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일상 #
87화
말도 없이 덩치와 아이들만 챙겨서 스윽 없어진 반화를 뒤늦게 여왕과 엘프들이 찾았지만 이미 사라 진 뒤였다.
“인사라도 하고 가시지...”
여왕이 아쉬운 듯 혼잣말을 했다.
“휴우... 없구나.”
반면 두르한과 다른 엘프일행은 반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자! 여왕님도 장로님들도 할 이야기가 많을 텐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해야 할 말도 있고요.”
반화와 여행하면서 겪은 일은 모두 하나같이 평생 한 번 겪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그중 크라센과의 전투는 꼭 여왕에게 해야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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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으로 돌아 온 반화는 많이 바뀐 집 환경에 어리둥절했다.
“뭐야. 저건?”
정원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는 나무들을 보고 반화가 말하자 노에라가 다가와 설명했다.
“저게 다 푸롱나무다.”
“응? 푸롱나무? 그거 자라게 하는 거 힘들다며? 그래서 롱이도 겨우(?) 키웠는데.”
“그 롱이가 키운 거다. 내 생각이지만 그 녀석, 세계수보다 더 세계수 같은 놈이 된 것 같다. 아! 지금은 저 쪽 집에 있다.”
“저쪽 집? 본가에? 왜?”
“보면 안다.”
노에라가 모녀에게 안겨져 있을 롱이를 상상하며 히죽 거렸다. 그 히죽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화가 인상을 찌푸리자 바로 뒤통수를 감싸며 안으로 도망가는 노에라를 보며 반화가 혀를 찼다.
“누가 보면 말만 하면 때리는 줄 오해 하겠네.”
오해인지 아닌지는 반화 자신이 잘 알겠지만... 반화의 정원에 처음 온 정령왕 부부는 푸롱나무를 보며 놀라고 땅의 신수에 또 놀라고, 오랜만에 보는 반화에게 솜방망이를 날리는 순이에게 놀랐다. 저 성격파탄자가 저렇게 발길질을 얼굴에 맞으면서도 웃으면서 장난치다니..
“뭐 그렇게 서 있어? 안으로 들어가. 노에라! 손님 받아! 랑이도 들어가.”
꼬맹이와 삼이는 오랜만에 보는 순이에게 그루밍을 받으며 얌전하게 있었고, 나머지 멍하니 서있는 녀석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후 반화는 본가에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미국의 서부에 위치한 게이트 내부에서 엄청난 충격파가 느껴졌다고 하는데요, 그 후 어마어마한 몬스터들이 충격파가 느껴진 곳에서 멀어지는 대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몬스터가 게이트로 다가 왔으나 다행히 피해 없이 잘 막았다고 미 당국이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는 지배자급 몬스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소식을 통해 미국은 자신들의 힘으로도 지배자급 몬스터를 방어 할 수 있는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이어 두 번째로 지배자급 몬스터를 막은 일이라 무척 고무적인 평가를...
“흠...뭐 그렇게 심하게 난리 난 건 아니네.”
반화의 말대로 다행히 그가 난동부린 대륙의 주변에 생긴 게이트는 거리가 상당해서 충격파와 진동은 강하게 느껴졌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올라 왔지?”
별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긴 했지만 정확히는 모르니 오랜만에 민사장님에게 전화해보기로 했다. 지난번 오크전쟁, 러시아 문제를 회사에 그냥 떠맡긴 터라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능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네, 뭐 그럭저럭이요. 회사는 어때요? 아직도 바빠요?
<>그래요?
<>흠...뭐 딱히 바라는 건 없는데, 회사에서 알아서 원하시는 거 있으면 잘 조율 해주세요. 제가 괜히 일을 늘려서 좀 미안했는데 그걸로 좀 때울게요. 아! 그리고 일 좀 가르쳐주세요.
<>제가 아니고...음 여자인데요. 똑똑할 겁니다. 뭐 청탁은 아니고 그냥 일만 배우면 됩니다. 교육비는 드릴게요. 가능한 가요? 제 개인 비서로 쓰고 싶어서요.
