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던전 #
45화
숙소로 돌아온 반화는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자~ 그럼 한 번 확인을 해 볼까?”
-캉!
스윽.
방에서 꺼내기엔 부피가 커서 둘은 별장으로 넘어 갔다.
“으음으~음~”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그였다.
-낑?
“읽을 책이 많아, 꼬맹아~”
별장 마당에 던전에서 쓸어 온 것들을 모두 털어 놨다. 서적부터 마정석, 골렘 1기, 그리고 동상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거대한 스태프였는데 척 봐도 제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져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각종 마법 무기들...
“음~ 좋긴 한데... 팔기도 좀 그러네?”
마력 증폭이 얼마나 될 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 배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이걸 팔면 마나를 외부로 발현하는 모든 능력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 것이다. 그냥 둔기로도 사용해도 되니 강체계열 능력자들이 써도 좋긴 하겠지만... 너무 좋아서 팔 수 는 없겠다.
-꽈득
“그러고 보니 돈도 이제 많고... 굳이 이런 거 쓸데도 없는데?”
남 주기 아까워 챙기긴 했는데...하긴 그의 공간 안에 이것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것들이 있는데.
“...그냥 책이나 봐야지.”
-꽈드득.
물건은 다 집어넣고 서적을 살펴본다.
“흠... 마법기구 만드는 방법이라...”
쓸모없다... 똥 손인 그였다, 무엇을 만드는 건 재주가 없는 그는 낙심했다. 단순한 검, 창은 몰라도 이런 복잡한 것들이 그의 손에 닿으면 혼종이 탄생 할 것이다.
-까드...
“꼬맹이, 너!”
-..득
-뀽?
“이 놈 시키, 또 이거 먹었지?”
-...꿀꺽!
도도도
포옥!
-끼잉~
꼬맹이가 급하게 입에 있는 걸 삼키고 반화의 품으로 쏙 들어와 애교를 부린다.
“이게 그렇게 맛있어?”
끄덕!끄덕!
“그래... 많이 먹어.. 조금은 남기고.”
-캉!
말이 끝나자마자 양손에 하나씩 들고 사과 먹 듯 한입씩 베어 먹는 꼬맹이
-까득! 까드득!
“꼬맹이만 노났네.”
손에 있는 책을 집어 던지며 벤치에 앉은 그가 일주일간 기대했던 로또 번호 발표를 들은 사람처럼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느낌 좋았는데...
-까득...까득..
“아껴 먹어, 많이 없어.”
입 한가득 쑤셔 넣는 꼬맹이를 보며 말한다.
“흠...집이나 잠깐 갔다 올까? 꼬맹아, 순이 언니 보러 갈까?”
-꿍옹!
...그래 가자...
텁!
입을 오물거리는 꼬맹이를 안아 들고 집으로 이동한다.
...
“뭐야? 노에라, 거기서 뭐해? 순이 너는 또 왜 그래?”
“으아아아! 마스터 왔나?! 이 망할 악마가!....”
저거 또, 순이한테 맞겠는데?
퍽!
피우우우우융 퍽!
-냐아.
휙!
지가 쳐 놓고 모른 척 하기는..
“뭐하고 있었던 거야?”
-냐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하려는 순이.
덥석!
“요놈. 또 사고 쳤지? 뭐야 이번엔? 뭐 또 주워왔어?”
머리에 난 혹을 문지르던 노에라가 이 때다 싶은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저 악마가 불의 정령왕 씨앗을 먹고 여기다 뱉었다!”
“응? 불사조? 그건 또 뭐야?”
“저걸 보라고.”
노에라가 가리키는 곳에는 푸른빛과 붉은 빛이 섞여 오묘한 색을 가진 돌덩어리가 있었다.
“? 돌인데?”
“잘 보라고! 저 기운은 분명 정령의 기운이라고!”
저벅저벅.
반화가 씨앗 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본다. 물론 기운의 크기며 순도며 매우 좋긴 한데...
“정령왕이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으으음... 이곳 말로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아! 현실에 있는 불의 정령들의 대장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 불의 정령이라고?”
“음... 그러니까 원래 정령은 정령이라는 존재는 자연 속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으아아아!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불의 정령의 대빵! 젤 쎈 놈!이 될 녀석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 대빵은 저 세계의 모든 불의 정령을 자기 아래에 두고 관리 감독하게 돼. 그렇지 않으면 불의 정령들이 제 멋대로 날뛰어 멀쩡한 숲속에 불이 나고... 난리가 나겠지.”
“...순이, 너 이놈시키!”
-냐아아아...
쭈욱~쭈욱~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되잖아? 어디서 주워 왔어?”
“...저거 보라고... 색이 붉은 빛이 아니야...”
“그게 왜?”
