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96 >
“축구는 무슨 싸움일까?”
“근본.”
“몸싸움?”
“공으로 싸우니까. 공 싸움이지.”
“어휴…… 답 없는 녀석들.”
전반전 25분이 조금 지난 시간.
벤치에 앉아 있는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경기를 지켜보며 가벼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점유율 싸움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이겨오면서 기록한 평균 점유율은 고작 42%였는데? 점유율보다는 좋은 위치에서 얼마나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는지가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는 선수들 사이에 앉아 있던 김기범이 조용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 생각에 축구는 공간 싸움. 그리고 침투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축구는 공간이 중요하지.”
“오오올! 기범이! 꽤 잘 아는데?”
“이런 녀석이 오래 활동한다니까? 축구 선수가 길게 활약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해.”
“확실히 얼마나 효율적으로 우리 공간을 제어하고 상대 팀의 공간에 침투할 수 있는가. 그게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지.”
“기범이가 공부를 많이 했네.”
대표팀의 막내인 김기범은 그런 선배들의 말에 어색하게 웃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박규태 선배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오! 그래?”
“확실히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생각이 다르구나.”
“그 선배만 유별난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들이 이야기를 한참 나누는 사이에 수다의 주제이자 주인공인 박규태는 코너킥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붙은 파비오 실바를 보며 웃었다.
“왜 그렇게 얼굴이 구겨져 있어?”
“닥쳐! 망할 김치맨!”
“인터뷰랑 다르게 오늘도 영 아니네.”
“너보다는 훨씬 잘하고 있어. 신경 쓰지 마! 뻐킹 김치맨! 어서 내 앞에서 꺼지라고!”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이제 전반전의 절반이 막 지나간 상황인데 말이야.”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히려 자신이 밀리는 것 같은 느낌에 파비오 실바는 박규태를 무시하고 대한민국의 수비진이 있는 곳으로 더 깊게 들어갔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꺼지라고!”
“나는 경고했어.”
박규태가 실실 웃으며 파비오 실바를 보내줬다. 그러는 사이에 포르투갈의 코너킥이 올라왔다.
‘흥! 뭐? 이 앞이 지옥이라고?’
그는 박규태가 우스웠다.
그가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살폈다.
‘저 녀석은 높이 싸움으로 찍어누를 수 있겠어!’
파비오 실바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곽진수의 옆에서 높게 뛰어올랐다.
‘좋아!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그의 앞에 그림자가 보였다.
자신보다 5㎝는 작을 선수가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공을 머리로 받아냈다.
-곽진수 선수의 머리에 맞은 공은 한기환 선수에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바로 시작되는 역습!
-빠릅니다! 전방에 있는 한정훈 선수에게 연결되는 빠르고 간결한 패스!
-등을 지고 공을 지켰습니다!
등을 지고 공을 지킨 한정훈이 빠르게 올라오는 두 선수를 보고 빠르게 공을 내어주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골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딱 등지고 공만 받으면 이강민 선배나 박규태 선배가 알아서 골을 넣어주겠지!’
그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파고들 틈을 만들어주자.
그리고 그 공간으로 이강민과 박규태가 파고드는 타이밍에 찔러주는 패스를 넣겠다고 생각했다.
툭!
-한정훈의 짧은 패스!
-제대로 들어갔어요! 제대로!
-공은 박규태 선수에게. 공을 가지고 빠르게 달립니다! 정말 빨라요! 포르투갈의 수비진이 급히 복귀합니다! 좋은 기회! 틈이 생긴 지금이에요!
박규태는 무리하지 않았다.
파비오 실바가 욕심을 부리다가 상대에게 역습을 많이 허용하던 것과 반대로 그는 최대한 팀이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툭!
-다시 리턴!
-한정훈에게 공이 이어집니다!
-한정훈! 위치가 좋아요!
‘아니……! 왜 접니까?’
한정훈은 갑자기 자신에게 다시 리턴을 하는 박규태의 패스를 받고서 식겁했다.
이번 시즌에 K리그 21경기에 나와서 딱 10골을 넣은 공격수답지 않게 그는 골대 앞에서 정신적으로 잘 흔들리는 유형의 선수였다.
