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박멸 #
138화
녀석은 반화가 찜해놓은 녀석이었다. 바로 매를 닮은 녀석, 반화가 찾아 갔던 왕국의 지하에 봉인 되어 있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녀석은 모기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가끔씩 하나씩 집어 먹고, 건물을 부수고, 전기로 놈들을 재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배가 찬 것인지 한 바퀴 하늘위에서 돌더니 제 갈 길을 가 버린다.
“와, 저거 완전 깡패 아냐?”
저 뻔뻔한 행동을 봐선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움직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파스가 쫓아가기도 벅찼다.
“저 놈 계속 쫓아 가봐.”
[예, 근데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
파스가 10개의 위성을 총동원하면서 놈의 이동 경로만 겨우 쫓고 있었는데...
[음? 멈췄습니다.]
놈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쿠오오오오!!!!
-끼오오!!
퍽!!!
-쿠옹!!!!
갑자기 녀석이 지상으로 내려가더니 뭔가를 부리로 쪼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치 뭔가를 놀리 듯 멀리가지도 않고 빙글빙글 돌 던 녀석이 또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와, 이 자식 물건이네.”
과연 세계의 악동이라는 말이 왜 적혀 있었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그냥 길 가다가 눈에 띄는 놈들은 죄다 한 대씩 이유도 없이 쪼고 가는 놈이었다.
[뭐 이런 놈이 있죠?... 속도만 저렇게 빠르지 않았으면 진즉에 쳐 맞았을 녀석인데..]
물론 녀석도 강하긴 하지만 놈의 강점은 바로 속도였다. 그 속도를 정말 얄밉게 이용해서 지상의 녀석들을 가리지도 않고 건드리고 도망가는 녀석...
“쯧... 일단 모기 놈들 어떻게 되었는지 보자.”
세상에 다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저런 것이겠지 애써 무시하는 반화였다. 물론 그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순간 바로 소환 할 예정이지만 아직은 상관이 없으니 지금의 저 자유를 만끽하게 둔다.
[반이 날아갔는데요?]
“반이나? 얼마나 난리를 친 거야? 그리고 왕국급이라는 놈들이 그거 하나 못 막아?”
[지배자들 중에서도 상급을 차지하는 녀석 같은데요? 속성도 놈들에게 최악이고... 거기에 속도를 보면 인간 왕국에서 어떻게 봉인진에 가둬 뒀는지 신기할 정도에요.]
파스는 갑자기 인간들이 사용한 봉인진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졌다. 혹시 그 봉인진으로 저 괴물 같은 인간을 가두고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 때문에.
“알게 뭐야, 놈들은 뭐하고 있어? 설마 흩어지진 않았겠지?”
반화에게 봉인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놈들을 박멸할 수 있을 것 인가가 문제였다.
[어디로 우르르 몰려가는 데요? 흐음... 이것 봐요. 재가 된 놈들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어요.]
파스가 보여주는 영상에는 마치 개미가 뭔가를 운반하는 것처럼 놈들이 하나씩 뭔가를 들고 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흐음... 뭐하는 거지?”
[내부 투시해볼까요?]
“어.”
드르륵! 드륵!
영상에서 괴기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화면상태가 바뀐다. 실제 풍경을 보는 것 같았던 화면이 X-ray 촬영한 필름을 보는 것처럼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화면에 통해 보이는 건 제단 위에 쌓여가는 검은 덩어리들이 제단에 녹아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 제단??”
그러고 보면 반화는 참 제단 같은 곳과 인연이 많은 것 같았다. 악마소환을 위한 제단, 그림자 일족을 위한 제단, 해골씨가 마스터를 위해 세운 제단 등등...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제단다운 제단의 역할을 하는 제단을 이제야 봤다.
탐욕스럽게 재가 된 모기들의 시체를 흡수하는 제단, 그리고 제단의 공중에 떠있는 놈 하나.
“저놈은 뭐지?”
[아무래도 저놈들이 말하던 왕이 아닐까 싶은데요?]
“왕?”
[네, 저 놈들이 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아마 세계수도 무시할 강자라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던데요?]
