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일상 #
89화
덜컹!
“어이.”
“아! 저희는 독우 교회...”
“닥치고 꺼져.”
“예?”
“꺼지라고, 교회가 무슨 삐끼 짓을 해? 여기 어딘지는 알고 온 거지? 종교도 방문판매하냐?”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닌가요?”
반화의 말에 일행 중 하나가 튀어 나왔다.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 반화에게 그다지 좋은 반응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일반인에게 손쓰기도 뭐해서, 반화는 그냥 깔끔하게 기세를 슬쩍 흘렸다.
“헉!?!”
“끅!”
그 기세에 놀란 사람들이 말을 잃는다. 그 모습에 그냥 문을 닫고 들어 온 반화는 잠시 문 앞에서 서 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느끼고 나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야?”
“몰라, 무슨 교회라는데.”
“무슨 교회가 방문 판매도 아니고 집을 찾아와? 하여튼 희한하다니까?”
“그러게, 자자! 이제 정리 합니다?”
“아아아! 잠시만! ”
우걱!우걱!
반화의 말에 급하게 고기를 볼 주머니에 저장하는 노에라, 이미 포화상태인 볼 주머니의 크기는 몸의 두 배는 넘어 보였다. 보이는 게 노에라 몸집의 두 배지 실제로 들어간 양은 어마어마했기에 가족들이 어이없다는 듯 노에라를 봤다.
“얘, 입에 블랙홀이라도 있어? 뭐 저렇게 많이 넣어?”
“몰라. 그만 먹어 자식아.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네.”
계속해서 꾸역꾸역 집어넣는 노에라를 치우고 자리를 정리한 반화가 가족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 나서야 앉아서 쉬었다.
“순.”
그의 부름에 눈치를 보던 순이가 도망가려 했지만 반화의 손을 벗어 날 순 없었다.
“너 이 쉬키. 요즘 왜 나한테는 왜 애교도 안 부리고? 응?”
주물! 주물!
순이의 볼을 주물럭거리며 섭섭한 마음을 치유하는 반화. 지은 죄가 있는 지라 가만히 있는 순이를 마음껏 주물럭거리고 나서야 풀어준다.
“그나저나... 내가 예전에 사고 친 게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괴물세계를 다녀오기 전에는 무슨 사고를 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처럼 바르게 산 사람이 어디 있다고....”
.
.
.
다음날.
일찍 일어난 반화가 간단하게 푸롱 열매로 아침을 때우며 아침햇살을 만끽하고 있으니, 어미 여우가 다가와 안긴다.
“? 일찍 일어났네?”
다른 아이들은 다 널 부러져 점심은 지나야 일어날 텐데...
-캬옹
“꼬리가 ....여섯 개였네? 그냥 좀 풍성한 건 줄 알았는데.”
이제야 여우의 꼬리를 확인한 반화가 풍성한 여섯 개의 꼬리를 만져 봤다.
-캬오~
“으싸! 털도 복슬복슬한 게 코트로 만들면....”
-컁!
“장난이야, 임마. 뭘 그렇게 정색해?”
그의 말에 쓰다듬던 손을 깨물며 반항하는 녀석을 다시 달래준 뒤 부드럽게 부들부들한 털의 감촉을 다시 느낀다.
묘하게 시원한 털 때문에 느낌이 더 좋았다.
-캬우우~
녀석도 반화의 손길이 좋은지 나른한 울음을 내 뱉는다.
“흠...롱!”
퐁!
“불렀습니까?”
한편에 나무로 있던 녀석이 반화의 부름에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다가왔다.
“너 얼마나 살았어?”
“? 아아... 안타깝지만 영성을 가진 건, 마스터가 힘을 준 이후라 그 전에 제가 얼마나 살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 봤지만 역시 영성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것은 오히려 이 쪽 세계로 넘어와서 얻은 지식이 더 많았다.
“너는 얼마나 살았니?”
-캬웅?
“으음...”
육미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아까 말 알아듣지 않았나?”
-...캬웅?
“쓰읍!”
반화의 노림수에 걸려든 녀석은 그의 눈치를 보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의 손에 붙잡혔다.
-캬우웅!
“희한하게 애들이 내 말은 잘 알아듣는 단 말이지... 왜 그러지?”
순이도 그렇고, 꼬맹이와 삼이는 말하기 전에도 그의 말을 곧 잘 알아듣곤 했었다. 물론 자기들한테 불리한 내용이면 모른척했지만...
반화는 잘 모르지만 그의 말에는 힘이 담겨 있어 가능한 일방적인 의사소통이었는데 정작 그는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아, 이름도 지어 줘야하는데...”
살랑살랑
반화의 말에 기대하는 눈치인 녀석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음... 롱아, 뭐가 좋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은근히 눈치 주는 여우 덕분에 슬쩍 빠져나가는 롱이.
“흠...여우니까 여...영? 영이? 꼬영이? 괜찮은데?”
