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꿈틀거리는 세상 #
161화
아이들도 하나 둘 일어나 눈이 온 밖을 뒹굴었다. 삼이 녀석은 털이 채 다 마르기도 전에 다시 뛰어나가 깨발랄하게 뒹굴었다.
“잘 노네...”
삼이, 맹이 그리고 모기채 녀석... 상성이 잘 맞는 건지 너무 잘 놀았다. 특히 삼이가 녀석들 따라잡으러 날아다니는 게 너무 귀여웠다. 날개도 짧은 게 파닥거리면서 허우적거리는 걸 보니 애기도 그런 애기가 없었다. 모기채 녀석도 그런 삼이가 귀엽다는 듯 일부러 약 올리듯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렇게 조그마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걸 보다가 옆을 보면 아이들 보다 더 신난 녀석이 있었으니...
“우오오오오!!!! 이, 이게 뭐야!?”
“차갑다! 차갑다!!”
웬 바보 하나가 차갑다면서 눈을 입에 쳐 넣고 있었다.
“덩치보다 더 떨어지는 녀석이네, 쯧...”
반화의 혀 차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까망이는 생전 처음 보는 눈을 신기해하며 방방 뛰어 다녔다. 그 덕에 꽤 쌓인 눈 사이로 흙이 자꾸 튀어나와 마당이 점점 지저분해졌다. 이제는 마계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 녀석...남아도 뭐 저런 놈이 남았나 싶지만 아이들과 잘 노는 모습을 보며 그냥 그러려니 한다. 고향이 사라졌다고 우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넌 눈 안 반가워? 너 어렸을 땐 원룸에 있어서 창밖으로 밖에 구경 못했는데.”
-냐아~
새하얀 눈에 발 도장 한번 찍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순이 녀석을 보며 반화는 그냥 웃어 버렸다. 정말 앞발 하나만 입구에 콕 찍힌걸 보니 보지 않았어도 발자국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기채 이름도 지어 줘야 하네.”
후르룹...
반화가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녀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듀스 잎을 차로 만들어 따뜻하게 마시니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모기채의 이름을 잠시 생각해본다. 깊지는 않게..
“꼬악...? 꼬동? 령아, 뭐가 좋아?”
“...둘의 차이가 뭔데?”
령이의 한심하단 눈초리에도 반화는 꿋꿋했다.
“꼬동으로 하자. 동이, 어감도 좋네. 동이, 똥이.”
“...”
자신의 이름이 령이라는 사실에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령이는 반화의 곁에서 떨어졌다. 저 센스가 자신에게 옮을까 두려웠다.
...
아침부터 한바탕 뛰어 놀고 난 녀석들이 별장으로 넘어가 따뜻한 햇볕에 몸을 녹이는 동안 반화는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가?”
“회사.”
“?? 나도 갈래.”
-냐아아~
웬일인지 회사를 간다는 반화와 또 웬일인지 따라나서는 령이와 순이.
“니들은 왜??”
물어는 봤지만 이유는 뻔해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심심하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가자 가.”
령이가 순이를 안고 옆 좌석에 탔다. 오랜만에 타보는 차였다. 하도 집 밖을 안 나가니...
“맞다, 림자 녀석 명하한테 붙여줬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운전해야 했다. 마계에 갔을 때 보내주지 말고 그냥 데리고 있을 껄 괜히 보내줬나 싶었지만... 오랜만에 운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냐아~
어쩐지 신나 보이는 순이. 눈을 밟기는 싫지만 이렇게 보는 건 또 좋은 모양이다.
.
.
.
한편 모기들이 지배하고 있던 일루에나는 수뇌부들이 증발하면서 붕 떠버렸다.
“벌써 얼마나 지난 거지?”
“몰라, 꽤 지났지? 갑자기 활동 멈추라고 하더니 죄다 증발해 버렸어.”
“제길...이제 어쩌지?”
미국의 작은 시골에 모여 미래 대해 회의를 해봤지만 모든 건 수뇌부들, 즉 모기들이 소유하거나 알고 있는 것들이라서 그들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거라곤 당장 가지고 있는 테러용 무기들, 그리고 몸뚱아리뿐이었다.
