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95 >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렇죠! 아시아 역사상 이런 선수는 차붐과 쏜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죠.
-이제는 앞에 말했던 두 사람보다 더 대단한 위상을 쌓고 있는 ‘팍’입니다!
-김치팍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축구를 바꿀 최고의 선수가 될 것 같습니다.
-월드컵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죠!
-한국이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역시나 팍은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죠.
-매 경기 골을 넣고 있는 팍입니다. 루이스 너츠와 함께 득점 순위 경쟁을 하고 있죠?
-맞습니다.
삑!
TV가 꺼졌다.
파비오 실바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를 꽈득 물었다. 그는 대표팀이 잡은 호텔에 홀로 앉아 있었다.
원래라면 다른 선수단과 같이 오전에 가벼운 훈련을 받고 있어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명성과 실력으로 감독을 압박해서 오늘 하루 휴식을 부여받았다.
휴식을 받은 이유는 허벅지에 통증이 있어서였다. 물론 허벅지 통증 따위는 없었다.
누가 대표팀에서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냐 묻겠지만, 호날두가 은퇴한 뒤에 이만한 명성과 실력을 갖춘 선수는 파비오 실바가 유일했다.
유로 2028에서 팀을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만큼 파비오 실바의 입김을 굉장했다.
거기다 월드컵 우승을 원하는 포르투갈 국민의 기대도 그 어떤 때보다 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그런 웃긴 광대를 왜 그렇게 고평가하는 거야! 내가 최고라고! 내가! 내가 최고란 말이야!”
그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기어코 리모컨을 벽에 던졌다. 플라스틱이 부서지는 소리가 그가 머무는 방을 울렸고, 곧이어 싸늘한 정적이 이어질 뿐이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내뱉는 파비오 실바.
“내가 발롱도르는 물론이고 메시와 호날두를 넘어서 진짜 최고가 될 선수였다고!”
꿈은 메시처럼 발롱도르를 여러 번 수상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지난해 발롱도르는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발롱도르 수상 횟수는 ‘1’에서 늘어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순간은 좋았다.
그가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것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울브스에 있던 박규태와의 만남이 그의 커리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멍청한 회장은 나보다 그 망할 ‘김치 광대’를 더 높게 평가했지……. 날 유벤투스로 쫓아냈어!”
다 김치팍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그의 인성이 그리 좋지 않아서 빠르게 유벤투스로 처리를 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거기다 그 시기에 파비오 실바의 대안으로 영입된 선수는 ‘라두 웅구레아누’였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번 경기에서 격의 차이를 보여주겠어.”
타도 김치팍.
그는 속으로 박규태를 꺾겠다고 다짐했다.
* * *
“파비오 실바?”
“어, 너는 상대해 봤잖아.”
프라이부르크에서 힘겨운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는 조상훈은 자신과 함께 대표팀의 수비진을 구성하고 있는 동갑내기 곽진수에게 파비오 실바와 관련된 것을 물었다.
곽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체로 출전에서 잠깐 상대를 해봤지. 확실히 잘하더라. 그런데 딱 그것뿐이었어.”
“그래?”
“차라리 우리 박규태 선배님이 더 상대하기 어렵지. 솔직히 파비오 실바는 뭔가 멍청한 버전의 호날두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곽진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의 파비오 실바는 무서울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유벤투스에서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음에도 곽진수는 파비오 실바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기대되고 있었다.
“파비오 실바를 상대로 1골은 어쩔 수 없이 내줄 수 있는데, 포르투갈은 우리 위대한 김치팍 선배한테 2골은 기본으로 헌납할 거라서 그렇게 걱정은 안 된다.”
“확실히 진짜 대단한 선배지.”
두 선수의 말처럼 박규태는 대단했다.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마도 이번 포르투갈과 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승리를 이끌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선배님의 눈빛이 다르네…….”
“달라? 난 평소랑 똑같은 것 같은데?”
모르겠다는 표정의 조상훈.
그와 다르게 곽진수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야……. 저건 뭔가 목표가 생겼을 때 선배님이 보여주는 표정이야.”
“그런 것도 알아볼 수 있어?”
“내가 선배님이랑 생활한 게 약 2년은 되는데 그것도 모르겠냐? 내가 박규태 선배님이랑 EPL 우승은 물론이고 빅 이어도 같이 들어본 사이야.”
그렇게 말을 한 곽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박규태를 바라봤다.
“분명히 내일 경기에 뭔가를 보여주겠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규태가 골망을 흔드는 멋진 슈팅을 때렸다.
“좋아! 오늘 규태가 컨디션이 좋네!”
대표팀의 코치진은 컨디션이 좋은 박규태를 보면서 흡족함을 드러냈다.
박규태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에 만족하며 조용히 내일 있을 경기를 대비하고 있었다.
“두 유 노 김치? 아니야……. 그건 너무 많이 썼고……. 뭐가 남았지? 상대를 조롱하면서 국뽕까지 채울 수 있는 최고의 세리머니가 뭐가 있지?”
축구계에 다양한 세리머니가 나왔다.
박규태는 시간을 거슬렀다.
2026년부터 시작해서 2022년과 2018년……!
아니, 그 훨씬 뒤인 2010년과 2006년을 넘어서 대한민국이 기적을 일으켰던 2002년으로 돌아갔다.
“음……. 역시 세리머니는 그 대선배님의 세리머니만 한 것이 없지. 거기다 여긴 이탈리아고.”
마음을 정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박규태.
그가 환하게 웃으며 확신했다.
