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과거를 찾는 것은 잊고 여행 중 #
136화
일단 눈앞에 있는 녀석부터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제국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 모습으로 돌아다녔어?”
“이 모습? 아!! 이건 내가 수면기에 취하는 모습이야...훌쩍...”
반화의 말에 잽싸게 말하면서도 코를 훌쩍거리는 녀석, 아무래도 참교육이 조금 과했을 지도...
“수면기에? 그럼 지금 수면기였어? 얼마나 수면하는데?”
“1년? 그 정도..”
왠지 취조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마스터? 꼭 그렇게 험악하게 말해야 합니까?”
“뭐? 내가 언제? 이렇게 다정하게 묻고 있는데?”
“어디 봐서 다정입니까..?”
짝다리에 고양이 안고 껄렁한 태도로 봐서는 심문보다는 양아...아니 뒷골목의 왈패들 같았다. 문제는 저 자세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마스터의 기본자세라는 것이다.
“일단 잘 타일렀으니 밝은 곳으로 나가서 얘기 하시죠?”
“흐음... 그래, 뭐. 애들도 기웃기웃 거리는 걸 보니 그러는 게 낫겠네.”
동굴입구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지켜보고 있는 녀석들을 발견한 반화가 말했다.
-히히히, 들켰다.
삼이와 맹이의 멋쩍은 미소가 피어나는 곳으로 반화와 해골씨, 그리고 짬뽕의 신수...가 아니라 믹스된 신수가 걸어갔다.
퍼덕!
퍼덕!
“...야, 날면 되잖아.”
“아! 맞다.”
저거 모양만 저렇고 내용물은 머리가 생선이 아닌가? 다리가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좀 모자란 녀석 같았다.
반화가 바닥에서 힘겹게 움직이는 녀석에게 말하자 그제야 깨달은 녀석이 날개로 날아올라 해골씨와 반화의 뒤를 따라 나온다.
-아빠! 만져 봐두 돼?
“응? 쟤? 안 돼, 멍청멍청병 옮아. 비린내도 나고.”
-힝.
반화의 말에 삼이가 실망한다. 그러나 반화는 엄격, 근엄, 진지 했다. 정말 멍청멍청병이 있다는 듯이.
“야, 원래 모습으로 바꿔봐.”
“원래 모습? 아! 잠깐만.”
역시 교육의 힘은 위대해... 저렇게 빠릿빠릿해지다니.
꿀렁~꿀렁~
녀석이 몸이 잠시 꿀렁거리더니 통통하던 몸에서 점점 날씬해지기 시작하고, 다리가 생긴다.
“합!”
우렁찬 기합과 함께 마무리된 녀석의 변태.
“호오? 제법 요정답지 않습니까. 이제?”
“겉만 그러면 뭐해, 속이 멍텅구리인데.”
반화가 겉만 그럴싸한 요정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모두 박수 치며 좋아했다. 생선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 했다.
“됐지? 그런데 진짜 어떻게 여길 찾은 거야? 인간이 못 찾게 결계를 펼쳤는데?”
“결계??”
일행 모두 금시초문이었다. 무슨 결계를 쳤다는 건지.
“저거!! 저거 안 보여??”
“? 마나 빛? 저게 왜?”
“...저거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빛으로 인간을 현혹시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건데...?”
반화와 해골씨는 할 말이 없었다. 저게 결계였다니, 둘은 물론이고 쁘니마저 현혹 되지 않는... 응?!
“어? 쁘니가 어디 갔지? 령아, 쁘니 못 봤어?”
-캬웅...??!?! 캬웅웅!!!!
령이 당황한 듯 쁘니를 찾았다. 분명 다 같이 움직일 때는 옆에 있었는데 어느 샌가 사라져 버린 쁘니.
“역시 내 결계가 통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
“아오, 저 생선 자식이...”
반화가 의기양양한 녀석의 모습에 잠깐 주먹이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으나 지금은 중요한 게 사라진 쁘니를 찾는 것이었다.
“야, 저거에 현혹 되면 어디로 가는 거야?”
“내 결계? 당연히 저기로 가면 나오는 폭포에 떨어지게 만들었지!”
“...해골, 저거 다시 교육시켜.”
“예.”
우득!
“왜...왜!? 으아아악!!! 왜에에에!!”
퍽!! ...
반화가 서둘러 녀석이 가리켰던 장소로 날아갔다. 령이도 서둘러 그 뒤를 따라왔는데...
“없네...”
-캬우우우우웅!!!!
“임마, 그러게 왜 한 눈을 팔아?”
-캬우우웅...
원래라면 슬슬 독립할 때가 된 쁘니라서 령이는 일부러 관심을 덜 주고 한 것뿐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오다니... 안 그래도 한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령이였는데.
“괜찮아 임마, 찾으면 되지.”
-캬우우우...