“그냥 우리도 평범하게 능력자 행세를 할까?”
“쯧, 이미 우리 신상파악 끝났을 거야. 대가리들이 있을 땐 모르지만 지금은 들키는 순간 슥삭이라고.”
조직적인 테러를 가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수뇌가 없는 이상 그들의 무력은 미국 정부에 쉽게 제압 될 뿐이었다. 여러 가지로 막막한 상황에서 누군가 의견을 냈다.
“그럼 그냥 다른 나라로 나르자. 밀항할 정도의 여력은 있어.”
“그러다 대가리들이 오면?”
점조직으로 그들의 규모도 작지 않았지만 수뇌들은 클래스가 다른 놈들이었다. 만약 그 놈들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대항조차 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지금까지 이렇게 숨어 잇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굶어 죽게 생겼는데 알게 뭐야. 아프리카나 중동 쪽으로 가면 우리를 반겨 줄 거라고. 그리고 인도에서 온 소식으로는 그 놈들 죄다 증발했대.”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세계에서 알아주는 테러단체인 일루에나가 제 발로 온다고 하면 지금 당장 능력자 하나가 아쉬운 그쪽에서는 받아주긴 할 것이다. 실제로 수뇌부를 따라 인도 쪽으로 간 녀석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얼마 전까지 연락이 되었다가 끊어졌으니까.
“가자, 이대로 있다간 다 죽어.”
“그런데 어떻게?”
“스톨로지를 통해서 한국을 경유해서 가면 돼.”
“한국?”
한국이라는 말에 다들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자 의견을 낸 사람이 자신 있다는 듯 말했다.
“그쪽에 우리 끄나풀을 심어뒀던 거 몰라?”
“아!”
그제야 떠오른 듯 놈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방법이 있었군.”
가능성이 보이는 계획에 다들 동의하며 세부적인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미국의 스톨로지를 통과해야하는 것부터 한국의 끄나풀과 연락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했다. 그게 안 되면 이 계획은 한마디로 ‘쫑’이었다.
“근데 그 놈들 인도에 있는 수뇌부에게 끌려가지 않았어?”
“멍청아, 얼마 전에 죄다 송환되었다고 발표 났어. 정신이상으로 좀 애먹긴 한 것 같은데 결국 다시 돌아가긴 했다고.”
쓸데없는 태클은 비난하며 무리를 리드해 가는 놈을 중심으로 일루에나는 다시 새로운 인간들만의 단체로 거듭나고 있었다.
...
“그쪽에서 연락이 왔다고요?”
“네, 스톨로지를 통해 이쪽을 경유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 우릴 그렇게 버려두고 뻔뻔하게 도와달라고 하다니...”
“정확히는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명령조였어요.”
“흥! 그냥 무시하세요.”
일루에나의 끄나풀, 독우교회의 사람들은 인도로 갔다가 모기들에게 고문을 당하다 결국 정신지배까지 받게 되어 송환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모기들도 죄다 죽어 버리고 마계와의 연결도 끊어져 겨우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락하더니 다짜고짜 도와달라니,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그러지 말고 그 놈들 골탕 좀 먹이죠?”
“...? 골탕이요?”
“네. 놈들이 원하는 건 한국 스톨로지 영역을 지나서 인도 쪽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한테 그 통로를 열어 달라는 거죠.”
“계속 해보세요.”
골탕 먹인다는 것에 흥미가 생긴 듯 나이 많은 목사가 젊은 신도에게 계속하라며 손짓했다.
“열어 주는 척하면서 놈들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는 거죠. 통제관들에게 먹이려면 필요하다면서.”
스톨로지의 통제관 중 자신들의 독우교회의 독실한 신자가 있으니 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결국 놈들을 탈탈 털어먹고 나서 통로를 열어준다는 계획이었는데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일단 통제관이 자신들 사람이니...
“정부 쪽에서 우리를 감시할 텐데?”
