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묻어두다 #
158화
방안으로 들어간 반화는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옹이 녀석을 살려야 하는 건지 그냥 이대로 보내주어야 하는 건지...
마계라는 곳을 처리하면 얻은 생기로 옹이를 육체를 살리려면 살릴 수는 있었지만 과연 그게 녀석을 위한 것일지는 그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잘 쉬고 있을 녀석을 불러 온다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이었다. 이미 자신은 녀석을 두고 먼 곳으로 떠난 적이 있었기에 더욱더...
그런데 반려동물들이 먼저 죽으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문득 자꾸 생각이 났다. 혹시 옹이 녀석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 갈등이 생겼다. 그것 때문에 지금 마계라는 곳도 완전히 정리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옹이 녀석을 살리기로 결정한다면 녀석의 고향을 없애놓고 차마 볼 낯이 없을 테니까.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죽어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환생이라는 걸 했을지도 몰랐다. 그도 원념이라는 걸 강제로 끌어당길 수는 있지만 그걸 뭔가 살리는데 이용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살리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어두운 방안에서 반화는 녀석의 고통스러운 표정에 덩달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괴로워했다.
툭!
“...?”
-냐아~
부빗 부빗...
언제 들어왔는지 순이가 그의 발에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런 녀석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었다.
“이리 와.”
-냐아~
그의 품에 들어 온 녀석의 온기에 반화는 잠시 괴로운 생각을 접었다. 녀석을 닮은 옹이가 마치 자신에게 안긴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그건 순이에 대한 실례였다.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한 것이 미안해, 말이 없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순이야, 어떡할까?”
-냐아?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순진한 표정에 반화가 잠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은 능력을 얻었을 때나 얻지 못했을 때나 기가 막히게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애교를 부리곤 했었다. 요즘은 좀 냥아치 같이 굴긴 했지만.
“이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네...”
모든 것에 무뎌진 그라도 소중한 친구가 관련된 일에는 주저함이 남아있었다. 그는 강한 것이지 모든 것에 만능인 신이 아니기에.
....
잠시 순이 덕분에 안정을 찾은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들끓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조용히 잠에 빠진 그를 순이가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자신도 반화의 품에 더욱 파고들며 눈을 감았다.
.
.
삼이는 순이를 따라 들어가려다가 그러지 못하고 문 앞에서 돌아섰다. 그리곤 맹이가 있는 명하의 품에 들어가 꼬물거리며 인내했다. 반화의 기분이 풀리기를...
“에휴... 도대체 뭔 일이야?”
풀이 확 죽은 맹이, 삼이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 명하. 이 밤중에 잠도 못자고 뭔 일인가 싶었다. 계획했던 일은 건물이 날라 가며 깨졌고 집에 오니 오빠라는 인간은 저기압 상태...
-엄마가 아빠 잘 위로해주겠지?
-순이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니까 그럴 거야.
명하의 품에서 속삭이는 녀석들. 당장이라도 반화의 품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애써 참는 모습이 명하의 눈에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쯧...너희도 가서 위로해 주면 더 좋아 할 걸?”
-그렇지만...
주저하는 녀석들...
“자! 이 털뭉치들아. 가서 아빠 기분 좀 풀어드려.”
-...
“뭐해? 얼른 안 가고? 나도 잠 좀 자자.”
명하의 말에 조심스럽게 방 앞까지 간 녀석들은 차마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했다.
“...이리 와.”
-아빠아아아
-아쁘아앙...
잠에서 깬 반화가 방 앞에서 머뭇거리는 녀석들을 느끼고 팔을 벌려 불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신의 눈치를 보는 녀석들에게 반화가 사과를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닦아 준다. 순이는 말없이 자리를 비켜 주고 두 녀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반화에게 몸을 부볐다.
“...착하네...”
새근새근 잠든 녀석들을 쓰다듬어주며 반화는 자신의 머리 옆에 자리 잡은 순이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웃었다.
.
.
.
밤새 고민 끝에 반화는 옹이를 마음속에 묻어 두기로 했다. 이걸 알고 얘기 했을 리는 없지만 그가 곁을 떠나기 전 녀석이 말했었다. 혹시라도 돌아왔을 때 자신이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마지막을 이미 그와 아주 즐겁게 보냈으니 자신이 따라가지 않는 것을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고도 했었다.
“해골.”
“예.”
“많이 섭섭했겠다?”
“허허허, 아시니 다행이시네요.”
반화는 애써 찾지 않았던 과거를 이번 기회에 샅샅이 뒤져 기억을 되찾았다. 그가 잊었던 아틀란티스에서의 생활과 옹이와의 기억을 모두 찾으니 왜 자신이 이 기억들을 지웠는지 이해가 갔다.
“소중한 것들과 다시 볼 수 없는 곳까지 제 발로 가버렸으니, 지우고 싶었나봐. 애써...”
“소중한 것들에 제가 있다니 뿌듯합니다.”
“근데 순이는 안 지웠어, 가족들도.”
“....”
“그건 내 의지로 헤어진 게 아니거든.”
하긴 지구에서의 이별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별이었기에 자신이 용납했던 것이다. 선택한 이별이 아니니 그리워 할 자격이 있다고.
그때, 좋은 분위기를 한방에 깨버리는 용자가 쳐들어 왔다.
쾅!!
“이 망할 오빠야!!!”
“...뭐야 저 미친 *은?”
“뭐? 미친 *이 누군데? 설마 나야?”
“잘 아네.”
아침부터 그의 집으로 쳐들어 온 명하를 보며 반화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뉴월드 본사 박살났어. 알지? 그래서 나 일 안 나감!”
“? 그게 왜 박살났어?”
멀쩡한 건물이 박살났다는 말에 반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더 어이없는 건 명하였다. 눈앞에서 건물이 터지는 걸 구경했으니.
“나도 궁금하네. 멀쩡한 건물을 왜 박살냈는지. 그 경비를 뚫고 어떻게 박살냈을까?”
명하의 말에 반화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파스를 불렀다.
[그 놈들이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폭발 같습니다. 위성에 찍힌 걸 봐선 놈들이 확실합니다. 다만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진짜 가지 가지하는 놈들이네.”
안 그래도 미운 놈이 더 미운 짓을 한다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었다. 단순한 구조물 덕분에 스캔하기 편한 마계와는 달리 지구는 복잡한 건물들이 많아 스캔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놈들이 대놓고 다니지 않는 이상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파스의 말에 반화는 그냥 천천히 찾으라고 했다. 모기들처럼 멍청하다면 쉽게 찾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살려고 발악하다가 희망을 가졌을 때, 그 희망을 아주 박살을 내버리는 게 더 기쁘다는 건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기억을 살펴보면 그런 짓을 수도 없이 자신이 했었다.
“민사장은 뭐하고 있어 그럼?”
“그 사람이야 지금 현장에 나가서 조사하고 있지. 건물이 날라 갔다고 회사가 날라 간 건 아니니까. ”
“그럼 너도 가서 일해.”
“???”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닌데 왜 백수질이야? 가서 일해 임마.”
“아니 회사가 나를 부르지 않는...!?”
타이밍 좋게 걸려온 전화에 명하는 울상을 지었다. 불길한 짐작은 때론 너무 정확했다.
>>뭐합니까? 출근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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