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용암대지의 주인들 #
82화
그런 우려와 달리 두르한은 잘 있었다. 좀 뜨거운 것만 제외하면.
부글부글
공간을 열고 나온 그들이 발을 올린 곳은 용암지대 바로 위였다. 반화는 상관없었다. 꼬맹이도 좀 따뜻할 뿐 괜찮았지만 용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공중으로 바로 띄웠다.
그 모습을 보고 반화는 그제야 상황을 알고 두르한이 넘어 오기 전에 먼저 손을 뻗어 그를 공중에 띄운 상태로 데려왔다. 그 나름의 배려였지만 난데없이 멱살 잡혀 딸려 온 두르한은 이걸 감사해야 하다고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가..감사합니다.”
“뭘.”
일단 감사를 표한 두르한은 멱살이 잡힌 상태로 두발을 공중에 대롱대롱 거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그냥 땅이 보이지 않네요?”
“그러게? 바로 너무 깊은 곳으로 왔나봐.”
태연하게 말하는 반화의 발밑은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용암에 발이 잠기지도 않고 뜨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두르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화야 그렇다 쳐도 신발이 멀쩡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응? 아아 이거?”
발을 들어 올리며 자랑하듯 반화가 말한다.
“이거 그거야, 레드 드래곤 비늘 가공해서 만든 거. 괜찮지?”
“예?”
신발의 재질은 바로 예전 오염된 레드드래곤을 죽이고 얻은 사체에서 분리한 비늘이었다. 대부분 꼬맹이의 검에 흡수시키긴 했지만 조금은 남겨서 이렇게 옷이나 신발에 첨가했다.
“어...지금 만나러 가는 게 레드 드래곤인데요? 괜찮을 까요?”
“나야 모르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하는 그에게 두르한은 머리가 지끈 거렸다.
-아빠~! 여기 재밌어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위를 뛰어다니며 꼬맹이가 신난 듯 외쳤다. 아무래도 촉감이 그냥 땅바닥과 다르다보니 기분이 좋은 듯했다.
“발밑에 조심해, 벌레 있다.”
반화가 꼬맹이를 보며 말하자 랑이와 두르한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봤다. 이 용암지대에 무슨 벌레가 있다는...
꿀렁꿀렁...푸화하학!
-끼에에에엑!!!
꿀꺽!
순식간에 용암을 뚫고 나온 애벌레 같은 놈이 꼬맹이를 삼켰다.
“거봐, 조심하라니까.”
몬스터가 다시 용암 안으로 들어가려고 용암이 덕지덕지 묻은 몸통을 꿀렁꿀렁 거리다가 불현 듯 이상한 느낌이 뱃속에서 느껴져 당황했다.
-끼엑?
꿀렁...꿀렁...쩌저저저저저.....푸화하학!!!
펑!!!!
화르르르르...치이익.
-에잇!
후두두둑 떨어지는 애벌레의 잔해를 모조리 태워 버린 꼬맹이가 반화에게 다가왔다.
“아빠 말 잘 들어야겠지?”
-응!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아직 상황인식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랑이와 두르한이 멍 때리자, 삼이가 짜릿한 전기를 쏘아 둘의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 준다.
“어어어... 방금 무슨 일이? 애벌레가...큰 애벌레가...펑 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두르한이 중얼거린다.
“뭐라는 거야? 정신 안차려? 다시 돌아갈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자기 입으로 괜찮다고 하니 일단 넘어간다.
“봤지? 여기 뭐 지뢰처럼 뭐가 많으니까 조심해서 따라오라고.”
두르한은 발이 닿지 않게 멀찌감치 몸을 띄웠다. 그래도 불의 상급 정령을 다루는 엘프인지라 이 정도는 무난하게 해결했다.
이동하는데 지장이 없자 반화가 꼬맹이의 손을 단단히 잡고 앞으로 나간다.
저벅...저벅.
푸확!
