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묻어두다 #
159화
반화가 순이 녀석을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마계였다. 그 중에서도 옹이 녀석이 마지막까지 있었던 그와의 추억 가득한 거대한 호수가 있는 숲.
-냐아?
생각과는 다른 전개에 순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크게 혼날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이런 곳엔 왜 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에서 친구가 죽었어.”
-....
푸념이었다. 지난밤에 아이들로 인해 고민은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번쯤은 풀고 싶었다.
순이를 품에 안고 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녀석과 있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는 반화. 순이도 그 이야기를 조용히 얌전하게 들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망혼이라는 놈들 때문에 난감했거든? 뭐 잡는데 크게 어렵진 않았는데 밤새도록 끊임없이 달려드는데 좀 짜증이 났어. 그러다가 여길 발견했지. 저 바위 뒤에 그 녀석이 다쳐서 끙끙 거리고 있더라고.”
반화가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모습이 너랑 처음 봤을 때랑 같았어. 이 냥아치야.”
쭈우우압!
-냥!
반화의 기습 공격에 당한 순이가 뒤늦게 반항했지만 이미 만반의 태세인 그에게 닿지 못했다. 씩씩거리는 녀석을 데리고 바위에 다가간 반화가 잠시 녀석을 옆에 내려주었다.
스윽...
바위아래 옹이의 육체 하나씩 놓아 둔 반화가 생기를 이용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지금 보니 너랑은 하나도 안 닮았네?”
일단 색부터 너무 차이 나는 둘이 왜 그땐 겹쳐 보였는지... 부릅뜬 녀석의 눈을 감겨주고
바위아래 녀석을 조용히 묻는다.
...
“다음엔 좋은 친구 사겨.”
-냐아~
반화의 말에 동의하듯 순이가 울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다시 순이를 안아 든 반화.
“가자 이제.”
-??
간다고 말하면서 허공에 대고 손을 휘두르는 반화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순이. 끔찍한 기운이 반화의 손에서 시작되어 공간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
그 기세에 깜짝 놀란 순이가 반화의 품을 파고 들어갈 듯 몸을 붙였다.
쩌적!
......그드드드드드....
끼아아아아아앙아!!!!!!!!!!!!!!!
세계가 비명을 지르지만 아랑곳없이 반화는 계속해서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구겨버리고 찢어지며 끌어당기는 일그러짐에 세계는 이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
고요함... 아무것도 없음의 고요함이 반화와 순이를 감싼다.
-....
덜덜덜덜....
고요함이 주는 공포에 순이가 온몸을 떨었다.
스윽...
... 거짓말처럼 반화의 손길에 멈추는 경련.
“냥아치야. 까불지 마.”
-...
잠시 순이에게 경고를 한 반화는 세계를 압축시킨 덩어리를 한손에 들고 공간을 찢어 별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흐음... 중앙 대륙에 좋은 데가 있었는데.”
순이를 놓아주며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 반화가 허공에 나타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양이처럼 생겨가지고 물을 좋아했으니까...”
자신이 아는 장소 중 가장 아름다운 물이 있는 곳이 지금 그의 발아래 어디쯤에 있긴 할 텐데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그 때의 모습과 조금 달라 진 것 같았다. 롭스녀석도 만족할 만한 그런 장소가 분명 있었는데 어쩐지 황무지로 변해버린 지형에 그가 혀를 찼다. 천년이라는 세월에 그 멋진 풍경도 결국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다른 곳을 찾아 볼까하다가 왠지 미련이 남아 황무지를 돌아다니던 그에게 조금 이상한 느낌을 주는 기운이 느껴졌다. 한번 찾아 볼까하다가 불쑥,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 한 녀석이 튀어나와 달려들기에 이 녀석 때문인가 싶어 간단히 정리해 주고 자리를 떴다. 오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화시키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
“여기도 괜찮네.”
주위를 둘러 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일단 넓은 초원으로 둘러싸인 호수가 좋았고 호숫가에 자라고 있는 나무와 모래가 마치 해변과 같아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을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환장할 그런 장소였다.
스윽...