반화는 랑이가 똑똑한 걸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용이라는 신수의 이미지가 있지, 멍청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비서(노예)로 교육 시켜놓기로 했다. 같은 신수인 노에라도 뭔가 습득하는 능력은 굉장히 좋았다. 그만큼 까불거려서 문제지만.
<>당연하죠. 당장은 아니고 몇 주 정도 뒤에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아틀란티스, 한국에서 어느 지역까지 개발되었는지 아세요?
<>네, 조만간 들릴게요.
회사에 나가서 직접 들어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방송도 하는 건가? 위성이라도 올렸나...아! 파스!”
잠시 잊고 있었던 파스가 생각난 반화는 생각난 김에 파스를 집 위에 올려 두기로 했다. 아틀란티스에서의 고도와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의 우주까지 나가서 파스를 꺼낸다.
“작동이 되나?”
[예. 여긴 어디죠?]
“여기? 내가는 사는 곳.”
[환경이 매우 다르군요. 마치 다른 세상...!!?]
“오~ 똑똑하네, 역시? 다른 세계야.”
[오오오!]
인공지능이면서 잔뜩 흥분한 파스가 들떴지만 일정한 기계음으로 희한한 느낌을 주는 톤으로 말했다.
[정보...정보를 탐독해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여긴 뭐 아무 것도 없는데?”
[연결 가능한 파장이 사방에 존재합니다. 하위 파장으로 암호화되어 있지만 충분히 풀 수 있습니다. 승인 요청합니다.]
“뭐...니 마음대로 하고, 들키지만 마. 스텔스로 잘 숨고.”
[걱정 마십쇼.]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뭐, 큰일 있을까 싶어 파스를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파스는... 지구를 뒤덮고 있는 전파를 통해 온갖 서버에 접근해 간단하게 암호를 풀고 닥치는 대로 지식을 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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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 온 반화는 명하를 불러 딜을 했다.
“얘 잘 가르쳐 주면 용돈 줄게.”
“? 이 여자는 누구야? 누군데 오빠 집에 있어? 저 사람들은 또 누구고? 집에 뭐가 이렇게 많아?”
휑하던 반화 집의 복작복작한 모습을 보며 명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거기에 생판 처음 보는 여자를 집에 턱하니 데리고 있다니...
“비서가 될 사람인데 외국에서 살다 와서 모르는 게 많아. 할 거야 말거야?”
“당연히 하는데...페이는?”
“두둑하게 챙겨 줄게.”
“오예!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명하가 멀뚱멀뚱 서있는 랑이에게 물었다.
“3천살이다. 인간.”
“...네? (작게) 오빠, 이 여자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겨서...”
기본적인 지식은 노에라에게 교육 받았지만 그래도 비서로 면접 보려면 사람으로서 필요한 교양을 명하를 통해 가르치려 했지만 인간에게 교육 받아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랑이가 자기 나름대로 반항을 했다.
“(작게)...뒤진다?”
“25살이다.”
“아아... 농담이셨구나? 미국식 조크?”
“그렇다.”
“전 올해 20살! 이니까 언니라고 부를 게요.”
“편 한대로...”
반화의 협박에 바로 얌전해진 랑이가 원래 정했던 나이를 말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간단하게 한국에서 필요한 예절이나 그런 것들 알려줘.”
“알았어~ 근데 언니 진짜 예쁘다~우와 머릿결 좀 봐. 나도 푸롱 열매 먹고 좋아지긴 했는데...”
“나도 푸롱 열매 먹는다. 저기에.”
“진짜요? 역시 푸롱 열매가 효과가 좋긴 하네요. 나도 더 열심히 먹어야겠어! 일단 한 개씩?”
“좋다.”
...반화는 조금은 불안했지만 일단 믿어 보기로 했다. 지식이야 노에라가 알려 주니까 행동만 좀 인간스럽게 배우면 되는 거니까 간단한 일이지만...과연 명하가 평범한 인간일까 싶었다.
“쟤도 좀 돌+아인데...”
누가 들으면 참 억울해 할 말을 본인이 하고 있는 반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