“파비오 실바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화끈한 경기력과 멋진 세리머니를 보여주지.”
* * *
203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있는 날.
선수들은 비장함을 가진 상태로 두 눈을 번뜩였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8강에 진출한다.
사상 첫 원정에서 8강에 진출하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강팀이다. 하지만 조별예선과 32강 토너먼트 경기에서 주전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가 되었지.”
덕분에 포르투갈은 이번 월드컵에서 단 한 번의 클린시트도 없었다.
즉, 틈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출혈이 만만찮았다.
오른쪽 수비를 보던 김기범이 빠졌다.
그 자리를 백업인 노지민이 채웠으며, 중앙에 이강민과 한기환의 사이에서 경기의 중심을 잡아주던 유진수가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뱅상 엘라즈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꺼내 들면서 이강민을 3선으로 내렸다.
“리가 3선에서 잘할 수 있을까?”
“모르지……. 발렌시아에서도 3선에서 뛴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일단 뛰면 기본은 해줬으니까. 내가 보기에 이강민보다는 팍과 호흡을 맞출 공격수가 걱정이거든.”
“한이라……. 전북에서 뛰는 선수군.”
외신들은 이강민의 3선 기용과 투톱을 기용하는 대한민국의 전술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크게 궁금해했다.
“입장하는군.”
“파비오 실바가 이번에 골을 넣을 수 있을까?”
“솔직히 32강에서 미국을 상대로는 형편없었어.”
“나도 동감이야.”
“하지만 파비오 실바잖아. 뭔가 보여주겠지. 그래도 과거에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선수야.”
필드에 입장한 선수들.
기자들의 시선은 파비오 실바에게 쏠렸다.
그리고 금방 박규태에게 향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로군.”
“팍은 메시처럼 신화를 쓸 거야.”
“정말 대단해.”
기자들의 관심처럼 박규태는 필드에서 포르투갈 선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오늘 널 꺾고 내가 역사가 되겠어.”
“뭐래?”
박규태는 자신에게 선전포고하는 파비오 실바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관중석에서 파비오 실바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비오! 파비오! 파비오! 파비오!
저 멍청한 김치 몽키를 뭉개버려!
우우우우! 물러가라 멍청한 김치들!
“켁! 작년 우승팀인 이탈리아가 맥시코에게 맥없이 탈락해서 그런가? 이탈리아 관중들이 여기서 화풀이를 하고 있네. 그런데 왜 우리를 가지고 그러지?”
이강민의 말에 박규태가 피식 웃었다.
“모르죠. 예전 기억이 떠올랐나 보죠.”
“무슨 기억?”
“2002년에 우리나라에 져서 16강에서 탈락한 거요. 이번에 멕시코에 두들겨 맞으면서 우리한테 맞은 것까지 기억났겠죠. 그거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에요?”
“설마……. 그렇게 속이 좁겠어?”
이강민의 말에 박규태가 피식 웃었다.
사실은 유벤투스의 팬들이 그들의 에이스가 뛰는 포르투갈을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박규태의 말처럼 2002년을 떠올린 이탈리아인들의 응원도 섞인 것도 조금의 영향이 있었다.
거기다 박규태가 세리에A 팀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경기력을 보여준 것도 있었으니까.
그 앙심이 남아 있다.
다양한 복잡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이탈리아의 현지 팬들은 포르투갈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 고생 좀 하겠네.”
“빡빡한 경기가 되겠죠.”
이강민과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시작은 대한민국의 선축이었다.
삐이이익!
포르투갈은 4-3-3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고, 대한민국은 4-4-2 포메이션을 꺼냈다.
대체로 포르투갈이 대한민국을 압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전반전에 앞서나갔다.
하지만 골대 앞에서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중들의 탄식을 불렀다.
-아! 파비오 실바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났습니다!
-전반전 10분이 지나는 시간 동안에 포르투갈이 득점 기회를 3번이나 만들었는데……. 그 기회가 모두 날아갔습니다! 분명히 좋은 기회였는데요!
-이러면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금방 좋은 기회를 얻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위기 뒤에 오는 것은 기회니까요! 포르투갈이 계속해서 이렇게 밀어붙일 수 없을 겁니다.
중계진의 말처럼 기회가 금방 찾아왔다.
의외로 박규태의 투톱 파트너인 한정훈이 등을 지고 공을 받아주는 플레이를 잘 수행해 주었다.
덕분에 포르투갈의 중앙 수비수인 후벵 디아스를 밀어내고 이강민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강민! 이강민! 이강민!
중계진의 간절한 외침.
이강민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포르투갈의 실수가 나왔다.
-와아아아! 고오오오올! 고오올!
-이강민 선수가 골을 넣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이강민!
선취점을 먼저 만든 대한민국.
포르투갈의 측면 수비수인 지우베르투 산토스가 이강민의 빗나간 슈팅에 억지로 머리를 가져갔다가 공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면서 골망을 흔들었다.
-지우베르투 산토스의 자책골이 되었군요!
-이강민 선수의 빗나간 슈팅이 이렇게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금방 내어준 골을 만회했다.
-아……! 곤살루 게드스의 슈팅이 골망을 흔듭니다! 전반전 17분에 터진 포르투갈의 골!
-오늘 정말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곤살루가 기어코 대한민국의 골망을 흔듭니다.
-선취점이 나온 지 4분 만에 포르투갈이 동점으로 따라잡습니다!
전반전 20분이 되기 전에 나온 두 골.
1 대 1의 균형이 맞춰진 경기.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9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