어...?! 꼬리!?”
민사장의 고민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령이의 엉덩이에 꼬리가 살랑 살랑거렸으니까. 그것도 아홉 개 모두가.
“사람이 아니야???”
가짜로 보기엔 꼬리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했다.
“하하하하... 구미호입니다.”
“..예??”
이런 말을 왜 자신이 해야 되는지 반화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진짜 얼굴을 마주보고는 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욕을 한 민사장은 애써 웃으며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반화씨가 데리고 있는 분들 중 하나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 모두요. 아! 이분은 뱀파이어입니다.”
“!!!!!”
조용히 있어 눈치 채지 못한 창백한 여자를 발견한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음침함에 한번, 또 외모에 한번...
“뱀파이어..요?”
“네.”
“...그분은 사람 맞죠?? 어디서 저런 몬스...아니 분들을 데려 오시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알고 싶네요.”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민사장을 쳐다봤지만 그도 아는 게 없어 더 이상 해줄 얘기는 없었다.
“어어어?? 저 사람...아니 몬스...아니 암튼 저분들 안으로 들어갔어요!!”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해골씨와 령이, 순이가 스톨로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소리쳤다. 분명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령이에게 홀려 그대로 통과 시켜버린 것이었다.
“냅두세요. 그냥 그 사람이 데리고 다니는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죠.”
민사장의 체념 섞인 말에 다들 뭔가 조금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
“뭐 별로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래 해골?”
“그렇긴 한데... 순환은 확실히 안 되고 있군.”
“순환?”
-냐아아아!!
“음?”
해골씨가 령이의 물음에 답해주려 했는데 갑자기 순이가 어딘가로 뛰어 가버렸다.
“냅 둬, 뭐 알아서 하겠지.”
걱정할 존재를 걱정해야지... 순이를 걱정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편했다.
“순환이라는 게 뭐야?”
“마나의 순환을 말하는 거다. 아틀란티스와 지구를 오가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 지구 같은 경우는 마나가 미약하지만 아주 잘 순환 되고 있어. 마나의 흐름을 보면 전부 강물처럼 생동감 있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 반면에 아틀란티스 같은 경우는 마나의 농도가 굉장히 진하지. 그 만큼 끈적끈적한 마나농도를 가지고 있어 흐름이 느려. 그런 기운을 흡수한 녀석들이 지배자가 되거나 신수, 혹은 정령으로 탄생하지.”
“호오? 그래? 마나의 흐름의 차이라... 그건 생각 못해봤는데.”
“생각을 못한 게 아니라 못 느꼈을 거다. 그걸 느낄 수 있으려면 일정 영역 이상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어야 하는데 넌 그러지 못하니까.”
“흥!”
령이가 해골씨의 잘난 척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아틀란티스보다 이곳은...아예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군. 마나는 있는데 고체가 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어.”
령이는 해골씨의 말에 마나의 흐름을 느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멀쩡하게 마나가 잘 있다는 느낌밖에 받지 못했다.
해골씨의 말대로 스톨로지의 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의 몬스터들의 수준이 매우 낮았고 인간에게 정복당한 것이었다. 거기에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활동했지만 능력자들의 성장이 더뎠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으니 능력자들이 마나를 제대로 흡수 할 수 없었고 지구의 마나는 흐르긴 하지만 양이 너무 적어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틀란티스는 농도가 진해서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마나가 흐르고 있었고 지구로도 흘러갔기 때문에 1년 사이 능력자들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곳이군... 연구 할 가치가...응??”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폭발하는 듯한 느낌은 그냥 느낌인 걸까?
스아아아...콰아아아!!!!!!
“이런!!”
세계가 찢어지고 있는 걸 발견한 해골씨와 령이. 현실 같지 않은 모습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순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똥고양이!!!”
점점 눈에 보이는 순이의 모습에 령이가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향해 계속 냥냥펀치를 날리고 있는데 만족하지 못한 듯 점점 파워를 늘리고 있는 순이.. 조금만 더 놔뒀다간 세계를 반 쪼갤 듯 한 파워였다.
“멈춰!! 이 똥고양이야!!!!!”
-냐아??
뭐냐는 듯 령이와 해골씨를 쳐다보는 순이의 발밑에는 뭔가 잔뜩 짜부 되어 구겨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