자책하는 녀석을 반화가 달래면서 쁘니의 기운을 살폈다. 폭포 아래로 이어진 녀석의 기운...
“응? 뭐야? 바로 밑에 있네?”
-캬웅?
쁘니의 기운은 다행히도 폭포 중간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 벽에 매달려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녀석도 명색이 지배자의 자식인지라 이런 폭포에 죽을 걱정은 없었으나 찾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었다.
“근데 왜 안 올라오는 거지?”
걸계에 현혹되었다가 폭폭 중간에서 깨어났으면 바로 올라 올 것이지 왜 아직도 저기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반화가 친절하게 녀석을 데리러 내려가려고 했다.
-아빠!!!
파닥파닥!
“응? 삼이 언제 따라왔어?”
-방금! 근데~ 쁘니 저기 구멍에 있어! 반짝반짝 거리는 구멍!
“??구멍?”
-응!
언제 따라왔는지 삼이가 폭포까지 한번 살펴보고 반화를 불렀다. 구멍에 있다는 건 폭포 중간에 동굴이 있다는 말 같은데...
-왕!!
작게 들려 오는 쁘니의 울음소리에 일단 녀석이 있는 곳에 들어가 보기로 한 반화가 령이를 끌어안고 폭포 아래로 뛰었다.
콰아아아아~~
세차게 내리는 폭포 중간에서 멈춘 그가 어디서 쁘니가 울고 있는지 파악하고는 무섭게 내리는 물살을 헤치고 폭포로 돌진했다.
-우아아앙!!!
-캬우우웅!!
아름다운 모자의 상봉... 뒤의 당연한 령이의 잔소리. 아무리 아직 완전히 성숙한 녀석이 아니라지만 저런 현혹에 당하다니, 령이는 용납할 수 없었다.
-캬웅!!!
-우옹...
“흐음... 여긴 또 뭐지?”
그런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두고 반화는 생각보다 넓은 굴을 살펴봤다. 여기가 무슨 보물섬도 아니고 숨겨놓은 곳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반짝반짝 거리는 게 금인가?”
혹시나 해서 벽에서 발광하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 떼어보니 진짜 금이었다.
“헐... 뭐냐 이건... 진짜 보물섬이냐? 그럼 저 위에 있는 놈은 보물섬을 지키는 요괴쯤 되는 건가?”
찍!...찌직!
“응?”
반화가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굴 깊숙한 곳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쥐다!!!
파다다다다다....텁!!
-힝!?
“아빠가 쥐 같은 거 잡으면 지지 라고 했지?”
그새 반화의 말을 잊고 쥐소리에 날아가려는 삼이를 반화가 잡았다. 그러나 그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순이었다. 처음부터 계속 반화의 품에 안겨 있던 녀석이 쥐 소리에 반응하고 말았다.
스윽... 탓!!
소리도 없이 민첩하게 반화가 삼이에게 신경 쓰는 사이 사라진 순이!
-찌...찍?!!!
텁!... 대롱~ 대롱~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얌전하게 그냥 입으로 물기만 했다는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입으로 문, 쥐를 순이가 반화의 발 앞에 던졌다.
툭!
“얼마나 되었다고 그걸 까먹...응?......”
-냐아~!
당당하게 물어 온 쥐를 가리키며 순이가 뭔가 바라는 듯 반화를 빤히 봤다.
“그래... 잘했어. 니가 고양이 인걸 내가 잠시 잊었네..”
‘하도 사람처럼 굴어서 사람인 줄 알았네, 그래...’
쥐는 뭔가 체념한 듯 얌전하게 반화의 발 앞에서 벌러덩 누워 있었고, 삼이가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돼!! 힝...
“그러지마, 삼이야... 아빠가 장난감 많이 사줄게.”
-우움...알았어! 이번엔 봐 줄게!
-냐아!
탁탁!
자꾸 자신을 안보고 딴 짓하는 반화를 보며 순이가 바닥을 꼬리로 치며 불만을 토했다.
“끙...그래, 잘했어.”
슥~슥~
그릉~그릉~
반화가 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오랜만에 만족스런 모터소리를 내는 순이. 오랜만에 고양이 같은 순이의 모습이라 좋기도 하고, 여튼 좀 미묘했다.
-나도! 나도!
머리를 들이대는 삼이까지 만족 시켜주고 나서야 반화는 쥐를 살펴 볼 수 있었다.
“또 보네?”
-찌이이...
“쯧...너도 참 기구하구나.”
불쌍한 녀석 같으니... 모녀에게 두 번이나 보쌈 당하다니. 그래도 다행인건 둘 다 죽이지는 않는다는 걸까? 아니, 차라리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게 좋았을까?
“근데 왜 니가 여기 있냐? 그 산이 여기까지 연결된 건가?”
-찍!
