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일루에나 #
123화
“실패했습니다.”
“...왜?”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폴리크랙의 전력을 봤을 때, 분명 실패해도 연락은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것마저 없었다는 건 함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함정?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고,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대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가 샌 걸 알아차렸다...어떻게? 자신들이 세뇌되어있는 것도 모를 텐데?”
“에릭이라는 자가 그들이 발견한 던전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거기서 정보가 샌다는 걸 알고 소 뒷걸음으로 쥐 잡는 격으로 저희가 당한 것 같습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고층 건물의 정상에서 대화하고 있는 자들. 그들의 이마에는 갈라진 태양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가장 높아 보이는 자가 일에 대한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있었는데, 아깝게도 그들의 분석은 조금씩 다 틀렸다.
에릭 덕분에 정보가 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비한 것은 맞지만 일루에나가 그렇게 빨리 행동할지는 몰랐으니 만약 해골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작전이 통했을지도 몰랐다.
“인형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대비를 했다고? 피하지도 못할 정도로? 음... 역시 쉽지 않군.”
물론 폴리 크랙의 전력은 강하지만 그 섹터에 있던 인원은 섹터를 옮기느라 많이 빠졌을 때라 그들의 판단은 매우 좋았었다. 운이 좀 좋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미국 정부에서 두 눈에 불을 켜고 저희를 찾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활동은 잠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으음...어쩔 수 없지. 아직 힘이 완성 되지 않았으니. 그 제단의 물건이 고대 서적에 나오는 것이 맞다면 언젠가 다시 되찾아 와야겠지만..일단 한발 물러나야겠어.”
“예.”
“미국 쪽은 철수하고 최소한 연락만 가능하게 해.”
“알겠습니다.”
그들의 회의가 끝이 나고 명령을 내리던 자가 일어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사색에 잠긴다.
“태양이 갈라지고, 어둠이 찾아 올 날이 머지않았으니...지금을 마음껏 즐겨라, 인간들이여.”
.
.
.
“...왜 니들은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스컬이 여기 있으니까요.”
“전 당분간 한국에 있기로 했어요. 미국 내 분위기가 흉흉하기도 해서.”
“...”
반화가 그의 집에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 붙은 두 여자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무슨 호텔인 줄 알아?”
“파트너끼리 왜 이래요? 잠시 신세 좀 지는 건데.”
“오해할 말 하지 마. 사업이라는 말을 붙이라고.”
“그게 그거죠. 요즘 말 줄이는 게 유행이라는데.”
참 뻔뻔했다. 반화는 저 여자의 이미지가 원래 저랬었나 싶었다. 분명 똑부러진 경영자 이미지였는데...
“끙...”
“집도 넓은데 신경 쓰지 마요.”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반화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저 당당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며칠 같이 지낼 수 도 있겠지만, 반화는 반화니까 반화스럽게 처리했다.
휘익!!!
철푸덕!
“으악!”
“다 꺼져!”
집 밖으로 그냥 던져버린 반화가 비로소 찾아 온 평화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마스터.”
해골씨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넌 파스에 있다가 왜 또 내려 온 거야?”
“내 의지가 아닙니다. 그 파스라는 인공지능이...”
[마스터!! 저 해골대가리 좀 꺼지라고 해! 이곳저곳 들쑤셔서 성가셔 죽겠다고!!]
“저렇게 쫓아냈습니다.”
“...”
해골씨는 탐욕의 정령. 그가 마스터라는 자와 있을 때는 힘에 대한 탐욕을, 혼자 남았을 때는 지식에 대한 탐욕,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지식에 대한 탐욕을 부리고 있었기에 파스는 그 탐욕을 충족시킬 아주 좋은 소스였을 뿐이다.
그러나 파스는 그런 해골씨가 성가신 존재.
“적당히 해, 이 융통성 없는 해골아.”
“예. 뭐, 마스터가 그렇게 말하면 그래야죠.”
왜인지 반화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해골씨의 반응은 노에라가 꼭 배워야 할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너 이거 안 가져가?”
“예, 마스터가 있는데 굳이 제가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죠.”
“으음...그 마스터놈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지?”
“자신을 놈이라고 칭하니 참 기분이 좋습니다.”
해골씨의 말에 노에라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세계인지 들어 봤어?”
“당연하죠. 이런 세계였습니다.”
해골씨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TV, 컴퓨터, 폰 등등 죄다 처음 보는 것들이지만 마스터가 설명한 것과 똑같다면서.
