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64 >
갈라타사라이.
터키리그의 명문 팀이자 대륙 컵대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단골팀이다.
비록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매 시즌 리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우승을 자주 가져가는 터키의 강팀이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유망주 정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이름값이 높은 노장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을 즐기는 구단이었다.
덕분에 터키 쉬페르 리그에 속한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스, 페네르바흐체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노장 선수들의 마지막 안식처’라는 인식이 강했다.
“측면에서 올라온다!”
“역습을 막아!”
갈라타사라이의 수비진이 다급히 몸을 뒤로 돌렸다. 모처럼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단단한 수비를 뚫지 못하고 공을 빼앗겼다.
당연히 공격의 실패는 역습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라두 웅구레아누에게 공이 연결되기 무섭게 레알 마드리드는 짧은 시간에 최전방에 있는 박규태와 니콜라스 브라보에게 공을 연결하면서 자신들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박규태는 니콜라스 브라보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갈라타사라이의 수비진을 뚫고 첫 득점을 올렸다.
“이거지이이이이이!”
“아직 프리시즌이지만 너무 기대되는데? 최근에 최전방에서 저렇게 해주는 선수가 누가 있었냐고!”
“니콜라스 브라보도 9번과 10번 사이의 선수였지. 완벽한 9번이 아니었으니까.”
“파비오 실바보다 10배는 더 잘하는 것 같아.”
“장난해? 그런 배신자보다 100배는 더 잘하지.”
팬들은 들뜬 표정으로 전반전 초중반부터 앞서나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력을 바라봤다.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놀랄 수밖에 없네. 연습 때도 봤지만……. 골을 넣는 저 감각만큼은 정말 괴물 같아.’
‘발롱도르를 수상한 이유가 있었어.’
‘말만 뻔지르르한 놈은 아니었네.’
잘한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규태는 1골로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갈라타사라이의 수비진을 농락하면서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었다.
“좋았어!! 크하하하하!”
“니콜라스! 최고야! 최고라고!”
“이번 시즌은 기대해도 될 것 같아! 팍이랑 니콜라스의 조합이 굉장하다고!”
“라두 웅구레아누도 잊지 마! 저 녀석은 진짜 리버풀에서 헐값으로 잘 사 온 거라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가득 채운 레알 마드리드의 홈팬들이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력은 대단했다.
‘클럽도 다니고 골프도 치러 다닐만한 이유가 있군. 선수들의 수준이 달라.’
박규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은 그가 있었던 울브스의 선수들보다 더 대단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기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어.’
이건 천천히 바꿔야 했다.
하나씩 선수들의 정신을 일깨우면 언젠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가 잘해야 했다. 울브스에서 보여주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야만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선발로 나섰던 공격진의 대부분이 빠졌다.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로테이션 맴버를 투입하면서 그들의 전술적인 능력과 개인 능력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벤치에 앉은 박규태.
그가 조용히 홀로그램을 열었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세 번째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명성치 S등급의 클럽으로 이적 성공!
-2030년까지 발롱도르 수상 성공!
-축하드립니다! 시련을 통과한 보상으로 ‘플래티넘 카드’, ‘천상의 탈모약’을 획득하셨습니다.
박규태가 보상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시즌도 환상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레알 마드리드, 친선 경기에서 7-0 대승!]
[박규태, 2골 1도움을 기록!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니콜라스 브라보, ‘팍은 대단한 선수. 그와 호흡을 맞추면서 오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라두 웅구레아누, ‘지난 시즌에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정말로 기대된다.’]
[벨로아 솔랑케 감독의 4-4-2와 비대칭 4-3-3은 도대체 어떤 전술인가?]
[프리메라리가 일정 공개!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첫 상대는 헤타페!]
-캬……. 진짜 클래스가 다르더라. 울브스도 나쁜 게 아니었는데 뭔가 연결이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주급 도둑들 비싸게 팔고 박규태랑 젊은 유망주들 싹 긁어오면서 재정적으로도 이득 많이 봤음. 이번 여름 이적시장은 솔직히 레알 마드리드가 승자다.
-바르셀로나는 뭐하냐; 인테르에서 모하메드 소우를 영입할 거면 그냥 박규태나 데려오지;
-응, 그것도 맨유랑 리버풀이 하이재킹하면서 영입 실패할 수도 있음 ㅋㅋㅋㅋㅋ
-바르셀로나도 잘하고 있음. 맨체스터 시티의 크리스 프롬 650억에 데려왔는데?
-꾸레들은 답이 없음. 자기들이 응원하는 구단의 회장이랑 단장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불만이 얼마나 많은지 ㅉㅉㅉ 맨날 저러는 거 보면 진짜로 한심하다.
-응, 레알 마드리드 영입에 쓴 돈만 4,000억 원임. 우승 못 하면 역대급 먹튀됨ㅋㅋㅋㅋ
-응, 주급 도둑들 팔아서 3,000억 원은 채움.
프리시즌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박규태는 천천히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 사이에 스며들었다.
대체로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나잇대를 가진 선수들은 박규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그 어떤 선수보다 강하게 우승을 갈망했고, 박규태가 말하는 위닝 멘탈리티와 간절함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었다.