“그래? 그럼 적어도 세계수보다는 강하다는 건데 겨우 그 정도야?...무슨 왕이 그렇게 약해? 겨우 ? 의식은 무슨 세계를 씹어 먹을 마왕처럼 하고 있는데?”
[...마스터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겁니다. 세계수도 나름 상위권에 속하는 지배자급이라고요. 아틀란티스라는 세계가 넓다지만 상위권 지배자가 그렇게 많은 줄 아세요?]
“우리 집에 널린 게 그런 애들인데?”
[...]
파스는 반화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너무 확실한 팩트였기 때문에...
“암튼 계속 지켜봐, 혹시나 다른 곳으로 새는 녀석들 없나. 그런데 지구에는 인도에 밖에 없어?”
[지금 추적 중이에요.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요! 나도 나름 바빠요!]
“뭐가? 너 우리 집에 모기가 접근하는 것도 몰랐더라?”
파스의 반항에 반화가 갑자기 훅을 날렸다... 아주 묵직한 라이트 훅을...
[그...그게 그때 좀 바빠서... 노에라한테 부탁했는데...헙!..]
“노에라? 그러고 보니 그녀석도 모기가 왔다는 걸 듣기만 한 모양이었는데 말이지? 이 녀석, 나 다른 곳에 있는 동안 뭐 하고 있었어? 또 네가 만든 생체 아바타로 놀고 있었어?”
반화의 추궁에 파스는 식은땀을 흘릴 수 있었다면 한바가지는 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콰직!!!
-쿠어어어어!!!!
“와...진짜 대박이다..S급 몬스터가 한방에 골로 가네.”
용군주 일행 중 하나가 덩치의 힘에 감탄했다.
“여태 계속 보고도 그러냐?”
“봐도 봐도 놀라우니까 그렇지... 지금 우리가 잡은 S급이 얼마냐?”
“10마리 정도?”
“...돈으로 바꾸면 얼마나 나올까..”
“확실한건 우리끼리 여태 뼈 빠지게 돌아다니고, 현실에서도 번 돈을 합쳐도 이번에 벌 돈만큼은 안 될 거라는 거야.”
그 말에 일행들 모두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게 확 와 닿았다. 이반화라는 능력자가...
“그 사람은 더 강한 몬스터 데리고 있다고 했지? 와씨...진짜 걸어 다니는 국가이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와서 도와! 이제 더 실을 곳이 없어서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한다고.”
용군주 일행은 덩치와 용용이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지 이제 겨우 2주 박에 되지 않았는데 모든 차량에 가득 찬 몬스터들 사체에 혀를 내둘렀다. 보통 한 달은 고생해야 저 차들이 반이나 찰까 말까 하는데, 질부터가 다른 몬스터 사체가 벌써 꽉 차다니... 그것도 일정이 빡빡한 것도 아니었다.
“근데 너, 몬스터 군주가 오면 어떻게 하냐? 용용이도 같이 딸려 가는 거 아냐? 저렇게 죽고 못 사는데?”
전투가 끝이 나자마자 찰싹 붙어 있는 덩치와 용용이를 보며 용군주의 동료가 말했다.
“끙...몰라, 일단 복귀나 하자. 저 녀석들도 일단 그 사람 별장에 데려다 줘야 돼.”
“난 모르겠다. 알아서 그 사람한테 빌고 블랙오거 입양하던지 해. 저 복덩이를 넘겨주면 안 되지 않겠어? 그 사람은 더 강한 몬스터도 있는데 최대한 불쌍하게 해서 찾아 가라고! 우리를 위해서.”
“...죽을 일 있냐?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그 양반은 절대 티비나 SNS상의 천사가 아니라고.”
장난을 치는 친구에게 용군주가 엄격, 근엄,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저런 모습이 되는 용군주의 반응에 더 재미있어서 친구들이 놀리는 것도 모르고...