“그래? 흐음, 그럼 그 마나의 산이라는 곳과 여기가 연결 된 거네.”
해골씨가 말했던 마나의 산이 저 녀석이 사는 곳이라 했으니 이 곳은 그 산과 연결된 동굴이라는 말 일 것이다.
“일단...령아, 그만 혼내고 올라가자. 순이, 삼이도. 그리고 넌, 어떡할래? 일단 따라올래?”
-찍!
쥐는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이건 뭐, 도망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잡혀오니... 다음번에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저 인간 옆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아주 좋지 못한 판단을 한 녀석...
“그래. 가자.”
쏴아아아아~~
푸드득..
반화가 아이들을 검은 기운으로 안고 폭포위로 올라 왔다.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있는 요괴(?)와 해골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쿨쩍...”
“교육은 확실하게 시켰겠지?”
“허허허, 예.”
해골씨가 뭔가 굉장한 상쾌한 모습으로 반화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 어디까지 했더라? 아! 해골. 얘 좀 데리고 있어. 이 괭이들 때문에 불안하네.”
반화가 황금쥐를 해골에게 던졌다.
쏘옥!
“...뭐, 잘 어울리네.”
“...”
-찌...?
하필이면 해골씨의 두개골에 자리 잡은 녀석이 널찍한 내부가 마음에 드는 듯 양 쪽 눈구멍, 입을 왔다 갔다 하며 찍찍거렸다. 붉은 안광은 쥐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는데 하필 황금쥐의 가죽에 있는 금 때문에 더욱 발광이 되어 붉은 가로등처럼 사방이 밝아졌다. 홍등처럼.
“뭐라고 했더라? 너 1년 동안 수면기였다고?”
“넵!”
“작게 말해. 그리고 제국은 그 모습으로 돌아 다녔어? 그 날개를 달고?”
몸보다 큰 나방 같은 날개에 반화가 의심된다는 듯 물었다.
“아니요! 날개는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건 넘어가고, 천 년 전에도 제국에 있었어?”
“으음...제국의 초창기에 잠깐 있었고, 그 후에는 제 정체가 들켜 도망 왔습니다.”
“도망?”
“예! 여기가 마나가 풍부하고 좋은 곳이거든요?”
녀석의 말에 해골씨가 끼어들었다.
“아마 마나의 산자락 끝에 걸려 있어 그런 겁니다.”
“그건 뭐 내 알바 아니고, 제국 초창기라...그럼 제국의 초대 황제도 봤어?”
“당연하죠! 제가 그 놈 때문에 이렇게 도망 온 건데...”
“왜?”
“자꾸 자기랑 같이 살자고 들이대는 바람에요.”
반화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말했다. 뭐가 아쉬워서 이런 생선 대가리 같은 녀석이랑 살자고 한다는 건지.
“구라치지마, 생선 주제 뭐가 좋다고?”
“생선이라뇨! 이렇게 예쁜 생선이 어디 있다고!”
“헐...”
참교육으로도 치유되지 못한 도끼병에 해골씨와 반화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녀석의 말처럼 인간 기준에서 아주 예쁜 얼굴이긴 했지만 반화의 집에만 가도 저런 녀석이 여럿 있었다. 가령 랑이라던가, 명하라던가, 셀라...등등
“허허허허, 교육을 다시 할 까요?”
“됐어. 야, 너 악마라고 알아?”
“악마..요? 알 것 같은데...”
“오!? 진짜?”
반화가 녀석의 말에 반색했다. 드디어 그 놈들을 아는 녀석을 찾은 것 같아 진심으로 기뻤다.
데굴...데굴...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반화와 해골씨만 눈알만 굴리며 보는 녀석.
“??뭐냐, 그 눈빛은?”
“마...말은 안 했어요! 전 악마님들 못 본 걸로 할게요!”
“뭐냐, 얘...”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캐릭터라.”
반화와 해골씨는 황당했다. 지금 자신들이 협박한 걸로 알아들은 녀석이 아예 두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도리질 치는 걸 보며 참교육이 너무 과하면 이렇게 되나 싶었다.
“다음부턴 적당히 해야겠네, 에휴. 애가 맛이 갔네, 갔어. 야.”
“예..에?”
“아니다, 해골. 얘 챙겨. 일단 집으로 갈 거야.”
“음? 스승의 묘는 안 가실 겁니까?”
“어, 처리할 일이 생겨서.”
귀찮다고 안 잡고 그냥 자다가 결국 새벽에 일어나 달밤에 춤을 추느니 자기 전에 아예 모기들을 박멸 시킬 생각이었다.
“그럼 이 녀석은??”
“음... 그냥 걔도 챙겨.”
1+1이랄까? 금맥을 찾아다니는 녀석이니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에나 한번 풀어 놓아 볼 생각이었다. 돈 걱정은 전혀 없다만 돈을 버는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