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해골씨 #
117화
“흠... 실례했군. 그런데 정말 나를 모르는 건가? 혹시라도 알면서 나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
“몰라. 기억 안나. 처음 보는데?”
“으음... 그렇군. 내가 착각했었나보군. 너무 오래 기다려서 그런가...”
다행히 노에라가 우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골씨는 역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노에라가 다시 반화가 시비걸기 전에 서둘러 이곳을 정리했다.
“저 인간이 해골씨의 검을 건드렸는데, 여기 다른 사람들하고는 상관없어. 그냥 저 인간의 독단이야.”
“그런 것 같더군. 하긴 이곳의 것을 배워보니 과거에 내가 했던 일이 좀 과한 것이었더군. 제국을 그렇게 만들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에이~ 그건 아니지. 그쪽은 이쪽세상이랑 달라. 분명 그냥 넘어 갔으면 기어올라 왔을 거야.”
“그럴지도...”
해골씨는 마스터의 검을 건드린 것에 분노해 이곳까지 단숨에 왔지만 노에라를 만난 것에 잠시 잊었었다. 게다가 이제 와서 저 검에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자신이 쓰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 모를 마스터를 위해 보관한 것인데...이미 1000년이 넘게 지나있었으니... 마스터와 똑같이 생긴 인간 같지 않는 존재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지만 그때와 같은 집착은 많이 감소했다. 인간의 말로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맞았다.
“이렇게 검을 둔 내 잘못도 있긴 하겠어. 탐욕을 낼 만도 했지.”
제단 위의 검이라니 해골은 이걸 만들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놓고 나 특별해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해골씨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 마스터란 인간이 왔으면 좋아했을 걸?”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만 하고 자리 좀 옮기자. 팀장님?”
“예...에?”
“저들 처리 좀 부탁할게요. 아, 그리고 쟤들 스케빈져에요.”
반화가 한쪽 구석에 있는 크러쉬 팀과 기절한 에릭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에 팀장은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스케빈져요??”
“마나제어 아티펙트를 훔친 것 같던데요?”
“!!! 설마!! 지난 게이트 방어 때 잃어버린 걸?”
“그것 까진 모르겠네요. 나도 엿들은 거라.”
반화와 팀장의 말을 들은 크러쉬 팀은 이제 이판사판으로 문을 뚫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지만 흔적하나 없이 멀쩡한 문.
“젠장!!”
쾅!쾅!쾅!
“쯧. 시끄럽게 구는 군.”
해골씨가 크러쉬 팀이 만드는 소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바라봤다. 그리고...
드드드....콱!
퍽!!
퍼석!!
“대...대장! 저거!!”
“응? 뭐...!!”
바닥을 뚫고 나온 허연 것들을 본 남자 하나가 리더를 부르며 말을 더듬자, 안 그래도 바쁜데 쓸데없이 부르는 남자를 타박하려다 손끝이 가리키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끝에 보이는 허연 뼈다귀모양이 조립되는 것을 보며 다급하게 폴리 크랙쪽에 도움을 요청한다.
“사...살려줘!! 아티펙트 다 넘길게!!”
그러나 폴리 크랙 팀장도 딱히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우득...뚝!
-!!!!
드드드드득!
어느새 조립을 마친 해골들이 목을 돌리며 크러쉬팀에게 접근하는데...
“걱정 말게. 죽이진 않을 테니.”
팀장이 그 말에 한숨 놓았다. 딱히 스케빈져를 동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죄는 따져 벌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흐음...묘하네? 언데드는 아닌 것 같은데.”
“예?”
뜬끔없는 반화의 말. 저 해골이 언데드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소설, 영화에 나오는 딱 그 모습인데.
“사기가 없어, 투기는 있는데. 언데드는 사기가 있어야 돼. 중국에 있던 좀비들 알아?”
“아예, 반화님 오기 전에 전해 듣긴 했습니다.”
“그게 사기 때문에 생긴 거거든? 근데 저 해골들은 사기가 없어. 오히려 순수한 기운이란 말이지...”
“?”
팀장에겐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노에라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해골씨랑 쟤들은 언데드가 아냐.”
“그래?”
“정령과 신수에 가깝지.”
“흠...그렇긴 하네.”
