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던전 #
39화
순이의 흔적을 찾아 데려올까 싶었지만 어디 가서 맞고 올 녀석은 아닌지라 사고나 치지 말았으면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반화는 갓 딴 푸롱 열매하나를 꼬맹이의 입에 잘게 쪼개 하나씩 넣어 주었다.
-찹찹찹!
맛있게도 먹는 꼬맹이를 보며 그도 한입 베어 물며 공간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집에 풍기는 기운이 묘했다.
“음?”
TV를 보고 있어야 할 노에라가 거실에 보이지 않고 마당에서 파닥파닥 거리며 무언가 하고 있다.
탁!
“뭐해?”
-낑?
마당으로 나온 꼬맹이와 반화는 땅을 탁탁 치는 노에라에게 물었다.
“왔어? 담장을 넘는 쥐가 있어서 묻었지.”
“쥐? 같은 종족끼리 너무 한 거 아냐?”
“난 쥐가 아니라고오오!!!”
휙휙!
그의 말에 흥분한 노에라가 반화에게 달려들었지만 간단하게 피해버리고, 옆에 있던 꼬맹이가 노에라를 입으로 물었다.
-찹!
우물우물
“이 망할 똥강아지가!”
꼬맹이의 침 범벅이 된 노에라가 화를 내며 꼬리로 꼬맹이의 얼굴을 치자, 꼬맹이가 ‘퉷’ 소리와 함께 뱉어 낸다.
툭!
휙!
땅에 떨어진 노에라가 몸에 묻은 침을 닦아 내며 궁시렁 거린다.
“이 망할 놈의 집구석...으으”
“노에라, 쥐치곤 좀 큰 것 같은데?”
“쥐가 아니라니까! 아? 아~ 쟤들?”
“그래 니가 산 채로 묻은 쟤들”
드르르르르 쑥!
퍽! 퍽!
그의 손짓에 노에라가 땅에 묻은 쥐(?)들이 위로 솟구쳤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입 안 가득 들왔던 흙을 뱉어 낸다.
“켁켁!”
“카아악 퉷!”
“으으으으”
숫자는 5, 생긴 걸로 봐선 뾰족한 귀에 창백한 피부, 전형적인 엘프들이었다.
“뭐야, 설명 해봐.”
노에라를 보며 반화가 말한다.
“내가 TV를 보고 있는데 말이지. 갑자기 담을 넘더니 여기 저기 기웃 거리는 거야? 그래서 당연히 난 마스터의 집을 털려고 온 나쁜 놈들인 걸 눈치 챘지! 인간들 중엔 도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놈들이 넘어 온 순간! 바로...”
장황한 소설을 쓰는 노에라를 본 그가 스윽 고개를 돌려 TV에서 나오는 방송이 뭔지 확인한다. 마침 엔딩곡이 나오며 다음 편 예고가 나오는데...
-밀실 속에 일어난 살인! 범인은 이 안에 있다!
“...”
“?”
반화의 한심한 시선에 노에라는 영문도 모른 채 기분이 나빠졌다.
“뭐야 그 눈빛은? 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은 거라고. 마스터한테 들키는 것 보다 차라리 나한테 걸린 걸 다행으로 생각 할 걸?”
“TV보는 것 줄이기 전에 조용히 해.”
텁!
그의 말에 잽싸게 입을 손으로 막는 노에라, 그사이 꼬맹이는 바닥에 엎어져 ‘켁켁’ 거리는 엘프들의 등을 자그마한 손으로 톡톡 두들겨 주고 있었다.
“니들은 뭐야? 왜 담을 넘어서 들어 와?”
“그게... 분명 안에서 소리는 나는데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
스윽
다시 노에라를 찾는 그였지만 어딜 갔는지 어느새 사라진 노에라.
“이 자식이 TV본다고...”
분명 TV에 정신이 팔려 멍 때리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나중에 혼날까봐 일단 덮쳐보고 본 것이겠지.
“그럼 다음에 오면 되지 굳이 왜 담을 넘어?”
“저희는 그저 급히 여왕님의 전언만 전달하고 가려고 했을 뿐이에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어린 엘프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건 니들 사정이고, 담을 넘는 건 범죄라는 건 니들도 알잖아?”
“그건 그렇지만..”
