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휴식 #
52화
옆집 동생 좀 불러 달라는 것 같은 태연한 반화의 말에 엘프들이 일제히 놀란다. 뭘 그렇게 놀라는 것인가 하는 반화의 표정에 노에라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정령왕...저희가 아는 그 정령왕을 어떻게...아! 신수님께서 알려 드린 건가요?”
“에헴! 그렇지. 내가 알려줬다.”
노에라가 존칭이 마음에 드는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부를 수 있지?”
“그건...안 될 것 같은데요...”
“왜?”
여왕의 말에 반화가 이해가 안가는 듯 물었다.
“왕의 존재는 그렇게 함부로 부를 순 없습니다. 불의 정령과 계약을 한 두르한님께서도... 아, 두르한님은 엘프 최고의 전사입니다. 그분조차 부를 수 없는 지고한 존재입니다.”
“그럼 너는?”
“저는 세계수와 교감하며, 대지와 물의 정령과 계약을 하고 있지요...”
“꽝이네.”
실망한 반화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듯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 모습을 본 노에라가 오히려 안달이 나서 여왕에게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가? 불의 정령을 불러서 정령왕이 있는 위치만 알아도 된다!”
다급한 노에라의 물음에 여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 쪽의 엘프 중 한 명을 불렀다.
“그거라면 가능 할 수도 있습니다.”
다가 온 엘프 한명이 정령을 소환한다. 그 모습을 보는 반화는 물론 그의 품에 있는 세 녀석들도 흥미롭게 지켜본다.
화르르르!
엘프 앞에 피어난 불꽃이 그 엘프가 작아진 모양의 형체를 만들어 낸다.
“!$^%&@%@!^$!”
엘프어로 정령에게 물어보자 정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중급인 그는 불의 정령왕이 어디 있는지 짐작 할 수 없답니다.. 적어도 상급은 되어야 알 수 있을 거라는 군요..”
“상급이라면...두르한님이라면 가능 할 거예요.”
여왕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그걸 알아오면 네 제안도 생각 해 볼게.”
시큰 둥한 반화의 모습에 노에라가 여왕에게 다가가 말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거야. 저 게이트 너머 세상, 그러니까 너희 고향이 불바다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걸 명심하라고.”
“네?”
노에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여왕이 되 물었다.
“그러니까 저 녀석! 저 녀석은 원래 정령왕의 씨앗이었다고!”
“그게 무슨 말을... 아직 정령왕이 소멸하고 있다는 소식도 없는데... 그런 일이 있었으면 두르한님께서 알아차렸을 텐데?”
“...말하자면 길어. 그냥 사고로 인해서 저 녀석이 일찍 태어났어. 그리고 순수한 불의 기운이 아니지.”
“그럼...불의 정령왕의 씨앗이 없다는 얘긴가요?! 후대 정령왕이 없는 상황이라니! 그럼 불의 정령들을 억제하는 존재가...”
“헉!”
그 대화를 듣던 엘프들까지 놀란다. 그럼에도 시큰둥한 반화와 아이들을 본 그녀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군요...”
“내 말이!”
노에라는 드디어 자신과 통하는 상식적인 인물을 만난 것이 기쁜지 격하게 공감했다.
“어서 불의 정령왕의 위치를 알아내야겠습니다...그런데 그 후에는 어떡하죠?”
“그건 우리 마스터한테 맡겨라.”
“예? 이분이 어떻게 해결을 한다는 거죠?”
“그건 두고 보면 된다.”
속으로 노에라는 그의 마스터와 마주 할 정령왕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일단 이 사태는 해결하고 봐야 할 것 아닌가... 태연하게 여왕에게 마스터가 잘 처리 할 것이라고 얼버무린 노에라.
“예..일단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엘프들이 급히 돌아가고 노에라는 한숨을 쉰다.
“이걸 왜 내가 이렇게 나서서 설명해야 하는 거야...”
작게 망할 똥꼬양이라고 중얼거리는 녀석이 순이가 잠시 바라보자 몸을 움찔 거린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이... 노에라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내쉰다.