발밑에서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는 놈은 가볍게 밟아 터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전면에 있는 거대한 활화산이 점점 가까워 졌다.
“딱 봐도 저기 있어 보이지?”
“예.”
누가 봐도 여기 살고 있음이라고 대 놓고 말하듯 홀로 우뚝 선 용암으로 뒤덮인 산을 보며 반화가 말하자 랑이와 두르한이 동의한다.
“삼이야 기분이 어때? 네 진짜 부모들 만나러 가는 건데?”
-응? 엄마가 여기 있어? 아닌데?
“순이 말고, 진짜 너 낳아 준 녀석이 있다고.”
-? 아냐! 엄마는 하나 뿐이야!
진짜 부모(?)를 부정하는 삼이를 보며 반화는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되었다. 순이가 그냥 내버려 뒀으면 알아서 자아를 형성하고 홀로 정령왕으로 우뚝 섰을 테니 오히려 지금 이렇게 가족이 있는 게 삼이에게 좋은 것 같기도 하다는 자기합리화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그가 삼이에게 사과했다.
“아, 아빠가 잘 못 말했어. 삼이랑 비슷한 친구들 만나러 가는 거야.”
-그렇지? 아빠 바보!
“그래그래.”
지금 이대로도 좋으니 삼이의 생각을 굳이 바꾸지 않기로 한다. 그러는 편이 그 녀석들을 다루기(?) 편할 수도 있으니까.
쿠르르르르...
쿠아아아!!!!!!
산에서부터 울려오는 강한 피어에 랑이와 두르한이 흠칫한다.
“삼이의 기운을 읽었나?”
아직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삼이라서 여기저기 흘리는 기운이 많았다. 그런 삼이의 기운을 읽은 듯 산에 있는 존재가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마중 나오네.”
산의 정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롸로롸라라라라!!!!!!!!!!
파아아아아!!!!!!!!
놈이 몸을 일으키며 피어를 쏘자 사방의 마나가 밀려나려 거대한 마나파도를 일으킨다. 그 힘에 약한 두 녀석이 날아가기 전, 반화가 적절하게 파도를 막아섰다.
콰악가가가!!!!
일행을 감싼 투명한 막을 긁고 지나가는 마나파도에 랑이와 두르한이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으으으...이런 괴물들 사이에서 내가 왜 있는 거야...’
아직도 자신이 왜 여기 있어야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랑이였다.
“음...여태 본 녀석들 중에서는 제일 쎄긴 하네.”
마음에 드는 듯 반화가 고개를 주억 거렸다.
-아빠! 내가 할래!
“응? 뭘?”
-쟤!
거대한 몸을 펼쳐 이 곳으로 날아오는 놈을 가리키며 꼬맹이가 말했다. 예전에 오염된 레드 드래곤과 한번 붙어서 이기지 못했던 꼬맹이는 이번에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하며 반화를 바라봤다.
“음... 딱히 그러려고 온 건 아닌데.”
-아빠아아~
꼬맹이의 애교에 마음이 약해지는 반화에 두르한이 당황한 모습으로 둘을 말리려 했다.
‘대화로 그냥 풀면 되지 왜 굳이...?’
“그래, 뭐 대화를 부드럽게 하려면 좀 두들겨야지, 알았어.”
-아싸!
대화를 부드럽게 하는데 왜 몸을 부드럽게 두들겨야 되는지 이해가 1도 안 되는 반화의 말에 꼬맹이가 신이 나서 검을 빼어들고 몸에 투기를 끌어 올렸다. 예전의 꼬맹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은 강한 투기. 그동안 매일 노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폭발적으로 강해진 꼬맹이였다. 괜히 마정석을 사탕 먹듯이 매일 먹은 것이 아니었다.
-크롸라라?
이 곳으로 날아오다가 예상하지 못한 강한 투기에 레드 드래곤이 당황한 듯 피어가 끊어진다.