반대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은 박규태와 거리감이 있었다.
그들은 박규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운 좋게 성공한 괴상한 공격수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무시하거나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박규태의 실력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은 재수 없게 해도 실력은 진짜야.’
‘즐라탄 같은 선수인가?’
‘경기력도 미쳤지만…… 하는 행동도 미친 것 같은데?’
젊은 주장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가 될 것이라고 평가받는 크리스티안 이오리는 두 무리로 나뉜 선수단을 보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젊은 선수들과 같은 생각을 했지만, 최근에 박규태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에도 관심이 많았다.
‘바르셀로나는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없는 트레블을 울브스가 달성할 수 있게 만든 선수니까.’
그리고 바르셀로나처럼 레알 마드리드가 트레블을 달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단이 한마음으로 트레블이라는 목표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해!’
그렇게 다짐한 그가 조용히 박규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프리시즌은 빠르게 흘렀다.
레알 마드리드는 연전연승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그 어떤 시즌보다 크게 키워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프리메라리가 1라운드 경기.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이번 시즌 프리메라리가 리그 첫 경기를 앞두고 조용히 선수단을 바라봤다.
‘음, 생각보다 선수단의 분위기가 잘 잡혔군.’
주장인 크리스티안이 박규태를 지지하면서 두 무리로 나뉜 선수단이 일단은 어느 정도 상황이 좋아졌다.
젊은 선수들은 그들의 리더인 크리스티안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거기다 박규태도 마냥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젊은 선수들의 시선을 바꾸었다.
물론, 완벽하게 바꾼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의 젊은 선수들은 박규태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부분은 팍이 실력으로 보여주겠지.’
그렇기에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선수단을 믿고 조용히 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버스는 조용히 헤타페의 경기장으로 향했다.
리그 개막전부터 원정 경기였기에 몇몇 젊은 선수들은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헤타페의 콜로세움 알폰소 페레스에 도착한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우우우우우!”
“죽어! 오늘 엘 헤타가 너희를 무너뜨릴 거야!”
“우우우! 멍청한 녀석들!”
“우리 팀에 있는 한국인이 진짜야!”
아직 스페인어가 서툰 박규태는 그의 귓가에 간간이 들리는 ‘코레아노’를 듣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라두 웅구레아누에게 물었다.
“저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는 거야?”
“헤타페에 있는 한국 선수가 진짜라는데?”
“그래?”
박규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헤타페에 한국 공격수인 전세영이 뛰고 있었다.
‘전북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뛰던 선배였지. 그러다가 프리메라리가에 도전장을 던졌고.’
스물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유럽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늦은 나이에 도전했지.’
딱 3년만 더 빨랐으면 몰랐다.
회귀 전에도 전세영은 헤타페에서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K-리그로 돌아갔다.
아무튼, 라커룸에 홈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경기장으로 들어선 박규태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과 함께 원정팀 라커룸에 입장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선수들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덤덤한 목소리로 오늘 경기에서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전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야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과 다른 느낌이네.’
상당히 차분했다.
“헤타페는 높은 점유율과 뛰어난 헤딩 성공률을 활용할 거다. 대체로 측면 공격수인 바셈 스라피와 제프리가 적극적으로 우리의 머리 쪽을 공략하겠지. 내가 나눠준 자료의 7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제프리는 평균적으로 패스 성공률이 그리 높은 선수가 아니다. 고작 75%밖에 되지 않아…….”
울브스의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선수들의 승부욕을 끌어올리는 말을 잘하는 편이라면, 지금의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세밀한 지시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언으로 선수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의 눈빛은 아까와 다르게 꽤 신뢰가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료에 나온 확률과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규태도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선수들을 따라서 라커룸을 나섰다.
필드에 입장하기 전에 박규태는 헤타페의 공격수인 전세영을 볼 수 있었다.
그리 친한 부류는 아니었지만, 박규태는 해외에서 같이 고생하는 선배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네가 규태구나.”
그는 환하게 웃으며 박규태와 악수를 하였다. 전세영은 아직 팀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박규태가 알고 있는 선수는 전세영뿐만이 아니었다. 예전 소쇼 시절의 동료였던 장도 푹스가 있었다.
리그 뒤 시절에 반 시즌을 같이 뛴 팀 동료였던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를 거쳐서 헤타페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간단한 안부를 나누었다.
곧이어 필드에 입장할 시간.
두 팀의 선수들이 잔디를 밟기 무섭게 홈팬들의 강렬한 환호성이 필드를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엘 헤타! 엘 헤타! 엘 헤타!
압도적인 경기력 차이를 보여줘!
여기는 우리 홈이야! 레알 마드리드 녀석들에게 기죽지 말고 제대로 짓눌러버려!
거친 홈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박규태는 태연했다.
‘잉글랜드 클럽의 팬들이 내뱉는 패드립과 욕설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지.’
확실히 EPL과 비교하면 이 정도 욕설과 야유는 어린아이가 찡찡거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경기가 시작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 주심이 두 팀의 진영을 살피곤 길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2029-30시즌 프리메라리가 1라운드.
헤타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64 > 끝
ⓒ 엉심킬러