어쨌든 이들도 2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예정보다 일찍 복귀하게 되었다. 두둑하게 돈이 될 것들을 가득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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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불안 불안하더니 또 저렇게 되었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는데 왜 가서... 아니 그렇게 좋으면 자기들이나 먼저 천국으로 가지 왜 저러는 거야?”
오랜만에 쉬는 명하가 엄마와 티비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둘이 보고 있는 뉴스에는 아프리카로 선교 및 봉사를 떠난 독우교회의 신자들이 경유하기 위해서 인도에 들렀다가 피랍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인도는 출국금지가 내려진 곳이었다.
“그나저나 넌 오늘, 왜 일 안 나간다고?”
“오빠가 안 가도 된대. 오늘 쉬라고 했어.”
“반화가? 그럴 리가 없는데?”
반화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친절한 아이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랬다는 건 이상했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와서 명하 취업시켜 주겠다고 한 것도 이상했는데...
“에이~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 못 미더워?”
“넌 반화를 믿니?”
“으음...”
빈말이라도 반화를 믿는다고 하지 않는 모녀의 대화에 반화의 아빠는 헛웃음이 났다. 어쩌다 아들이 저렇게 된 건지...
“이제 새해인데 반화 쟤는 연애는 안하나?”
“엄마 같으면 오빠랑 사귀겠어?”
찰싹!!
“니 오빠가 어디가 어때서? 물론 좀...애가 이상하긴 하지만!”
“아! 아파아!”
“너도 이 소중한 순간에 애인도 안 만나고 뭐해? 오랜만에 쉬는데.”
“나...나는 요즘 바빠서...”
“쯧...”
오늘은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 연인들로 가득한 거리를 명하는 나갈 자신이 없어 이렇게 쉬는 날에도 집에서 엄마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오빠 집에 또 누구 데려 온 것 같던데? 그것도 여자.”
“걔는 집을 크게 지은 게 무슨 숙박업소 하려고 그런 거니? 에휴... 지난번 그 아가씨 괜찮았는데. 하나를 제대로 잡지...”
반화 부모님의 한숨... 자식들이 생긴 건 멀쩡한데 내용이 영 이상해서 안타까웠다. 저 내용물이 밖에서 좀 안 드러났으면 좋겠지만 안에서 새는데 밖에서 안 샐 리가...
...
“흐음...인도라... 근데 지구 쪽은 너무 인간들하고 섞여서 처리하기 힘들겠는데.”
“그냥 왕을 잡으십쇼. 그 놈들 왕이면 일족을 소환하는 힘이 있을 겁니다.”
“오~ 해골. 간만에 머리 쓰는데?”
“허허허, 원래 머리는 항상 제가 썼죠. 마스터는 힘을 쓰고.”
“웃기시네. 텅 빈 대가리로 머리를 썼다고?”
“... 누누이 말하지만 제 외형은 마스터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모습입니다. 제 외형을 비아냥 거리는 건 마스터의 취향을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만?”
“일단 대가리를 잡으러 갈까?”
해골씨의 말에 말을 돌리는 반화.
“그러시죠, 뭐. 특기 아닙니까?”
“맹이야! 뼈다귀 줄까?”
“큼... 저는 일이 있어서...”
반화가 결국 맹이를 부르자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해골씨...
-뼈다귀~!?
“아냐, 아냐. 간식을 잘못 말했네?”
반화가 사라진 해골씨의 모습에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맹이에게 간식을 꺼내 주었다.
“흐음... 일단 잡으러 갈까.”
반화가 그 말을 남긴 채 집에서 사라진다.
.
.
스윽..
“여기 쯤 인가? 파스.”
[네.]
“여기 어디쯤이야?”
[계속 이동하고 있어요. 너무 빨라서 위치를 지정해 주긴 어렵네요.]
“뭐, 상관없어. 어차피 표식 해뒀으니까.”
반화가 가만히 자신이 새겨둔 기운을 쫓았다.
“찾았다. 요놈!”
스윽...
다시 사라진 반화.
-키요오오오오!!!!!
-크아아아!!!
치지지지직!!!
쾅!! 콰르르릉!!! 쾅!!!