대답이 궁색해진 어린 엘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쯧. 뭐 어쨌든 기왕 만난 김에 그 여왕의 전언이라는 게 뭔지나 물어 보자.”
노에라가 저지른 일을 얼렁뚱땅 넘겨 버리고 바로 본론을 물어 버리는 통에 어린 엘프가 분한 듯 따지려 했지만 그들을 이끄는 한 젊은 남성 엘프가 제지하고, 품속에서 봉투를 하나 건넨다.
“저희도 안의 내용은 모릅니다. 그저 전달만 할 뿐이지요.”
“그래?”
무슨 비밀이기에 이렇게 꽁꽁 싸 맨 건지 궁금증이 든 그가 봉투를 찢어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 든 건 짤막한 글이 담진 종이였다.
“흠....”
안의 내용을 읽어보던 그가 인상을 찡그린다.
그의 표정을 살펴 본 엘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내용은 별 것 없었다. 그냥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만 적혀 있었다. 이걸 전하기 위해 담을 넘다가 생매장을 당하다니...쯧.
“가서 전해,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던지 하라고. 내가 일이 많아서 말이야.”
“...예..”
“가봐 그럼. 아! 마당은 정리 해두고.”
“예...”
엘프들이 정령을 불러 난장판인 마당을 정리하고 황급히 떠났다. 산 채로 묻혔던 경험 덕분인지 고분고분하게 자리를 떠나는 엘프들은 뒤도 보지 않고 사라졌다.
마당이 정리가 되는 걸 끝까지 지켜본 뒤 꼬맹이를 보며 물었다.
“오랜만에 집에나 가 볼까?”
-캉!
“그래그래”
당장 가자는 듯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꼬맹이를 보고 차고에 문을 열어 오랜만에 차에 시동을 건다.
옆 좌석의 문을 열고 탄 꼬맹이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집으로 출발한다.
.
.
.
집에 도착하니 슬이와 쪼미가 먼저 반겨 준다.
“쌈춘~”
텁!
한 쪽 다리에 매미처럼 딱 달라붙은 슬이를 안아 올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니 동생이 소파에 누워 인사한다.
“여~ 왔어?”
“더 못생겨졌네?”
“뭐래? 그러는 오빠 못 생김은 늘 여전히 안녕하시네.”
“이모 까매!”
슬이의 말처럼 까맣게 탄 동생, 명하는 반화의 말에 발끈 하는 대신 늘 그렇듯 여유롭게 받아쳤다.
“왔어?”
방 안에서 누나가 나왔다.
“어, 일은 어때?”
“괜찮아. 이제 반응도 좋아지고 있고. 조만간 정식 연재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축하해.”
“아직은 아니고~, 축하는 고맙게 받으마. 밥은?”
“아직, 부모님 오시면 같이 먹지 뭐.”
“그래 곧 오실 거야. 오래 일 하시지 말고 알바 쓰라고 했거든”
“잘 했네.”
“뭐야 이 훈훈함은? 왜 나한테는 안 그러는데?”
“못생겨서.”
“퉷!”
놀리는 그에게 침을 뱉은 척을 하곤 방으로 도망가는 동생.
“쟤는 언제 철들려나?”
“글쎄다..?”
거실에 남은 둘이 고개를 저었다.
“쪼미는 많이 컸네? 덩치는 순이 보다 크겠어?”
새끼였던 쪼미는 아직 다 큰 것도 아닐 텐데.. 순이의 덩치를 넘은 것 같다. 순이가 크지 않기도 하지만 꼬맹이의 덩치보다 조금 작은 쪼미를 보니 고양이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든다. 물론 생각해보니 반화, 그가 취한 방법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녀석에게 몬스터들이 성장하는 방식의 힘을 만들어 줬는데 그게 덩치를 크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설마 더 크진 않겠지?...자신이 해놓고 찔린 그가 서둘러 말을 돌린다.
“뭐 부모가 컸던 모양이네.”
“그런가? 좀 크긴 큰데. 저렇게 큰 품종이 있던가? 쟤 길냥이 출신일 텐데..?”
“어, 외국에 보니까 있더라고.”
의심 없이 믿는 누나.
-냐아?
-캉!
꼬맹이가 쪼미에게 놀자고 톡톡 건드린다.
