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새 식구들, 그리고 크라센 산맥 #
81화
반화는 잠시 꼬맹이와 삼이, 그리고 랑이를 데리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반화는 처음 보는 두 녀석들 때문에 당황했다.
“...뭐야, 얘들은? 노에라 이 자식, 별장 관리 안 했어?”
바로 공간을 찢어 손을 휘젓던 반화가 노에라를 찾아 공간에서 꺼냈다.
“으으으으...왜 나만 가지고 그래!!”
노에라의 불만 가득한 말에 반화가 딱 밤을 먹이려다가 일단 한번 참았다. 분명 여기 이 녀석들이 있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쟤들 뭐야? 어떻게 들어 왔어? 관리 안 했어?”
“응? 아아~ 쟤들?”
새끼와 어미 여우가 반화의 눈치를 보며 마당 한쪽에 있는 걸 본 노에라가 무슨 일인지 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데려 온 거 아니다. 악마가 데려온 거다!”
사실, 그냥 쟤들이 찾아 온 거지만, 기회는 이때였다. 집에서 늘 누워만 있으면서 항상 자신만 부려먹는 것에 불만을 품은 노에라가 살짝 바꿔서 말했다.
“응? 순이가? 얘들을? 왜? 순이 이 자식이..”
쑥!
텁!
쏙!
-냐아아아!
팡파아팡!
“씁! 어딜?”
잡히자마자 솜방망이를 날리는 순이를 간단히 제압한 후 볼을 주물거리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쟤들 니가 데려 온 거 맞아?”
-냐아아!
“맞다는 데?”
“? 그걸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다고? 노에라, 똑바로 통역 안하면 너도 혼난다?”
-캬오...
그때 구석에 있던 여우가 이 집안의 서열을 파악한 후 반화에게 슬금슬금 다가와 애교를 피웠다.
“얜 또 왜 이래?”
“잘 부탁 한다는데?”
“이자식도 뻔뻔하기가 순이급이네?”
-냐아아!
“이놈 냥키! 자꾸 솜방망이 얼굴에 날리면 혼난다?”
반화의 정색에 순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떼는 모습을 보며 노에라가 몰래 웃다가 삼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 쥐가 비웃어!
비웃는다는 표현은 언제 배웠을까? 삼이가 고자질하자 노에라가 벙찐 모습으로 삼이를 바라 봤다.
“뭐야? 노에라, 뭐 숨겼어? 제대로 말 안 해?”
“그러니까 이게 다 어떻게 된 거냐면...”
그제야 노에라가 여우들이 오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노에라가 설명하는 동안 꼬맹이가 겁먹은 새끼 여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우웅?
-이리와, 겁먹지 않아도 돼!
내민 손에 고개를 갸웃하는 새끼를 안심시키며 품에 쏙 안아 머리를 맞대며 부비는 꼬맹이.
-귀여워!
누가 누구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와 보니 꼬맹이가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응? 꼬맹이, 좀 컸네? 그건 그렇고 보기는 좋긴 한데...”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어미 여우가 애교를 피우는 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째, 식구가 갑자기 너무 많이 늘어 당황스러웠다. 물론 꼬맹이가 새끼를 안은 모습도 보기가 아주 좋았다.
“그냥 쫓아낼까? 밖에서도 잘 살 것 같은데.”
약하고 불쌍한 녀석들이었다면 고민 없이 그냥 데리고 있었겠지만 힘이 약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인간들이 귀찮아서 온 것이니 다른 곳으로 내보내도 될 것 같은데...
-아빠! 우리 얘 키워요!
새끼여우가 꼬맹이의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나도 찬성!
삼이는 물론 친구가 늘어나는 것에 찬성했다.
“...후... 그래, 일단 크라센 쪽 일부터 해결하고 보자고. 그동안 노에라, 순이 니들이 알아서 교육 좀 시켜. 이제 여기도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하고 살려면 알지?”
-냐?
“나도..?”
“뭐?”
“아니다! 당연히 해야지! 암!”
작은 반항을 살포시 접은 노에라가 슬픈 눈으로 힘차게 말했다. ‘그마’가 눈앞에 있었는데...
-캬오오!
“그래그래, 일단 잘 지내고 있어. 아! 노에라, 순! 여기도 새 식구. 랑이라고 종족은 용이야.”
“악마나 마스터나 다를 게...헙!”
찌릿! 찌릿!
서로 불쾌한 듯 노에라를 노려보는 반화와 순이의 기세에 노에라가 급하게 입을 닫았다.
“...신수네? 순수한?”
“그렇다. 너는 땅의 신수인가?”
토닥토닥
노에라가 짧은 날개로 랑이의 어깨위로 날아가 토닥여 준다. 그에 랑이는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게 같은 종족의 유대감일까? 아니면 동지가 된 것에서 오는 동질감이라는 감정일까?