“불덩어리가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이렇게 모르지?”
그때 반화가 물었다.
“저 땅이 얼마나 넓은데 그런 소리는 하는 거야.”
“그래? 근데 불덩어리들이 날뛰면 물덩어리들도 날뛰지 않을까?”
“그럼...대륙은 난장판이 되겠지. 걔들이 뭐 대륙이 어떻게 될지 신경 쓸 것 같나? 그놈들은 자연이 있으면 그 환경이 어떠하든 멀쩡히 돌아다닐 거야. 그 위 에 사는 생물들이 낭패지.”
“그럼 너도 상관없는 거 아냐?”
“어?...그렇긴한데..그래도 고향인데...”
생각해보니 마스터 주변에 있는 이상 그 불덩어리들이 이 영역은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그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노에라가 큰 것을 깨달은 듯 손을 짝하고 마주 쳤다.
“급한 놈들이 알아서 찾아오겠지. 너도 신경 꺼.”
“그렇군!”
마음의 짐을 털어버린 노에라는 어느새 그들에게 물이 들었다.
“아! 해골씨도 있었네. 뭐 그쪽 땅엔 정령들도 함부로 날 뛰지 못 할 테니...역시, 상관없네? 그러고 보면 웬만한 지배자들 영역은 그대로겠네. 음... 괜한 걱정이었네. 왜 걱정을 했지?”
혼자 중얼 거리는 노에라를 두고 반화는 삼이와 놀아 주고 있었다.
“까꿍!”
-뀨우우~!
공간을 찢어 다른 세상으로 머리가 쏙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한다는 게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아기와 놀아 주는 방법과는 다르다는 걸 빼면 평범했다.
“지난 번 생선(?) 맛있었는데, 그거나 잡으러 갈까?”
-캉!
꼬맹이에 반응에 그대로 따라하는 삼이
-뀨웅!
“순이는 귀찮아?”
-냐아~
순이가 삼이를 보며 갈등했다.
“바다도 볼 겸 가자. 노에라, 덩치한테 게이트 쪽으로 오라고 해.”
“알았다!”
처음으로 모든 식구들이 같이 떠나는 것이다. 꼬맹이는 당연히 신이 났고 순이도 나쁘지 않는지 삼이와 놀아주며 차에 올라탔다.
꼬맹이까지 착석한 차를 몰고 게이트 쪽으로 간다.
“아, 잠깐 회사나 들릴까?”
-낑?
“잠깐만.”
아이들을 차에 두고 게이트 근처 회사 건물로 들어간다.
“어? 반화씨 오셨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왠지 올 때마다 보는 티거 길드의 길드장이 반겨 준다.
“탐색, 나서는 건가요?”
“아뇨, 이제 돌아 온 겁니다. 하하, 이번에 아티팩트 좀 구했거든요.”
“아? 그래요? 축하해요.”
“그래서 오늘 파티 하려고요. 반화씨는 이번에 러시아에 가서 크게 한탕 했다고 들었는데, 또 게이트 가시려고요?”
“아, 그냥 바다나 좀 보고 오려고요.”
어디 해수욕장 가는 듯 말하는 반화를 길드원들이 묘하게 바라본다.
“역시,S급..아니 그 이상의 능력자는 다르네요. 휴가를 그쪽으로 가시다니. 바다 쪽은 거대 몬스터들이 많아서 웬만한 길드도 잘 안 가는데...”
길드장이 대단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 신소이씨 팀도 우리 회사와 계약한 게 반화씨 덕분이라고 하던데, 그분은 또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 누나 친구더라고요.”
“와! 부럽습니다.”
“앗! 반화씨? 혹시 꼬맹이는 안 데려 왔나요?”
꼬맹이의 열렬한 팬인 미혜씨가 다가와 묻는다. 다행히 차에 두고 와서 시달릴 걱정이 사라진 그가 오늘은 데려 오지 않았다고 하자 시무룩해진 그녀가 다시 길드원들에게 간다.
“게이트로 가시면서 그 꼬맹이를 안 데려오셨네요?”