저 흉악한 해골이 신수와 정령에 가깝다니...자신들의 귀로 들은 것이 확실한지 서로 확인해보는 팀원들...
그사이 해골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크러쉬팀을 제압했다.
“크억.”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
쾅!!!
슈오오옥!!! 쩌저적!!!
그그그극!!
각종 능력으로 반항했지만 해골들은 모든 것을 무시했다. 그리고 한방에 한 놈씩 정리했다.
퍼억!!
“컥!”
퍽!
“끅...”
질질질질....턱!
우득!
“이제야 조용하군.”
“끝났나? 이제 그만 우린 가자고?”
“? 어딜 가자는 거지?”
“우리 집.”
“해골씨! 놀라지 말라고. 저 집에는...”
‘악마가 살고 있어.’
뒷말을 하지 못했다. 내심 해골씨가 그 악마와 부딪혀 혼내 줬으면 싶었기에...
“우린 먼저 갈게요?”
“네?...같이 안가시고요?”
“번거로울 것 같아서요. 먼저 갑니다!”
“바...반화님?!”
스윽...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진 반화 식구들과 해골씨... 덩그러니 남은 팀장은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해골들을 슬쩍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하...안녕...하세요?”
-...
“...”
.
.
.
스윽..
“응? 별장으로 왔네?”
“저 녀석을 내 집에 들여놨다가 명하나 다른 사람이 보면 곤란하잖아.”
가뜩이나 식구도 많은데...
“그렇긴 하지. 난 내 몸 찾아올게!”
“그러던지.”
노에라는 신나게 파스를 불러 사라지고, 해골씨는 반화의 별장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반화를 뚫어져라 봤다.
“흐음...취향이, 내 마스터와 닮았군. 거기에 공간을 찢어 이동하는 방법은...”
“난 너 기억 안 난다니까?”
“그렇군. 괜한 말을 했군.”
“응? 이런, 니 부하들을 안 데려왔네.”
이제야 알아차린 반화.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무거운 몸을 움직이진 않았다.
“상관없네. 인간들에게 해를 가하진 않을 거야. 그 인간들을 잘 따르고 있으라 했으니까. 다만 오랜만에 깨어나 호기심은 왕성할지 모르겠군.”
“특이해...”
“내가 볼 땐 너도 특이하다.”
서로 특이하다고 하는 둘은 남들이 보면 그냥 둘 다 특이했다.
-아빠, 아빠!
“응? 왜?”
-해골이랑 놀아도 돼?
반화에게 말하는 삼이, 그 모습을 본 해골씨가 입을 벌렸다.
“...그 녀석은 또 뭐지?”
해골씨가 반화와 노에라 때문에 느끼지 못한 삼이와 맹이를 보고 놀란 듯 했다.
“얘들? 왜?”
“어떻게 이런 기운을???!”
확실히 이 해골, 예사롭지 않은 녀석이었다.
“왜? 뭔가 느껴지나?”
“흉악한 기운이군...”
“호오? 흉악한 기운이라... 이렇게 귀여운 애들인데?”
-웅?
반화가 삼이와 맹이를 품에 안아 들어 올리자 고개를 갸웃하는 두 녀석.
“그래서 이상하다는 말이지... 그런 기운을 품고 있는데 기질은 밝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 이건가?”
“그렇지.”
“당연하지, 내가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데.”
“호오? 그런가?”
“그래.”
해골씨는 반화를 다시 봤다. 평범한 인간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기한 인간이야...그렇게 생긴 인간은 원래 좀 그런 건가?”
“그렇게 생긴? 늬앙스가 좀 그렇다?”
“흐음...”
반화의 말에도 신경 쓰지 않는 녀석은 반화만큼이나 마이페이스였다.
팟!!!
“짜잔!! 해골씨!”
덥썩!!
갑자기 나타난 노에라가 해골의 두개골에 몸을 마구비비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오...진짜였군...그 어릴 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운이군.”
“그렇지?”
“생긴 건 변함이 없구나.”
“히히히!”
반화는 노에라가 저렇게 밝게 웃는 것을 처음 봤다. 자식, 그래도 잘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삼이랑 맹이는 은혜도 모르고 저러면 안 돼?”
-웅?
갸웃?
