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세번째 몬스터 #
18화
블랙 오거가 팔을 크게 휘 둘러 앞의 나무를 내려 쳤다. 그 힘에 나무가 부러 질 듯 휘었지만 결국은 버텨냈다. 하지만 위에 달렸던 열매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 졌다.
떨어지는 새 빨간 열매를 잡아 챈 블랙 오거가 순이에게 내밀었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가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냥?
-우걱우걱
맛있게 먹는 모습에 입맛이 당긴 순이가 블랙 오거가 건넨 열매를 두 앞발로 야무지게 잡고 입으로 물었다.
그 순간 입에서 팡팡 터지는 과즙과 향이 순이의 몸에 전율을 일게 만들었다.
달콤하고 묘한 향이 나는 열매의 속은 순이가 그동안 먹어온 어떤 간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천국의 맛이었다.
하나를 금세 뚝딱한 순이가 떨어진 열매를 찾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냐냠냐먀냐냐냠
더 이상 남아 있는 열매가 없자 블랙 오거를 쳐다보는 순이에게 오거도 난감했다. 다행히 작전이 성공이긴 한데 너무 크게 성공해서 얼떨떨했다.
-냐아~
더 없냐는 듯 블랙 오거에게 물었지만 블랙 오거도 우연히 여기 저기 도망가며 사냥 할 시간이 없어서 찾아 먹은 거라 여기 있는 것 밖에 몰라 난감했다.
-꾸오오...
-냐아...
실망한 순이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는 블랙 오거. 그때 순이가 무언가 생각 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냥! (역시 난 똑똑해.)
-냥냥냥!
블랙오거의 발을 툭툭 치며 뭐라 말하는 순이. 그런 순이의 몸짓을 알아먹지 못하는 블랙오거가 답답한지 순이가 옆에 있는 작은 돌맹이를 앞발로 뽑아내는 것을 보이고 나무를 쳐다봤다.
-꾸옹?
-냥!
니가 생각 한 게 맞다는 듯 대답하는 순이를 본 블랙 오거가 아직 아리송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더니 돌연 두 팔로 나무를 감싸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
.
.
반화가 있는 별장.
반화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순이를 찾으러 갈까 생각 하던 차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응? "
그런데 순이 옆에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하나의 기운이 더 있었다.
"후우.... 또 뭐 달고 오는 거냐"
순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다가오고 그 옆에는 그 전부터 보였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무?응?"
자세히 보니 나무를 감싼 팔이 보이고 뒤로 무언가 거뭇거뭇한 것이 기웃기웃 보이고 있었다.
"냐아아아~"
자신을 보고 ‘냥이렌’를 울리며 달려드는 순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이놈시키. 내가 말썽 피우지 말랬지? 또 뭘 주워 온 거야?"
-냐무르냐무르
반화에 손에 잡혀 볼이 늘어나는 벌을 받는 순이의 입으로 억울하다는 듯 울었지만 반화는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앞에서 둘의 눈치를 보던 블랙 오거가 나무를 한 쪽에 눕혀 놓고 무서운 인간을 바라 봤다.
저 무서운 악마를 저렇게 다루다니 멋도 모르고 달려들었던 과거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음... 우리 본적이 있던가?"
끄덕끄덕
격하게 고개 짓을 하던 블랙 오거가 무언가 자신의 뒤통수를 내려치고 자신이 기절하는 듯한 모션을 취한다.
"아! 그때 그놈! 잘 살고 있었네?"
-꾸오오오..
잘 살고 있었다니..자신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도망갔었는데. 억울함을 담아 소심하게 반항 해 봤지만 저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저건 뭐야?"
나무를 향해 묻는 반화에게 순이가 자기가 설명하고 싶다는 듯 한참을 냥냥 거렸지만 반화에게는 고양이의 울음을 통역할 방법이 없었다.
"노에라!"
파닥파닥
"왜 불렀나. 마스터. 헛! 저 악마가 돌아 왔잖아!"