“으음...그럼 그놈은 아닌데...”
“정말 기억이 없으면 마스터가 저 세계에서 한 일을 한번 거슬러 가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응? 어차피 지금 남아 있는 게 없을 텐데?”
“물론 그렇겠지만 인간들의 기술이란 이정도 시간에도 아직 보존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어 보이시는데..?”
반화는 백수라는 말을 돌려 깎은 해골씨의 말빨에 짜증났다. 자신을 천년이나 기다렸다는 녀석을 때리기도 그러니...
“그래...한번 가보기나 해보자. 파스!”
[왜?]
“...?”
[...요?]
“나 안본지 꽤 됐지?”
[하하하하하하...죄성함돠...]
“다단계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착착 진행 되고 있습니다! 현재 위성 10개, 군단 10군이 생산되어 중앙대륙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지도는 ?”
[지도 여기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중앙대륙의 모양은 나오지 않았지만 얼추 방향과 지형은 알 수 있는 지도가 반화의 앞에 나타났다.
“음...해골. 내가 어디서 처음 나타났어?”
“제가 듣기로는 남대륙에서 스승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인간들이 사는 중앙대륙에서 잠시 있다가 괴물세계로 떠나셨죠.”
“남대륙? 음...일단 거긴 패스하고 중앙대륙부터 돌아다녀 보자고. 여기, 지도 보고 루트 좀 짜봐.”
“예...음? 잠시...”
해골씨가 지도를 보다가 갑자기 멈춰서 뭔가를 했다.
“왜?”
“녀석들이 힘을 썼군요.”
“??”
“그 곳에 남겨뒀던 제 부하들이 힘을 썼다는 겁니다.”
“아아, 그래? 왜?”
“인간들이 공격했다는 군요. 제가 따르라고 한 인간들을 공격하는 놈들을 막으려고 힘을 쓴 것 같습니다.”
“따르라고 한 인간이면... 폴리 크랙 사람들인데, 음... 공격당한 건가? 누구한테?”
문득 미국의 테러사건이 떠오른 반화가 폰은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중요한 정보 알려주려고 한 건데 필요 없나 봐?
<>필요 없는 것 같으니까 끊는다.
뚝!
칼같이 자기 말을 지키는 반화.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덜컹!!
“반화씨!!!”
“...?!”
본가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샌디 크랙과 쥬 크랙...
“니들에 왜 거기서 들어와?”
“마침 반화씨 부모님이 저희를 보시고 들어오라고 해서 있었을 뿐이에요.”
밖에서 서성이는 둘을 본 반화의 부모님이 누굴 찾는지 물었고 반화를 찾아 왔다고 하니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초대한 모양이었다.
“...”
“정보가 뭔데요? 네?”
“너 뭐, 일 안해? 혹시 바지사장은 아니지? 왜 아직도 모르고 있어?”
“예??”
분명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야 할 텐데...
“어, 잠시 만요!”
>>여보세요? 대표님?
<>습격당했습니다. 비밀 섹터에서.
<>일루에나로 짐작 됩니다. 이제 막 수습이 다 끝나서 연락드리는 겁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혹시 모르니까, 일단 미국에 오지 마시고 저희가 정리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아무래도 한번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뚝..
“무슨 일이야, 샌디?”
“일루에나 놈들이 우릴 노렸나봐.”
“뭐?”
“던전에 대한 정보가 그쪽으로도 흘러간 것 같아... 그런데, 반화씨 설마 알려 줄 정보라는 게 이건가요?”
“엉.”
“어떻게 저보다 빠르게?”
반화가 해골을 가리켰다. 샌디와 쥬가 동시에 해골을 쳐다보자 해골씨가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아...그럼 스컬의 부하들이 지켜준 것이 군요?”
같은 말을 해도 쥬는 해골씨가 마치 의도했다는 늬앙스로 말했다.
“난 그냥 인간들을 따라가라고 했을 뿐이다. 행동을 하는 건 자신들의 의지지.”
“어쨌든 스컬의 부하들 때문에 우리 식구들이 무사할 수 있었으니 고마워요.”
반화가 쥬와 해골의 대화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나저나 해골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저 말입니까? 음...뭐라고 설명해야 할지...주로 마법을 사용하긴 했는데...”
“마법? 그거 별로 쓸모없던데?”
반화도 고대의 마법은 알고 있었다. 제국의 리치에게서 얻은 정보로 익힌 마법은 별장과 집을 연결하는 진을 만들 때 빼고는 그다지 사용할 일이 없었다.