“불의 정령은 맑고 투명한 붉은 빛이라고. 저건 오염 되었어....저 냥아치의 기운을 흡수 했다고...”
“...이눔시키...장한 내시키...빠드득.”
-냐아...
반화의 눈치를 살피는 순이.
그런 그들이 모르게 그 씨앗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가 있었으니...
도도도
착! 할짝할짝... 콱!
갑자기 꼬맹이가 정령왕의 씨앗?으로 달려가더니 혀로 맛을 한번 보곤 한입 크게 깨물었다.
-까득..... 끼잉..
꼬맹이의 강한 턱 힘에도 끄떡없이 버티는 돌덩어리...
화르르르!!
이번엔 녹여 보려는 건지 냅다 하얀 불꽃을 만들어 쏟아 붓는 녀석.
“어!?...꼬맹이 너, 뭐 하는 거야?”
덥썩!
잠시 한눈 판 사이 사고를 치는 꼬맹이를 들고 손을 휘휘 저어 불꽃을 없앴다.
-끼잉...
“저거 먹는 거 아니야.”
슥슥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마정석 하나를 손에 쥐어 준다.
“저기 가서 먹고 있어.”
-캉!
손에 커다란 마정석 하나를 들고 소파 위로 쪼르르 달려가는 꼬맹이..
“마스터...저거 봐라...”
“응?”
노에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씨앗이 보인다.
“왜?”
“잘 보라고, 뭔가 변한 것 같지 않아?”
“응??....!!꼬맹이...순이...이시키...이런 사랑스런 내시키들...”
씨앗에 하얀색이 추가 되어 있었다...
“이미 저건 정령왕의 씨앗이 아니다...순수성을 잃었어. 망했다... 저 씨앗이 부화 할 즈음이면 지금 정령왕이 사라질 건데 밑의 정령들을 관리 할 후대 정령왕이 저렇게 되었으니... 정령왕이 사라진 후 아마 불난리가 나겠군...하하 아주 화끈한 파티가 되겠어...”
“근데 저 큰 걸 어떻게 가져 온 거야?”
“뱃속에.”
“뭐? 저걸 어떻게 삼켜?”
“아까 악마냥이 토한 거다, 저거.”
“저렇게 큰 걸?”
“삼킬 땐 작았겠지... 아마 이제 막 씨앗이 된지 얼마 안 된 녀석인데 그걸 삼키고 뱃속에서 저 악마의 기운을 흡수 하며 커졌겠지, 저건 이제 자연의 순수한 불의 기운이 아니라...”
“요즘 왜 배가 뽈록한가 싶었더니...”
지금 보니 순이의 뱃살이 절반은 사라져 있었다. 물론 아직 좀 남아 있긴 하지만.
조물조물
-냥!
자신의 배를 주물럭거리는 반화에게 작은 반항을 했지만 지은 죄를 아는 것인지 귀찮은 건지 이내 포기하는 녀석.
“일단 지금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네?”
“그건 그렇지.”
“흠...얘 정상적인 정령왕은 안될까?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될 것 같아 보이나? 뭐가 되어 나올지 모르고, 하물며 저 악마의 기운을 흡수했는데....”
“근데 얘 하나 없다고 걔들이 그렇게 날 뛰나?”
“불의 정령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데, 왕이 없으면 지들 세상이지 뭐. 무서운 게 없다고나 할까? 지들 왕 아니면 다른 정령왕 말조차 안 들어.”
“...순. 오늘부터 츄르 없어. 그리고 니가 저거 알아서 해결해. 도로 가져다 놓든 버리든 알아서 해. 저건 또 어디서 주워 와서는...”
-냐아아아아아앙.....
츄르가 없다는 말에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는 녀석이 반화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들러붙는다.
“안 돼. 저거 해결하기 전 까진 없어.”
...
-냐!
갑자기 뭔가를 결심한 듯 씨앗으로 다가가는 녀석.
톡!
씨앗에 발 하나를 올린 녀석이 갑자기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치지지이지지칙
푸른 전류로 뒤덮이는 씨앗을 멍하니 바라보는 반화와 노에라.
“야이! 무슨 짓이야?”
“헛...”
급하게 순이를 떼어 놓는 반화와 말문을 잃은 노에라는 멍하니 씨앗을 바라 봤다. 다행히 씨앗이 푸른 전류를 흡수하고 푸른빛을 좀 더 선명하게 띠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다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쩍!....
금이 갔다.
쩌저저적!
...또 갔다...아예 반으로 금이 간 씨앗.
“아직... 정령왕이 멀쩡하게 존재하는데...이게 무슨...”
말문이 막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노에라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 반화가 그 모습을 보며 이마를 꾹꾹 눌렀다.
-냐아아아!
그때 순이가 반화의 손을 벗어나 씨앗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이미 포기한 그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스으윽.