"시끄럽고 순이가 뭐라고 하는지 통역해봐. "
-끄으응..
-냥냥냐야 냥~냐아아아~냥~
순이가 하는 냥 소리를 한참 듣던 노에라가 입을 뗀다.
"마스터. 저거 푸롱푸롱 나무다. 그걸 먹고 이러는 거군."
"푸롱푸롱 나무? 그게 뭔데 저 난리야?"
"아주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지. 특히 신수가 푸롱열매를 한 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고! 그 순수한 기운의 달콤함을...근데 좀 열매 맺기 힘들어. 열매를 맺으려면 필요한 게 있거든."
말 하다가 침을 주르륵 흘리다 갑자기 기운이 빠진 모양이 된 노에라.
"맛있는 열매? 흠.. 일단 저쪽에 심어 놔봐. 열매 열리려면 뭐가 필요한데?"
"정령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 나무를 다른 말로 정령나무라고도 했지. "
"정령? "
"그렇다. 과거 엘프들은 정령들과 계약해 저 나무를 키워 열매를 먹곤 했지. 그 때 몇 번 얻어 먹었는데 정말 천상의 맛 이였다. 정령은 신수를 두려워해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호오 엘프들이? 지금 여기에 엘프들이 있다고?"
"과거에 인간들도 정령과 계약을 맺고 했다는데 나는 본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고 엘프라면 저 남쪽의 크라센 산맥에 수는 적지만 아직 남아 있지. "
"얼마나?"
"글세? 그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과거에 그들은 매우 큰 나라로 존재 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지금의 엘프들만 남았다고만 들었다. 나도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해."
"그래? "
-냐야냐야냥~~~~!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순이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솜방망이 펀치를 반화에게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와서 어딜 땡깡이야? 이상한 거(?)나 주워 오고."
힐끗 블랙오거를 쳐다본 반화의 시선에 블랙오거는 눈치 보기 바쁘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인데 저 인간과 작은 악마는 자신을 보내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초조하다.
"노에라 일단 저 앞에 심어 놓고, 이 놈은 또 어쩐다?"
"심을 수야 있다만 나도 열매를 맺게 하진 못한다."
"알았어. 일단 심어만 놔 . 정령이라 리치의 기억에 얼핏 남아 있는 게 있어."
"알았다. "
그르르르릉
땅이 저절로 움직이며 마당 벤치 옆으로 나무가 이동한다.
쑤우욱!
나무가 땅에 끌려가듯 들어갔다가 나온다. 간단하게 나무를 심은 노에라가 땅을 톡톡 두드리고 반화를 바라봤다.
"이건 그렇고 저 덩치는 어쩔 거야?"
"흠.. 그러게 어쩔까?"
그 둘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 시선에 움찔 거리는 검은 덩어리는 속으로 제발 그냥 보내 주길 빌기 바쁘다.
"맛은 없겠지?"
"저게 맛있어 보이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노에라의 시선을 무시하고 이상한 것을 자꾸 주워오는 순이 녀석에 골치가 아파오는 반화였다.
슬금슬금..
"순이 너!"
움찔!
살살 집 안으로 도망가려던 순이가 앞발 하나를 든 채로 얼음이 됐다.
"냐아아..."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 당분간 집 밖에 나가지마?"
-냐아아아아....
"쓰읍!"
시무룩해진 순이가 터덜터덜 집안으로 들어갔다.
"음...아! 안그래도 밭 하나 만들까 했는데. 딱이네."
-꾸옹?
"오늘부터 넌 농부 겸 문지기다. 노에라! 잘 교육 시켜놔"
"맡겨만 줘라! 아주 훌륭한 농부로 만들어 주겠다. 튼튼하니 땅의 기운을 받아 들이기에 딱이네. 그럼 이제 나는 다시 제국으로 안가도..?되나?"
"음. 리치의 기억도 있고 하니 여기서 이거나 잘 키우고 있어. 저 정도 땅이면 되겠네."
반화가 노에라에게 주머니 하나를 던지고 마당 앞을 가리켰다.