“마스터가 만드는 거 다 카피마법 쓴 거잖아?”
“아, 맞네?”
노에라가 옆에서 한 소리하자 반화가 쓸모를 하나 찾았다.
“어쨌든, 그거 말고는?”
“음....”
해골씨가 대답을 못한다.
“식충이네 식충이...그래도 해골이라 뭘 먹지는 않는다는 게 위안인가?”
이집에 식충이로 들어온 잉여부부를 흘겨 본 반화가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나..나도! 할 줄 아는 게 있다!”
“?”
갑자기 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뭘 할 줄 아는데?”
“요리! 중식! 한식! 양식! 다 가능하다!”
“오?”
“맨날 천날 요리프로그램, 먹방 프로그램만 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배운다고 하고 진짜 배우더군.”
옆에 있던 셀라가 자랑스럽게 부연설명을 해준다.
“그래? 안 그래도 출출한데 요리나 해봐. 배고프지?”
“저희야 좋죠.”
샌디와 쥬도 동의했다.
“기다리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퓰이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본 노에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리 노예가 생기겠네.”
맛이 있어도 문제 맛이 없어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냥 잉여로 사는 게 편할 텐데... 마스터가 가끔 갈구는 것 빼곤 아주 편할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드래곤의 자존심을 노에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
.
.
미국.
“꼬리를 발견 했습니다.”
“그래? 어디야?”
“아주 대놓고 활동하고 있었는데 등잔 밑이라 발견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부와 함께 오늘 밤 습격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입니다.”
“으음...바로 코앞에서 놀고 있었군.”
크랙 1팀장이 부하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침음했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 저 해골들도 데려가는 겁니까?”
“글쎄...? 우리말을 들을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한적하게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있는 해골들을 보며 고민했다.
“대표님에게 물어 봐야겠어. 저들의 대장과 같이 있다고 했으니까.”
...
잠시 후
샌디 크랙과 대화를 한 팀장이 밝은 얼굴로 돌아 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대장이 알아서 데리고 다니라는 군. 우리말을 듣게 해 놓는다고.”
“오오오!!”
팀원들이 환호했다. 저들의 실력을 이미 본 뒤라서 아주 강한 아군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작전은 무조건 성공하겠네요.”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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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리 크랙과 정부의 작전은 대성공으로, 피해도 없이 끝이 났다. 이게 다 해골들 덕분이었지만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보는 흘러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말단조직원들은 모두 처리했지만 간부들 대부분은 이미 도주한 사태였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래도 손발을 모두 잘랐기에 일단은 미국 내에서는 활동이 어렵게 만들어 놨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지만 국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대성공이라고 정부는 발표했다.
“반화씨, 그 해골들 덕분에 작전이 성공했다는 데요? 일루에나, 아니 그 테러조직놈들 저항이 굉장히 심했데요.”
“그래? 뭐 그런가 보지. 그럼 이제 미국에 가겠네?”
“아...뭐, 그래야겠죠? 업무도 밀려있으니.”
미국에서의 안전이 확보된 이상 샌디가 여기에 계속 있을 명분은 없어졌다.
“잘 가.”
“그게 다에요?”
“응.”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그때까지 있을까요?”
“아니. 그때면 아마 나 여기 없어.”
“?”
“게이트 안에 있을 거거든.”
“아... 그렇구나...”
실망한 샌디가 해골씨와 딱 붙어 있는 쥬를 부럽다는 듯이 봤다. 해골과 인간 사이를 부러워하다니...자신의 처지가 참...
“아! 그 일루에나라는 놈들. 걔들 정보 좀 줄래?”
“그건 왜요?”
“왜 제단의 검을 가지려고 했는지 궁금해서.”
폴리 크랙의 비밀섹터를 공격한 녀석들의 말이 샌디 크랙에게 전해 졌고 샌디 크랙은 또 반화에게 말해서 그들이 제단 위의 물건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반화.
“알았어요. 대신 데이트 한번만 해요. 언제든지.”
“됐어. 그냥 안 줘도 돼.”
“...진짜 너무하네.”
샌디 크랙이 울상을 지었지만 반화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쳇... 이것도 안 통하네. 정보는 드릴게요. 다음에 또 봐요?”
먹히지 않자 바로 표정을 바꾼 샌디.
“마음대로. 집에는 웬만하면 오지 말고.”
끝까지 철벽을 치는 반화. 그는 그저, 이런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이 귀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