-캬오오!
“별루야? 그럼 령으로 하자.”
‘령’이 문제가 아니라 앞의 ‘꼬’가 문제라는 걸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가 손쉽게 녀석의 이름을 작명하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캬옹..
“새끼는 쁘니라고 지었어.”
덥썩! 깨물깨물...
그 말에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그의 손을 깨물었다.
“나한테 하지 마. 내가 지은 거 아니니까! 난 반대했다고.”
물론 그가 지었다고 그것보다 좋은 이름이 나올리는 없었다.
롱이는 다시 나무도 돌아가고 령이와 한참 놀다보니 아이들을 빼고 정령왕과 드래곤, 노에라, 순이까지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났어? 이거 좀 먹어.”
그가 일어난 녀석들에게 미리 딴 푸롱 열매를 권했다.
“아! 거기 도마뱀!”
-...왜?
반화의 부름에 떨떠름한 모습의 드래곤. 도마뱀이라는 말에도 분노조절장애는 튀어 나오지 않았다.
“넌 저 세계에 오래 살았을 거 아냐? 넌 아는 게 없어도 다른 녀석들은 아는 게 좀 있겠지. 드래곤들끼리 무슨 커넥션 같은 거 없어?”
-없는데? 녀석들과는 크라센에 와서 연락을 끊은 지 한참 되었다.
“마스터, 혹시... 어제 말한 그 녀석들 찾으려는 거야?”
“뭐, 그럴까 생각 중인데, 왜? 혹시 생각나는 거 있어?”
“그건 아니지만...”
레드 드래곤도 딱히 뭔가 아는 것은 없어 보이는 골방 폐인 같았고, 노에라도 기억나는 게 없으니...
“그냥 한번 엎어버릴까?”
그의 혼잣말에 노에라가 섬뜩해졌다. 저 인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크라센이라는 괴물을 간단히 고기로 만들어버리는 무지막지한 괴물이 마스터였으니까.
정령왕과 드래곤도 그 소리를 듣고 흠칫 떨었다. 그 반응들에 반화가 인상을 팍! 썼다.
“이것들이...장난도 몰라?”
“..마스터가 그렇게 말하면 장난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런다.”
“또 깐족거린다? 진짜 그러기 전에 니 친구들이나 어디 있는지 알아와.”
“걔들도 나처럼 뽈뽈뽈 돌아다니는 녀석들이라... 그땐 게이트라는 것 때문에 정말 예외적으로 만난 거라...”
“그 예외 내가 또 만들어 줄까?”
“아니다! 내가 꼭 찾아보겠다!”
“쯧, 아! 파스!”
[불렀습니까?]
“어때? 정보 습득한 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양질의 정보가 이렇게 잘 정리 되어 있다니,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거짓이 아닙니다.]
“그래?”
[예, 그 중 기계, 물리 쪽은 제가 가진 정보와 유사한 점이 많았지만 바이오 쪽은 정말 놀랍습니다.]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이 녀석이랑 저쪽 세계 좀 조사 해줘.”
[이쪽의 정보를 조금 더 획득하고 싶습니다.]
“본체는 두고 날파리들 보내. 이 녀석 보조만 좀 해주면 돼.”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우오!? 마스터 방금 뭐랑 말 한 거야?”
“인공지능이랑.”
“!! 인공지능!?”
요즘 히어로물의 영화에 빠져 있는 노에라에게 인공지능이라는 미끼는 녀석을 산채로 싱싱하게 낚을 강력한 미끼였다.
“어, 파스! 이 녀석하고 대화 할 수 있어?”
[현재 사용자의 승인이 있으면 임시 사용자로 등록이 가능합니다. 하시겠습니까?]
그가 손을 조금 본 덕분에 바로 덥석 사용자로 등록이 되는 건 방지했다. 그 덕분에 그의 승인이 필요한 파스가 동의를 구했다.
“어, 일단 그렇게 해.”
[스캔하겠습니다.]
츠르르르...
노에라의 몸을 스캔한 뒤 녀석의 몸에 통신 가능한 장치를 주입하고 임시 사용자로 등록 했다.
“오오오오! 그럼 나 그 인공지능 구경도 할 수 있어?”
“파스. 이 녀석 본체로 이송해서 교육 좀 해.”
[알겠습니다. 이송 합니다.]
지잉! 팟!
노에라가 빛에 감싸져서 본체로 이송되고 나서야 집이 조용해 졌다.
“덩치는 별장으로 돌아갔나?”
그러고 보니 덩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 큰 덩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이 집에 없다는 뜻이니까 녀석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빨리 용용이랑 만나게 해주든지 해야지...쯧...”
힘없이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안타까워진 그가 혀를 찼다. 사랑이 뭐라고...
“니들은 사랑 하냐?”
갑자기 뜬끔 없는 질문에 정령왕과 드래곤이 당황한다.
-당연하지!
-그..그건 갑자기 왜 묻는가?