"좋아써! 넌, 나 따라 와. 캬캬캬"
-꾸엉...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노에라를 따라가는 블랙 오거를 보며 반화가 손짓으로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 블랙 오거의 등판에 날렸다.
찌릿!
-꾸오옹!?
깜짝 놀란 블랙오거가 두리번두리번 했지만 멀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노에라의 목소리에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도망가면 찾기 귀찮으니까. 음~ 이런 건 편하고 좋네. 리치하나 삼키고 얻는 게 많은데?"
간단하게 노예등록(?)을 마치고 반화는 나무쪽으로 걸어갔다.
"정령나무라.. 정령석 만드는 방법이 적힌 책이 있는 것 같은데..어디 있더라? "
집 안으로 들어가 책을 보관한 곳을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한권을 꺼냈다. 꺼내든 책을 들고 나무 옆 벤치에 앉아 책을 펼치자 어느새 꼬맹이가 발밑에 다가와 반화의 다리에 기댄다.
"피곤할 텐데 집에 들어가서 쉬어, 꼬맹아."
-카앙.
"쯧. 으차! "
집에 들어가지 않는 꼬맹이를 들어 품에 안고 책을 보기 시작한다.
"소환을 일단 해야 되는 건가? 정령계라... 어딘지만 알면 열고 들어가 보는 건데."
정령들이 들으면 경기 일으킬 말을 하는 반화였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다 결국 마지막 장까지 넘어갔다.
"뭐 별거 없네. 굳이 정령이 필요하진 않겠는데? 어디보자. 그때 그 불덩이가 지가 무슨 정령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검은 공간에 손을 집어넣어 여기저기 휘젓던 반화가 하얀 구슬하나를 꺼냈다. 검은 공간을 나온 하얀 구슬은 자기 주위를 왜곡 시킬 정도의 열기를 내뿜었는데 갑작스런 뜨거움에 놀란 꼬맹이가 후다닥 집으로 뛰어 갔다.
그 모습에 반화가 구슬의 힘을 퍼지지 않게 손 안으로 힘주어 모았다. 그리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구슬을 노려본다.
"이대로 썼다간 다 태워 먹겠네. "
반화가 손에서 찰흙처럼 조물조물 구슬을 만지더니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덩어리만 떼어 내고 나머지는 다시 공간 속으로 던져 넣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고, 이건 이정도면 됬고. 정령의 에너지를 공급할 마법진은 .. 흠. 뭐 나무 좀 튼튼해진다고 별일 생기겠어? "
혼자 중얼 거린 반화가 손짓 몇 번 만에 문양을 만들어 나무의 기둥 중간에 새겼다. 새겨진 문양이 빛을 발하자 갑자기 나무가 주위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는데 그 힘이 얼마나 컸는지 멀리 있던 노에라가 무슨 일인지 놀라 날라 올 정도였다. 물론 순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던 삐져서 상관도 안하고 있고 꼬맹이는 문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이 미친 마스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세계수정도는 넘었잖아?! 그리고 그 손에 든 건 뭐야. 으으 무슨 힘이 담겨 있는 거지?"
"아 이거? 뭐 불덩이 하나 연소 시키니까 떨 구던데? 나무야 크면 열매도 많이 열리겠지."
"헐..."
"그럼 마무리! "
말과 동시에 반화가 기운을 흡수하던 문양에 구슬의 일부를 끼워 넣었다. 그러자 기운을 흡수 하던 문양이 멈추고 나무가 햐얀 불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뜨거워! 이게 뭐야! 미친 마스터! "
노에라가 그 뜨거움에 도망가자 반화가 나무 주위로 열기가 새지 않게 자신의 기운을 움직여 막을 만들었다.
햐얀 불이 나무에 흡수 되 듯 점점 사라지고 나무 기둥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하며 나무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해서 반화가 쳐놓은 막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음..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50미터 정도면 되겠지? 아니지. 저 검댕이가 손으로 딸려면 20미터면 되겠는데?"