“쇼하지 말고 가자. 꼬맹아, 그만 놔 주렴.”
-알았어요. 이따 보자?
-왕!
처음 꼬맹이를 봤을 때와 비슷한 모습의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여우를 놓아 주기 싫은 듯 한참 꾸물거리고 나서야 반화에게 오는 꼬맹이의 손을 잡고 삼이는 머리, 랑이는 꼬맹이의 손을 잡고 다시 엘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냐~
“기대도 안했다. 가라 가!”
순이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노에라만 남아서 여우 가족에게 앞으로의 환경에 대해서 설명한다.
.
.
.
“응? 뭐야, 왜 여기 몰려 있어?”
방안에서 공간을 찢고 나온 반화일행을 보며 엘프들이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아!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정령왕의 위치에 대해서 말하려고 모였습니다.”
“그래? 근데 왜 저래?”
넋을 잃은 엘프들을 보며 반화가 물었다.
“하하...반화님이 공간을 찢고 나오셔서 그렇지요.”
“그게 뭐 대수라고.”
‘반화님에게나 별거 아니겠지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한 두르한이 애써 웃으며 엘프들이 정신차리게 손뼉을 쳤다.
“자! 반화님 시간 괜찮으시죠?”
“그럼그럼. 앉아서 얘기 하자고. 밖에서 놀고 있을래?”
-응!
-응!
“저도...”
“음...그래, 쟤들 옆에서 붙어 있어.”
“예.”
세 녀석들은 밖으로 나가고 반화와 정신이 돌아온 엘프들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았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방금 공간을 찢은 걸 보니 저절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죠.”
두르한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고 반화와 엘프들의 대표인 장로가 대화를 시작했다. 반화의 툭툭 내 뱉는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통역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용암지대? 레드 드래곤의 영역이라고?”
“예, 그렇답니다.”
“드래곤이라...분명히 노에라가 드래곤의 둥지에서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었는데.”
삼이가 가진 기운에는 레드 드래곤의 화기도 조금 있다고 노에라가 말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정령왕이 드래곤에게 씨앗을 맡겼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제 생각에는 레드 드래곤이 씨앗을 잃고 정령왕을 부른 것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그럼 씨앗이 원래 여기 있었다는 거야?...순이가 여기까지 왔었단 거네?”
“그렇겠죠...?”
생각하면 황당한 말이었다. 이곳까지 그냥 롭스1호기를 타고 날아오는 것만 해도 일주일이 걸렸는데 그 짧은 새에 여기 까지 왔었다니.
“아주 혼자 신나게 돌아 다니셨네.”
반화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을 순이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뭐 다른 건 건드린 것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곤이 좀 강한 개체입니다. 오래 살았고요. 적어도 만년이상 살아 온 드래곤이랍니다.”
“오? 그래? 좋은데?”
“예?”
예상 밖의 반화의 반응에 두르한이 얼빠진 소리를 낸다.
“아는 것도 많겠네? 그 크라센이라는 녀석에 대해서도 알겠지?”
“그건 저도 잘...”
크라센이라는 존재를 듣고 나서부터 반화의 관심은 이미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정령문제는 그냥 겸사겸사 처리 할 생각이었다.
“흠...날도 어두운데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쯤 가지. 여기서 멀어?”
“예, 좀 먼 곳으로 가야 합니다.”
“방향이랑 거리만 좀 알려줘. 이번엔 그냥 바로 가서 빨리 해결해야지. 실컷 여행도 했으니.”
여행은 역시 짧고 굵게 갔다 오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일주일 이상 이렇게 돌아다니려니 아무리 편한 자리여도 뭔가 불편함이 존재했다.
“예. 제가 지도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나가서 애들 좀 들어오라고 전해 주고. 여기 엘프들에게는 고맙다 전해 줘.”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어~ 오랜만에 보는 것일 텐데 회포 좀 풀어, 아! 잠깐만.”
반화가 인공지능에 뭔가 말하더니 손으로 공간을 찢어 커다란 통을 하나 꺼냈다.
“이건?”
뭔지 짐작한 두르한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눠 먹어. 맛 좋잖아.”
“감사합니다!”
휘휘~
반화가 손을 젓자 통을 두 팔로 들어 올린 두르한이 멀뚱멀뚱 서있는 엘프들을 데리고 나갔다.
...
밖으로 나온 두르한은 코로롱 액이 든 통을 일단 장로들을 수행하는 젊은 엘프에게 넘기고 꼬맹이, 삼이, 용을 찾으러 갔다.
“어디 간 거지? 혹시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생긴 존재를 봤습니까?”
주변에 있던 엘프들에게 묻자 바로 한쪽 방향을 가리킨다.
“감사합니다.”
두르한이 엘프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가자 재밌게 놀고 있는 꼬맹이와 삼이가 있고, 그 옆에 안절 부절하며 서 있는 랑이가 있었다.