의외로 부끄러워하는 정령왕의 모습과 당당하게 당연하다고 대답하는 드래곤...
“염병은... 됐다, 됐어.”
그 꼴 보기 싫은 모습에 반화가 고개를 휙 돌려 기지개를 펴고 있는 순이를 봤다.
-냐아?
총총총! 쏙!
그를 본 순이가 령이와 그의 사이를 파고들어 쏙 들어 왔다.
꾹!꾹!
발로 반화 눈치 보며 령이를 슬쩍슬쩍 밀어내는 냥아치, 순이.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왜 누가 내 품에 있기만 하면 이러실까?”
그런 순이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는 반화의 모습에 드래곤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모든 존재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짝을 못 찾는 것 아닌가?
“응? 어쭈?”
-큼...이것 참 맛있군.
기세 좋게 한 소리했다가 반화의 째림에 바로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린다.
드래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괴물들의 세계에서 돌아 온 뒤로 모든 것은 그의 눈 아래 존재했으니까.
“됐어, 이 녀석들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뭐.”
어느새 일어난 아이들이 우르르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아빠아~
-졸려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달려오는 모습이란 정말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여운 모습이었다.
아직은 어색한 쁘니는 자기 엄마의 곁에서 애교를 부리지만 녀석도 조만간 반화의 곁에서 맹이와 삼이처럼 칭얼거릴 날이 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상하게 아이들에게 매력이 넘쳤으니까.
-신기한 일이네. 딱히 잘해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저 인간을 따르다니.
정령왕이 신기한 듯, 부러운 듯 반화를 봤다.
“으차! 잠 깨고 얼른 아침 먹어,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응? 아빠 어디가?
“응. 누구 좀 만나고 올게. 오면서 간식 사다 줄게.”
-응! 알았어요!
간식이라는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맹이.
간단하게 나갈 준비를 마친 그가 오랜만에 차를 꺼내 운전을 했다. 아니 림자를 불러 운전을 시켰다.
“어때? 차랑 롭스1호기랑 비교하면?”
“롭스1호기도 좋지만 이것도 이것만의 재미가 있어서 좋다. 다음엔 다른 차도 몰아보고 싶군.”
그의 집 차고에 쌓여 있는 슈퍼카들을 운전해 보고 싶은지 림자가 입맛을 다셨다. 그가 직접 만든 이 차도 괜찮지만 순수하게 인간들의 기술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차를 모는 것도 재미있어 보였던 건지, 아니면 원래 이 종족들은 뭔가 조종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로는 정말 최고인 종족임은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래그래, 나중에 몰아 보자고, 운전하는 맛이 있는 게 많으니까 하나씩 해보자.”
“역시! 오랜만의 소환이 마스터라는 것이 참 다행이군. 이런 좋은 경험을 하고.”
소환 때의 기억은 이미 날라 가 버린 림자가 신난 듯 차를 몰며 뉴월드의 본사로 이동했다. 원래 게이트 주변에 빌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더 큰 건물로 본사를 옮겼기에 반화도 처음 가는 것이었다. 원래 쓰던 건물은 회사 소속 길드들이나 팀들의 편의를 위한 건물로 바꿨다고 한다.
누가 봐도 세련된 새 건물의 본사에 도착한 반화가 잠시 건물을 감상했다.
“흠...파스에 있는 건물들이 훨씬 좋은데?”
짧은 혹평을 하고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복작복작거리는 인파에 놀랐다. 그가 그렇게 회사를 자주 찾아 온건 아니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니...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가 문 근처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자 한 남자가 다가와 정중하게 물었다.
“아, 사장님 좀 보러 왔어요.”
“네??”
“이반화가 찾아 왔다고만 해주실래요?”
“아...네, 이반화씨요? 잠시 만요.”
남자가 반화의 말에 당황한 듯 서둘러 데스크로 가서 연락을 취했다. 잠시 후 반화에게 다가 온 남자가 반화를 직접 안내 해 주기 시작했다.
“제가 입사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뭐 회사에 자주 나와서 얼굴 비추는 건 아니라서요. 굳이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은 과하게 그에게 사과하는 남자의 모습에 반화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자 그제야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표정으로 그를 민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전용 엘리베이터인 듯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가는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참내... 누군 저렇게 좋은 운 타고 나서 저렇게 전용 엘리베이터로 위로 쑥 올라가며 떵떵거리는데...”
“얌마, 우리도 나름 출세 한 거야. 무려 뉴월드 소속이라고. 대한민국 최고 능력자 매니지먼트.”
“알아, 임마. 꾸역꾸역 실력 키워서 겨우 들어 왔는데 모를까봐? 근데, 그렇게 들어 왔는데 여기서도 격이 다른 걸 느끼니까 하는 말이지.”
크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말에 그들도 끄덕였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반화이기에 그저 운 좋게 좋은 능력을 얻은 능력자로 생각 한 것이다. 다행히 반화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탄 상황이고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