-크르르르!!
하지만 이미 준비 완료 상태인 꼬맹이는 온 몸을 하얀 강기로 이루어진 불꽃으로 감싸며 로켓이 발사 되듯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꼬맹이가 띈 자리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용암을 날리자 반화가 손을 한번 휙 휘저어 용암을 옆으로 날리며 꼬맹이와 레드 드래곤의 전투에 집중했다.
-크롸로라?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드래곤은 일단 자신에게 달려드는 저 날파리 같은 녀석을 치우기로 한다.
슈오오오오.....파아아!!!!!!!!!!
퍼어어억!!!!
-쿠아아악!!
간단히 브레스로 날려 버리려던 녀석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게 빠르게 다가온 꼬맹이가 브레스를 쏘는 입을 위로 쳐올린다.
괴로움을 토하는 드래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꼬맹이는 검 면을 감싼 거대한 강기로 드래곤의 몸통을 두들겼다.
-꾸어엉억!!!!
퍽!!퍽!!퍽!!!
정신없이 맞던 드래곤은 잊고 싶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래! 예전에도 저런 털 뭉치가 다짜고짜 때렸었지!’
그때와 분명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드래곤이 봤을땐 작고 털 뭉치인 것이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 때보다 더 약한 것이라는 것?, 분명 아프긴 했지만 그때보다 덜한 것을 느낀 드래곤이 반항을 시작했다.
-쿠아아아!!!
징! 지지징!!! 화르르르....쾅!!!!쾅!!!!!!
드래곤 특유의 마나운용을 통한 마법과 강한 고유의 기운으로 꼬맹이의 공격을 막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드래곤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꼬맹이의 검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화르르르!!!화륵! 화륵!
...
-크롸로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드래곤이 정신 차리기도 전에 날아오는 꼬맹이의 검들...그리고..
퍼버버버버버벅!!!!퍼버버벅!
퍽!!!!!
-꾸아아아!!!!
-꾸웍!!
정말 먼지 나게 다져지는 레드 드래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랑이와 두르한.
“꼬맹아. 그만 하면 됐어. 이리와!”
반화가 점점 다져지는 드래곤을 보며 꼬맹이를 불렀다. 더 이상하면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했다가는 이 세상 존재가 아닐 테니까.
착!
-잘했죠?
스윽스윽
꼬맹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해 준 반화가 다져진(?) 드래곤이 누워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워... 살벌하네.”
깨진 비늘...흐물흐물해진 살들... 그리고 찢어지고 멍든 머리를 보며 반화가 혀를 찼다. 그래도 머리에 있는 뿔은 그대로라고 중얼거리는 반화의 말에 드래곤이 흠칫 떤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흠... 말 할 수는 있나?”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할 수 없어 보이긴 했지만 일단 물어는 본다.
-크르르르..
“랑!”
“예..예?!”
“너 용이니까 쟤랑 대화 할 수 있지? 안 되면 또 노에라 데리고 와야 되는데...이번엔 진짜 삐질 것 같단 말이지?”
요즘 너무 노에라를 부려 먹어 조금 미안한 그였기에 일단 랑이가 대화가 되는지 확인 해 보기로 한다.
“될 것 같긴 한데, 상태가...”
“아무래도 좀 그런가?”
그가 보기에도 좀 심한 드래곤의 상태였다.
[회복을 원하시면 회복포션을 드릴까요?]
“응? 그런 게 있어?”
갑자기 인공지능이 말했다.
[지난번 말했듯이 크로롱 액이 귀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포션의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오? 그래? 포션? 그거 뭐 트롤의 피 같은 거 들어가야 되는 것 아냐?”
[트롤 피요? 그런 원시적인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이미낸스파스에는 이미 포션의 제조에 필요한 정제된 시약들이 이미 많이 저장 되어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보관이 워낙 잘 되어 있어 지금도 충분히 사용가능합니다. 거기에 크로롱 액이 들어가면 최상급 포션이 됩니다. 트롤의 피를 사용하는 미개한 방법은 아주 초창기의 마도시대 때 일입니다. 저급한 방법이죠.]