기운을 다시 움직여 대충 길이가 20미터 정도 둘레가 5미터는 되는 크기 정도까지 늘려놓고 나무가 그만 커질 때까지 유지했다.
더 이상 커지지 못하자 나무가 내부로 기운을 저장하기 시작하자 반화가 기운을 풀고 나무를 여지 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크기는 적당하고, 열매가 .."
변화를 끝낸 하얀 기둥위에 펼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무지갯빛 색깔의 잎이 자라고 새하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다.
"색이 좀 다르긴 한데 뭐.. 맛만 있으면 되지."
열매 하나를 떨어 뜨려 손으로 받은 반화가 입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맑은 과즙이 팡팡 터지고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향과 맛에 상큼이 입안으로 확 퍼졌다. 그리고 그 과즙이 목으로 넘어가 배로 들어가자 그 속에 담겨 있던 기운이 확 퍼지며 몸의 구석구석으로 퍼지며 사라 졌다.
"? 좋은데? 순아 ! 꼬맹아! 이리와 봐."
삐져있는 순이가 창가에 누워 고개만 들어 반화를 쳐다보고, 꼬맹이는 꼬리를 파닥 거리며 신나게 뛰어왔다.
"순이 이거 안 먹어? 진짜 안 먹어?"
-냥냐야냐양!
반화에 손에 든 열매를 본 순이가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반화 앞으로 뛰어 왔다.
열매 두 개를 더 따서 순이와 꼬맹이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 열매들을 이제는 텅 빈 리치의 아공간에 차곡차곡 넣어 뒀다. 전용 냉장고로 쓰기 위해 살짝 개조한 거라 열매를 보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공간에서 몇 개를 더 꺼내 노에라와 블랙 오거를 불러 나눠주자 그 맛과 뒤에 퍼지는 화끈한 기운에 중독이라도 된 듯 달려드는 네 짐승을 뿌리치고 나무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괜히 열매 먹겠다고 건드리지마. 저 기운 함부로 건들다가 잿더미 된다?"
"걱정마라. 저 근처에는 가라고 해도 안 갈 테니."
노에라의 대답과
냥! 캉! 꾸오옹!
동의 하듯 나머지의 대답을 들은 반화. 이 녀석들의 수준이 저 기운을 읽을 정도는 된다고 다행으로 생각 됐다.
"자자! 그럼 이제 노에라하고 음...넌 ..이제 니 이름은 ‘덩치’ 다. "
-꾸오오옹..
소심하게 반항 해보지만 옆의 노에라의 째림에 바로 쭈그렸다.
"둘은 하던 일 하고 , 순이랑 꼬맹이는 저쪽으로 넘어 가자. 노에라. 쉬엄쉬엄 하고 있어. 맛있는 거 사올게."
"난 푸롱 열매면 되는데..."
"자 냉장고에 몇 개 두고 갈 테니 (별장에는 각종 전자기기들이 설치되어있는데 다 마나로 돌아가는 무선에 친환경 기기들을 반화가 가져다 놨다.) 조금씩 꺼내 먹어 .한꺼번에 먹으면 탈난다."
"흥!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츄릅... "
쯧. 된통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네. 속으로 생각한 반화가 순이와 꼬맹이를 데리고 공간을 넘었다.
"음.. 아. 이사했었지."
보름 만에 보는 익숙하지 않은 집에 어색함이 묻어난다.
"제국 대충 둘러보고 한동안 여기에도 정 좀 붙여 둬야겠는데?"
반화가 휴대폰을 들어 연락 메시지를 확인 했다.
>야 게이트 나오면 바로 연락해.
>아직도 게이트 안이야? 나오면 연락해.
>반화야 요즘 게이트 안에 범죄가 많다네. 조심해서 일하고, 게이트 나오면 연락하렴.
누나와 부모님으로부터 와있는 메시지에 바로 부모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딸각!
신호가 3번이 채 가기 전에 전화를 받으신다.
"아이고 반화야. 괜찮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