그래도 어떻게 10골을 넣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의 절묘한 위치선정 능력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앞발을 휘둘러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그는 꼭 자리를 잡았고, 박규태는 자신의 넓은 시야를 이용해서 한정훈이 최적의 위치에 있음을 알아챘다.
‘짜식……! 소심한 성격에 새가슴답지 않게 위치선정이랑 슈팅은 월클이네!’
박규태는 공을 받기 무섭게 슈팅을 가져가는 한정훈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잔뜩 굳은 녀석이 또 슈팅은 완벽했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올!
-한정후우우우운!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젊은 선수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기어코 득점을 올렸습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걸로 점수는 2 대 1! 대한민국이 전반전 28분에 다시금 리드를 잡았습니다!
골을 넣은 한정훈은 묘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중계 카메라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주…… 주모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박규태가 그의 등을 툭툭 치더니 소리쳤다.
“그게 아니야! 더 크게! 주-모우우우우우우우우!”
“주-모 우우……!”
“좋아! 그거야!”
골을 넣고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선수들과 반대로 오늘 경기를 보러온 이탈리아의 현지 관중들은 그들에게 야유를 보내며 포르투갈을 더욱 크게 외쳤다.
골을 넣은 한정훈은 관중들의 야유를 듣고 긴장된 표정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붉은 악마들이 큰 목소리로 응원을 했지만, 인원수 차이 때문인지 관중들의 야유가 더 크게 들려왔다. 이강민은 그런 야유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심할 줄 몰랐는데…….”
“야! 자신감을 가져!”
“네…….”
박규태는 바짝 얼은 한정훈을 챙겨줬다.
“아무래도 후반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저 야유랑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듣겠지?”
“그러겠죠. 선배님이랑 저랑 둘이 가장 많이 듣지 않을까요? 아! 정훈이도 골을 넣었으니 세 번째로 많이 듣겠네! 진짜 이탈리아도 대단하네요.”
“…….”
“짜샤! 쫄지 마! 이강민 선배님이랑 내가 저 자식들 필드로 난입하면 ‘김치 펀치’로 때려줄 테니까. 거기다 내가 골을 넣은 뒤에 제대로 응징해줄 생각이야.”
박규태는 한정훈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선수들.
박규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역습의 빌미가 된 파비오 실바와 눈을 마주쳤다.
파비오 실바의 눈빛이 아까와 완전히 달랐다.
그의 눈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
“아직 경기는 안 끝났어.”
파비오 실바의 말에 박규태가 씩 웃었다.
“그렇지 2 대 1로 끝날 시간이 아니지. 이제 1점 차이가 아니라 2점 차이로 만들어 줄게.”
“미친놈.”
“김치에 미쳐라! 그러면 넌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김치의 신’이 내린 신탁이다.”
“닥쳐! 김치는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두 선수가 시답지 않은 말싸움을 하는 동안에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반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포르투갈은 동점을 만들지 못하고 시간을 모두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 중앙 수비수로 뛰고 있는 곽진수가 있었다.
그는 파비오 실바를 완벽하게 막았다.
얼굴을 팍 찌푸린 파비오 실바.
환하게 웃으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박규태.
중계 카메라는 두 선수의 상반된 표정을 담으며 전반전을 끝내고 광고를 내보냈다.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팍팍!]
[더 이상의 김치는 없다!]
[세계적인 김치 스타! 박규태가 인정한 맛!]
[무한으로 즐겨요! 명륜진사김치!]
* * *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전반전에 부진했던 두 선수를 빼면서 후반전 초반부터 승부수를 던졌다.
-오늘 경기에서 많은 실책이 있었던 지우베르투 산토스가 빠지고 미구엘 올리비에라가 투입됩니다!
-거기다 중앙에서 이강민 선수를 제대로 막지 못한 브루노 두아르테 선수도 빠지는군요.
-측면 수비수와 중앙 미드필더가 바뀌었습니다. 피오 코레이라는 조금 더 공격적인 성향의 미드필더고……. 마찬가지로 지우베르투 산토스와 교체로 투입된 미구엘도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의 풀백입니다.
포르투갈의 승부수에 맞춰서 대한민국도 이른 시간에 교체를 감행했다.