“그만 진정하고 저 인간에 대해 좀 알려 줘. 너를 노예라고 부르던데, 너는 마스터라 부르고. 어떻게 된 일이지?”
“노예라니! 노에라라고 저 인간...아니, 마스터가 내 이름 길다고 제멋대로 줄였어!”
“노에라? 흠...나쁘진 않군.”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 저 인간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인간이야.”
“?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세상의 인간은 멸종했으니까.”
“아니. 아니, 그쪽 세상 말고 다른 세상에 잠깐 넘어갔다가 왔다고. 공간을 찢고.”
“!!! 공간을 찢고, 세상과 세상을 이동했다고?!”
노에라의 말에 과하게 놀라는 해골씨.
“으,응? 어어.”
그 반응에 노에라도 놀랐다. 해골씨에게서 이런 반응을 보다니...
“인간! 정말 내가 기억나지 않는가!?”
“몰라.”
반화는 진짜 기억이 없었다. 애초에 아틀란티스 세계에 대한 기억이 없었는데 해골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믿을 수 없어... 그런 짓을 하는 존재가 마스터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나를 모른다니...!”
고오오...!!
뭔가 잔뜩 흥분한 해골씨를 노에라가 급하게 말렸지만 무리였다.
“뭐야?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거 아냐?”
반화는 반화 나름대로 황당했다.
-아빠. 내가 혼내 줄까요?
“응? 아냐아냐, 괜찮아.”
맹이가 두 주먹을 꼭 쥐고 반화에게 물었다. 자신 있다는 말투였지만 굳이 녀석에게 맡길 이유는 없었다.
“여기 다 부서져 그러다...”
맹이에게 맡기면 별장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
-힝...
“다음에 좋은 상대 찾아 줄게?”
-응!
-크르르...
“넌 또 왜?”
-끼잉..
괜히 나섰다가 반화의 말에 뒤로 빠지는 이름도 아직 없는 녀석.
“넌 누구지? 마스터의 껍질을 뒤집어쓴 괴물인가?”
파지지직...!!
해골씨가 반화를 노려보며 물었다.
“글쎄? 그 마스터라는 놈이 누군지 모른다니까? 괴물은 인정하지.”
순순히 괴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반화. 그가 생각해도 그는 괴물이었으니까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흠...뭔지 모르겠다만, 한판 붙고 싶으면 장소를 옮기지.”
반화는 저 해골을 제대로 파악해 볼 생각으로 물었지만,
“옮길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군.”
해골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공간을 찢고 이동하는 게 어려운 건 맞지만 자신도 이 정도는 가능하기에.
“너한테 선택은 없어.”
팟!!!
“크윽?!”
순식간에 해골을 잡아챈 반화가 녀석과 함께 사라진다.
“으아!!! 이 미친 !! 그렇게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계속 반화만 신경 쓰다가 해골씨를 간과한 것이 이 사태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 노에라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토닥토닥!
-힘내, 쥐야.
-힘내.
괴로워하는 노에라에게 위로하는 삼이와 맹이, 뭔지 이해를 하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해골씨도 한번 흥분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걸 깜빡하다니...근데 도대체 그 해골씨의 마스터라는 작자랑 얼마나 닮았기에 저러는 거지?”
노에라도 그 마스터라는 작자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몰랐기에 해골씨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과 있을 때 항상 그리워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모습이기도 했었기에 더욱 헷갈렸다.
“끄으응... 어디로 간 거지..파스!!!”
[뭐야? 쥐? 생각보다 멀쩡하네?]
“!! 맞다, 너! 고자질했지!! 끄응...일단 그건 나중에 따지고 마스터 어디 있어???”
[사실을 말한 거지. 마스터는...미친 뭐하고 있는 거야?]
파스가 반화의 위치를 찾다가 갑자기 욕을 했다. 노에라도 파스의 욕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아빠 혼자 재밌게 노나 봐...
-아니야, 우리랑도 나중에 놀아 주실 거야. 삼이야.
-그러겠지?
-응!
파스와 노에라의 반응과 비교되는 삼이와 맹이의 반응...이들이 이렇게 반응을 보이는 건 간단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기파가 이곳을 휩쓸고 지나갔으니까... 그 기파의 주인공이 반화와 해골씨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