“허...”
두르한은 둘이 노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치지지지직!
화르르르르!
펑!
-히히! 내가 이겼다!
꼬맹이는 하얀 불꽃으로, 삼이는 푸른 전기 손바닥을 감싸고서 일명 ‘손바닥 밀치기’를 하고 있었다. 삼이 키가 작으니 짧은 날개로 파닥파닥 거리며 열심히 꼬맹이의 손과 마주치며 밀어내려했지만 아직 삼이에겐 무리였다. 번번이 지던 삼이가 삐지려고 하면 꼬맹이가 적절하게 져 주면서 둘은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주변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려야 되는 거 아닐까? 바닥을 봐...”
두르한이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신나게 놀고 있는 둘이 서 있는 땅바닥을 보니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갈라지면서 땅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어..”
랑이가 그 모습을 어떡하지 하는 눈빛으로 ‘어버버’거리기만 하자 두르한이 결국 나서기로 했다.
“저...꼬맹이님? 삼이님?”
-히히! 응? 왜?
다행히 두르한의 말에 멈추고 그를 보는 둘.
“반화님이 찾습니다.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데요?”
-아빠가? 아싸! 빨리 가서 그 노란 물 달라고 하자, 이모!
-응!
둘이 냉큼 뛰어가고, 랑이도 한숨을 쉬며 바로 뒤따라간다.
불안 불안했던 놀이가 아주 쉽게 끝났다. 반화가 봤으면 착한 아이들을 왜 그렇게 무서워 하냐고 묻겠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게 얼마나 무서운지 그는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톡 치면 그냥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을 오가는 그런 기분이라는 걸 반화는 모를 것이다.
“두르한님이라고 하셨나요?”
“예?”
주변에 있던 엘프 중 하나가 두르한에게 말을 걸어 왔다.
“인간들이 데리고 다니는 존재는 다 저런 건가요?”
“? 아아... 그럴 리가요.”
인간을 보지 못한 젊은 엘프들에게 잘 못된 인식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두르한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냥 저들이 괴물이라고.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예, 그럼 전 이만.”
...
두르한과 엘프들 마저 자리를 떠나고 놀이의 상처만 남아있는 장소에서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른다.
고오오오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금세 사라졌지만 방 안에 있던 반화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응? 호오? 이거 재미있게 됐네.”
-응? 뭐가요?
반화의 혼잣말에 꼬맹이가 코로롱 액을 마시다가 물었다.
“아니야, 자자! 얼른 마시고 자자.”
-응!
꿀꺽꿀꺽 잘도 마시는 녀석들. 랑이가 목이 탄 듯 아낌없이 한 번에 원샷 하고 컵을 탁하고 내려 놨다.
“한 잔만 더 주십시오!”
“뭐야? 이거 안 취할 텐데?”
반화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한잔을 채워 주고 맛을 살짝 봤지만 역시 취할 수 있는 성분은 없었다.
“혹시 물만 먹어도 취하는 거 아냐? 적당히 마셔.”
컵을 건네면서 반화가 말했지만 랑이는 들리지 않는 다시 한 번 원샷을 한다.
“?”
꼬맹이와 삼이가 놀면서 사용한 기운을 바로 옆에서 느낀 랑이의 스트레스를 이들은 절대 몰랐다.
“얘, 왜이래?”
-몰라요? 흐음?
꼬맹이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이유를 몰랐고, 반화는 그냥 목이 많이 말랐구나 생각하며 통 크게 듀스잎 담금주까지 주며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랑이는 술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그대로 기절했다.
“...용은 술 못하나?”
참 개성 넘치는 용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방에 던져두고 그도 아이들과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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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엘프들이 주는 과일들을 먹고 바로 나설 준비를 한다.
“가면 되지?”
“예.”
반화가 긴장하고 있는 두르한에게 묻자 조금 얼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몸 건강히 다녀오시게.”
“예, 걱정 마십시오. 잘 해결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마중 나온 엘프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두르한이 반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 보자고.”
쩌저저저저적!!!!
반화가 공간을 찢는다. 그리고 손으로 벌려 안을 한번 확인 해보더니 일행들에게 따라오라고 한 뒤 먼저 넘어가며 자리에서 사라진다.
-가자!
삼이가 랑이의 머리 위에 앉아 앞으로 손가락질 하자 터덜터덜 찢어진 공간 사이로 둘이 사라지고 그 다음 꼬맹이가 거침없이 따라 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르한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들어가려 할 때 공간 사이로 손이 한 불쑥 나오더니 두르한을 잡고 순식간에 잡아당긴다. 얼떨떨하게 두르한이 사라지고 공간이 닫힌다.
“...”
“무사하겠죠?”
아무도 젊은 엘프의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레드 드래곤과 정령왕... 그리고 괴물의 만남에 과연 두르한은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