-대한민국도 교체가 있습니다. 오른쪽 윙어인 문봉수 선수가 빠지고 김경일 선수가 투입되었습니다. 이러면 뱅상 엘라즈 감독이 바라는 4-3-3 포메이션이 완성되는군요.
-전반전에 36%까지 떨어졌던 점유율이 아마도 40 중반대까지 치솟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습만이 아니라 측면을 활용한 지공에도 우리나라가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중계진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측면은 포르투갈의 측면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나 교체로 투입된 미구엘 올리비에라가 수비적인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선수이기에 포르투갈의 왼쪽 측면이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후반전 10분이 조금 지난 시간.
파비오 실바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팀의 동료들을 매섭게 째려봤다.
‘도움이 안 되는 녀석들!’
월드컵 우승에 도달하려면 이런 수준 낮은 팀을 상대로 쉽게 이겨야 했다.
‘그런데 왜 이기지를 못해!’
하지만 그의 짜증과 반대로 포르투갈의 선수들도 파비오 실바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파비오 실바가 날린 슈팅만 두 자리 숫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힘겹게 만들어준 기회를 파비오 실바는 식은 죽을 먹듯이 쉽게 날렸다.
덕분에 역습을 시도할 때 포르투갈의 선수들은 파비오 실바가 아닌 곤살루 게드스와 호딜손 고메즈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측면을 흔들려고 했다.
-포르투갈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반전처럼 쉼 없이 공격하는 포르투갈이지만, 대한민국이 전반전과 다르게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포르투갈의 역습 허용이 많아졌습니다. 특히나 포르투갈의 에이스인 파비오 실바 선수가 꽤 많은 실책으로 역습의 빌미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까드득!
‘이렇게 물러날 수 없어!’
이를 꽉 문 파비오 실바가 결국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무리하게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비진에게는 그의 모습이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보였다.
곽진수가 살벌하게 웃었다.
‘김치 펀치는 많이 먹어봤지? 이번에는 된장 킥이다!’
촤아아아악!
“아아아악!”
날카로운 태클!
곽진수는 파비오 실바의 발에 있는 공을 깔끔하게 빼낸 뒤에 급히 전방으로 공을 보냈다.
“헤이! 레프리! 반칙이에요!”
파비오 실바가 고통스러워하는 척 호소를 했지만, 주심은 이미 그를 보지 않고 있었다.
전방으로 향한 공.
한정훈이 수비를 등지고 공을 지켜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벌려진 측면으로 공을 연결했다.
-측면으로 연결되는 공!
-정우현! 더 높게 올라갑니다!
-빨라요! 빨라요!
우우우우우우우!
포르투갈! 뭐 하는 거야? 막아!
망할 김치 몽키를 죽여버려!
원숭이는 김치가 아니라 바나나를 먹어야지! 얼른 막으라고 망할 녀석들아!
이탈리아의 현지 관중들의 외침에도 정우현은 위축되지 않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있군!’
정우현은 박규태가 깊게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서 높고 크게 휘는 크로스를 올렸다.
뻐엉!
-크로스!
-높아요! 중앙에는 박규태와 한정훈이 있습니다!
-박규태가 있는 방향으로 휘는 크로스!
“후웁!”
박규태가 몸으로 포르투갈의 수비수인 후벵 디아스를 밀어낸 뒤에 높게 뛰었다.
“큭!”
후벵 디아스는 급히 박규태의 유니폼을 잡았지만, 그는 이미 높게 떠오른 뒤였다.
그리고 간결하게 머리를 가져간 박규태.
툭!
철썩!
포르투갈의 골키퍼인 카를로스 세이디가 막을 수 있는 위치에서 많이 벗어난 곳에 공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골망을 흔들며 포르투갈의 수비진을 절망에 빠트렸다.
골을 넣은 박규태는 달렸다.
이탈리아의 현지 관중들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향한 인종차별적 욕설과 야유는 없었다. 그리고 박규태는 그들의 앞을 천천히 뛰며 보여주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환상적인 골든골을 넣은 대한민국의 ‘판타지스타’가 보여주었던 세레머니가 203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게 반지야! 이게 김치 반지라고! 이 멍청한 파스타! 스파게티! 피짜 녀석들아! 으하하하!”
안지환의 반지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박규태가 이탈리아 관중들을 힘껏 비웃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96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