“...그래, 뭐 너 잘났다. 여튼, 하나...아니 좀 줘봐. 덩치가 워낙 커서 하나로는 안 되겠네.”
[지금 내려 보내겠습니다.]
쓸 만한 기능이 정말 많은 녀석이었다. 좀 잘난 척하는 걸 빼면 좋을 텐데, 무슨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잘난 척을 하는 건지 만든 사람 뇌를 구경하고 싶은 그였다.
스으으....위이이이이잉. 착!
“오? 꽤 많네.”
물탱크 하나를 통째로 가져온 것을 보며 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짓으로 통을 들어 드래곤의 입으로 가져다 대었는데 힘없는 고개 탓에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흠...아! 랑이!”
“예?”
갑작스런 반화의 부름에 바로 고개를 휙 돌려 반응 하는 탓에 머리 위에 있던 삼이가 흔들리며 좋아한다.
-한 번 더!
툭툭!
랑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다행히 반화가 삼이를 랑의 머리에서 떼어 냈다.
“삼이야, 잠깐 아빠한테 붙어 있어.”
-왜에?
“저 드래곤 좀 살려 놓게.”
-음...알았어!
랑이에게 용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한 뒤, 커진 덩치로 드래곤의 고개를 들어 올리라고 했다.
-크르르!
랑이의 손길에 거부 반응을 했지만 이미 힘이 빠진 드래곤은 크게 반항하지 못하고 고개가 들렸다.
“잘 잡고 있어.”
스으윽.
촤아아악!!
꿀꺽! 꿀꺽!
입으로 바로 통을 쑤셔 넣은 반화 덕분에 드래곤이 강제로 포션액을 삼킨다.
-켁!..꿀꺽! 콜로옥 ..꺽!
숨도 못 쉬게 들어가는 액체에 드래곤이 괴로운 듯 기침하려하는 것을 반화가 강제로 막고 기어코 한통을 모두 비웠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고문 혹은 이지메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몸을 회복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물론 회복시켜야 되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으니 병 주고 약주는 격이지만.
“오... 효과 좋은데?”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가는 드래곤의 몸을 보며 그가 감탄했다. 그냥 회복력이 좀 좋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회복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내부에서 외부까지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돌연 산 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화님. 정령왕의 기운 같습니다.”
정령과 계약하는 두르한은 특히 더 잘 느끼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음...얘보다 더 낫네?”
그가 느끼기에도 드래곤 보다는 강한 기운이었다.
“이거 꼬맹이랑 붙어도 재미있겠네.”
허무하게 당해버린 레드 드래곤과는 달리 저 놈은 좀 할 만 할 것 같았다. 아닌가? 너무 꼬맹이를 과소평가한 것인지 애매했다. 그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지라...
“꼬맹아, 쟤랑도 한번 싸워 볼래?”
아빠라고 불리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물어는 보는 그,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꼬맹이는 거부를 했다.
-아니? 실컷 놀았(?)으니까 삼이한테 양보 할래요.
“응? 삼이한테?”
굳이 이런 걸 우애 좋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지만 꼬맹이가 그러자는 데...하지만 그가 보기엔 아직 삼이는 전투에 나서기에는 부족했다.
“흠... 그럼 그냥 아빠가 처리 할게?”
-움..응!
삼이는 안 된다는 말에 꼬맹이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반화에게 맡겼다. 그리고 랑이와 두르한은 기세 좋게 다가오고 있는 정령왕에게 애도를 표했다.
‘타이밍이 안 좋네요, 왕이여.’
두르한만이 속으로 잠시 있을 정령왕의 미래를 그렸다. 어차피 ‘퍽! 찍! 쿵!’ 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