“쌈춘, 나 이제 이렇게도 할 수 있따아?”
“응?”
품에 안겨 있던 슬이가 ‘합’ 하는 기합을 내며 손을 휘 저었다. 그러자 집안 공기가 급격히 서늘해지며 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한다.
“요즘 슬이가 더웠는지 얼마 전에 낑낑 거리더니 이러더라. 깜짝 놀랐어. 이런 능력을 원소계라고 한다며?”
“잘 하지?”
슬이가 양손을 허리에 대고 방긋 웃는다.
“슬이 잘 하네~ 조금한 더 하면 삼촌 보다 더 잘하겠어?”
“히히, 큰 이모가 눈 만드는 것 보고 따라 해봤어!”
“큰 이모?”
자신에게 누나가 한명 더 있었나? 하는 의문에 반문하자,
“아 걔 말하는 거야, 소이. 지난번에 왔었거든. 아 맞다 너 그때 왜 갑자기 왔다가 간 거야?”
“아아. 별거 아니야. 뭐 확인 할게 있어서.”
“뭐 위험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냐.”
철컥!
“아 맞다. 오빠.”
명하가 갑자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왜??”
“이거 나 가져도 되는 거야?”
동생이 가족들에게 줬던 아티팩트 중 제 몫인 팔찌를 내밀었다.
“왜? 싫어?”
“아니 난 좋은데... 이거 보니까 엄청 비쌀 거라는데... 난 그냥 용돈 조금이면 되는데 히히”
“...팔려고 했냐?”
“아니 그건 아닌데... 디자인이 구려.”
“내놔.”
“아냐아냐~ 그냥 찰게. 비싼 맛에 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 고마워~”
혀를 쏙 내밀고 다시 방 안에 들어가는 동생을 보며 쫒아가서 뺏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반화에게 누나가 말한다.
“쟤 저거 가격 찾아보고 너 보고 미쳤다고, 돈 귀한 줄 모르고 막 쓴다고 걱정하더니 딴 얘기 하는 거 봐라.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지.”
“그래?”
“어. 아! 맞다. 요즘 능력자들 난리 났던데. 넌 뭐 별일 없어?”
“? 무슨 일?”
“지금 게이트 내부에 웬 미친놈이 휩쓸고 다녀서 대형 길드들이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다는데? 작은 길드나 팀은 오히려 호황이라는데... 근데 보니까 너 네 회사는 좀 크던데...”
그 미친놈이 바로 앞에 있는데...
“우리 회사는 각자 따로 팀으로 활동하거나 길드로 활동해서 별 차이 없어. 애초에 활동 하는 지역도 다르고.”
“그래? 대기업은 지금 비리고 뭐고 난리 나서 그 밑에 능력자들은 퇴직하고 자기들끼리 팀도 만들어서 활동하고 그 뭐지? 매니지먼트 개념으로 요즘은 다 계약한다는데...”
그동안 대기업의 압박에 기를 못 펴던 작은 회사들이 뉴월드의 그 방식을 고스란히 가져와 소규모 길드나 팀이랑 계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기업 소속이었던 능력자들은 그런 회사에 자기들 끼리 팀을 만들어 들어갔다. 그동안 기업에서 주는 연봉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일종의 프리랜서로 돌아 선 것인데, 반화가 게이트 내부의 고 등급 몬스터를 모두 처리해서 그들도 충분히 소규모로 활동 할 수 있는 사냥터로 변한 것이 영향을 크게 끼쳤다.
“그리고 나 S급이야. 몬스터 하나 더 테이밍 했어.”
철컥!
“뭐!? S급?”
방 안에서 다 듣고 있던 명하가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어. 블랙오거라고 커다란 놈 하나 키우고 있어.”
“헐...아니 근데, 오빠 첫 몬스터는 뭐야?”
명하의 말에 그가 고개를 슥 돌려 놀자고 덤빈 쪼미에게 솜방망이를 맞고 있는 꼬맹이를 봤다.
“그래 나도 궁금하네?”
“어... 저기 있는데?”
“저기? 저기에 뭐가... 어?”
“에이 설마...!? 진짜? 리얼? 이거 실화?”
“맞아 꼬맹이가 몬스터야.”
“말도 안 돼!”
텁!