“아뇨, 지금 차에 있어요. 사실대로 말하면...”
“아~...그렇죠...”
단숨에 이해한 길드장은 반화만 들을 수 있게 작게 뭐라고 속삭인다.
“그... 신소이씨, 제가 팬인데 나중에 싸인 한 장만 받아 주실 수 있나요?”
“네? 같은 회사인데 직접 받으시지..?”
“길드원들 눈치가 보여서...”
“아...네 뭐, 나중에 보면 말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눈에 띄게 기뻐하는 길드장이 길드원들을 이끌고 나간다. 그런 모습에 그 여자가 뭐가 좋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반화는 묘한 기분이었다.
“흠... 취향이 특이하시네.”
그때 민사장님이 나왔다.
“반화씨 오셨어요?”
“네, 러시아 일은 어떻게 된지 궁금해서요.”
“아~굳이 오시지 않아도 찾아 가려 했는데..”
“아, 게이트로 가려는 길이라 서요. 간단하게만 상황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네, 원래 예정되었던 세계연맹의 S급 능력자 러시아 파견이 일단 취소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했고, 지금 러시아는 무정부 상태에 매우 불안한 상황이에요. 다행히 군부는 멀쩡히 남아 있어서 반란은 없지만... 여러모로 정상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그리고 조만간 폴리크랙 쪽에서 정산금을 계산해 준다고 전했습니다. 얼핏 들었는데...”
“금액이...조 단위는 나올 것 같아요. 지난 번 게이트 정리 하면서 2조원 넘게 버셨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는 버신 것 같습니다.”
“음? 그걸 그렇게 비싸게 산다고요?”
반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철 덩어리들 몇 개와 마정석, 그리고 각종 도구들이 다였는데... 그냥 그를 임시 고용한 값이라면 차라리 이해 갈 텐데...
“연구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무기 산업에 정말 패러다임을 일으킬 거라고 하더군요. 그 도구 같은 것들이 아티팩트 만드는데 크게 도움을 줄 거랍니다.”
“그래요?”
그 고철 속에서도 이익을 낼 걸 찾아내다니... 기업의 이익 창출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네. 사실 뭐, 그냥 넘어가려면 넘어 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해준다는 건 반화씨하고 계속 같이 하고 싶다는 거겠죠. 하하”
“저야 민사장님 덕분에 일이 편하니 뭐, 상관없죠.”
“이번에 폴리크랙과 거래로 우리 회사도 세계에 이름을 알렸어요.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거기에 신소이 능력자도 저희 회사로 오면서 ... 대한민국에서 이제 우리 회사 건드릴 기업은 없을 겁니다.”
반화는 그저 귀찮게 굴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귀찮을 일은 없겠네요.”
“그렇죠. 반화씨는 제가 책임지고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대한민국 안에서는 귀찮음이 절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원하던 것을 들은 반화가 다시 차로 돌아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외곽으로 나가 노에라와 덩치의 기운을 찾아 다가가니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 노에라가 씩씩 거리며 왔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천천히 오라고 했잖아.”
그런 노에라를 간단히 무시한 그는 덩치에게 잘 따라오라고 한 뒤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아 차를 이동했다. 내부정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층 더 깔끔하고 넓어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간다. 해변으로 다가 갈수록 점점 길이 험해지고 멀리서부터 바다향이 나기 시작했다.
-캉!
-뀨웅?
꼬맹이가 바다 향을 맡고 꼬리를 흔들자 이유도 모르면서 따라하는 삼이. 물론 순이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스터! 바다가 보인다!”
“어. 조금만 더 가면 되겠네.”
차에 속도를 붙여 힘차게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해변의 모래 위에 도착한다.
끼익~!
-캉!캉!
-뀨웅~~~!
꼬맹이와 삼이가 신이 나서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안 그런 척하던 순이도 모래를 밟으며 사뿐사뿐 바다로 간다.
“덩치도 가서 놀아. 노에라...너는 물 별로 안 좋아 하지?”
땅의 신수인 노에라는 바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마스터! 회는 언제 먹나!?”