손에 쥔 주먹만 한 구슬에 힘을 가하자 약간의 반발이 있다가 이내 가루가 되어 버리며 허공에 떠다닌다.
옹이가 묻혀있는 고향인 구슬이 가루가 되어 호숫가에서 호수로 퍼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이내 돌아선 반화가 파스를 불렀다.
“파스.”
[...]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선 아마 위성이 아직 이곳에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중앙대륙치고는 좀 구석에 있긴 했다.
“어쩔 수 없나.”
당장은 일단 그냥 자신의 손으로 간단하게 별장을 만들어 두고 파스를 시키던 노에라를 시키던 해서 꾸며야 할 것 같았다.
카피마법을 이용해 원래 별장과 같은 건물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 그가 예전과 똑같이 안에 이동 마법진을 만들어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어떻게 된 겁니까? 원인이 뭐죠?”
“그게... 폭발인 것 같긴 한데 원인이 외부에서 터진 폭발에 의한 것 같은데요. 가령 미사일 폭격 같은 폭발이랄까요.”
“...? 폭격이요? 그럼 건물의 문제는 확실히 아닌 거죠?”
“예, 그건 확실합니다.”
민사장이 일단 건물 문제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체크해두었다. 현재 회사상층부가 날라 가버려 마땅히 회의할 장소도 없어 급하게 원래 썼던 게이트 주변에 있던 건물을 잠시 임시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능력자들의 휴식처 정도로 사용하던 곳이라 간단히 정리만 하면 되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제일 적합한 곳이었다. 어차피 지금 회사가 이래서 정상 업무를 보지 못하니 능력자들도 활동을 잠시 멈추고 있어 당분간은 계속 여길 쓸 수 있었다.
“그럼 외부의 충격이 뭔가 하는 건데... 미사일이 날라 온 건 아니고...후우...”
민사장은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실 피해가 크긴 해도 이 정도는 큰 타격은 안 되었다. 인명피해도 없고 단순히 건물만 붕괴되었으니 다시 지으면 그만이었다.
다만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방지 할 수 있는데 원인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미사일이 박혔다고 하면 편했다. 문제는 테러 능력자들의 소행이라고 했을 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회사인 뉴월드에 테러를 가할 것이고 자신들이 그들의 뿌리를 뽑지 못하는 이상 계속해서 피해만 입을 것이니... 지금 이 문제는 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테러라고 발표하진 않았지만 미디어 업체들은 누가 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추측성으로 테러를 가리키는 용어들을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사장님?”
“네? 아, 명하씨. 무슨 일이죠?”
“오빠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할까요? 이제 좀 괜찮아 졌던데.”
아침에 나오면서 확인한 바로는 원래의 반화로 돌아왔었다.
“...그래주면 고맙긴 한데...”
“말은 해볼게요.”
지루한 회의에 참석했던 명하는 기회를 포착하고 표범처럼 낚아챘다. 전화를 핑계로 밖으로 나간 명하는 기지개를 켜며 익숙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왜?
<>닭살 돋으니까 본론만 말해.
<>...꺼져.
뚝!
명하의 혀 짧은 목소리를 이기지 못한 반화는 한마디를 남기며 끊어 버렸다.
...의지의 명하는 한번으로 포기할 여자가 아니었다. 끈질긴 전화 끝에 결국 도와준다는 말을 듣고 명하가 뿌듯해 하며 회의실로 다시 들어가려다가 멈춰 선다.
“음... 지금 들어가 봐야 지루한 회의만 계속 할 테니...”
발걸음을 돌려 근처 카페로 들어간 명하는 잠시 티타임을 가지기로 한다. 아주 긴 티타임을...
.
.
세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아주 유심히 지켜봤다. 능력자 이반화를 케어해주는 회사가 저리 되었으니 자신들이 끼어들 수 있을 틈이 있지 않을 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었는데 폴리 크랙은 전혀 다른 포지션을 취했다. 즉각적으로 뉴월드의 피해복구에 도움이 되는 장비들을 대여해주며 그들의 우호관계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덕분에 뉴월드는 순조롭게 복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이 이렇게 시끄러울 때 미국, 유럽, 중동 등등, 그 쪽에서는 자신들의 능력자들 중 지배자급에 거의 도달한 자들이 생겼다면서 말이 많았다. 사실 지배자급은커녕 아직 SSS급을 측정하는 기준도 모호해서 반화처럼 확실하게 지배자급 몬스터를 테이밍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다들 긴가민가했다. 확실한 건 1년 만에 능력자들이 무섭게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제 능력자 하나가 국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니 일각에서는 그런 능력자들을 제재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계속 이야기가 나왔다.