조물조물
명하가 꼬맹이의 볼을 잡고 조물 거렸다.
할짝할짝
그만 하라며 꼬맹이가 손을 할짝거렸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 명하가 요리저리 꼬맹이를 살핀다.
“요런 귀염둥이가 몬스터라고!? 난 반댈세!”
“니가 반대한다고 쟤 정체성이 바뀌진 않아”
-냐아아~
꼬맹이를 품에 안은 동생이 반대한다. 그 모습에 쪼미가 질투가 난 건지 자기도 품에 들어가려고 머리를 들이댄다.
“와...그럼 쟨 얼굴이 무기네? 공격하는 몬스터가 귀여워서 져주는 거 아냐?”
누나도 꼬맹이를 보며 믿기지 않는 듯 말한다. 음... 꼬맹이의 살벌한 투기를 느끼면 그런 말 못할 텐데..
“쌈춘~ 순이는?”
“응? 아, 순이는 오늘 피곤하다고해서 못 왔어.”
꼬맹이, 쪼미와 놀던 슬이가 이모인 명하에게 둘을 뺏기자 순이가 생각 난 모양이다.
“힝...”
“자자! 명하! 넌 애들 그만 괴롭히고, 곧 부모님 오시니까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반칙이야... 꼬맹이, 이 녀석”
-끼잉?
잠시 후 부모님이 오셨고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나온 꼬맹이의 몬스터설(?)에 깜짝 놀라셨다. 하지만 곧 꼬맹이가 여태까지 하나도 안 큰 것이 이상하긴 했다며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우리식구라며 웃으며 넘어가셨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모여 반화가 가져온 푸롱 열매로 입가심을 하던 중에 명하가 말한다.
“아! 꼬맹이 때문에 S급이 뒷전이 됐네. 오빠 진짜 S급이야? 등록증 좀 보여줘.”
스윽
그가 내민 등록증을 보는 동생.
“우와...진짜네. 진짜였어.”
“넌 니 오빠 말을 그렇게 못 믿니? 쯧.”
그렇게 말하시는 엄마도 조금은 궁금하셨는지 슬쩍 등록증을 봤다.
“근데 등록증이 뭐 이래? 이건 원래 그런가? 이름도, 사진도 없고 그냥 등급 정보만 있네? 이러면 도용하기 쉬운 거 아냐?”
“쯧. 잘 봐.”
반화가 등록증을 잡고 자신만의 특정 패턴을 마나에 불어 넣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던 빈 공간에 그의 사진과 신상 정보가 나타난다.
“와~대박, 이런 거였어?”
“도용방지도 할 겸 개인 정보도 보호할 겸 그렇게 만들더라.”
“좋네? 간지(?)난다!”
“내놔, 이제.”
“췟 , 인증사진 남기려 했더니.”
찰싹!
“아! 왜!?”
“네 오빠 이제 S급이라고, 이거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면 얼마나 피곤 할지 알긴 아니?”
“그래. 지금 우리나라야 시끌시끌한 일 때문에, 반화 S급 된 게 묻혔지만 해외만 봐도 이 좁은 나라에 S급이 무려 5명이나 생겼다고 난리야.”
“해외요?”
“반화, 너도 몰랐어?”
아빠가 테블릿 PC로 해외 뉴스를 보여주며 말한다.
“미국이고 유럽이고 난리야. 그 S급이 누군지는 안 나와서 누군가 했는데 너였네.”
“우와~! 우리 오빠 세계적으로 노네!”
“그러니까 너도 좀 철들어 이것아. 우리 가족 정보 흘러 나가면 니가 편할 것 같아?”
“그러네? 완전 불편하겠는데? 아 오빠는 왜 S급 되서, 그냥 적당히 A급이나 하...지으악”
찰싹!
“또 왜!”
“그냥, 때리고 싶었어.”
엄마한테 맞은 등짝을 부여 쥐고 팔짝 뛴다.
“히히 이모 망둥어 같아! 팔짝팔짝!”
슬이가 그런 명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망둥어? 얘가 어디서 그런 말을... 아아..가족들은 TV에 나오는 망둥어와 명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슬이 너!”
“히힛! 팔짝팔짝”
슬이의 웃는 모습에 울상인 명하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꼬맹이와 쪼미가 고개를 갸웃한다.
-낑?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