노란 전류가 대지를 뒤덮고 있는 장소에 반화와 안면이 있는 매를 닮은 녀석이 길고 꿈틀거리는 뭔가를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두발로 꽉 잡고 승리의 포효를 지르고 있었다. 밑의 잡혀있는 녀석은 몸을 옥죄는 발톱과 온몸에 흐르는 전류로 생애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흠... 신나셨네?‘
-키요오오오..옹??!
어디선가 들린 반화의 목소리에 몸이 포효를 하다가 화들짝 놀란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놈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사냥감도 그냥 버린 채 날개 짓을 했다.
그러나 그 날개 짓은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여~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바빠 보인다? 기다려 줄까?”
녀석이 날지도 못하게 발로 머리를 누르고 있으면서 약 올리듯 반화가 말했다. 그러나 녀석은 지금 반화의 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빨리 저 악마의 주인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언제 악마가 올지 모르니까!
자신의 위에 있는 반화가 악마인지도 모르고...
-키요오오!!!
치치치치직!!!!
“음?”
놈이 발생시킨 전류가 반화를 재로 만들고 싶다는 듯 몸을 타고 올라 왔지만 찌릿한 느낌도 주지 못했다.
“나랑 해보자는 건가? 흐음... 굳이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슥!
척!
“아냐, 이러면 또 해골 대가리가 힘만 썼다고 놀리겠지.”
반화가 검은 공간에서 꺼낸 몽둥이를 다시 집어넣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이 녀석을 폭력적이지 않게 잘 타이를 것인가.
-키요오오오오!!!!!!
콰르르르릉!!!! 쩌저저저적!!!!
“... 안 되겠다. 역시 제일 단순한 게 최고지.”
몽둥이도 필요 없었다.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반화가 오랜만에 손맛을 한번 느껴 보기로 했다.
-키요...!? 끄헉!
퍼억!!
-꾸엑!!...
...
뇌를 흔드는 고통에 죽을 것 같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한번 손을 댄 이상 반화에게 자비란 없었다. 이정도면 아주 부드러운 육질이 되지 않았을 까 싶을 정도로 두들겨 버린 반화가 미동도 없는 녀석을 보며 애정의 손길을 멈추었다.
“흐음... 파스, 얘 치료 될 까?”
[... 정말 살아만 있는데요? 이걸 지금 치료하라고요? 크로롱액에 담그고도 며칠은 걸리겠는데요?]
파스의 냉정한 진단에 반화는 너무했나 싶었지만 이 녀석의 기질로 봤을 때 이렇게 해도 정신 차리면 눈치를 살살 보며 딴 주머니를 찰 녀석이 분명했다. 이런 녀석은 절대 배려, 양심 따위로 풀어 주면 안 된다.
“일단 롱이한테 치료하라고 해야겠네.”
애써 힘을 썼는데 죽으면 안 되니 치료는 해야 했다. 해골씨에게 가져가면 또 깐족일 테니 그냥 롱이에게 가져가기로 한다. 힘으로 봤을 때 롱이 정도면 녀석을 충분히 저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보면 정령왕인 셀라와 동급 같으니까.
“응? 이건 또 뭐지? 뱀? 이무기?”
머리에 거대한 뿔을 달고 있는 이무기가 반화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망가려 하다가 걸렸다.
“이무기가 그렇게 정력에 좋다는데...”
-!?
“장난이야 임마, 넌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오늘은 바빠서 뱀탕 끓일 시간이 없어서 보내 준다.”
섬뜩한 말을 남기고 세계의 악동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 반화...
-크허어...
.
.
.
쿵!
“?? 이게 뭡니까?”
“치료해 놓고 있어. 깨면 도망가려 할 수 있으니까 잘 잡고 있고. 놓치면 골치 아프다.”
“마스터??!”
“네가 연애해서 내가 굳이 이렇게 하는 건 아냐. 그냥 네가 적임자라서 그래.”
롱이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다시 사라져 버린 반화... 롱이는 황당했다. 웬 사체하나를 던지고 치료하라니...
“하아...”
“왜 그래요?”
“아니야...”
롱이가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에 힘없이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