일례로 벌써 중동 쪽에서는 능력자들끼리의 다툼으로 도시하나가 난장판이 된 적도 있을 정도니 반화처럼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는 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에 비해 몬스터들에 대한 경각심은 점점 떨어졌다.
.
.
.
“...? 령이?”
“맞아.”
“왜 그러고 있어?”
“...”
령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반화의 반응에 실망했다. 그때 봤던 인간들처럼은 반응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리액션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다야? 나 안 예뻐?”
“예뻐.”
“...”
영혼이 없었다.
-냐냐냐냔~
옆에서 순이가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령이의 품에서 반화의 품으로 쏙 들어가면서... 반화의 힘에 쫄았던 녀석은 아주 애교쟁이가 다 되어있었다.
“야, 구미호가 당연히 사람으로 변하면 예뻐야지. 안 그래?”
“허허허, 그건 또 뭔 해괴한 말인지요?”
해골씨에게 반화가 동의를 구했지만 거절하는 녀석..
“아냐?”
“예쁘다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넌 뼈다귀니까 그렇지.”
괜히 해골씨에게 극딜을 가한 반화는 두리번거리며 뭔가 없는 걸 느꼈다. 셀라, 퓰... 랑이는 출근...다 있는 것 같은데...
“어? 생선 어디 갔어?”
하도 식구가 많아 뭐가 없어도 이제는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겨우 비어 잇는 하나를 생각해낸 반화가 녀석을 찾았다.
“인간들 따라갔어.”
“...? 인간들? 누구?”
“덩치녀석 데리고 있는 인간. 나는 바로 돌아왔고, 녀석은 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더 지내겠대.”
“그래? 뭐 그러던지.”
자신이 데려온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한 반화는 해골씨를 보며 물었다.
“지하에서 뭔 실험을 하는 거야? 모기랑.”
“그 녀석이 피를 갈구하는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영양적으로 그런 건지 그냥 본능인지 연구하고 있지요.”
“...그래, 열심히 해.”
일상으로 돌아온 반화는 그렇게 식구들이 뭘 하는 지 한 번씩 확인해 보고 다시 파스를 불렀다.
“찾았어?”
[...흔적 하나를 찾긴 했는데... 게이트를 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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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화가 잠시 방치해주는 사이 지구로 넘어 온 마왕은 힘겹게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달했었다.
“후우... 이런 것조차 힘들다니...”
만신창이의 몸 상태에 마왕이 자조를 했다.
“인간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생기를 흡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일단 놈들을 이용한다. 이곳에 대해서 아는 것이 먼저다.”
“...예.”
...
힘은 없지만 인간들 정도는 충분히 오염시켜 조종할 수 있었다.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며 정보를 얻던 중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정보를 얻는다.
“악몽이...여기 존재했구나. 그럼 우리는 악몽이 있는 세계로 온 것인가...?”
“알아보니 게이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이 과거 우리가 침략했던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밀하게 인간들을 조종하면서 자신들의 노출은 숨겨 파스에게 들키지 않은 놈들은 반화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자신들의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힘을 회복한답시고 생기를 흡수하며 다녔으면 바로 저 악몽에게 들켰을 것이었다.
“그 악몽이라면 분명 우릴 찾고 있을지 모른다. 서둘러 이 세계를 벗어나야 해... 그러려면 힘을 회복해야 하는데...”
인간들을 건드렸다간 바로 이상함을 눈치 챌 수도 있으니 게이트라는 곳을 넘어가야했다. 파스라는 존재를 몰라서 악몽에게 뭔가를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그 움직임조차 조심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악몽이 그들을 찾아 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기면서도 끈질기게 살겠다는 몸부림으로 끝내 게이트를 통과한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