그저 먹을 거에 관심이 있을 뿐...
“기다려봐.”
반화가 부스럭 거리며 검은 공간에서 무언가 꺼낸다.
“응? 그건 또 왜 꺼내는 건가?”
그가 꺼낸 것은 지난 반화에게 굴욕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보면 알아.”
반화가 끔찍한 혼종을 이리 저리 주물럭거리며 넓게 펼치기 시작한다. 그가 하는 것을 보는 노에라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때 반화가 공간에서 한 가지를 더 꺼냈다.
“응? 그건 또 왜?”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반화는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잠시 후...
“...”
반화가 만든 것에 할 말을 잃은 노에라는 멍하니 바라 봤고 바다에서 놀던 녀석들이 호기심에 다가와 이리저리 살핀다.
“배를 만들 줄이야... 그것도 대형여객선... TV로만 봤는데...”
반화가 만든 것은 배였다. 대형 여객선.. 물론 내부기관은 전혀 다른, 껍데기만 여객선 모양이었지만 조작하는데 들어간 기술은 오히려 간단하고 강력했다. 무려 마도 기술의 핵심이 들어간 것이었으니.
“바다에 한번 가보자고.”
“...그래.”
아이들이 모두 배에 타고 마지막으로 올라선 반화는 배를 공중에 띄워 바다로 옮겼다.
스으으으으
배가 움직이자 신난 꼬맹이와 삼이는 여기저기 뛰어 다니고 순이는 배 갑판에 앉아 바람을 즐긴다.
촤아아!
깊이가 어느 정 깊어 졌다 싶어 배를 바다에 살짝 내려놓으니 파도가 배를 치고 지나간다.
“그럼 출발 해 볼까?”
조작실에 들어간 반화가 버튼을 몇 번 만지니 배가 스스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캉캉!
-뀨우우웅!
신이 난 녀석들과 조심조심 갑판 위를 다니는 덩치
“덩치야. 이리와.”
반화가 덩치를 부르니 잽싸게 갑판에서 벗어나 그에게 다가온다.
“덩치는 제일 큰 게, 겁은.”
-꾸옹..
살짝 겁먹은 녀석을 타박한 그는 검은 공간에서 뭔가 꺼내서 덩치에게 넘겼다.
-꾸옹?
일단 받긴 했는데 용도를 모르는 덩치가 반화를 보며 고개를 갸웃 한다.
“낚싯대야, 강태공이 되어 보자고.”
그가 꺼낸 것은 그 크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기둥이었다. 그걸 그는 낚싯대라고 불렀다.
“자,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한 뒤에 바다에 던지면 돼.”
덩치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고 직접 해보라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라 곧 잘 하는 덩치는 신기한 눈으로 낚싯대와 바다에 빠진 낚시 바늘을 번갈아 본다.
“뭐가 물은 것 같다 싶으면 잽싸게 당기면 되는 거야. 쉽지?”
-꾸옹!
-캉캉!
낚시를 하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꼬맹이가 다가왔다.
“꼬맹이도 해볼래?”
-캉!
꼬맹이에게는 덩치의 것과 비교해서는 작은 낚싯대(그래도 여전히 큰)를 건네고 설명을 해주었다. 신이 난 녀석이 덩치와 조금 떨어져 낚시를 시작한다.
“응?”
옆에서 똘망똘망 바라보는 삼이.
“너도?”
그가 하나 더 꺼내서 삼이에게 주었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삼이는 마나만 많을 뿐 근력은 아직 성장하지 못해 낚싯대에 휘청거렸다.
“삼이는 나중에 더 크면 하자. 꼬맹이한테 가서 같이 해.”
-뀨웅...
“착하지?”
뽈뽈뽈
그의 말에 결국 꼬맹이에게 다가가 같이 낚싯대를 뚫어져라 본다.
그때,
-꾸옹!!!
덩치가 소리를 지르며 낚싯대에 힘을 가득 준 상태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낚싯줄이 있는 위치에 점점 진해지는 바닷물색은 그 크기가 얼핏 추정해도 어마했다.
-쿠엉!!!
촤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