“저희가 굳이 움직일 필요 있습니까? 신도들이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멀쩡한 교회처럼 보이지만 독우교회는 사이비중 사이비였다. 당연히 신도들의 충성도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니 일을 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종 분야에 걸쳐 신도들이 있어 그들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다.
“흐음...놈들에게 털어먹을 게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번 해보자고. 우릴 버린 대가는 치러야지.”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오는데 그 더러운 놈들이 뒷주머니 하나 안 찼을까요? 먹을 게 아주 많을 겁니다. 그럼 제가 계획 좀 짜 보겠습니다. 통제관님하고 연락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 그럼 내 말해두도록 하지요.”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일이 계획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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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에나는 미국정부의 시선을 우선 돌리기 위해 스톨로지와 떨어진 곳에 테러를 계획했다. 그들의 주특기니 그런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한국은?”
“걱정 마.”
“테러는?”
“그것도 완벽해.”
“그 녀석들은 모르겠지?”
테러를 감행하는 녀석들에게는 끝나고 나서 바로 뜰 수 있게 준비해 준다고 했으나 사실 그런 준비는 없었다. 미 정부의 시선을 제대로 끌기 위해서는 놈들이 더욱 날뛰어 줘야 했으니 속인 것이다. 거기에 이쪽과 접점이 생기면 스톨로지에서 추격을 받게 되니 곤란했다.
“당연히 모르지. 멍청한 놈들 위주로 뽑아 뒀어.”
“그럼 시작하지.”
...
콰아앙!!!
위이이이이잉~~!!!
도시 내부에서 갑작스런 폭발에 경고음이 사방을 울린다.
“테러다!!”
누군가 건물들에 폭격을 가하는 자들을 발견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면서도 폭발에서 멀어졌지만 테러의 범위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콰앙!!!
“뭐야! 왜 연락이 안 돼!?”
작전대로 테러를 저지르고 있지만 점점 초조해지며 더욱 과격해지는 움직임. 놈들은 분명 연락을 주기로 한 녀석들이 아무 대답도 없자 슬슬 불안함을 넘어 절망하고 있었다.
“이런 개자식들!!!”
.
.
.
“응?”
“어?”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보이자 두 사람이 당황했다.
“...? 왜 그렇게 놀래?”
“아하하하... 아냐, 그냥 내가 헛 걸 본 건가 싶었어.”
명하와 민사장이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발견한 반화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어딘가 이상한 태도에 반화는 자신이 회사에 나오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 생각했다. 역시 괜히 왔나 싶었다. 동생 위험한 거 아니냐고 엄마가 아침부터 닦달해서 와봤더니...
“괜히 왔나? 좀 도와주려고 왔는데.”
“어..? 오빠가? 진짜?”
명하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님 말아. 데이트 잘해라?”
“!!!!”
덥썩!!
“하하하... 어떻게...?”
반화야 당연히 림자한테 들었으니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걸 모르는 둘은 정말 화들짝 놀랐다. 그냥 밥 같이 먹고 있는 걸로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찍었어. 진짜야?”
“...응.”
어쩔 수 없이 시인하는 명하를 보며 반화가 뭐라고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식당 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기... 여기는 반려동물 출입금지라서요...”
조심스럽게 순이를 가리키며 말하는 직원.
-냐아?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령이가 순이를 안고 안에까지 들어 와있었다.
“근데 오빠 우리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 회사 가려면 좀 가야 되는데?”
“어...? 감? 야, 일단 나 회사에 있는다?”
명하의 말에 은근슬쩍 돌리며 순이 핑계를 대며 식당을 나온 반화는 림자녀석을 불러 들였다.
“파스가 있으니까 이제 그냥 따라 다니지 말고 차에 있던 가, 아니면 알아서 놀아.”
“알았다.”
들킬 일은 없지만 이렇게 동생의 사생활을 굳이 알고 싶진 않았다.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가자.”
“우린 밥 안 먹어?”
령이가 배고프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순이 녀석 때문에 들어 갈 수 있는 식당 없을 텐데...응?”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야, 저것들이 왜 여기 있지??”
반화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
-냐???
순이는 신기하다는 듯 령이의 품에서 고개만 들어 반화가 보고 있는 것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