씨앗을 자신의 품으로 감싸는 순이. 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금이 간 씨앗은 이내 반으로 쫙 갈라지며 환한 빛을 토해냈다. 아 눈뽕...
팟!
빛이 점점 사라지며 그 빛 속에 있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
-뀽?
-냐아~
할짝할짝.
모습을 드러낸 씨앗.. 아니 차기 불의 정령왕이 될 녀석을 그루밍 해주는 순이.
“...니 뱃속에서 나왔다 이거냐? 얌마! 원래 낳는 건, 위가 아니라 아래로 낳는 거야, 이 자식아!”
-끼잉?
반화의 큰소리에 놀란 꼬맹이가 이쪽을 본다.
“...아아... 난 모르겠다, 마스터. 정령왕이 있는데 정령왕의씨앗이 부화하다니. 그것도 변종이...”
팡!
변종이라는 말에 발끈한 순이가 원거리로 노에라에게 솜방망이를 날린다.
퍽!
혹 위에 혹이 난 노에라가 울상을 지으며 혹을 문지른다.
-뀨우!뀨!
그 모습을 보고 순이 품안의 녀석이 소리를 낸다.
“저거 봐 저거. 불의 정령왕이 ‘뀨’가 뭐야... 성숙하지 못한 채로 태어나서 말도 제대로 못하네...”
스윽.
“으아아! 아니다, 아니다! 아주 예쁘다! 그렇고말고! 응응! 아주 색이 알록달록 화려하구만!”
다시 발을 들어 올린 순이에게 쫄은 노에라가 말도 안 되는 칭찬을 쏟아낸다. 그 말이 마음에 든 건지 발을 내린 순이가 다시 불의 정령왕이 될 녀석을 그루밍하며 껴안는다.
“...후우...일단 시간은 있으니까 지금 불의 정령왕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자고...걔 말은 통하지?”
“당연하지. 불의 정령왕인데, 당연히 말이야 통하겠지. 성질이 거지같아서 문제지만...그러고 보니...마스터 앞에서도 그럴 수 있으려나?”
갑자기 그 성질 더러운 불의 정령왕과 마스터의 만남이 상상 된다. 예전에 봤던 불의 정령왕놈이 마스터를 만난 다라...
“음... 볼만 하겠는데?”
중얼거리는 노에라를 지나쳐 순이가 품은 녀석을 향해 반화가 걸어간다.
“너 임마... 니가 키울 거야?”
꼬옥!
-냥!
그의 말에 녀석을 꼭 안으며 자신 있게 말하는 순이.
“얌마, 애 키우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니가 고양이로 치면 13살이면 할머니긴 한데, 넌 아직 새끼 한 번도 안 낳아 봤잖아. 진짜 할 수 있어?”
-냐!
-뀨?
그런 순이를 빤히 보던 녀석이 순이의 품으로 파고들어 반화를 본다.
“...아씨... 귀엽긴 더럽게 귀엽네.”
애초에 순이를 데려온 게 어미 잃은 게 불쌍하기도 하지만 귀여워서였던 그였다.
-냐아~
삭.삭.삭
자기 자식이 칭찬을 들은 듯 녀석을 그루밍하는 순이를 보며 반화는 기분이 묘했다.
“그래...일단 잘 키워봐...노에라, 불의 정령왕은 어디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걔들이 뭐 한 군데 자리 잡고 있는 줄 아나? 정령이란 것들은 다 지들 내키는 곳에 있고 때가 되면 사라지는 녀석들이라고. 아! 정령을 소환해서 물어 보면 알 수도 있을지도?”
“정령? 소환?”
노에라의 말에 리치가 가진 지식 중 정령을 소환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아, 푸롱나무 때문에 하려다가 포기 했던 거네...”
기운에 민감한 정령들이 그의 부름에 다가 올 리가 없었다.
“정령 소환이라...아! 엘프가 있었네.”
마침 지난번에 엘프 여왕이 한번 보자고 했었는데 가서 말 좀 해 봐야겠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한다. 안되면 뭐... 불 좀 난다고 뭐 큰일 생기겠어?
자기와는 상관없을 거라고 대충 생각한 그가 다시 녀석을 봤다.
-뀨웅?
“와...얜 뭔데 이렇게 귀엽지?”
순이의 품속에 쏙 들어가는 작은 녀석은 그런 반화를 초롱초롱 바라봤다.
“이리와 봐. 한번 안아 보자.”
톡톡.
반화의 말에 품에 있는 녀석을 머리로 살짝 미는 순이.
-뀨웅?
토도도도
자신에게 걸어오는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얼굴 까지 들어 올려 녀석의 얼굴을 본다.
“안녕? 내가 니 할아버지야.”
-뀨웅!
그래...얘가 무슨 죄가 있으랴. 이렇게 귀여운데... 일단 키워보자고 생각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